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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하는 시선들 5 :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모델하우스

2010-04-14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의 공격 목표가 서울이 아니라 동경이나 캘리포니아 해안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 권력은 세계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화두로 삼으며 다국적 기업, 삼성을 닮아가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선 할리우드 SF영화에나 나올법한 미래 도시의 조감도들이 속속 등장했다. 예고편은 청계천 복원과 강북 뉴타운 건설이었지만, 스펙터클의 규모나 시각적 쾌락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한강변의 동네들을 주무대로 삼는 본편에는 역부족이었다. 용산과 압구정동과 여의도와 한남동과…….

서울은 아직도 현재의 자신 모습에 만족치 못하고 마치 신체이형장애에 걸린 듯 컴퓨터 그래픽스로 처리된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하며 몸을 뒤척거린다. 미래 도시를 엿볼 조감의 자리로 이동하는 데 크게 세 개의 트랙이 존재한다. 하나는 도시의 구축과 파괴, 흥망성쇠의 역사 속에서 재개발의 이윤을 착취하려고 눈을 번뜩이는 건설 자본의 초고속 엘리베이터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게 노동의 칙칙한 땀냄새를 지워낸 후 산뜻하게 금융 및 관광 산업의 에버랜드를 세우려는 행정 권력의 에스컬레이터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남들만큼 살고자 하는 욕망의 기대치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자칭 중산층의 계단이다. 외견상 이 세 개의 트랙을 관장하는 주체들은 자신들이 ‘두바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재개발 신성동맹의 일원이라고 믿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확실히 동일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건설 자본과 행정 권력은 윈윈 게임을 펼치고 있는 듯하다. 건설 자본은 고속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조감의 자리에 올라서, 기존 상층 중산층이 거주하던 도심의 아파트 단지들을 요새화된 고층 건물들로 재개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기존의 고전적인 아파트들이 포드주의의 대량생산 체제를 내면화한 건축적 해결안인 동시에 그 체제의 수혜자들인 신중산층의 주거를 위한 기계라고 한다면, 새로운 타워형 고층 아파트들은 금융화된 자본이 순환의 활로를 찾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투기적 이윤 창출의 무대이면서, 그 자본의 투자자인 상층 중산층이 주상복합의 욕망을 실현하는 건축적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그 결과, 만프레도 타푸리가 “거대한 반도시적 기계”라고 명명한 초대형 건물들이 인근 주민들, 특히 저소득층의 침입을 봉쇄하기 위해 자기완결적인 형태로 도심지 곳곳에 들어선다. 한편, 행정 권력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조감의 자리에 슬그머니 등장하는 것은 바로 건설 자본이 재개발 조감도를 내놓은 직후다. 행정 권력은 투자 자본의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육중한 고층 건물의 비인간적 면모를 완화하기 위해 재개발지 주변의 인공 환경을 자연화하려는 유사-공공적인 디자인 전략들을 제시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중산층의 계단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 차지할 수 있는 조감의 자리란 기껏해야 모델하우스 내부에 진열된 아파트의 축소 모형 앞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그곳의 흥청망청하는 기운에 휩쓸려 다가올 미래에 도취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소설가 서하진의 묘사대로, 그 곳은 축제의 날처럼 붐빌 테니까. “성채처럼 화려한 건물 위에 푸르고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가 장착된 환한 부엌을 보면서 나는 들떠 있었다. 흠 잡을 데 없이 꾸며진 세 개의 방. 베란다의 실내정원에는 물을 뿜는 작은 정원조차 있었다. 저처럼 예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면 남편과 나의 세계도 그렇게 환해질 것 같았다.”1)

그 미래 속에서, 남들만큼 ‘환하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건설 자본과 행정 권력의 욕망과 동일한 속도로 팽창한다. 우리는 욕망이 탐욕으로 변모하는 지점을 이미 지나쳐 버렸지만, 그 팽창의 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도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새롭게 발명해야 한다는 것.

1)서하진, 「모델하우스」,『라벤더 향기』, 문학동네, 2000, 48-49쪽.

글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박사과정. 저서로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역사(공저)』,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계원디자인예술대에서 발행한 <양귀비>저널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가 아래 총 5편의 연재로 싣습니다.

01 1936년, 까마귀의 날개
02 1950년, 폭격기의 시선
03 1962년, 마포아파트 혹은 혁명 한국의 상징
04 1988년, 스타디움의 나르시시즘

05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모델하우스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공모 1등(삼우기술단)과 2등(서울건축) 작품, 1983 


일산신시가지 조감도, 1990


한강르네상스 관련 조감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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