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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불타지 않았다

2011-03-15  

 

 

사람들은 숭례문이 불타서 사라졌다고 믿고 있으나 숭례문은 세 가지 이유로 불타지 않았다. 우선, 숭례문이 한국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말 할 것도 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국보 1호’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보(國寶)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말이며,<1> 문화재를 국가의 보물로 지정하는 제도 자체도 일본이 만든 것이다.<2> 우리가 우리의 국보라며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숭엄하게 생각해 마지않는 그 국보라는 개념은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다. 물론 그 개념을 우리에게 준 것은 우리가 예뻐서가 아니라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일제는 대단히 객관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모든 문화유산을 샅샅이 조사하여 방대한 보고서를 냈으나 그 결론은 대단히 편파적인 것이어서, ‘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미개한 것이므로 발달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대문이 국보1호’라는 생각의 패러다임은 기묘한 역사적 왜곡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숭례문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나라의 보물이라는 패러다임에 의해 각인된 어떤 구조물이다. 이때 나라, 보물, 국민이라는 세 가지 항목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복잡한 역사의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어떤 물건이 나라의 보물로 인정되어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국민으로서 일체감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하나의 사건이다. 결코 국보로 지정된 물건 자체가 훌륭하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국가가 어떻게 국민과 국민됨(nationhood)을 꾸며내고,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강화하는 여러 가지 의례들을 치러내는지 하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다.

그 사연은 평소에는 K리그에 관심도 없던 한국사람들이 4년에 한 번씩 피파월드컵축구대회 때만 되면 온통 축구팬이 되는 현상과 관계 있는 문제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운동장에 모여 애국가 부르면서 국민이 되고, 월드컵 축구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국민이 되기도 하고, 건강보험공단에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국민이 되기도 한다. 물론 로케트를 훌륭히 발사해도 국민이 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수련회에 보낸 초등학생 아들을 화재로 잃은 어느 국가대표 운동선수 출신 엄마가 어린 아이의 목숨도 지켜주지 못하는 이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국가가 준 훈장도 반납하고 외국으로 이민 가버린 것이 그런 경우다. 국가가 준 훈장을 내팽개쳐 버림으로써 그녀는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람을 국민으로 묶어주는 그 끈을 벗어던진 것이다. 반면, 국보가 하는 일은 문화유산의 향수를 통해 사람들을 국민으로 묶어주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 같은 남의 나라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봤을 때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놀라기는 할 지언정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며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의 국민들이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복원사업에 일본의 NHK방송이 돈을 댔다고 해도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 국민에게 속한다.

숭례문은 어떤가 하면,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 국보1호라는 호칭을 통해 한국사람을 국민으로 묶어주는 강력한 끈노릇을 하는 구조물이다. 그러나 국보의 개념이 우리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국보인 숭례문은 어느 정도는 일제의 때가 묻은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일제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정신과 말버릇과 태도에 속속들이 배어 있어서 닦아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일제가 우리에게 준 것도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의 심성으로는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 쿨 하게, 요즘 같은 퓨전의 세상에 온전히 순수하게 ‘우리 것’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해버리면 마음이 편하듯이, 국보가 일본말이면 어떠냐, 숭례문의 지붕선은 그래도 우아하고 아름답지 않느냐고 넘기면 괜찮다. 그러나 방송출연자가 ‘기스’라는 말만 슬쩍 써도 진행자가 근엄하게 기스는 일본말이니 방송용어로 부적합하다고 타이르는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 쿨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방송국’이란 말이 일본말인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제의 잔재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수많은 예 중에서 딱 하나만 들자면, 일제 잔재 중에 여자 이름에 남아 있는 ‘자(子)’라는 글자가 일제가 물러간 지 한참이 지난 후인 1980년대 생에게까지 발견된다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1980년 생인데 민자가 있다) 일본과 한국의 정체성이 그렇게 칼로 긋듯 간단히 떼어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말들은 대부분 일본말이며, 공식적 생활에서 쓰는 대부분의 어휘들은 다 일본말이다. (물류, 택배, 재태크, 수납, 차장, 부장, 과장, 운동회, 앞으로 나란히 등등 끝도 없다) 물론 이런 말들은 방송에서 써도 되지만 일본 발음으로 하면 바로 제지받는다. 각목은 되도 가꾸목은 안 된다. 숭례문이 우리의 보배라고 하려면 다른 나라의 패러다임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게 우리의 것이라고 해야 하는데 이미 숭례문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말인 국보가 일본말이고 일본의 개념이므로 숭례문은 전적으로 ‘우리의’ 것은 아니다. 숭례문은 퓨전인 것이다. 이 세상에 하늘에서 떨어진 듯 순수하게 우리 고유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숭례문이란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보물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다. 불탄 것은 일본의 근대적 지식패러다임과 한국의 문화유산이 합해져서 나타난 어떤 합성물이다.

