ARTICLE CRITICS

List Print Share

‘관계적 미학’을 향한 디자인의 반응들

2009-12-22  


 
그림1 Relational Aesthetics, Nicolas Bourriaud 

 
그림2 Turner Prize Exhibition design, A2/SW/HK 

 
그림3 iRobot Roomba 

 
그림4 Graphic design museum, Lust.
네덜란드에 위치한 새 그래픽디자인미술관을 위한 디자인.
다양한 인터넷소스로부터 정보를 부여받아 하루에 600개의 포스터를 생산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1997년에 출간한 책 '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 Esthetique Relationnel' 은 지난 십 년 동안에 나왔던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비평서이다. 이 책에서 1990년대의 예술을 개관하려했던 부리오는, 관계예술(relational art)이 ‘독립적, 개인적 공간보다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 사회적 문맥의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뉴욕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태국아티스트, 리크릿 티라바니야(Rirkrit Tiravanija)과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작품은 관계예술의 예로써 자주 인용된다. 티라바니야는 커리 같은 음식을 요리해 관람객에게 주는 이벤트를 한다. 1992년, 뉴욕의 303갤러리에서의 작업 'Untitled(Still)'에서 그는 갤러리오피스와 창고에서 찾은 모든 물건들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 여기에는 디렉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전시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빈 창고에 부엌을 만들어 직접 커리를 요리해 관객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커리나 부엌과 같은 형식적 측면이 아닌 관객과 예술가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부리오 또한 티라바니야의 예와 같이 관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가의 의도에 초점을 맞춰 ‘관계미학’을 설명한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갤러리에 가서 커리를 먹고 아티스트와 이야기하는 참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많은 논점을 가졌음에도 부리오의 ‘관계적 미학’은 최근의 현대예술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론적틀로 사용되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디자이너와 디자인비평가들은 ‘관계적 미학’이 어떻게 근래의 디자인작업들을 개관할 수 있을지 타진해보기 시작했다. 2006년, '아이(Eye)'의 칼럼에서 영국 작가 모니카 파린더(Monika Parrinder)와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는 관계미학의 요점이 ‘소통과 그 파급효과들에 관한 사유에 넓은 길을 열어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터너프라이즈전시회(Turner Prize Exhibition)가 열린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Tate Britain)에 만들어졌던 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림2) 이 방은 영국의 디자인스튜디오 A2/SW/HK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관람객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이 되온 터너프라이즈의 전시를 보고 이 방의 벽에 걸린 낱장의 메모지에 의견을 쓸 수 있었다. 그들은 이것이 ‘간단한 방법의 피드백 이상이며, 일종의 살아있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라고 적었다. 여기에 대해 디자인비평가 릭 포이너(Rick Poynor)는 ‘그 쪽지들이 낯선 이들로부터 예술이나 그 외의 것들에 관한 논쟁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예술비평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October'에 실린 관계적 미학에 대한 비판 글에서 비슷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화를 허락하는 모든 관계는 민주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맥락에서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관계적 예술이 상호작용을 생산한다면, 다음에 던져야할 질문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관계이며, 누구를 위해, 왜 만들어지느냐이다.’ 앞서 언급한 테이트브리튼 미술관의 예에서, 관객들은 의견을 쓸 수 는 있지만, 당선자를 선정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결국 참여는 착각이고, 현실의 조건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의 디자인관장인 앤드류 블로벨트(Andrew Blauvelt)가 '디자인옵저버(Design Observer)'에 관계적 디자인을 향하여(Towards relational design)이라는 에세이를 올렸다. 그는 우리가 현대디자인(Modern design)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학습되고 보급될 수 있는 디자인 형식’을 찾던 첫번째 시대와, ‘의미론적 차원과 서사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본질적 내용에 몰두해 있던’ 두번째 시대를 지나 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어 1990년대 중반에 세번째 물결, ‘관계디자인’의 물결이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그에 따르면 관계적 디자인은 ‘수행적이며 실용적인, 과정중심의, 열린 결말을 가진, 실험적이고 참여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디자인이며, 오늘날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생성해내는 과정과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예로 드는 디자인은 다름아닌 룸바(Roomba) 로봇청소기이다. (그림3) 룸바는 다양한 센서와 프로그램을 사용해 자신이 청소하는 방과 물리적 연관을 맺으며, 회사는 이 룸바를 조작할 수 있는 기초적키트를 제공하여 로봇마니아들이 짜여 있지 않은 방식으로 제품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 그는 낙관적으로 ‘폐쇄적인 시스템보다는 열린 결말을 가진 시스템, 이상적 유토피아보다 우위에 있는 실제 세계의 제한과 맥락들, 관계적 연결들, 분리된 사물들과 난해한 의미들의 종말, 상호연계된 생태학의 시작’등을 언급하며 이 세번째 단계야 말로 ‘해법들을 다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의도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디자인이 관계 속에서 완성되도록 하는 하나의 흐름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의 디자인을 개관하는 하나의 단어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블로벨트가 예시로 든 러스트의 그래픽디자인작업(그림4)과 룸바가 각각 관계를 맺는 대상, 방식, 의도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에 대해 릭 포이너는 ‘관계는 마치 영원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라는 미묘한 형태를 지칭하는 완곡어법처럼 들리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클래어 비숍의 질문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떤 유형의 관계이며, 누구를 위해, 왜 만들어지는 관계인가?”



인용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 Claire Bishop, 'October' 2004
Part of process, Limited language,'Eye', 2006
Towards relational design, Andrew Blauvelt, 'Design Observer', 2009
Strained relations, Rick Poynor, 'Print', 2009

Tag :
List Print Share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