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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근대(Altermodern) : 운동인가 마케팅인가?

2010-01-27  

글 : 니콜라스 람브리아누 (Nickolas Lambrianou)
Nickolas Lambrianour는 Nicholas Bourriaud의 Tate Britain 추계 예술 블록버스터의 주된 주제였던 'altermodern'의 개념이 큐레이터 운동을 재활성화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세계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단어를 고안해내고 이미 포화된 컨템포러리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비평가의 야심일 것이다. 우리가 다원적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예술계의 운동이나 단체, 또는 새로운 '정신(spirit)'의 이름을 제안하는 것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작가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니콜라스 부리오는 신생어를 만들어내는 데 두려움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지난 20여년동안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행태를 표현하는 근래의 많은 용어('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 'postproduction', 'semionaut')들을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 -예술가들과 이론가, 관객- 가 우리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새 용어를 만들길 원하는 것 같다. 그는 그린버그(Greenberg)가 모더니스트 화가의 그럴듯한 정의를 내리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모던함의 정의를 새로 설정하려 하던 그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리오는 우리에게 세계의 정황이 예술계의 '아방가르드'가 남긴 것들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것에 영향을 주는 컨템포러리계의 대체 개념인 'The Altermodern'을 던져주길 원한다.


사진 : Altermodern 입구, 2009

부리오는 자신이 게스트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테이트의 네 번째 트리엔날레의 재브랜딩을 통해 그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그 이전, 전시 중과 이후에 서적을 비롯한 일련의 이벤트들과 심지어 웹사이트에 게재된 성명서에 까지 사용되었다. 후자가 가장 전형적인 모더니스트의 성명서의 형식으로 진심어린, 혹은 모순적인 복귀를 의미하는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리오는 즉각 '포스트 모더니즘은 죽었다라고 천명한다. 이리 저리에서 환호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적어도 혹스톤(Hoxton) 광장과 바이너(Vyner) 거리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만약 부리오에게 'Altermodern'이 용어적인 혼성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지루한 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적어도 테이트의 'Altermodern의 설명'이라는 인터넷 성명에 표현된 그 버전─은 기이하게도 친숙하게 보인다.

「증가한 통신과 교통, 이민은 우리가 사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혼란스럽고 번잡한 세계로의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오늘날의 예술은 텍스트와 이미지, 시간과 공간의 결합을 탐험하고 그것들 사이를 엮는다. 예술가들은 새롭게 세계화된 개념에 반응한다. 그들은 기호들로 포화된 문화적 풍경을 가로지르고 다양한 형태의 표현과 통신 사이에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우리의 기대는, 아마도, 잘못된 것 같다: Altermodernism은 중요 항목을 모아둔 성명서로서 역류되고 재브랜딩된 포스트 모더니즘인 것 같다. 부리오에게 공정하게 대하자면, 이 아이디어는 전시와 함께 출판된 책의 소개 에세이에서 조금 더 살이 붙었다. 그 에세이에서 개념은 그가 (실패한 유토피아와 상위의 모더니티의 길잃은 담론을 슬퍼하는)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정 모드를 '슬픈' 상황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와 함께 ('예술가들은 유목민이 되었다'라는) 급진적이고 문화적인 탈중심화의 형태로 좀 더 정교하게 정의되고 있다. 부리오의 예술 유목민은 모더니스트와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역사적인 시대구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시공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세계적 곡류에서 마주치게 되는 편린적인 '기호들'을 자유롭게 여행한다. 확실히, 그는 이와 같이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이었든간에 진정으로 그 이후에 있고 우리는 이 '변화된' ('다른') 모더니티에 의해 제공된 창조적이고 일시적인 자유를 축복해야 한다. 부리오는 아무래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Altermodern의 혁명에 가담하라. 그대는 미학적이고 이론적 구속인 포스트 모더니즘과 그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부리오가 포스트 모더니즘을 하나의 용어로 보는 것이 근본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점에 있어서는 옳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료따르(Lyotard)는 그가 그 단어를 고안해낸 순간부터 그것이 야기했던 오해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당시 속해 있던 모더니티의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만큼 통찰력이 있었다. 하지만 부리오는 이제는 익숙해진 일련의 예술 이론 담론을 뛰어넘고자 하는 세대적 욕망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자신이 고안한 아이디어들조차도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발전일까 아니면 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과 포스트프로덕션 등과 같은 개념의 단순한 재브랜딩일까? 전시에 대한 그의 주장은, 우리가 관계적 미학의 상호작용에서 Altermodern의 서술과 같은 것으로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전시는 그 구성적인 원칙이 각 요소들의 연속에 의존하는 작업들을 아우르고 잇다. 작품들은 그 생산 전과 도중, 후에 형태를 만들어내는 동적인 구조가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형태들은 그들의 생산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의 배급과 그들을 포함하는 정신적인 여정을 묘사하는 서사를 전달한다.」ii