숭례문이 불타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보드리야르가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숭례문이 불탄 것은 실제의 숭례문이 탄 것 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혹은 축소해서, 혹은 더 초현실적으로 묘사한 미디어 이벤트일 뿐이다. 불탄 것은 미디어 이벤트의 열기지 숭례문이 아니다. 즉 실제의 미디어 이벤트로서의 숭례문 화재는 실제로 숭례문이 불탄 것을 훨씬 초과해 있다. 얼마나 초과해 있느냐면 숭례문 화재사건과 그에 대한 미디어 이벤트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가 숭례문 화재라는 사건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도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도의 정확성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사실과 이미지가 서로 맞는지 아닌지 맞춰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정황이 소박했던 1980년대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미디어 이벤트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이 드라마나 스포츠중계 같은 스펙터클의 성격으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곰곰이 보면 사실상 객관적인 뉴스와 극적으로 꾸며진 드라마와, 그 중간 쯤에 있는 스포츠중계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뉴스에도 과장되고 허구로 꾸며진 드라마가 있고, 드라마는 차라리 요즘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뉴스보다 더 정확히 보여주고, 운동경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는 무엇을 뜻하느냐면 텔레비전 방송국은 뉴스, 교양, 오락 등 분화된 조직을 가지고 다른 콘텐츠들을 만들고 있지만 실상 그들이 만드는 것은 드라마틱한 스펙터클이라는 같은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양상을 통하여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은 종로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종로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다.

이는 공개녹화의 현장을 찾아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현장에서는 세트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에서 피디가 플롯에 따라 명령하고 연기자는 연기하고 조명은 돌아가고 카메라감독은 촬영한다. (카메라감독 참 기묘한 말이다. 감독이란 하나의 현장에 한 사람만 있어야 하는데 방송에서는 카메라 잡은 사람은 다 카메라감독이라고 부른다. 아마 카메라맨이나 카메라기사라는 말이 싫어서 청소부를 환경미화원이라고 부르듯이 격상시켜 주는 말인 듯 하다) 우리가 집에서 보는 화면에는 세트 디자이너도, 피디도, 플롯도, 조명감독도, 카메라감독도 보이지 않는다. 숭례문이 불 타는 현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거기에도 즉석이긴 하지만 무대가 있고 (중계화면에 불타는 숭례문은 무대 위의 인물처럼 한가운데 높이 설정돼 있다), 피디가 있고, 이것도 역시 즉석에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플롯이 있고 피디가 있고 조명이 있고 카메라감독이 있다. 집에서 보는 우리 눈에는 그런 장치들은 안 보이고 최종결과물인 스펙터클만 보일 뿐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스펙터클은 보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장치들은 보이지 않고, 제작현장에서는 장치들은 보이지만 스펙터클은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 이벤트는 이런 두 현실의 간극 어딘가에 있다. 숭례문은 그 간극에서 타고 있었다.

극적인 승부가 난 스포츠중계에서처럼 사태를 과장하고 비극화하는 미디어 이벤트의 열기에 비하면 숭례문이 타오르는 불길은 작은 촛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숭례문은 미디어 이벤트의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클린턴이 대통령당선자 시절 그의 집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기자들이 마침 그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집밖으로 나오자 그 고양이가 당선자에 대한 대단한 비밀이라도 품고 있는 양 열을 올리며 취재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미디어에게 숭례문은 대통령 당선자의 고양이와 동격이다. 극적으로 연출된 아이템만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생방송‘의 생생함을 믿는다. 그러나 생방송이란 리얼하게 연출된 미디어 이벤트일 뿐이다. 생방송이라고 해서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온 에어가 되어 카메라는 계속 비뚫어진 앵글을 보여주고, 출연자는 말문이 막혀서 계속 실수를 해대고, 진행은 엉망이라면 그것은 생방송이 아니라 엉망이 된 방송, 실패한 방송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실제로 그랬는데, 사고 직후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된 신입기자는 갑작스레 일어난 대형참사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말할 거리가 떨어진 나머지 스튜디오에다 대고 자기에게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촌극을 빚었다. 이때 경험 많은 기자라면 노련하게 옛날에 있었던 대왕코너 화재에서부터 대연각 화재까지, 대형빌딩에서 있었던 각종 참사에 대한 얘기를 읊을 것이며, 하다못해 타워링 같은 영화 얘기라도 하면서 시간을 때울 것이다. 그러나 ’생방송‘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초년병 기자는 생방송을 꾸밀 줄 몰랐던 것이다. 야구 생중계에서도 아나운서가 무슨 사정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노련한 해설자가 30분이나 이 얘기 저 얘기해서 아나운서의 부재를 느낄 수 없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생방송‘이란 그런 준비된 퍼포먼스로 잘 짜여진 이벤트이지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만일 현장에 나가 있는 리포터가 계속해서 “숭례문이 불탑니다, 숭례문이 불탑니다, 으악! 아악! 어떡해!” 한다면 그것은 생방송이 아니다. 생방송이란 리포터가 “숭례문이 처참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1395년인 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세종 29년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입니다”라며 틀이 갖춰진 내러티브를 넣어주고 감정도 적절히 조절해 줘야 생방송이 되는 것이다. 즉 생방송이란 생방송 효과일 뿐이다. 생방송의 생(live)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거의 시간차 없이 화면에 보여준다는 약속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디어 이벤트일 뿐이다.

