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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반복되는 거울: 학문적 경계 이면의 미술

2010-07-28  

글: Hans Rudolf Re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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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모던(Tate Modern)의 『무대로서의 세계』(The World as a Stage, 2007)는 미술과 연극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전시이다. 그러나 전시의 주요 관심사는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널리 알려진 그의 글 「예술과 사물성」(Art and Objecthood)에서 맹렬하게 반대했던 미술의 연극성이 아니었다. [1] 대신 이 전시는, 연극적 의례에서 실제적 현장성과 과장된 연기가 서로 대립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 등을 전달하면서, 미술의 맥락 내에서의 연극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형식의 경험의 동시성은 예술의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를 주체성의 문제로 회귀시킨다. 「 테이트」(Tate Etc.)의 인터뷰에서 티노 세갈(Tino Seghal)은 “전시가 우리 시대에 속해 있다면, 연극은 고대 유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시가 우리를 개개인으로 제시하는 반면, 연극은 우리를 ‘대중’, 하나의 집단으로서 제시한다” 고 말했다. 그는 후기 산업 시대의 새로운 의례를 “… 새로운 의례(그것이 여전히 ‘전시’라고 불릴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더 이상 물질적 사물이 아니라, 상호 주체적 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성에 대한 찬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한다.[2]


하이너 괴빌(Heiner Goebbels), 「 스티프터의 사물들」(Stifter’s Things)
2007, Théâtre Vidy-Lausanne(Photo: Mario Del Curto, St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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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의례의 미래는 로잔(Lausanne)의 비디극장(Théâtre Vidy)에서 발표된 하이너 괴벨(Heiner Goebbels)의 최근 작업, 「 스티프터의 사물들」(Stifter’s Things, 2007) 을 떠올리게 한다. 연주자들이나 연기자들이 전혀 없이 이뤄졌던 이 공연은 매우 급직적인 것이었다. 이 공연에서 피아노와 타악기들은 컴퓨터에 의해 기계적으로 조정된다. 보이는 사람들이라고는, 마치 과소평가된 ‘dues ex machina’ (극이나 소설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힘이나 사건) 같은 무감정의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작동을 돕는 사람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스테이지에는 토마스 스투르스(Thomas Struth)의 초기 거리 사진에 등장하는 도시 거주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의 흔적과 소리가 있다.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그리고 구조는 미니멀한 무대 세트의 불빛 아래 조합된다. 공연의 이 시퀀스에서 모든 요소들은 서로 나란히 기능하며, 서로를 매만지되, 추가적이거나 섞여버리거나 오버랩되지는 않으면서, 마치 특이하게 균등한 요소로서 존재한다. 공연에서 보여지는 몇몇 미술 작업들은 스스로를 포기하거나, 혹은 서로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코넬리아 젠트츠(Cornelia Jentzsch)는 “그러한 급하고 활동적인 존재는 시간과 의미에 있어서 위계질서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하다…위에서 묘사한 해방된 병치는 의미없는 과도함 속에서 위계질서가 상실된, 모더니즘의 걷잡을 수 없고, 통제되지 않는 공존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3] 혹은 하이너 괴벨이 “이러한 분절성이 이 공연의 결실이다; 내 작업에서 각각 따로 소개 되는 연극적 장치의 독립적 실재…”[4]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현존과 부재 사이의 구분은, 실제 공간과 내적으로 무대화된 공간 사이에서, 그의 작품「 에라리탸리탸카」(Eraritjaritjaka, 2004)에서 만큼이나 모호하다. 「 에라리탸리탸카」에서 화자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가거나 그의 아파트에서 이것 저것을 하는 동안, 갑자기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 다양한 각도에서 카메라에 잡힌다. 픽토그램같이 표현된 집의 정면이 뒤에서부터 조명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카메라에 잡힌 집에 있는 화자의 시퀀스가, 무대 뒤의 무대 , 바로 여기에서 지금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 다수의 작품이 혁명적 19세기에서 프띠 브루주아의 대한 전원시로의 보수적 후퇴라고 평가되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의 이름을 따라 작품의 제목을 지었을까? 이는 지구적 진동을 물리적으로 만져질 것처럼 묘사하는, 금속 줄세공을 보는 듯한 슈티프터의 글쓰기가 지닌 정교함과, 요즘 상당히 떠오르는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 때문이다. 그는 통일성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가장 친숙한 상황에서 현실의 불가능성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주체의 경험을 대변한다. 「 내 증조부의 노트」(Die Mappe meines Urgrossvaters)에서 얼음이 깨지는 상황의 소리와 이미지에 대한 명쾌한 묘사들을 보라: “우리가 전에 이미 두 번이나 들었던,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우리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우리는 여전히 그 곳에 서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너무도 친숙하다. 선명한 충돌음이 비명 소리처럼 그것을 앞질렀다. 그리고 나서 짧은 바스락 거림, 솨하는 바람 소리, 혹은 풀바람 소리, 그리고 나서 거대한 나무 기둥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은 둔탁하고 위협적인 쓰러짐. 숲 사이로 메아리가 울렸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쭉쭉 뻗은 빽빽한 나뭇 가지 사이로, 눌리고 밀리고, 흔들리는, 무한히 반복되는 거울이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짤랑거리는 소리와 반짝거림이 있었다—그리고 나서 이전처럼, 서로를 향하여 서있는 나무 기둥들 사이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아무 미동도 없이 휘–소리만 계속되었다. 얇고 굵은 나뭇가지, 혹은 얼음 조각이 그렇게 서로 가까운 곳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난 일이지 전부 보지는 못했다. 우리는 오직 그것의 쓰러짐의 반짝거리는 섬광만을 봤을 뿐이며, 그것이 쿵하고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버려지고, 가벼워진, 부러진 나뭇 가지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혹독한 과정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반복되었다.” [5]


