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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연구: 자주 묻는 질문들 1

2010-06-08  

글 :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 닉 몬트포트(Nick Montfort)
번역글을 두번에 나누어 싣습니다.

개요

여기서 우리는 플랫폼 연구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여섯 가지를 기술할 것이다. 플랫폼 연구는 창의적인 작업을 뒷받침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중점을 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접근법 중 하나이다. 본 글에서 우리는 플랫폼 연구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한다.

1. 서론

"플랫폼 연구"는 디지털 미디어 연구를 위한 새로운 관점이며, 창의적 작업을 뒷받침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연구하는 접근법 중 하나이다. 2009년 플랫폼의 관점에서 창의적 디지털 미디어를 연구한 첫 플랫폼 저서가 출판되었다. 『레이싱 더 빔 :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 (Racing the Beam :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9]이란 제목의 이 책은 MIT출판사의 플랫폼 연구 시리즈 중 첫 번째 저서이며, 우리는 이 플랫폼 연구 시리즈의 편집인들이다.

플랫폼 연구가 하나의 개념으로 소개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2007년 "디지털 예술과 문화 컨퍼런스"[4]에서였다), 여러 방식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을 만큼 이미 플랫폼 연구는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 연구에서의 공백에 대해 내놓는 우리의 해답은, 플랫폼 연구 프로젝트의 핵심을 놓치는 것 같은 의심으로 끝을 맺곤 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접해왔던 이러한 오해의 상세한 인용구들은 플랫폼에 대해 긍정적이라기보다는 공격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전하고 있는 플랫폼 연구에의 관심을 고려해 이 글에서는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여섯 가지 오해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오해들과 플랫폼에 대한 새로운 초점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비교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플랫폼 연구는 기술결정론을 수반한다. 
플랫폼 연구는 "엄격한" 결정론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테크놀로지의 블랙박스를 여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플랫폼 연구는 전적으로 하드웨어에 관한 것이다.
플랫폼 연구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또한 포함한다.

#3 플랫폼 연구는 비디오게임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플랫폼 연구는 창의적인 작업과 관련된 모든 컴퓨터 플랫폼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4 오늘날의 모든 것은 플랫폼이다.
플랫폼 연구는 디지털 미디어 작업에 기본이 되는 컴퓨터 플랫폼에 중점을 두고 있다.

#5 플랫폼 연구는 문화가 아니라 기술적인 사항들에만 관련된 것이다. 
플랫폼 연구는 기술적 사항들을 문화와 연결한다.

#6 플랫폼 연구는 디지털 미디어 분야의 모두가 컴퓨터 과학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플랫폼 연구는 기술적인 이해가 어떻게 새로운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다른 많은 중요한 연구자들을 퇴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연구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해당 분야에 그것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많은 연구자들이 플랫폼 연구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또한 우리의 글이 플랫폼 연구 개념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플랫폼 연구의 접근에 대한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올바른 방향의 비평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오해 #1 : 플랫폼 연구는 기술결정론을 수반한다.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매개 없이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의 논리만을 따를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기술결정론"은 테크놀로지가 인간 사회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가진 그 어떤 이론적 혹은 사회학적 접근을 의미한다. 여기에 오늘날 용법에서 더하는 중요한 수정은 : 기술결정론은 사회적 변화가 다른 원인들보다 기술에 의해 훨씬 더 영향을 많이 받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10] 이러한 생각이 일반화된 것은 적어도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때 일반 과학과 특수 과학이 처음으로 사회적 진보에 대한 지식인과 대중들의 생각에서 중심이 되었다. 산업혁명까지 이어지는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면서 발명에서의 진보는 기술이 모든 문제들을 풀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술이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결정론을 다른 유형으로 구분한 토마스 미사(Thomas J. Misa)에 근거해[8], 현대의 비평가들은 기술결정론을 "단단한(hard)"와 "부드러운(soft)" 결정론으로 구분하곤 한다. 부드러운(soft) 관점은 기술적 변화가 사회적 수용과 구별을 결합시켜, 사회적으로 순응하도록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단단한(hard) 관점은 기술적 변화가 사회적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5] 후자의 관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직관적으로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단단한(hard) 기술결정론은 계몽주의시대의 이상주의와 함께 동반되었다: 기관차와 전기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를 포함해, 발명과 산업은 일상적인 생활에 무시할 수 없는 진보를 가져왔다. 특히 미국에서 기계 혁신과 기술주의적인 생각은 국가, 자연, 종교의 문제보다 앞서 진보의 상징이 되었다.

