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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양안의 큐레이팅

2010-05-11  

소위 ‘창조적 큐레이터’와 ‘전시작가’로부터 시작해 1990년대의 비엔날레 큐레이터의 출현, 2000년대 뉴 인스티튜셔널리즘의 발생 등 지난 20년간 있었던 큐레이터 실무의 변천, 발전, 확장은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까지 이 주제에 대한 탐색은 좀처럼 신세계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점차 창조적이 되어가고 제도기관에 덜 얽매이는 큐레이터 실무의 발흥은 본디 유럽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큐레이팅의 역사는 짧은 편이고, 그 계통학에 대한 풍부한 기록도 아직 모자라지만, 90년대에 홀로 큐레이팅 분야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스위스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제외하면 스위스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이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지난 30년간 전시 창조의 새로운 개념들을 발전시킨 다른 사람들도 많다. 폰투스 훌텐, 요하네스 클레더스, 수잔 페이지, 카스퍼 쾨니히, 장 위베르 마르텡, 사스키아 보스, 르네 블록, 진 크리스토프 암만 등이 그들이다.  또한 지난 15년 동안에 출현한 신진 세대도 있다. 마리아 린드, 에릭 트롱시, 후 한루, 바시프 코르툰,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찰스 에쉬, 캐서린 데이비드, 우테 메타 바우어, 매튜 힉스, 니콜라 부리오 등이 그들이다. 반면 미국의 큐레이터를 논하자면 몇몇 이름만이 떠오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만처럼 자극을 줄 만한 인물이 없을뿐더러 더욱 실험적이고 인격화된 큐레이팅 개념의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일정한 조건들이 결여되어서일 수 있다.

미국의 큐레이터 실무는 대형 전통적 기관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데, 그러한 기관들은 유럽과 달리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간신히 유지되며 정치적 및 경제적 기대에 의해 기가 꺾이고 제약을 받기 일쑤다. 게다가 힘센 이사회와 씨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위험을 감수한 도전을 하지 않으려 한다.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와 LA의 현대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훌륭한 작업처럼 예외도 있다. 이러한 작업은 대규모 기관들이 피로감을 주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연속적으로 열기보다는(이는 기관들이 가정하는 것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정보에 밝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오히려 모욕이 된다) 연장된 기간 동안 대중을 대상으로 계몽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증거이다.

미국 미술관들이 훨씬 더 모험적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원래 미국의 미술관 다수는, 전통적이기보다는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개인들이 사적으로 수집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 중에는 한때 (미국의 하랄트 제만으로 묘사되곤 하는) 독립적인 큐레이터 월터 홉스와 함께 긴밀하게 작업했던 휴스턴의 메닐컬렉션이 있다. 더 나은 예로 지난 세기 미국 예술 기관 중 가장 비전을 잘 보여주었던 뉴욕의 디아 미술 재단을 들 수 있다. 이 재단은 독일인 미술품 딜러 하이너 프리드릭과 휴스턴 메닐 집안의 딸인 그의 아내 필리파 드 메닐이 세웠다.

오늘날 미국의 개인 컬렉터들이 설립하는 미술관들은 그러한 실험과는 거리가 멀고, 컬렉팅은 이제 트로피 사냥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부속시설로 최근에 개방된 브로드현대미술관에는 몇몇 전후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음은 확실하나, 일차적으로 그것은 예술가 혹은 큐레이터의 비전이 결여된 권력과 지위의 표현에 불과하다. 

북미의 개인 컬렉터들이 큐레이터 실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국경 너머 토론토에 있는 이데사 헨델레스 예술 재단을 찾아가 보아야 한다. 헨델레스는 큐레이터 겸 컬렉터일 뿐 아니라 전시의 형식을 사용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가장 실험적이고 괴팍하며 매혹적인 전시들을 큐레이팅해 왔다. 그녀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강박관념들을 좇는 작가-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흠결 없는 설치작품들은 지적, 역사적으로 정밀하며, 고품질 예술작품들과 현대적이거나 역사적인 비예술적 오브제들을 독특하게 결합해 극도로 영감을 준다. 헨델레스의 전시들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매우 내밀한 측면들을 조명한다. 한번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릎꿇은 히틀러 조각 「HIM」(2001)과 수천 개의 곰인형 사진을 병치해 독일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에게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을 관련시키려 했다.