하이너 괴빌(Heiner Goebbels), 「스티프터의 사물들」(Stifter’s Things)
2007, Théâtre Vidy-Lausanne(Photo: Mario Del Curto, St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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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학문 연구(Cross-disciplinarity),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 멀티미디어(multimedia), 범학문 연구(transdisciplinarity) – 이들은 미술에서 공유되는 진화된 미술의 특성의 일면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장르와 학문을 서로 연결시키고, 가로지거나, 혹은 교차시키는 것, 복합적 매체에 대한 추가적 논리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개개의 학문에 대한 이해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trans (변화, 이전)”의 진정한 개념에는,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향한 추세” [하랄드 제만]를 통해 고립된 학문의 벽을 뛰어 넘을 때조차, 매체 지향성이 궁극적으로 따라 붙는다. 우리는 물론, 얼마나 자주 20세기가 매체나 재료의 공감각, 관습에 대한 도전, 그리고 이종 교배를 실험했었는지, 얼마나 많은 변형들이 여러 미술에서 시도되었는지, 그리고 과학적 담론에서 얼마나 많은 방법들에 그것들이 관련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친숙한 재료나 과정을 획기적인 것과 결합할 수 있는 자유는 미술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음악, 공연 미술, 문학, 순수 미술,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기반한 매체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갑자기 이런 장면”: 우리는 우리가 “메타 학문(meta –disciplinary)(고립된 학문의 카데고리를 초월하는)”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메타 학문의 관점은 모든 미술적 생산을 궁극적으로 범주를 초월하는 학문의 출발 지점으로 가지고 간다: 매체에 대한 담론 이면에 있는 미술 작업들이나, 그 보조적 학문들이 매체에 대한 고민을 진행하는 태도인데, 이 매체적 대한 고민은, 그것을 조정하여, 다양한 미술의 구조적 논리나 지식의 과학적 모드로 그것을 관련시킨다. 그러한 범주를 초월하는 접근은 미술과 과학을 따라 각각, 그 내부와 그 사이에서 연계와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작동한다.