1.1 미디어 생태학

이러한 생각들은 20세기 중반까지 모두 달라졌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정부와 산업적 투자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조차, 2차 세계대전과 핵무기의 출현은 기술이 본래 가진 사회적인 유용성에 대하여 거의 즉각적으로 회의주의적 입장을 낳았다.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 시기는 또한 가장 잘 알려진 기술결정론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과 의식을 결정짓는 방법에 대한 그의 연구를 발행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매클루언의 연구는 독해하기에 복잡하고 난해했기 때문에, 매체 철학적인 측면보다 문화적인 요소가 부각되었다. 이는 그가 1960년대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홀(Annie Hall)』에 까메오로 출연하고 플레이보이지와 인터뷰를 하는 등 미디어의 유명인사가 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핵심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꽤 단순하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물리적 인간의 몸이나 정신의 확장'이며, 다시 말해, 미디어는 사람들이 지각하고 이해하고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7] 이러한 생각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는 문장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 구절은 매체가 짊어진 "짐(payload)"이 아닌 속성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매클루언의 입장은 극단적인 것인데, 그에게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의 내용은 미디어의 논리나 그들이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바꾸는 방법과 비교한다면 훨씬 덜 중요한 것이다.

매클루언이 미디어 생태학이라 일컬은 이러한 접근은, 현대 문화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라는 용어로는 보통 기술될 수 없는 테크놀로지에 적용될 때에 가장 명확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매클루언이 미디어로 생각한 전형적인 예는 전구인데, 왜냐하면 전구는 밤에 시야를 밝히는 동시에 다른 감각들은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종종 단단한(hard) 기술결정론자로 오해받지만, 매클루언은 실제로는 매우 유연한 부드러운(soft) 결정론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데이비드 카플란(David Kaplan)은 '기술이 사회를 매개하고 조정하지만, 기술이 사회를 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5]

1.2 사회 구성주의

미디어 생태학은 적어도 미디어와 문화 연구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반면, 사회학과 인류학, 혹은 인간의 문화가 기술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연구하는 다른 분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과학기술연구(STS) 분야에서, 사회구성주의 혹은 더 널리 기술의 사회구조(SCOT-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로 알려진 대안은 어떻게 사람들이 다른 것들 대신 그런 특정한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해 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적이고 민족지학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SCOT의 옹호자들은 기술이 무(無)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인간들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결과, 이상, 목표와 문제 혹은 관련된 요소들에 반응하여 테크놀로지를 창조한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연구의 혼성으로서의 과학기술연구(STS)의 강력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주의는 지난 세기의 문화연구에서 훨씬 더 뚜렷한 경향의 한 예이다 : 인간 행동의 무형적인 문제에 대서는 큰 관심을 두는 반면, 기계나 창의적인 장치를 포함한 유형적 대상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예컨대 문학과 영화연구와 같은 인기 있는 분야가 책이나 영화와 같은 유형의 구성물들 연구하는 반면, 이런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혹은 보이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재현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매클루언의 용어로 보자면, 문화연구는 오직 내용에만 치중하는 것이지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1.3 빈 블랙박스