미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전시 실무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의 원동력은 대부분이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은 아티스트들로부터 유래했다. 이러한 전통은 다다그룹의 유명한 전시나 파리 보자르 화랑에서 이루어진 잘 알려진 뒤샹의 초현실주의 전시, 인디펜던트 그룹의 1956년 전시 『이것이 미래이다』나 쿠르베의 『낙선작 전시회』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후반 제도비판이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아티스트들은 미술관의 구조, 전시 형식, 예술품 해석의 보다 분석적인 연대를 향한 문을 활짝 열었다. 예를 들면 마사 로슬러의 전시, 출판물, 심포지엄 시리즈인 『당신이 만일 여기에서 산다면』(1989),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안트데이러블리』(1992), 프레드 윌슨의 『미술관 파헤치기』(1992), 둘 모두 휘트니 비엔날레의 일부(1985, 1991)였던 「아메리카나」와 「에이즈 타임라인」 등의 프로젝트를 작업한 예술 집단 그룹 머티리얼의 다수 프로젝트 등이 있다. 말파에 있는 도널드 저드의 건축물은 아티스트의 관습적이지 않은 큐레이팅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서부텍사스에서 작업한 저드의 초기작들을 후원한 이들이 하이너 프리드릭과 디아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티스트들은 직접 나서서 창조적 통제권을 가지고 그들이 보기에 그들 작품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조건으로 예술품을 전시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에서 위험을 가장 잘 감수해온 혁신적 큐레이터 중 한 명은 시카고에 기반을 둔 메리 제인 제이콥이다. 그는 거의 20년 전에 미술관 계를 떠나 『과거가 있는 장소들: 찰스턴의 새로운 대지』(1991), 『행동하는 문화』(1991-1993)와 같은 전시들을 통해서 공공 공간 속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변혁해 놓았다. 댄 카메론, 랄프 루고프, 밥 닉카스, 조슈아 덱터 또한 큐레이팅에 대한 보다 유럽적인 접근을 간간이 보여주었다. 한편, 디아에서 10년 이상 큐레이터로 재직한 린 쿡은 폭넓은 국제적 프로젝트들을 기획했다. 오쿠이 엔위저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미국에 기반을 두고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이다. 반면, 매들린 그린츠텐, 더글라스 포글, 로라 홉트만, 델마 골든, 로렌스 린더, 낸시 스펙터, 앤 골드스타인 등 미국의 많은 유력한 큐레이터들은 여전히 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뉴욕의 뉴뮤지엄의 창립 디렉터인) 마르시아 터커와 월터 홉스, 세스 지겔라우프, 루시 리파드는 모두 제만에 필적하는 미국 큐레이팅의 개척자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작업은 제만의 작업만큼의 여세를 몰지는 못했다. 미국에는 유럽의 쿤스트할레나 쿤스트페어라인 같이 지역이나 국가가 재정을 대는 전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큐레이팅 혁신은 소규모로 아티스트가 직접 운영하거나 ‘대안적인’ 공간, 비영리 화랑, 대학교 박물관 등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뉴욕의 아티스츠 스페이스, 로스앤젤레스 현대 전시회(LACE), 시카고의 르네상스 협회, 필라델피아의 현대미술학회, 뉴욕의 에이펙스 아트,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비주얼 아트센터,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의 P.S.1 현대미술센터 등 미국 전역의 셀 수 없는 장소들에서 혁신이 일어났다. 한 저명한 미국 큐레이터는 최근 나와 나눈 대화에서 큐레이팅 실무 분야를 확대하거나 혁신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아티스트들의 대규모 작가전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학문적인 접근에 집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 그렇게 하는 것이 미술관 계에서 경력을 쌓는 데 더 유리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큐레이터들은 그들 자신이 아방가르드 유산의 일부라고 믿으며 예술 분야의 발전이 더 큰 정치적 변모의 가능성을 창조한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진보와 제도권 질서의 한계를 넓혀 나가는 데 중점을 두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예술 기관들의 문화는 특유의 경쟁심과 편집증을 갖고 있어서, 유럽 큐레이터들 상호간의 더욱 관대하고, 협조가 잘되며, 서로 돕는 관계를 향유하던 필자가 미국에 갔을 때는 이에 크게 놀랐다. 유럽의 큐레이터들은 아이디어와 정보의 공유가 그들 직업 세계의 기본적 원칙으로 되어 있고 이는 미국 큐레이터들에게서 나타나는 자기보호적인 태도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이는 북미의 기관들이 주목할 만하거나 진보적 사고를 보이는 전시를 생산해 내지 못했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과거가 있는 장소들』(1993, 휘트니 비엔날레), 『헬터 스켈터: 1990년대의 LA 아트』(1992),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유희』(1990), 『예술의 대상에 대한 재고: 1965-1975』(1996), 『흑인 남성: 현대 미국 예술에서 남성성의 재현들』(1995), 『현대 미국 예술에서 남성성의 재현들』(1999), 『왝! 예술과 페미니스트 혁명』(2007) 등은 극도로 혁신적인 전시들로 꼽을 수 있다. 필자가 예로 든 이 모든 전시들은 전시의 포맷이 창의적이거나 지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제만이나 오브리스트 같은 강력하고 인습 타파적인 큐레이터들이 어떤 이유로 한번도 미국 내 대형 전시를 큐레이팅한 적이 없는지에 대해 자주 의문을 품곤 했다.