모두가 장르를 넘나드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 미술은 이 널리 열린 영역에서 누가 혹은 무엇을 실제적으로 조절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지난 세기를 거쳐오면서, 미술적 생산의 이러한 측면은 작가성의 측면에서 꾸준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단언된 원본성, 저자의 단독적 권위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자의 죽음을 주장했다. 반면, 모든 매체로의 잠재적 접근성으로 인해, 바르트가 "모든 텍스트는 영원히 지금 여기에 쓰여지는" 광범위한 언어의 사전만을 탓하기 때문에 이 “현대의 스크립터”조차 우리에게 전망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6] 죽은 것은, 그의 매체로부터의 거리로 고통받는 동시에 이득을 얻는, 저자의 “측은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여는, 혼란스러운 학문과 접근의 다양성에 타협해야 하는 주체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모습은 더 이상 원본일 수 없고, 더 이상 동질적일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일시적 표현으로만 읽힐 수 있을 뿐인다. 다른말로 하자면, 그것은 그 자체로는 창작적 활동의 결과물, 필수적이고 자기 상상적인 독립체인 것이다. 문화 철학자 장 프랑수아 료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예전 작업, 「서명된, 말로」(Signed: Malraux)가, ‘상상적 미술관(musée imaginaire)’의 시인에 대한 전기적 연구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 “벽 없는 미술관은 단지 질문이 시작될 수 있는, 우리의 의구심이 허용되는 형이상학에 불과하다. 그것의 크기는 미술관 컬렉션을 훨씬 초과한다. 그것은 존재가 있는 모든 행성의 장소에 열려 있다. 그리고 이 미술관은 앨범이다…그러므로 그것은 휴대할 수 있는 미술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마음의 장소’ 인 것이다.” [7]

주체의 통일성은 도플갱어나 오토마타가 발명된 낭만주의에서 이미 약화되었고, 그것을 재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미술적 생산에서의 주체에 대한 기본적 원리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적 미술관(musée imaginaire:)'의 기저에 있는 의구심은 상상적 주체(sujet imaginaire)에 관한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이제 주체는 더 이상 단순히 실증적 자아가 아니다; 그것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양한 접근 방법과 매체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개인들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이 상상적 주체는 미술 생산의 불안정한 주체일뿐 아니라, 상상적 주체(sujet imaginaire) — 불어 표현 그대로 — 이기도 하다.

상상적 주체(sujet imaginaire)의 발전은 특히, “미술 대학”이 범학문적 방향과 연관을 맺기 시작한 이래, 미술 교육에서도 이루어진다. 앵글로 색슨 세계에서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유럽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70—80년대 스위스에서 실비아(Silvie)와 셰리프 드프라위(Chérif Defraoui)는 제네바의 응용미술학교(Ecole supérieure d’arts visuels)의 굉장히 성공적였던 그들의 스튜디오를, 사적인 미술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에 대한 신중한 반대로서, “공동 매체(media mixte)”라고 불렀다. 최근에 설립된 취리히 예술대학(Zurich University of the Arts) 또한 가상의 “건물”, 디지털 “미래의 대성당”에 대한 꿈이 디지털 조건과 복합 매체 생산에 대한 실리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기 매체 조건에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기관Y는 예술 장르들 사이의 중력의 장을 만드는 거대한 미지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기 위해, 베른예술대학교(Bern University of Arts)에 4년 전에 설립되었다. [8] 범학문적인 생각은 더 이상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다양한 미술이 지속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한, 다른 영역에 대한 지식은 스스로의 문맥에 추가된 통찰력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특정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상호적 공감 혹은, 유연한 공감각보다 더욱 메타-학제를 위한 발판이 된다. 학문, 매체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질 때에만, 협업이 미술의 비밀스러운 위계질서나 단순한 상호적 묘사로 강등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의 「 에라리탸리탸카」(Eraritjaritjaka)의 인물이 말하듯, “만약 당신이 할 말이 정말 많다면, 당신은 혼자가 될 수 없습니다. (Qui a trop de mots ne peut être seul)” [9] 현대 미술 과목에서 석사 과정—음악, 미디어 아트, 순수 미술, 그리고 작가들과 무대 미술 분야의 현역들을 모두 함께 모은 베른대학의 커리큘럼은—고립의 형식을 온전하게 연구하기 위해 상상적 주체(sujet imaginaire)를 발전시키려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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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 「타임피스」(TIME PIECE)
2007 - 현재 (Photo: Courtesy Max Neuhaus)

