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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없는 극장—『Mr.Lee 와 Mr.Kim의 모험』과 『우리는 한팀』

2010-06-01  

2010년 봄, 두 개의 극장 퍼포먼스 작품이 바닥을 쳤다. 그 첫 작품은 오랜만의 개인전과 함께 다시 활동을 시작한 정서영이 독립 큐레이터 김장언의 제안을 받아 들여 극장으로 진입한 『Mr.Lee 와 Mr.Kim 의 모험』. 정서영은 전형적인 중극장 규모의 블랙박스에서 연극의 3요소 즉, (앉아 있는) 관객, (이분화된) 무대, (연기하는)배우를 모두 배반하는데 성공한다. 관객들은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소수 그룹별로 극장의 입구가 아닌 분장실로 입장한다. 분장실 안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한명의 퍼포머와 배우들이 무대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연결된 폐쇄회로 비디오를 지나면, 무대 소품이 놓여 있는 탕비실을 거쳐 무대로 입장 하게 된다. 귀에 연결된 MP3에서 알수 없는 사건들의 음향소리를 들으며, 관객은 움직이지 않는 퍼포머들을 사이로 서성이는 소수의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관객들은 결국 기존의 극장동선이 아닌 일반 배우들의 극장 동선을 따라 역으로 등장하여 커튼을 젖히고 입구로 나가도록 되어있다.


Mr.Lee 와 Mr.Kim 의 모험 中 첫 번째 방(대기실) 씬  copyright ⓒ719 factory

무거운 커튼을 제외한 모든 문들, 심지어 건물 주차장을 향한 장치 반입구까지 열린 가운데 각기 조금씩 다른 오브제와 역할을 부여받은 퍼포머들은 공연 내내 움직이지 않는 반면, 큰개 한 마리 만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큰 개의 목줄을 잡고 있는 퍼포머는 개의 움직임에 따라 끌려 다닌다) 왜냐하면 극장내의 퍼포머는 물론 그들 사이로 조심스레 움직이며 관람하는 관객에서부터 안내원, 스탭들 아니 극장 밖에서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대기 관객까지, 확장하자면 거대한 LIG 보험회사 건물 내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 모두가 '자유롭게' 움직일 권한은 제한된 반면 할당된 역할을 ‘분배’받은 상태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이건 아니건, 이 썰렁한 '연극'의 미덕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빌딩 안에서 유일한 움직임의 자유를 가진 개 한 마리에서 출발된다. 물론 묵직한 벨벳 커튼과 폐쇄회로 비디오 그리고 귀로 흘러 들어오는 음향소리가 어우러져 섬뜩함을 유발하기도 하고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차량의 움직임과 바닥에 앉아 마주 보는 퍼포머와 관객들의 움직임이 나름의 우연적 드라마를 연출하는 즐거움도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 극장 내 '주어진 역할의 포기와 그것의 정치성'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끔 만든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관습적인 관객—프로시니엄 무대 간의 합체 또는 전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포기한 배우와 관습적 관객임을 포기하게 만든 동선, 이야기를 포기한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을 강조해야할 커튼, 무대 장치 등의 역할 정지들이 총체적 중지(pause)를 이끌어내고 있다.


무대 뒷편 장치 반입구 문이 열린 가운데 주차장에 진입하는 차들이 지나간다.

블랙박스(극장)는 화이트큐브(전시장)보다 더욱 높은 강도 높은 '유기체' 의 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서 유기체란 물론 앙토냉 아르토의 '기관없는 신체(Body Without Organs)' 를 해석한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가 투쟁해야할 대상을 말한다. 즉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하고 한 방향으로 흐르길 강요하는 유기적 통합체의 견고한 모델은 공연의 맥락에서는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라 할 것이다. 대학로의 지하에 갖힌 블랙박스의 유기체적 명령에서 공연과 관객의 해방이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천정에 시스티매틱하게 매달린 조명기구들은 조명감독의 '명령'을 기다리며, 반드시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 무대와 관객석이 그러하듯, '씌여진 텍스트'를 고안하는 역할(시나리오 작가), 그것을 구현하는 역할(연출)과 역할자(배우)는 물론 음향감독, 무대감독, 조연출, 하우스 매니저, 그리고 묵직한 벨벳 커튼과 밝은 구슬조명의 분장실, 감시카메라와 스탭룸, 장치반입구등은 그들의 '분배된'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최고의 선을 갖는 '기계'로 만족해야 한다. 견고하게 매달린 극장의 조명기구들은 조명감독의 명령이 없이는 그 누구도 손댈수 없다. 다른 '기계'가될 여지가 없이 분배된 역할에만 충실할 것에 대한 약속을 기반으로 하는 이것들은 반대로 자신의 역할 밖에 대한 관심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말았다. 정서영의 이번 작품은 이들의 '분배된 역할'의 고리를 끊음으로서 극장이라는 기관(機關)과 관극(觀劇)을 해방한다.

