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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하는 시선들 2 : 1950년, 폭격기의 시선

2010-01-05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0년대 중반,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이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식민지 조선은 만주 개발의 거점이자 전쟁의 병참 기지로 재편되었고 총력전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후 경성의 종로 일대나 미쓰코시백화점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모의 시가전이 벌어졌고, 이 광경을 구경하려는 인파가 구름떼처럼 몰려들기도 했다. 등화 관제와 방공 훈련은 반복을 거듭하며 식민지인들에게 전쟁의 일상적 습속을 내면화하도록 독려했지만, 실제로 경성의 하늘에 적의 전폭기가 찾아온 적은 없었다. 전쟁 기계의 시선에 아직 노출되지 않은 탓에, 총동원이 야기한 물질적인 궁핍이 만연했고 전사자들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적어도 반도 내부의 식민지인들 상당수에게 전쟁은 구경거리에 가까웠다.(『신화 없는 탄생, 한국 디자인 1910-1960』,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04, 70-89쪽)

주지하다시피, 대량 살상의 기계화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압도적 폭력의 형식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50년 6월 25일 이후였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그해 7월 16일에 진행된 미군의 용산 대폭격 작전이었다. 그날 미군의 B-29 전략 폭격기 50대가 서울의 하늘을 비행하며, 1시간여에 걸쳐 용산 이촌동에서 마포 공덕동까지 이르는 지역에 대형 폭탄을 쏟아 부었다. 남하하는 북한군의 보급로 역할을 하던 용산 철도 시설, 당시 조폐 시설이었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공장, 효창공원 일대에 설치된 적의 곡사포 진지 등의 파괴가 그 목적이었다. 우연하게 그 장면을 목격했던 손정목은 폭격이 당시 서울 시민들에게 전쟁의 실체를 체감케 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안겨 주었다고 말한다. 당시 신당동 친척집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전쟁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후암동의 은사 댁을 방문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남산의 오솔길을 왕복로로 택했던 그가 폭격 장면을 목도한 것은 “해방촌 언덕을 걸어 남산 능선에 올라선 찰나”였다.

“비행기의 요란한 굉음에 놀라 뒤돌아봤더니 남쪽 하늘 일대가 대형 폭격기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되풀이되는 폭격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나의 한평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체험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권』, 한울, 2003, 46-47쪽)

 


한국전쟁 당시 다리를 공격하는 미군 전투기, U.S. Navy, 1952

 

손정목은 사망 1,587명, 부상 842명의 인적 피해를 야기한 이 폭격 이후, “적지 않은 전쟁 고아가 거리를 방황하는 것을 보았으며 거지의 모습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술회한다. 그런데 폭격의 파괴력은 정량적 수치로만 환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기계의 조감하는 시선에 노출된 채로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는 경험은 심리적 외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 등장하는 주인공 철호의 어머니가 그렇다. 북녘 땅에서 “꽤 큰 지주로서 한 마을의 주인 격으로 제법 풍족하게 평생을 살아오던” 그녀의 가족은,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같은 판잣집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남산 기슭의 해방촌에서 살아간다. “나라를 찾았다면서 집을 잃어버려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는 “뭐가 잘못됐던 잘못된 너머 세상”이라고 푸념하며, 월남 이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들에게 ‘가자’고 외친다. 마치 그녀가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외침뿐이라는 듯.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후 그녀는 손정목이 경험했던 대폭격의 한복판에 놓인 채로, “바로 발밑에 보이는 용산 일대가 폭격으로 지옥처럼 무너지는” 참상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녀는 그날 이후 정신을 놓아버리고 만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큰애야 이젠 정말 가자. 데것 봐라. 담이 흠싹 무너뎄는데 삼팔선의 담이 데렇게 무너댔는데, 야”이었다. 철호는 이후 다시는 예전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다. 그녀는 “쨍쨍한 목소리로 외마디 소리를 지를 뿐 그 밖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손정목을 주저앉혔던 폭격의 공포는, 그녀에게서 시체 같이 말라가는 몸뚱이만 남겨놓은 체 정신을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지는 불행의 연쇄 작용……. 막내딸은 양공주로 전락하고, 작은 아들은 무장 강도로 은행을 털다가 경찰에게 붙잡히고, E여대 출신의 큰 며느리는 사산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막바지에 이르자, 이제껏 등장인물 사이에 끼어서 비극의 드라마를 응시하던 시점이 빠른 속도로 줌아웃되면서 저 멀리 창공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그 시점은 주인공과 택시 기사의 대화를 엿듣다가, 갑자기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들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른 채 교통 신호대의 파란 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이범선, 「오발탄」, 『오발탄』, 문학과지성사, 2007)

마지막 문장을 관장하는 것이, 한 가족의 파국적 종말을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던 전쟁 기계의 시선처럼 느껴진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다만 분명한 것은 해방 이후, 파괴의 조감하는 시선이 구축의 조감하는 시선보다 먼저 서울에 당도해 서울 시민들의 집단적 무의식에 기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계원디자인예술대에서 발행한 <양귀비>저널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가 아래 총 5편의 연재로 싣습니다.

01 1936년, 까마귀의 날개
02 1950년, 폭격기의 시선
03 1962년, 마포아파트 혹은 혁명 한국의 상징
04 1988년, 스타디움의 나르시시즘
05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모델하우스

 

글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박사과정. 저서로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역사(공저)』,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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