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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하는 시선들 4 : 1988년, 스타디움의 나르시시즘

2010-03-30  

성웅의 시선 앞에서 인정 투쟁을 벌이던 쿠데타 주체들의 꿈은 정치 경제적 동맹세력이던 1940년대생 세대의 엘리트들을 산업자본주의의 테크노크라트로 변신시킨 후 강남의 아파트에 안착시킴으로써 마무리된 듯 보였다.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는 중산층 시대의 개막으로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도시 빈민과 저임금 노동자들은 여전히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나 닭장 집에 기거하고 있었지만, 발전의 도상에는 낙오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산업화를 통해 봉건적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계층 상승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만으로도 토건적 국가 권력의 시선은 충분한 포만감을 느낄만 했다.

그런데 북한의 포격에 대비해 건설된 과천 신도시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파괴는 구축의 쌍둥이이기도 했다. 전쟁 기계의 시선은 토건적 국가 권력의 시선 내부에 조용히 잠복한 채, 민방위 훈련의 공습 경보를 제외하곤 대중의 일상 속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종종 우발적인 사건들로 인해 이 시선은 숙주로부터 분리되어 불안과 공포의 소극(笑劇)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해프닝이 그렇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그 날 밥상 위에 동아전과를 펴놓은 채 안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프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민방위의 날도 아닌데 갑자기 귀를 윙윙 울리며 퍼지는 확성기의 사이렌 소리 앞에서, 컬러텔레비전의 화면은 흑백의 불안한 표정으로 응결된다. 화면을 채운 텅 빈 동대문 운동장은 그 자체로 전쟁의 공포이다. 아나운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이것은 훈련 경보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30년 동안 변죽만 울리던 확성기의 사이렌 경보는 실제 상황이라는 아나운서의 보충 설명을 통해서만 제 의미를 얻는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늑대가. 확성기로 사물화된 수많은 양치기 소년들, 진짜 늑대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자, 모두 허겁지겁이다. 사이렌의 음향학적 투시도는 음속의 속도로 팽창하는 거대한 구멍 앞에서 거친 호흡으로 경련을 일으킨다.”1)

그 구멍은 북한군 대위 리웅평이 몰고 온 미그 19기였다. ‘총력안보’를 내세웠던 전쟁 기계의 시선은 적의 전쟁 기계가 단안의 소실점으로부터 소리의 속도로 날아오자, 격심한 현기증에 시달리다가 서울 전역에 사이렌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덕분에 모두가 이 마른하늘의 날벼락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문불출이다. 그러나 도발이 아니라 귀순이 목적이었다는 사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상의 현실이 착란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모두가 전쟁의 악몽에 시달렸지만,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식은땀을 닦아낼 뿐.

어쨌든, 전쟁 기계의 시선은 전쟁의 공포를 불러들이는 이런 해프닝들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과 같은 한반도 이남을 정치 심리적 폐쇄계로 완벽하게 재구성해냈다.


영동신시가지 조감도, 1971

한편, 7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된 경제 성장 덕분에 국가주의적 성웅의 시선은 이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그 시선을 대체할 또 다른 시선이 발명돼야만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성취의 정도를 판가름해 국가의 상징적 지위와 민족의 문화적 역량을 인정해 줄 시선이었다. 한반도 바깥의 세계를 원산지로 지닌 외부의 시선, 타자의 시선이 그것이었다. 영화이론가 토마스 엘세서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 대중들이 빠져들었던 나르시시즘적 쾌락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시즘이 증여한 쾌감은, 그리고 그에 대한 매혹은 SS 간부의 잔인성과 사디즘이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쾌감, 즉 모든 것을 응시하는 국가의 시선 아래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데서 얻어지는 쾌감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파시즘은 상호 감시와 고발을 독려했던 만큼, 자신의 상상계 속에서 비도덕적인 노출증을 부추겼다. 히틀러는 언제나 독일 민족이 ‘세계의 시선’에 주 목받고 있음을 묘사함으로써 민족에 호소했다.”2)

히틀러는 괴벨스의 제안에 따라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해, 1차대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부활한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박정희와 그의 수하들도 88년도 올림픽 개최를 통해 한반도에서 히틀러의 전략을 되풀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박정희는 개최가 확정되기도 전에 부하의 총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그의 의지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특히나 ‘80년 광주’라는 치명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을 단일한 공동체로 묶어내는 데 올림픽 개최는 더 없이 자극적인 촉매제였다. 공식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에 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서의 올림픽, 달리 말하자면, 전쟁의 폐허에도 불구하고 단시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남한의 대중들이 세계의 시선에 주목받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고 그들의 인정 욕망을 촉발하는 계기로서의 올림픽, 그것은 대중들을 노출증적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했다. 한강변의 아파트와 잠실의 스타디움이 국가적 스펙터클의 바그너적 무대로 연출되는 것은 바로 그 판타지의 세계 내부에서이며, 그 무대를 조감하는 관객의 시선은 외부로부터 수입된 상상적 시선들이다. 히틀러의 나치가 1936년 올림픽을 통해 “정치의 미학화”라는 파시즘의 정공법을 발명한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군사 정권은 88올림픽을 통해 정치를 우회하도록 하기 위해 대중들을 나르시시즘적 응시에 감금하는 문화의 스타디움화라는 전략을 창출했다. 그리고 이 전략의 유효성은 붉은악마가 자발적으로 점거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서울광장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1)박해천, 「공전하는 파편들: 80년대 시각문화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 『한국의 디자인02: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8, 142쪽
2)Thomas Elsaesser, 「Primary Identification and the Historical Subject: Fassbinder and Germany」, 『Narrative, Apparatus, Ideology』, ed. Philp Rose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545.

글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박사과정. 저서로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역사(공저)』,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계원디자인예술대에서 발행한 <양귀비>저널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가 아래 총 5편의 연재로 싣습니다.
01 1936년, 까마귀의 날개
02 1950년, 폭격기의 시선
03 1962년, 마포아파트 혹은 혁명 한국의 상징

04 1988년, 스타디움의 나르시시즘
05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모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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