이러한 거대한 주창은 그 전시 자체에서 명백한 'Altermodernity'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전시의 스케일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듀빈(Duveen) 갤러리의 28명의 예술가들과 영국 테이트 작가의 많은 수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선정의 범위 역시 영국에서 거주하는에서 벗어나 작업하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을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거주'가 국가주의와 같은 낡은 모더니즘의 이상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주국이 없는 자동파괴주의자(auto-destructivist)인 구스타베 메츠거(Gustave Metzger)가 영국예술학교의 젊은 졸업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로 보이는 작품은 Subodh Gupta의 Line of Control(2008)인데, 이는 듀빈갤러리의 천장까지 솟아 오른 스테인레스 스틸 기구로 만들어진 버섯 구름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운동가를 연주하는 거대한 이탈리안 아코디언인 Ruth Ewan의 Squeezebox Jukebox (2009)나 도시 건축물의 문화적인 허세를 모방하는 야심찬 형광 건축 설치물인 Matthew Darbyshire의 Palac (2009)와 같이 기술적으로 야심찬 다른 작품들의 전조인 것 같다.

 
사진 : Bob and Roberta Smith, Off Voice Fly Tip, 2009


Bob과 Roberta Smith의 Off Voice Fly Tip (2009)은 버려진 어린이용 세발 자전거들과 같이 주운 물건들과 함께 배치된 흩어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손으로 그려진 나무 간판 설치물들로 기술적으로 능란한 조각품들의 폭주에 제동을 건다. 간판의 텍스트들은 모두 Bob과 Roberta가 전시 기간 동안 계획했던 12번의 금요일에 있었던 Nicolas Bourriaud와의 대화를 기초로 하고 있거나 스미스 부부가 국제적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기로 유명한 이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을 때에는 예술계의 '과두정치적'인 특성들과 그에 비해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들에 대한 유휴적 사고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Bob과 Roberta는 즉흥적이고, 반복적으로 그들의 주제였던 세계로부터 그들을 배제시키는 낯익은 감정과 결부된 스스로 하라는 식의 기지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예술계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전형적인 애증이 엇갈리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 설치들은 방금 짐 싸서 다른 데로 가버렸으나 여전히 잔재물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밌는 박람회에 나타난 어린 아이의 경험처럼 이러한 애증이 엇갈리는 감정을 암시하는 우울한 정서를 표방하고 있다.

어떤 텍스트에는 예술 아웃사이더가 그들의 스피릿을 주도하는 독불장군(Mark E. Smith)과 그 자체로서 구걸꾼인 큰손 큐레이터와의 연결을 듣는다. Bob과 Roberta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부언이지만, 이러한 대화를 예술 작품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Nicolas Bourriaud가 The Fall에서 드럼을 연주했다고 말해주었다. 난 이것이 진실인지 물었다. 그는 "사실은 그렇지 않아. 1970년대 말 내가 런던의 한 소년이었을 때 두 곡을 연주했을 뿐이야".' 수 년동안 Mark E. Smith가 고용했던 믿기 어려운 여러 드러머들의 숫자를 감안한다면 그들 중 하나가 나중에 컨템포러리 예술의 큰 손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저 통계적인 확률일 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날카롭고, 잘 연결되어 있으며, 이론적으로 명석한 큐레이터들과 같은) 어떤 이들은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 반면, 다른 이들은 성공에 실패하길 반복하는 예술로부터 성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화할 뿐이다. 이는 후자들로부터 이미 Altermodern 행사에 뛰어든 후에 그들의 예술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갈구한다.


