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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시스템 :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2

2009-12-28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화면 속에 땅을 복원해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선원근법이다. 르네상스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이 세계의 공간을 파악하는 방식은 선원근법적이었다. 즉 자신을 중심으로 서서 그 앞에 쭈욱 같은 간격으로 일정한 거리의 비례를 가지고 펼쳐지는 물리적 공간의 세계가 현실의 모습이었다. 물론 서양 회화에서 선원근법은 마네와 세잔느의 19세기 말에 와서는 깨지기 시작하지만 일반인들이 세계의 공간을 지각하고 파악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도를 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지도 속의 공간은 선원근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에 있는 땅의 모습은 내가 길에서 서서 키높이로 세상을 본 그 모습이 아니라, 하늘 높이 떠서 땅을 내려다보며 모든 물체들의 높낮이를 짜부러트려 없애버려 추상화되고 평면화된 모습이다. 현실에서 길을 찾을 때는 저기 있는 저 8층 건물이 대략 흥국생명 쯤 되겠고, 그 너머에 있는 산은 무척 높으니 북한산쯤 되겠군 하는 식으로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이지만 지도에는 건물의 높낮이는 나오지 않는다. 산의 높이는 나오지만 지도에 대한 해독능력이 상당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도를 보고 산의 높이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지도의 공간은 우리가 땅에서 키높이로 볼 때의 그 현실성이 없는, 무척이나 매정하고 불친절한 데이터이다. 사실 작전하는 군인이나 등산가나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지도는 키높이에서 본 땅의 구체적이고 한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무척이나 유용하지만, 당장 낯선 네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일반인에게는 전체의 모습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고 아무런 도움도 안될 뿐이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정보는 이 헷갈리는 네거리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국민은행이 나오는가 하는 것인데 지도는 5천분의 1 정도로 아주축적이 작지 않은 한 그런 정보는 보여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지도의 형태는 5만분의 1인데, 1센티미터가 5백미터로 나타나는 스케일에서는 구체적인 건물은 표상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꼭 자세한 지도가 아니더라도, 어떤 장소를 알려 주는 약도를 그릴 때 2차원적 평면으로 그리기 때문에 거기서 현실의 공간을 지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니까 산업이나 군사나 비즈니스 같은 심각한 영역에서는 당연히 2차원의 평면으로 된 지도가 일반적이고, 등산이나 여행용 지도도 평면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거기서 현실의 공간감을 느끼는 것은 어렵다. 이때 고마운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사라진 선원근법과 3차원의 공간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초기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단순히 지도를 집어넣은 형태로 2차원의 평면 데이터만을 제공했지만, 21세기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1500년도에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선원근법에 따라 정확하게 거리의 모습을 3차원으로 보여주어 운전자가 공간감의 혼란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거나 사고를 당할 염려를 없애준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게다가 왠만한 건물의 디테일도 다 보여주기 때문에 운전자는 실제 현실의 디테일에 아주 근접한 유사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화면 속의 하늘은 저녁이 되면 밤하늘로 바뀌기 때문에 운전자는 야간 운전에서도 공간감의 혼란을 겪지 않는다. 더욱 결정적으로, 지도를 볼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면서 골치 아픈 일, 지도정치(定置; 지도를 올바로 놓는 일) 따위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에서는 필요치 않다. 즉 지도를 올바로 보려면 지도에 나타난 북쪽과 실제의 북쪽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침판으로 정확한 북쪽을 찾고, 나침판의 바늘과 지도 상에 나오는 자북을 일치시키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똑똑한 GPS는 이런 일쯤은 쉽게 해치워버리므로 내비게이션 시스템 사용자는 지도정치는 잊어도 된다. 미사일을 쏘고 나서 그것이 목표물에 맞았는지 확인하지 않고 곧바로 적의 시선으로부터 탈출하면 되는 현대무기의 ‘fire and forget’을 닮은 GPS의 기능은, 지도정치라는 기능을 현대의 운전자의 두뇌에서 지워 버렸다. 즉 기계가 인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떠맡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땅의 상실을 완벽히 해결해 놓았다. 운전자가 걱정하는 것은 더 이상 땅의 상실이 아니라 정보의 상실이다. 