그에 대한 한 가지 답은 독립적으로 일할 가능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엔날레 전시나 트리엔날레 전시는 미국 출신이 아닌 독립 큐레이터들의 1차적 활동무대였지만, 미국에서는 사실 제대로 뜨지 못했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긴 하다. 샌디에고/티화나의 비전적인 『인사이트』는 기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북미보다는 중남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매니페스타나 리용과 베를린의 비엔날레와 달리 대부분의 미국 비엔날레 행사들은 미술관과 연관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행사들로 휘트니 비엔날레, 카네기 인터내셔널, 곧 열릴 뉴 뮤지엄의 트리엔날레가 있다) 이들 행사들은 사용 장소의 다른 대형 전시와 똑같은 규칙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 큐레이팅에 대해 고도로 주관적이며, 정치적이고, 비평적인 유럽식 접근방식과, 기관에 기반하며 예술사학과 오브제 전시에 더 집중하는 보다 얌전한 미국의 실무 간의 분리에는 다른 더 심오한 이유도 있을지 모른다. 미국식 접근은 재단들과 개인 후원자의 호의에 의존하며 그들의 지지를 잃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해당 기관들의 재무 구조와 여러 면에서 연결된다. 개별 아티스트에 대해 미술관 이사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달려드는 것보다 확실히 더 실현가능한 일이긴 하다. 북미의 예술계는 유럽의 큐레이팅 접근을 일반화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령 찰스 에쉬, 바시프 코르툰, 에릭 트롱시, 우테 메타 바우어와 같은 혁신적인 큐레이터들의 작품들은 서로가 그보다 더 다를 수는 없다. 예술과 사회 변화 간, 고도로 형식적인 큐레이팅 스타일과 보다 학문적인 스타일 간의 진동이 느껴진다. 미국 관람객들이 그들의 큐레이팅 작업에 노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것을 다양하고 차별화된 작업으로 인식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00년부터 유럽에서 부흥해 온 뉴 인스티튜셔널리즘은 독립 큐레이터였던 큐레이터들이 기관들을 관리하는 것을 뜻하는 유행어이다. 미국에서 그런 것은 아직도 상상조차 불가능하며 유럽의 콘텍스트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뉴 인스티튜셔널리즘에서 개별 큐레이터들은 중소규모 기관들의 디렉터로서 스스로 설정한 의제를 도입하며, 제만은 여기서도 스위스의 쿤스트할레 베른의 디렉터로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란 전시를 통해 예술계에 격변을 일으켰다. 이 전시는 개념미술, 아르떼 포베라, 퍼포먼스아트, 미니멀리즘 같은 1960년대 후반에 형성된 급진적인 예술적 관례들을 처음으로 한데 모았으며 결국에 제만이 디렉터직에서 물러나는 구실이 되었다.

지금 해야 할 질문은: 유럽이 그토록 황금기라면, 저명한 유럽의 큐레이터 여럿이 왜 미국의 교육 기관으로 옮겼겠는가? 이러한 사례로 바드 대학 큐레이터학 센터의 디렉터인 마리아 린드, MIT의 시각 예술 프로그램 디렉터인 우테 메타 바우어,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의 전시와 미술관 연구학과장이며 전시 디렉터인 중국 출신 프랑스인 큐레이터 후 한루, 마지막으로 2007년 런던의 현대미술연구소로부터 샌프란시스코 CCA 와티스 현대예술 인스티튜트로 옮긴 필자 등이 있다. 교육 환경 내에 전시 공간이 있는 현상은 유럽에서는 거의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며, 큐레이터들이 이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충분히 계발되고 지적으로 자극을 주는 학문적 환경 내에서 큐레이팅에 대한 실무 중심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틈새는 참으로 혁신적인 미국적 구조로, 큐레이터들이 실험적인 전시를 발전시키면서 교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들이 큐레이팅 하는 전시의 성공은 티켓 판매량이나 관람객 수가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으로 판단된다.

이 독창적인 미국만의 이 발명품은 차별화되고 창의적이며 때로 더욱 정치적인 큐레이터 실무 형태가 싹틀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옌스 호프만(Jens Hoffmann) : 필자 옌스 호프만은 샌프란시스코 CCA Wattis 현대예술 인스티튜트의 디렉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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