사진: Walead Beshty, FedEx Sculptures, 2009

이것이 Mike Nelson의 딜레마가 될 수는 없다. 그의 인상적인 The Projection Room (Triple Bluff Canyon) (2004)은 Duveen 갤러리의 벽과 그 중앙에 자기 한정적으로 설치된 설치물에 투영된 필름 작품이다. (예를 들어 벽에 있는 구멍을 통해 기어올라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다른 공간들과는 다르게) 프로젝션 '방' 그 자체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보기만 하는 것으로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적인 용품으로 완성된 전형적으로 기이한 Nelson의 공간이다. 광대 마스크, 작업대, 불길한 느낌의 공구, 즉흥적인 도구와 더불어 손때가 묻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와 더욱 신비한 문학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것은 특히 많이 읽히고 널리 여행된 연쇄 살인범이나 다른 격리된 고독자의 비밀스런 굴이다. 그러나 Bob과 Roberta의 서민적인 재치에 반하여 이 작품은 영화적이고 불길한 서술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만약 Altermodernism이 특징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Nelson의 작품이나 거대하게 늘어진 캔버스와 여기에 포함된 와 같이 건축적인 구조물의 설치작업인 Francis Ackerman의 설치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다소 천박한 작품이며 누구든지 이 작가야 말로 쓰레기 꼬리표 더미와 헤드폰으로 들리는 청각 요소와 설치물에 상대적으로 미적인 감각을 비판적으로 가미했던 바로 그 '후-개념적인' 추상 화가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마치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Altermodern하지 않다고 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만 같다. Charles Avery의 Aleph Null Head(2008) 와 Installation of Drawings (2009) 에서도 유사한 의구심이 든다. 그의 유능한 데생 실력은 신비한 가공품을 개척하는 만화 탐험가의 의사 인류학적인 서술을 표현하기 위해 익숙하게 시대 착오적인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흥미로운 예술이며 우리 '원시성'의 후식민지적인 모방이지만 이 작품이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듯한 어떤 특정한 Altermodernist의 컨텐츠가 아니라 구시대적인 스타일의 기술적인 재주 때문에 인기가 있다는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쇼를 돋보이게 하는 작가는 상대적으로 미적인 매너리즘에 기대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모더니스트의 담론을 재해석한 다른 세 작가이다. Walead Beshty의 깨진 유리 상자는, 쉽게 말해서, 그들만의 국제적인 물류의 기록이다. 같은 크기의 유리 상자는 FedEx 박스에 포장되고 작가가 전시하기로 한 갤러리로 배송된다. A에서 B로의 여행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물질적인 기록으로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 Jackson Pollock만큼 모더니스트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역시 컨템포러리 예술 시장의 통국가적인 'FedEx' 문화에 대한 우화로도 해석될 수 있다. '국제적인 여행가로서의 예술가'라는 아이디어는 전시장의 어느 곳에서보다 이 작품을 통해 더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사진: Simon Starling, Three White Desks, 2008-9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여행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전시는 Simon Starling의 Three White Desks (2008-09)로 전환과 복제, 모더니스트 활동의 억압된 근본적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순수' 예술과 '응용' 디자인 간의 어려운 관계를 활용했다. 1930년대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던 Francis Bacon은 호주의 작가 Patrick White를 위해 세련된 국제적 스타일의 작업 책상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그러나 White는 1947년에 호주로 돌아갈 때 영국에 Bacon의 그 데스크를 남겨 두었으며 거기에서 그 책상을 개조하도록 목수를 두었다. 