본래 미디어란 말 그대로 중간에 끼어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medium (매개, 중간쯤), median(중앙값, 중앙분리대), middle (중간), mediterranean(지중해) 등 med가 들어 있는 말은 모두 중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방송 미디어란 사건과 시청자를 중간에서 매개하여 전달해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이벤트에서 미디어는 더 이상 중간에 끼어 있지 않고 우리들 머리 위에서 우리의 감각과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하고 대체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이미 롤랑 바르트나 빌렘 플루서가 1970년대 말에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미디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미디어가 시키는 대로 쇼핑하고 미디어가 시키는 대로 울고 웃는다. 미디어 이벤트의 전형적인 사례가 피파월드컵축구대회(그냥 월드컵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는 종목별로 수많은 월드컵 경기들이 있다.)와 올림픽대회이다. 이 이벤트들은 오로지 미디어를 위해 열리며, 미디어를 통해 파급력을 발휘한다. 메시가 월드컵축구대회에서 골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미디어로 중계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메시는 축구스타가 아니라 미디어스타다.

걸프전이 미디어상으로 벌어진 사건이고, 전세계의 시청자들은 걸프전이라는 현실에 참여할 수 없이 오로지 미디어상으로만 체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숭례문이 불 타는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디어로만 봤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사건을 직접 체험할 수 없다는 점과, 설사 직접 체험한다고 해도 그것은 미디어로 나타나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점이 중요하다. 전세계 사람들은 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그래서 미국이 주축이 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침공해서 벌어진 걸프전에 대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걸프전이 벌어진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걸프전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유명한 것이 개전 첫날 다국적군의 전폭기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폭격하자 밤하늘을 수놓은 수 많은 대공포화의 예광탄들이 만들어내는 개똥벌레 같은 불빛이다. 전세계 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생중계된 전쟁인 걸프전의 그 장면을 보았으나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걸프전이 처음으로 선보인 강력한 이미지 중의 하나가 스마트 폭탄이 전하는 영상이다. 폭탄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다가 끝내는 사라지고 마는 그 영상은 인류사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쟁과 시각의 관계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그 장면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걸프전의 이미지들은 걸프전의 실제를 압도하고, 굳이 찾아가서 볼 필요도 없게 만든다. 이미지 자체가 전쟁이고, 전쟁 만큼이나 치열하고 극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걸프전은 이미지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 식으로, 걸프전은 강력한 이미지들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의 망막과 뇌리에 각인된다. 이 모든 것들은 미디어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벌어졌다기 보다는 이미지로 나타났을 뿐이다. 미디어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하는 요즘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실제로 어땠느냐 보다는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걸프전은 글로벌한 스포츠 이벤트와 비슷하게 스펙터클의 양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피파월드컵축구대회와 걸프전이 다른 딱 하나의 지점은 월드컵에는 실제의 목격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경기장에는 몇 만명의 관중들이 모여서 실제 벌어지는 경기라는 사건을 보고 있다.

