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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하는 시선들 1 : 1936년 까마귀의 날개

2009-12-24  

1924년 10월 어느 날 오후, 청년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배회하며, 모더니티가 빚어낸 도시 경관의 생김새를 오감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퇴근 시간에 맞춰 자동차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스위스 출신 건축가의 한가로운 산책은 위기에 처한다. 특히 자동차 한 대가 그를 향해 돌진하면서 자동차에 치일뻔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재빨리 몸을 피한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파리 같은 보행자 중심의 메트로폴리스를 자동차의 위협에 방치해선 안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대로라면 거리에 넘쳐나는 자동차들이 도시를 무방비 상태로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자동차를 도심 바깥으로 몰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가 행한 선택은 자동차를 교통의 중추 미디어로 삼는 거대 시공간-기계로 파리를 재건하는 계획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도보의 눈높이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벤야민적인 산보객의 시선은 자동차 시대의 건축가에겐 더 이상 어울리는 감각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중력의 족쇄로부터 풀려나 건축적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창공 위로 날아올라야 했다. 그래야만, 직선과 직각으로 감각의 질서를 성취한 미래의 인공 환경이 그의 시야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천루 도시에 관한 모더니즘의 이상을 가장 강렬하게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은 그와 같은 비상이 가져다 준 조감의 투시도적 시선에 의지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지구의 반대편, 식민지 조선에서 건축가 출신 작가 이상은 르 코르뷔지에와 유사한 경험을 한다. 산보객의 자질을 타고난 그는 아내와 다툼끝에 줄달음박질로 집에서 빠져 나와, 커피나 한잔 마실 요량으로 경성역의 찻집으로 향한다. 그곳이라면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테니 마음 놓고 쓰디쓴 입맛을 거두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내의 외도에 대한 의심을 거둬내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한 일이 발생한다. 르 코르뷔지에와 마찬가지로, 산보객의 위협적인 적수로 자동차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와는 달리, 이상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경성역에 도착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빈 주머니를 확인하곤 다시 얼빠진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그리곤 문득 미쓰코시백화점의 옥상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거기에서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리는”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정오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는 불현듯 겨드랑이에서 가려움을 느낀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거기는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날개는 사라지고 없다.이상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외쳐보고 싶지만, 그의 몸뚱이는 이미 “피로와 공복으로 무너져 들어”간 후다. 그러니 옥상 난관을 박차고 올라 경성의 하늘을 활공하며 조감의 시선으로 모더니티의 도시를 상상할 여력이 없다. 산보객의 시선은 현대적 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증할 상식의 병”으로 머릿속에 준비된 백지 위에다가 “위트와 파라독스를 늘어놓는 것”뿐이다. 조감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감도의 시를 쓰면서.1)그런데 건축가의 시선이 무기력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자폐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경성을 바라보는 조감의 시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토착 자본의 시선이 의기양양하게 오히려 건축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토착 자본의 시선이 의기양양하게 지하 1층, 지상 6층의 화신백화점 옥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바로 박흥식이 그 주인공이었고,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은 당시 고양군 은평면 일대였다. 그는 그 곳에 신도시 건설을 계획한다.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손정목에 따르면, 불광동과 수색 일대에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전원도시 조성 계획과 유사한 형태로 신도시를 조성하고, 종로까지 터널을 뚫어 지하철로 경성의 도심과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식민지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실패가 예견된 “희한한 계획”이긴 했지만, 박흥식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자본의 야심만큼은 그 계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덕택에 조감의 시선은 마음껏 허영을 부리며 상상력의 임계선을 넘나들 수 있었다.2)

글 : 박해천
계원디자인예술대에서 발행한 <양귀비>저널에 실린 글을 총 5편의 연재로 싣습니다. 

01 1936년, 까마귀의 날개
02 1950년, 폭격기의 시선
03 1962년, 마포아파트 혹은 혁명 한국의 상징
04 1988년, 스타디움의 나르시시즘
05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모델하우스


르 꼬르뷔지에 《부아쟁 계획》의 투시도(위)
조감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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