공정하게 말하자면, 과학기술연구(STS)는 과학적, 기술적인 장치에 대하여 탐구한다. 예를 들어, STS의 기원이 된 연구는 프랑스의 파스퇴르법(The Pasteurization of France)[6]로, 영어로 출판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미생물 발견에 대한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의 1984년 연구이다. 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연구들은 기술의 발견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에 반응하는지에 관해서 보다는, 과학 기술이 생성되는 방식에 더 중점을 둔다. 이러한 관찰은 랭든 위너(Langdon Winner)에 의해 제시된 기술의 사회구조(SCOT)의 비판과 특정한 종류의 소프트한 기술결정론에 찬성하는 대조적인 입장을 형성한다. 『블랙박스를 열었지만 그 상자는 비어 있었다』 (Upon Opening the Black Box and Finding it Empty)라는 그의 비평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사회 구조주의자들의 접근은 특정 테크놀로지 내부로부터의 작동과 사용을 고찰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12] 위너의 말처럼, 블랙박스는 남았지만,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불행하게도, 미디어와 기술에 대한 문화연구와 과학기술연구(STS) 접근의 대중성은 비판가들이 특정 기술의 블랙박스를 열어 논의하기 시작할 때마다 순진하고 불합리한 기술 결정론의 비난으로 이어져왔다. 위너는 이러한 반응이 부분적으로는 비평가들이 선호하는 민족지학이고 해석학적 방법에 대한 위협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훨씬 더 간단한 다른 설명은 기술결정론에 대한 반대가 더 유행을 타게 되었거나, 박스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할 수 있는 오래된 정해진 대답이 됐다는 것이다.

결정론에 대한 많은 반대 의견들이 구체적 생산물에 기울여진 그 어떤 관심과 기술의 사용이 인간을 썰물처럼 멀리 내보내며, 자동적으로 "단단한(hard)" 기술결정론—기술이 스스로의 의지로 생겨나고 진화한다는 극단적인 입장—에 이른다는 오해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반대들이 플랫폼 연구 접근—사람들은 기술이 문화적 관념과 생산품들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그들과 협상하며, 무수한 사회적, 문화적, 물질적 역사적 결과들에 반응하며 사람들 스스로가 기술을 창조하기도 한다—을 실상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동의하며 수용한다. 만약 우리가 기술이 그 스스로를 생산하고 인간 역사의 과정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면, 우리는 최소한 플랫폼 연구의 절반은 중단시켰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과 컴퓨터 플랫폼이 어떻게 특수한 문화적 개념과 관념을 구체화하고, 문화적 맥락에서 그들 또한 어떻게 창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말이다.

3. 오해 #2 : 플랫폼 연구는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다

하드웨어 플랫폼이 예를 들어 학자, 회사, 비디오 게이머들 등의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친숙하긴 하지만, 그것들이 플랫폼의 유일한 종류는 아니다. 플랫폼은 차후의 개발이 가능한 모든 종류의 컴퓨팅 시스템이다. 플랫폼은 하드웨어나 (여러 가지의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혹은 그 둘이 결합된 것들에서 완전히 구현될 수 있다. 중요한 문화적 생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모두에서 이루어져 왔다. 아타리 VCS(Atari VCS—1970년대에 처음 개발된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의 이름이다.)는 내장 ROM조차 없는 회로로 구성된 전적인 하드웨어이다 반면에 자바(JAVA—프로그래밍언어의 하나)는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며 다른 많은 하드웨어 시스템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가상 컴퓨터를 제공한다. Sun사(社)는 자바를 플랫폼이라 지칭했으며, 다음의 글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플랫폼은 윈도우, 리눅스, 솔라리스 OS와 맥 OS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환경이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운영 시스템과 기초가 되는 하드웨어의 결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자바 플랫폼은 다른 하드웨어에 기초한 플랫폼들 위에서 운영되는 소프트웨어 전용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다른 많은 플랫폼들과는 다르다.

다른 미디어를 포함하는 매체에 대한 매클루언의 언급처럼, 많은 경우 플랫폼들은 다른 플랫폼들을 포함한다.

만약 소프트웨어가 운영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환경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용하다면, 그런 관점은 최소한 어떤 점에서 그런 환경이 플랫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종류의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호환 가능하게 작동하도록 디자인된 시스템인 자바와 플래쉬에서 디지털 미디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Wintel(윈도우와 인텔 둘을 합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드웨어 수준 또한 포함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이 윈도우를 운영한다고 말하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플랫폼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출판업자들이 80년대 초 BASIC 프로그램으로 가득 꽉 책을 만들고, 특별한 마이크로컴퓨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BASIC이 실제로는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다르게 구현되는 관련 언어들의 집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플랫폼인 것처럼 다루고 있었다. 플랫폼 연구 방식이 물론 이런 종류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되겠지만, 이러한 점들은 BASIC과 다른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4. 오해 #3 플랫폼 연구는 모두 비디오 게임에 대한 것이다