혹자들은 이 작품을 미술계에서 공연계로 넘어온 이방인의 '손쉬운 해체' 또는 지극히 트렌디한 '관객의 해방'으로 짐짓 무시하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관극의 해방이란 국내외 공연계에서 끊임없이 실험되어 왔던 게 사실이며 '주체적 관람자로의 해방' 역시 현 공연과 미술계의 트렌디한 화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인상주의이후 현대예술이 '동시대의 트렌드'가 아니었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문제는 개별 작품의 강밀도(intensity)다, 그것을 감지했다면 미술인이건 공연연출가이건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기관(器官)없는 기관(機關)이 되어버린 정서영의 극장에서 주어진 역할을 잃은 배우와 관객, 무대와 조명, 주차장과 폐쇄회로 영상은 새로운 역할로의 모험을 떠나야 한다. 결국 스토리 텔링 속에서 찾아낼 수 없는 Mr.Lee와 Mr.Kim의 존재는 결국 관객이 몫이 되어 버린 채, 모험이란 결국 정처없는 탈주일 수 밖에 없겠다. 그 모험은 결국 끝까지 가 볼 때야만 성공할 수 있는 법, 정서영의 작품이 끝까지 가서 바닥을 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굳건한 유기체로서 제각각 화이트큐브와 블랙박스로 분배된 감성과, 그것의 역할에 의문을 품지 않아온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조금 움직이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극의 마지막, MP3에 연결된 헤드폰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언어가 귓속에 속삭인다. "2센티 옆으로 움직여!"


마시모 푸를란 『우리는 한팀』 상암월드컵 경기장, 120분

"마시모 푸를란이 안정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우리에게 와서 알이 되었다"

정서영이 2센티만 움직이길 요구했다면 마시모 푸를란은 스스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수만미터 뛰어 다녔다. 매년 진보적 동시대 퍼포먼스를 소개해온 페스티발 봄, 2010년 최고의 작품은 아무래도 마시모 푸를란의 『우리는 한 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실시간 주식투자로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은 크리스콘텍의 『죽은 고양이 반등(dead cat bounce)』가 '설명 많은' 진행으로 내공을 들켜 버렸고, 연습과 협업 당사자 간의 이해가 부족해 보인 캐서린 설리반의 『영매』 등 미국발 '소문난 잔치'들이 범작으로 밝혀진 가운데, 폐막작 마시모 푸를란은 기대치 않았던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즐거움은 대개의 좋은 퍼포먼스들이 그렇듯 관객의 육체와 개념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5월8일 어버이날 단 하루 공연된 『우리는 한팀』은 아마도 페스티발 전체 작품 중 최소관객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가장 진보적인 작품이 가장 덜 대중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 역시 그랬지만) 120분에 달하는 시간동안 한 선수를 똑같이 재연한다는 황당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촌스런 작품 제목이 흥미로운 구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쨌든 마시모 푸틀란은 중년의 노구를 이끌고 홀로 2002 월드컵 이태리-한국 대표팀 간의 120분 혈투를 훌륭히 재연(reenactment)했다. 23번 한국 유니폼을 입은 그의 역할은 바로 연장전 골든골의 주인공이었던 안정환, 실제 경기시간과 동일한 시간 공연은 진행되며, 2002년 실제 해설자의 설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작은 헤드폰을 귀에 착용한 마시모 푸를란은 실제 경기와 정확히 안정환의 동선을 싱크시킨다. 전광판에선 마시모 푸를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순간순간 안정환의 움직임, 골 장면 등은 2002년 당시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준다.