실제로 요즘도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틀린 정보를 전해준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보는 하나의 소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스에서 오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혼자가 아니다. 방안에 혼자 앉아서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던 20세기의 전화나 텔레비전 같은 아날로그 장치들에 비하면 21세기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협력자들이 많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인간 주체가 혼자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주체노릇을 한다는 의미에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얘기했는데, 이제 기계의 인터페이스가 사람을 대신해가는 시대에는 간인터페이스(inter-interface)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하나의 인터페이스는 혼자서 인터페이스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터페이스와 연계하여, 중첩되거나 관계를 맺고 인터페이스 노릇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전화가 혼자서 전화가 아니라 컴퓨터나 MP3, 인터넷과 연계된 기계이고, 텔레비전도 다양한 주변기계장치들과 친척관계 속에서 텔레비전으로 존재하고 작동하듯이,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지리 정보의 디자인이라는 점에서는 구글 어스나 다음지도, 네이버지도 등과 연계해 있으며, 정보의 수집과 전달이라는 면에서는 방송국이 송출하는 DMB시스템과 연계해 있는 간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지리 정보인 구글 어스나 다음지도, 네이버지도에서 마음대로 확대하고 축소해서 보고, 지도의 위치를 마음대로 옮기면서 공간에 대한 지각과 인지가 확대된 것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으며, DMB의 실시간 송출능력도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땅의 상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도 있다. 가뜩이나 가파르게 상승하는 아파트값과 더불어, 땅을 되찾는다거나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 돼버린 마당에 땅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궁전을 되찾고 싶어 하는 중세의 귀족만큼이나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실제의 공간의 중요성이 사라진 곳에 사이버공간이 대신 들어서듯이(사이버 공간에 대한 용어에서 장소에 대한 말이 많이 쓰이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 같다. 집이 없는 사람도 홈페이지는 가질 수 있으며, 땅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공간을 누릴 수 있으며, 우편주소 보다는 이메일 주소가 더 중요하다), 디지털 지리 정보가 실제의 길에 대한 정보를 대체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시대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 조밀한 매트릭스 속에서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성찰 없이 가속화하는 삶의 템포를 더 정신없이 밀어붙인다. 초침의 발명 때문에 현대인은 더 초조해졌다고 하는데,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발명으로 오늘날의 운전자들은 더 초조해진 것은 아닐까?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찾는 목적지를 바로바로 띄워줘야 하고, 바로바로 목적지로 안내해 줘야 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사용자는 도무지 기다리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바로 앞 30미터 앞에 있는 네거리에서 우회전 하라고 하면 벌써 마음이 초조해져서 저 네거리를 놓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내비게이션 시스템에서 제공하고 있는 TPEG은 가뜩이나 조바심 나는 운전자를 더 조바심 나게 만드는데, 그 원인은 실시간 정보제공이라는 마술이다. 말은 mpeg이나 jpeg과 비슷하지만 차원이 완전히 다른 TPEG(Transport Protocol Expert Group)은 미리 입력해 놓은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기존의 내비게이션 시스템과는 달리, KBS, MBC, YTN 등의 지상파 방송국들과 연계하여 그들이 보내주는 교통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준다. TPEG이 기존의 내비게이션과 가장 다른 점은 사고나 정체 등 그때그때 변하는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방송국들은 주요 도로에 실시간으로 교통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차량을 배치하여 교통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는 중계소를 거쳐 각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TPEG을 통하여 운전자는 실시간으로 자신이 아직 가지 않은 그곳에 대한 정보를 천리안처럼 미리 내다보고 경로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경로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TPEG이 장착된 내비게이션 시스템 자체가 경로를 예측해 주는 것이다. 이제 길찾기의 인간화는 끝났다. 그것은 실시간(real time)의 일상화이며 공간화다.