반 세기 이후에 Starling은 그 책상을 개조하기 위해서 세 명의 개별 캐비닛 제조사를 고용하였다. 첫 번째는 1947년 판 사진의 고화소 디지털 재현이었으며 그 다음은 근대 판의 저화소 디지털 이미지들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는 중국의 역사적 게임의 연장 같은 것들이었다. Bacon의 (Bacon 스스로는 '진지한' 화가가 된 이후에 그의 모든 초기 인테리어 디자인 잡업을 부수면서 지워버리고자 시도했던) 이력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각주인 것만 같은 것을 재현하기 위해 투자된 노력과 시간의 양은 Altermodern의 의사-역사적인 엉뚱한 발상 중에 하나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모더니즘 자체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좀 더 넓은 시각을 제공한다. Starling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Altermodernism이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풀지 못한 긴장을 해소하고 있으며 Bacon의 분열된 인격은 개인화 되는 듯 보인다. 그러한 질서와 혼란 사이의 긴장은 1930년대의 인테리어 디자인의 유토피아적인 백색주의와 Bacon의 이어지는 작품들의 초석이 되었던 1950년대의 불쾌한 리얼리즘의 회색-흑색주의 사이의 긴장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책상은 모더니스트 역사의 심장에서 모순의 완벽한 상징이다. 그것은 바로 끝없이 반복되도록 역사적으로 기성화된 것이었다.(Duchamp이그 자신의 '오리지널' 레디메이드 생산물이 재생산되는 어리석음을 즐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초기의 모더니스트 작품들이 수준 높은 모더니스트 표현의 인기 때문에 버려졌던 순간을 적절히 지적한다. 게다가 연구의 장소와 Bacon의 스튜디오의 분실된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모든 창조성과 진품성, 진실성이 상실된 것만 같았던 시대에 컨템포러리 예술 행태와 탐정의 원인(역사적인 진실)에 대한 탐색의 분석적인 특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 창조성에 대한 열망은 이제 그것 자체로 창조적이니 못하면 지겨운 포스트 모더니즘의 담론일 뿐이다. 하지만 Starling의 작품은 적어도 Altermodernism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대체적인 근대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Nathaniel Mellor의 Giantbum (2009)은 유사하게 서사 속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공연과 설치, 영화의 반복적이고 중재된 면을 분석한다. Giantbum은 야하고 부조리한 대본의 두 가지 버전을 담고 있는 영화이자 미로이다. 첫 번째 것은 흡사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이 극이 아니라 '예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약간 긴장하고 곤란해하는 배우들이 복도에서 자신의 부분을 읽는 일종의 (무대에 올라간) 드레스 리허설이다. 두 번째 버전은 좀 더 세련된 것이지만 고의적으로 아마추어적으로 보이는 특수한 효과와 의상의 사용은 그의 대본이 Rabelais와 Pasolini의 Sao에 대한 참조를 통해 Mellor가 그의 Brecht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미로의 끝에서 그 속임수는 다른 기술적 레벨로 넘어가고 주요 인물('아버지')의 얼굴의 세가지 초현실적 애니마트로닉스 재생품들이 중얼거리고 신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메인 캐릭터의 얼굴을 더욱 더 이상하게 만드는 '피부' 뒤로 보이는 기계 장치들이다. (확실히 오퍼레이터는 많은 이들이 악몽 때문에 불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머리들의 시각 밖에 그들 자신을 배치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다.) 역류와 분비물에 중독된 '아버지'의 지저분한 중얼거림은 인식되지 않은 엔트로피의 증거보다 덜 자동재생산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을 컨템포러리 예술 논의의 장의 상황에 대한 커맨트로 보는 것은 흥미로은 일이다. 아트 스쿨에서 Battaille와 Lacan의 폭격을 받은 젊은 작가들이 신비롭고 분절적인 '이론'의 가식을 조롱하는 작업을 만들길 원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컨템포러리 예술 비평 그 자체의 의사-철학 최고 비평가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했던가?