이태리 아저씨가 혼자 뛰어다니는 모습이 전부인 이 작품은 시작 후 곧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전반전 45분 휴식 후, 그나마 있던 관객들이 빠져 나간 후까지 자리를 지킨 70명 남짓의 관객들에게 이 경기, 아니 공연은 서서히 흥미진진한 판으로 모습을 바꾸어 간다. 어디선가 공수 되어온 맥주와 안주를 나누어 먹는 가운데 경기 종반으로 갈수록 마시모 푸를란 (또는 안정환)을 응원하며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한 축제가 되어 갔기 때문이다. 한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이태리인을 응원하는 경기/공연이기에 제목이 '우리는 한팀' 일까. 어쨌든 이 작품이 축구경기인 동시에 공연인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축구를 '재현'한 공연이 아니라 축구를 '재연'하기 때문이다. 일회적 속성을 가진 많은 현대무용이 재연을 허락하고 반복하듯 이 작품은 재연을 하고 있는데, 사실 축구경기를 재연 한다는 것은 바로 퍼포먼스가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것이며 축구장이 극장을 재연하는 셈이다. 왜냐면 호이징거에 따르면 현대의 축구경기야 말로 시원적 제의 퍼포먼스 또는 페스티발을 축구장에 (안전하게) 가두어 놓는 대표적인 형태인바, 결국 축구장과 극장은 시원적 제의 퍼포먼스를 현대적으로 담아 놓은 그릇이라는 차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안정환의 재연, 축구경기의 슬로우모션 재방영, 해설자의 재해설, 이러한 몇 개의 '재(再)' 가 겹치는 장치는 이 퍼포먼스가 자기 지시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심지어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해설자의 사운드 역시 해설자의 입에서 출발하여 공명하며 시간적으로 지연(delay)되는 과거라 할 수 있다. 결정적인 부분은 이 작품이 결국 극장의 자기 지시적 형태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마지막 부분이다. 120분간 땀을 흘리며 뛰어다닌 퍼포머는 마지막 골든골 세레모니 후 관객석으로 다가와 인사를 한다. 이 순간 경기장의 조명이 꺼지고 퍼포머를 향해 핀 조명이 맞추어 지는데, 경기 내내 축구장과 극장이 오버랩 되는 묘한 느낌은 이 순간 더욱 분명해 진다. 원시 제의의 일시적 일탈과 해방은 축구 경기장에서도 극장에서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마시모 푸를란의 120분간의 부질없는 뜀박질 쇼는 극장을 상기시킴으로서 역으로 극장을 해방한다. 극장을 완전히 벗어난 공연은 사실 유기체로서의 극장을 해방하기 어렵다. 정서영이 그랬듯 그것은 극장의 맥락 안에서 오히려 유효하다. 정서영이 중지(pause)시킨 분배된 역할로서의 기능들은 이 작품에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안정환, 토티 아니 마시모 푸를란 자신인지 혼돈되는 순간, 2002년과 2010년 사이를 진동 시키며 극장 기계와 운동장 기계 그리고 그 부분적 기능들을 차례로 중지시킨 것이다.

마시모 푸를란 자신이 주장하는 월드컵의 '집단적 기억' 이나 자연스럽게 호출되는 '국가주의' 보다 『우리는 한 팀』이 쟁쟁한 페스티발 봄의 참가작 가운데 돋보이는 진짜 이유는 바로 극장을 벗어난 극장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기관(器官)없는 기관(機關)으로서의 극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우리는 전치된 극장을 만난다. 검은 프로시니엄 무대는 푸른 잔디밭으로, 천정의 검은 조명기는 경기장 조명으로 전치되었고, 극장 좌석 깊이 파묻혀 있던 어둠속의 관객 기계를 맥주와 함께 환호하는 서포터 기계로 바꾸었다. 지층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은 엄연히 퍼포먼스가 공연 중인 만큼 온전한 축구경기장이 될 리 없다. 안정환 유니폼을 입은 이태리인처럼 지속적으로 온전한 정체성의 유기체임을 거부하고 지연시킨다. 경기와 퍼포먼스, 조명기와 라이팅, 연극무대와 잔디밭, 시나리오와 해설자의 목소리, 관람자와 서포터, 운동선수와 퍼포머 그리고 극장과 경기장(stadium) 사이의 진자운동 으로부터 기관없는 신체의 '알' 이 갖는 강밀도가 발생한다. Allez!

홍성민/ 작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Mr.Lee 와 Mr.Kim 의 모험』
장소: LIG 아트홀
일시: 2010.4.22—4,24
연출: 정서영(작가)
기획: 김장언(큐레이터)

  copyright ⓒ719 factory

 

『우리는 한팀(We are the Team)』
연출: 마시모 푸를란
기획: 페스티발 봄
일시: 2010.5.8

-언제나 그렇치만 월드컵중계를 독점한 공중파 방송의 작품 설명은 민망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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