가정의 비디오 게임 콘솔은 영향력 있고 중요한 플랫폼 유형이고 가장 정체성이 뚜렷한 플랫폼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제조업자들이 그러한 시스템의 디자인과 특징을 표준화했을뿐 아니라 그것들을 광고하고 독특하게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하지만 플랫폼은 모든 종류의 컴퓨팅에 만연해 있다. 애플II와 같은 개인용 컴퓨터는 플랫폼이다. BASIC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 역시 플랫폼으로 간주할 수 있다. 1960~70년대 플레이토(PLATO) 시스템처럼 문화적으로 중요한 시스템들도 과거 수십년간 개발되어 온 플랫폼들이다. 플랫폼은 표준화된 게임이 아니더라도 디지털 아트, 하이퍼 텍스트, 쌍방향 소설, 인공지능형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 등 새로운 미디어 생산물의 기반이 된다.

플랫폼 연구는 모두 비디오게임에 관한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 것은 명백하게 모든 플랫폼 연구서 시리즈에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아타리VCS-처음으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비디오 게임 플랫폼-에 대한 언급 때문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컨퍼런스와 저널, 서점에서의 분리된 진열 등 비디오 게임 연구와 다른 디지털 미디어 연구 사이의 일반적인 구분 또한 일부분 책임이 있다. 우리는 플랫폼 연구 시리즈가 저자와 독자들에게 이러한 경계를 넘을 기회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그러한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도우려는 의도는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5. 오해 #4 : 오늘날 모든 것은 플랫폼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 시스템이나 하드웨어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하나의 “플랫폼” 개념을 다룬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개발자에게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컴퓨터 혹은 컴퓨팅 시스템의 연구에 집중했다. 우리는 컴퓨터 기반 플랫폼을 연구하지만 석유 시추 플랫폼(oil-driling plaforms), 철도 플랫폼, 정치 플랫폼,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등과 같은 그 밖의 플랫폼들을 무시하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컴퓨터 기반 플랫폼은 여타의 플랫폼들과는 다르게 (그 동안의 연구에서 소외되어 온) 디지털 미디어 작업의 특정한 기반이 되고 있다. “플랫폼”의 의미를 이렇게 둠에 있어 우리는 모자이크 브라우저의 공동개발자, 넷스케이프 제작자,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 닝(Ning)의 공동 제작자인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정의하자면 “플랫폼”은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해 외부의 개발자나 사용자들이 바꿀 수 있는(customize)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플랫폼의 초기개발자가 시간을 충당할 수 없거나 계획하지 못했던 무수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1]

이 정의는 플랫폼의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플랫폼의 유동성이 창의적인 잠재력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한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중점을 둔 안드레센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플랫폼의 정의에서는 ‘프로그래밍’이 중요한 단어로 기능하고, 만약 프로그래밍이 가능한다면 플랫폼이라 할 수 있고,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면 그것은 플랫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4 컴퓨터적 정의에 대한 반론

커뮤니케이션 학자 탈레턴 길레스피는 “어떻게 유투브와 같은 온라인 정보제공자들이 스스로 포지셔닝할까”라는 분석적 연구에서 “플랫폼”이라는 용어의 웹 2.0 시대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과거에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디지털 매개체들을 총칭하는 용어로서 네가지 의미 영역에 사용되었음을 밝히는데에서" 시작한다.이 영역들은 ‘컴퓨터적, 건축적, 비유적, 정치적’ 영역들로 구분된다. 그는 첫번째로 이렇게 썼다 :

이러한 기술적인 맥락에서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컴퓨터적인 의미(computational meaning)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기서 컴퓨터적인 의미는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디자인과 이용을 지원하는 기반이며, 컴퓨터 하드웨어, 운영 시스템, 게임 장치, 휴대 기기, 그리고 디지털 디스크 포맷들이 바로 그것이다.