정오였다. 쾰른 근처 스토멜른의 마을 광장에는 자동차들이 주차되어있고, 도로의 교통 소음 사이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근처의 교회 종이 울린다—이 시끌시끌한 작은 마을의 분위기는 낯설지 않다. 그리고 무언가 미묘하게 불안정한 것이 있다. 거의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커지면서, 한순간 도시의 풍경을 심오하게 바꾸는, 아주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소리를 눈치채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완전히 인식하기 전에, 그 소리는 갑자기 멈춘다. 이 너무나 특정한 소리의 갑작스러운 침묵은 기억에 새겨지게 된다. 그 소리는 종의 마이너스 울림처럼, 정시에 멈춘다. 그러나 이 「타임피스」(TIME PIECE) (2007)에서, 막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는 하루를 일출에서 시작해서 일몰로 끝나는 열두부분으로 균일하게 나누는 유대교 기도의 리듬을 따른다. 규칙적이고 변화없는 교회 종소리의 울림과는 역동적인 대조가 우리의 주의를 광장 옆의, 독일에 몇 남지 않은 작은 유대교회당으로 이끈다.

노이하우스는 그의 첫 타임피스(TIME PIECE)를 1989년 베른미술관(Bern Kunsthalle)을 위해 제작한다. 그리고 요하노임미술관(Johanneum Museum) 근처의 그라츠(Graz)의 중심가(2003년 이후)와 허드슨밸리(Hudson Valley)에 있는 디아:비콘(Dia:Beacon)에서(2006년 이후) 다시 제작한다. 각 장소의 소음을 사용해 전자적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소리와 음조의 미분음 혼합은, 잔잔한 소리 감지를 위한 르푸스아르(repoussoir—원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전경(前景)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나 물체)같은 청각적 플랫폼—시각적 비유를 하자면—을 만들어 낸다. 소리에 의해 다르게 놓여진 장소들은 새로운 종류의 도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정의된 외부공간 장소에서, 탈영토화된 사운드 챔버는 외부의 공간을 그려낸다 . 「타임피스」가 기억에 대한 고조된 무대를 창조해내는 동안, 뉴욕 타임스퀘어에 영구 설치된 사운드 작업 「플레이스 워크」(PLACE WORK)는 (1977년—1992년, 2002년에 재설치) 파동을 일으키는 주변의 소음과 정적감으로, 교통 신호가 바뀌는 것 마냥, 규칙적인 연속음으로 이뤄져 있다.

노이하우스는 카네기홀(Carnegie Hall)에서의 단독 연주회로 타악기 연주가로서 그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그 이후 그는 사운드웍스(Sound Works)에서, 시간과 소리로 구성된 미술에서 비가시적으로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만들어 내면서, 그 스스로의 문맥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가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할 때면, 소리는 음악이라기 보다는, 선택된 장소를 순간적으로 비물질적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도구가 된다. “그것은 장소 특정적, 그 이상이다: 나는 이 작업들을 그것이 속한 장소들에서부터 만들며, 그 장소들은 작업의 물리적 요소가 된다.” [10]


토마스 허쉬호른(Thomas Hirschorn),「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Where do I stand, What do I want?), 2007, 계획


토마스 허쉬호른(Thomas Hirschorn),「능동적 작업」(Active Work)
2003, Musée Précaire Albinet의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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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허쉬호른(Thomas Hirschhorn)은 그의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를 콜라쥬, 비디오, 신문, 도서관, 입체, 설치, TV 스튜디오, 독서, 그리고 연극과 같은 요소들을 사용한 집합체의 창작에 쏟아 붓는다. 이러한 그의 풍부한 복합성은 아주 명료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원리의 결과이다 : “나는 내 스스로의 논리에 침투하는 예술적 논리에 기반한 작업을 하고 싶다. 내 예술적 논리가 매체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매체의 논리가 명백히 내 예술적 논리를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매체의 논리는 종종 단지 습관– 미학적, 문화적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예술가이고, 예술 작품을 만들다 보면, 오해, 혼선, 패러독스, 그리고 또한 상호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세상의 모호함 속에서 나만의 미술적 논리를 가지고 작업을 하기 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해 놓은 강력하고, 형식적인 배경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가 정한 강력하고 형식적인 배경은: 사랑, 미학, 정치학, 그리고 철학이다.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미술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데, 이것이 미술을 진정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또한 나를 압도시키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하고 싶다. 아니면, 최소한, 내 마음대로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시도해 보고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형식의 진실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이 태도를 형식에 반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형식은 어떻게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습관들 너머에 있는 진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떻게 보편적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11]