그 편의성 때문에 실시간은 21세기 테크놀로지의 축복으로 들린다. 시간의 간극 없이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곧바로 받을 수 있으니 인간은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의 인간은 시간적으로 뒤쳐져서 쓸모가 없는 틀린 정보(false data)가 아니라, 실제시간에 전달되는 진짜 정보(real data)를 얻게 되는 것이다. 늦은 정보는 틀린 정보이며, 나아가 아예 정보가 아니다. 우주선이 발사되어 제 궤도에 진입했는지 바로 알아야 하는데 한 시간 전의 정보는 쓸모없다. 지금 여기 내가 가고 있는 실존의 길이 막힐지 아닐지 알아야 하는데 한 시간 전의 정보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실시간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계의 시간적 간격이 사라지고, 따라서 시간에 의존하고 있던 공간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지리적 공간과 시간 속에 거리를 두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관조하는 세계는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사라져서 협착된 숨 막히는 세계가 전개된다. 아니,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를 가두고 전개를 막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지구표면의 모든 것들을 장악하고, 시간적으로는 실시간을 통해 시간차의 간극을 없애버린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꽉 짜인 그물망 혹은 매트릭스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원료는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데이터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얇고 가는 거미줄로 짠 그물 같다. 우리는 그 그물 위에 살짝 떠 있는데, 그물이 워낙 조밀하기 때문에 떨어지거나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매트릭스에 구멍이 생겨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가끔 안팎으로 드나들듯이 디지털 데이터의 그물망에 가끔 허술한 구석이 생겨서 운전자가 엉뚱한 곳으로 인도되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술발전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고가도로로 되어 있는 외곽순환고속도로 바로 아래에 건물이 있는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을 내비게이션 시스템만 믿고 찾아가던 운전자가 외곽순환고속도로상에서 ‘계원디자인예술대학에 다 왔다’는 엉뚱한 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지만 그는 틀린 정보가 언젠가는 수정될 것이라고 믿고 먼 길을 돌아서 목적지에 간다. 그가 속해 있는 시간의 모양이 직선적 발전 경로가 아니라 호리병형 발전 경로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서 말이다.

‘땅의 중요성(전통적인 공간관, 적절한 땅을 가지고 있다)→땅의 상실(디지털 데이터, 땅은 추상화되고 사라진다)→땅의 회복(가상공간, 땅이 더 넓어진 것 같지만 실은 더 좁아졌다)’으로 이어지는 호리병형 발전 경로에 데이터의 직교해 만들어내는그물의 공간이 겹쳐진다. 즉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시간적으로는 우리를 호리병형 발전 경로에 가두고, 공간적으로는 얇은 거미줄로 된 그물 위에 살짝 띄워 놓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허허벌판형 발전 경로 혹은 일직선적 발전 경로에, 공간적으로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인간은 나무나 쇠, 돌로 된 플랫폼을 딛고 살던 근대 이전의 인간에 비해 우리가 상상하는 외계인의 모습처럼 한없이 약하면서 한없이 강한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 물리적 지리가 사라지고 데이터의 지리가 남은 시대에 우리는 근육을 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 두뇌를 쓸 필요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인가? 아니면 데이터의 매트릭스 속의 한 요소일 뿐인가?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이어읽기 「내비게이션 시스템 :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1」

글 이영준
기계비평가. 저서로 『사진 이상한 예술』, 『이미지비평』, 『기계비평』, 『사진이론의 상상력』, 『비평의 눈초리』 등이 있으며,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FAST Forward》, 《서양식 공간예절》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의 교수이며, 인문학 연구소인 H-CENTER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계원디자인예술대에서 발행한 『양귀비』저널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가 아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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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 이미지 ⓒ시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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