데이타 포맷까지 포함한 정의는 길레스피(Gillespie)가 인용한 안드레센보다 다소 정교하지 못한 반면 최소한 플랫폼의 컴퓨터적 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질레스피는 안데르슨의 주장을 “(플랫폼에 대하여) 컴퓨터적 특성들로 한정하려 한다”고 하면서 “플랫폼은 반드시 프로그래밍 언어가 작성되거나 실행되기 때문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하거나 상호작용하거나 혹은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이다 "

길레스피는 플랫폼이라는 의미가 방대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주요한 업계 인물이 2007년에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을 시대역행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즉 길레스피는 상기 인물이 한 용어가 과거에 지녔던 의미에 타인들이 귀를 기울이듯 그 단어를 과거에 묶어두려 한다는 논리로 스스로의 입장을 강화한다.

그의 관점에서 본 “플랫폼”은, “온라인 정보제공자”라는 공식적인 수사에 한정한다면 수긍이 가지만 만약 “플랫폼”의 컴퓨터적인 기능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어떠한 관점에서 “플랫폼”이라는 용어를 적용한다해도 컴퓨터의 기반으로서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예컨대 현재의 비디오게임 개발자들은 “플랫폼”에 대하여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이 용어를 우리나 안드레센이 내린 정의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같이, 유투브으 개발자들 또한 이러한 플랫폼의 정의에 익숙하고 그들이 소프트웨어를 작성할 때도 동일한 의미에서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친숙할 것이다. 컴퓨터 플랫폼으로서의 플랫폼의 의미는 오늘날 사용되는 다른 의미들과 마찬가지로 통용되고 있으며, 확실히 디지털 미디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의로 인식되고 있다.

이어지는 글
[플랫폼 연구: 자주 묻는 질문들 2]

 

참고문헌

[1] 안데르센, M. (Andreessen, M.) 2007, 3주동안의 페이스북 플랫폼 분석하기 (Analyzing the Facebook Platform, three weeks in) http://web.archive.org/web/20071021003047/blog.pmarca.com/2007/06/analyzing_the_f.html
[2] 안데르센, M. (Andreessen, M.) 2007, 당신이 인터넷에서 만날 세종류의 플랫폼(The three kinds of platforms you meet on the Internet), http://web.archive.org/web/20071018161644/http://blog.pmarca.com/2007/09/the-three-kinds.html
[3] 반스, B. (Barnes, B.), 블로어, D. (Bloor, D.), 헨리, J. (Henry, J.) 1996, 과학적 지식 : 사회학적 분석 (Scientific Knowledge: A Sociological Analys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보고스트, I. (Bogost, I.) 몬트포트, N. (Montfort, N.) 2007, 플랫폼 연구 : VCS, MPC와 Wii에 관한 컴퓨팅과 창의성(Platform Studies: Computing and Creativity on the VCS, MPC, and Wii),
[6] 라투어, B. (Latour, B.) 1988, 프랑스의 파스퇴르법(The Pasteurization of France), Harvard University Press.
[7] 매클루언, M. (McLuhan, M.), 매클루언, E. (McLuhan, E.) 1988, 미디어의 법칙 : 새로운 과학 (Laws of Media: The New Science), University of Toronto Press.
[8] 미사, T.J. (Misa, T.J.) 1988. 기계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와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를 돕는지 (How Machines Make History, and How Historians (and Others) Help Them Do So), Science, Technology, and Human Values 13: 308-331.
[9] 몬트포트, N. (Montfort, N.), 보고스트, I.(Bogost, I.) 2009, 레이싱 더 빔 :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MIT Press.
[10] 스미스, M.R. (Smith, M.R.) 1994, 미국 문화에서의 기술결정론, 기술은 역사를 추진시키는가? : 기술결정론의 딜레마 (Technological Determinism in American Culture, in Does Technology Drive History?: The Dilemma of Technological Determinism), MIT Press.
[11]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 1995. 자바 기술에 대하여 (About the Java Technology), http://java.sun.com/docs/books/tutorial/getStarted/intro/definition.html
[12] 위너, L.(Winner, L.) 1993, 블랙박스를 열었지만 그 상자는 비어 있었다 : 사회구성주의와 기술철학 (Upon Opening the Black Box and Finding it Empty: Social Constructivism and the Philosophy of Technology),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18:3, 36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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