사진: Nathaniel Mellor의 animatronic recreation of 'The Father' from Giantbum, 2009


그러나 전체적으로 관계적 미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진정한 상호작용의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든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개념 급진주의에게 전시는 그 자체로 Dada-Mess도 아니고 포스트-개념주의자들의 전시 융합도 아니다. 확실히 '이벤트들'과 공연은 있지만 이것들은 쇼의 핵심적인 파트가 아니며 관계적 미학의 핵심적 특성이었던 '극적인' 상호 작용의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들과 관객들의 경계의 이동은 보이지 않았으며 어떤 다른 전시 기획적 관습을 깨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 협동과 상호 작용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기껏해야 Bourriaud 그 자신이 중재하고 카탈로그에서 문서화된 'platform'에서 뿐이었다. 개념을 위해 주창되었던 고상함은, 따라서, 전시 기획 상의 혁신과 상응하지 않았다. 레이블과 컨텐츠의 -또는 광고와 제품의 - 이러한 불일치는 Altermodern을 비평 예술이 적대적이어야만 하는 바로 그 상품 문화에 귀속시킨다. 혹자는 Altermodern이라는 개념 자체는 익숙한 전시 기획의 관습이며 특정 예술가들이 현재 몰두하고 있는 것들의 직설적인 정지 영상일 뿐인 브랜딩 - 고유한 판매 포인트 - 의 하나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판은 또한 그것이 Altermodernism으로의 재브랜딩하면서 바꿔입을 옷이 없없다는 점에서 관계적 미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플랫폼'과 리믹싱, 대화에 관한 이 모든 논의는 비평 예술이 전통적으로 맞서 싸워야 했던 신자유주의의 사업 문화를 비판적으로 공격하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앵무새처럼 흉내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Altermodernism은 대상보다는 실험을, 보편보다는 특수함을, 절대적 명령보다는 대화를 요구하지만 어디에 이런 담론의 힘이 보이는가? 그 단어는 모던 예술에서 어떤 새로운 '방향'을 묘사하는 유용하고 일관성 있으며 비판적으로 생산적인 방법인가? 또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로- 작품은 그 개념을 지지하거나 표명하는 능력을 위해 선택된 것인가? Duchamp은 언젠가 (수석 큐레이터 Hans Ulrich Obrist에 의하면) '전시의 구조 안에서 절대로 작품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확실히 Duchamp은 권력을 쥔 예술 객체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려고 하였으며 예술 작품이 비평가의 새 사상을 위한 묘사적인 부록으로만 작용하는 날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직 몇몇의 예술가들만이 출판된 언급을 통해 Altermodern이라고 하는 용어의 유용성과 그 뒤에 숨은 가정에 의문을 던질만큼 용감하고 정직하였다. Spartacus Chetwynd라는 한 예술가의 경우를 들면 그는 Altermodern이라는 이상에 등록할 의도가 있지만 그것은 단지 '뭐 어때'라고 하는 생각 이상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에게 선택권이 있는가? Altermodern의 상황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제는 진정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인 것인가? 또는 그 논의의 용어들은 컨템포러리 예술 논의의 장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에 의해 여전이 다른 곳에서 설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 Nickolas Lambrianou는 모던 아트의 역사와 이론을 전공한 작가이자 강사이다. 그의 작업은 Radical Philasophy와 Contemporary Magazine에 실렸으며 최근의 출판물은 Ulrik Ekman과 Frederik Tygstrup에 의해 편집된 ‘The Subject of Immigration’ in Witness: Memory, Representation and the Media in Question (Copenhagen: Museum Tusculanum Press, 2008)이 있다.

Footnotes
 i Nicolas Bourriaud (ed.), Altermodern: Tate Triennial 2009, Tate, 2009, p.24.
ii Ibid., p.13-14.
iii Hans Ulrich Obrist, A Brief History of Curating, JRP Ringier, 2008, p.10.

Info: Altermodern: Tate Triennial, Tate Britain, London, 3 February - 26 April 2009, http://www.tate.org.uk/britain/exhibitions/altermodern/ 
  
originally published in Mut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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