허쉬호른(Hirschhorn)은 작가적 제스처에 대한 페티쉬가 된 파리에서 열린 『스위스-스위스 민주주의』(Swiss-Swiss Democracy) (2004/05)전시에서처럼, 전시에서 그의 일상적 존재가 작가로서 받아들여지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충동이다: “존재—나의 존재—를 통하여, 그리고 생산—나의 생산을 통하여—나는 심지어 제도적 장소에서도, 공공 장소에 대한 순간성과 장소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술에서 참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미술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안 모델을 고안함으로써, 나는 방문객이나 대중들이 어쨌든간에 분명히 포함되기를 원하는 방식의 참여의 함정을 피하고 싶다. 존재와 생산에 대한 내 대안적 모델은, 우선 내가 작가로서 내 스스로에 대한 무언가를 주고, 내가 우선 내 스스로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의 존재를 통해 참여하고 싶으며, 내가 먼저 참석해야 하고, 내가 무언가를 처음 함으로써 내 스스로를 개입시키고 싶다. 따라서 나는 무언가 ‘특별한’ 것(말을 걸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작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방문객들에게 도전하고 포틀래치(potlatch)의 전통에서처럼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주기 위해, 참석해서 일을 한다. 나는 방문객들이 내 작업과 대화하고, 그것에 직면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초대하고 싶다. 존재와 생산을 통해, 나는 활동으로서의 참여를 성취하고 싶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활동은—비록 측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사고의 활동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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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의 다양한 이벤트의 등가물과, 막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의 벽없는 소리 공간들, 그리고 토마스 허쉬호른(Thomas Hirschhorn)의 단일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다양한 학문을 다루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세 개의 접근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잠재적으로 무한 반복되는 거울에 비친 상상적 주체(sujet imaginaire)의 먼 명각으로 서로를 비춘다: 스스로를 상상하는 주체로서.


(Catherine Schelbert의 독어-영어 번역을 중역하였습니다.)

[1]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 『예술과 사물성』(Art and Objecthood) in Artforum, no. 5 (June 1967): “내가 근본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중요한 차이는 연극적인 미술 작업과 그렇지 않은 작업 사이에 있다.”
[2]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과 캐서린 우드(Catherine Wood)의, 『Tate Etc.』의 「무대로서의 세계」(The World as a Stage)의 참여 작가와의 인터뷰, Issue 11, Autumn 2007, p.74
[3] http:// www.heinergoebbels.com/index2.htm
[4] 동일 출처
[5] 아달베르트 스티프터(Adalbert Stifter), 내 증조부의 노트(Die Mappe meines Urgrossvaters) (Zurich: Scientia AG, 1944), P.113
[6]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작가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스테픈 히스(Stephen Heath) 번역 (London: Fontana Press, 1977), pp. 142-148
[7] 장 프랑수아 료타르(Jean-François Lyotard), singner, Malrauz, trans. Robert Harve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 p. 304
[8] 플로리안 돔보이스(Florian Dombois) http://www.hkb.bfh.ch/y_archiv.html 참고
[9] 말 그대로: 만약 당신이 할 말이 정말 많다며, 당신은 혼자가 될 수 없습니다.
[10] 막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 2007, 그라츠(Graz)에서 필자와의 대화 중에
[11] 필자와 교환한 이메일에서 토마스 허쉬호른 (Thomas Hirschhorn), September 2007.
[12] 동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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