하지만 관중들이 자신의 육안으로 보고 열광한 그 경기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그 경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우선 텔레비전의 광학적 특성이 있다. 클로즈업, 광각, 몽타주 등이 있고, 또한 시간을 편집하는 특성이 있다. 리플레이, 플래쉬백 등 텔레비전은 다양한 기술을 통해 시지각을 재편한다. 또한, 아무리 현장중계라고 해도 방송국의 편집이나 기술적 처리 등에 의해 강조되거나 놓치는 장면이 있다. 현장에서 보는 관중들은 선수에 대한 통계 데이터를 볼 수도 없고 그 선수가 예전에 했던 플레이를 볼 수도 없으며 감독과 심판이 뭔가 심각한 언쟁을 할 때 무슨 상황인지 통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을 텔레비전의 시청자들은 다 볼 수 있다. 또한, 이 장면이 전세계의 수억명에게 동시에 중계된다는 사실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안방의 시청자는 여러 채널을 통해 같은 경기를 보면서 이것이 글로벌한 사건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한다. (최근 야구장에는 DMB를 통해 다른 구장의 경기를 보면서 관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현실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말한 하이퍼리얼리티 시대의 사건의 본질이다. 이미지는 현실을 압도할뿐더러, 현실 없이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그래서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본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은 텔레비전에서만 일어난 사건이다. 불탄 것은 숭례문의 이미지이지 숭례문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다. 숭례문이 불탄 것이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라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리키는 함의는 무엇인가? 숭례문이 타버렸다는 비극성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문제는 숭례문이 타버렸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 아니라 비극이라는 패러다임이 있기 때문에 숭례문이 타버린 것이다. 어떤 것이 불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판단은 전적으로 역사적인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그런 패러다임이 없으면 설사 어떤 것이 타 없어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기념비를 파괴해버린 또 다른 미디어정치 이벤트인 중앙청 철거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 생각해 보면 비극성의 패러다임이 생기거나 사라지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삼정부가 중앙청을 철거해 버린 것은 숭례문이 타 없어진 것 만큼이나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정치적인 연출에 의해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을 부여받아 축제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불탄 것은 숭례문이 아니라 사건을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패러다임이었다.

세 번째로, 숭례문이 불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숭례문이 타고 나서 3일 정도 지나서 현장을 방문했을 때 주위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빈소가 있었고, 사람들은 너무도 비참하고 애통한 심정으로 숭례문에게 절을 하고 추모의 예를 표시하고 있었다. 숭례문이란 사람들이 매일 차를 타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바쁘게 누구는 서울역쪽으로, 누구는 명동쪽으로 가는 지리적 참조점 정도로만 취급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숭례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게 꼭 국보1호라는 호칭이 붙어서가 아니라, 시골 동네 앞의 커다란 당산나무가 그 큰 그늘과 넉넉한 줄기로 사람들을 품어주고, 멀리서 보아도 우리 동네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 노릇을 하며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이 들어 앉아 있듯이, 숭례문도 여기가 서울의 중요한 길목이자 자리이며 그것은 몇백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통해 지리적, 심리적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 각자는 그런 깊이를 내면화하고 있었으나,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서 그것을 확인할 기회란 없었다. 숭례문이 불타서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숭례문이 타고 남은 시커먼 잿더미는 사람들이 숭례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전해주는 증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숭례문은 타서 없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질로서 사라진 숭례문은 신화로 다시 태어났다.

역사는 항상 신화화되는 법이지만, 신화적 담론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화는 우리가 의사소통하는데 의미의 촉진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은, 는, 이, 가 같은 조사가 의사소통의 단위로서 역할을 하듯이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사실을 말 할 때 도움을 주는 요소로서 기능한다.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지 않고 월급 많이 받다가 은퇴하여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하한다면 신화성이 떨어질 것이다. 논개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죽지 않고 평생 기생일 잘 하여 재테크 잘 해서 대궐 같은 요정을 차린 사장님이 되었다면 역시 신화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 분들의 삶이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위대성은 많이 깎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다 장렬히 산화했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았다. 즉 신화가 된 것이다. 숭례문도 사라짐으로써 우리 앞에 찬란히 신화로 나타났다. 사라지기 전의 숭례문은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있다가 남대문 앞에서 봐” 혹은 “남대문 앞에서 70미터 앞에 저희 가게가 있어요” 할 때의 그 숭례문 말이다. 숭례문이 사라지니까 그런 식의 일상적인 어법으로 지칭할 수 없게 됐다. 숭례문은 고인이 되어, 우리 앞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다.

 

<1>일본판 야후사전을 보니 국보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문화재보호법, 중요문화재, 무형문화재 등의 말과 개념도 일본 것임을 알 수 있다. “日本に存する建造物、美術工芸品、文書などの文化財のうち、とくに「国の宝」というべき価値高いものとして選ばれ指定されたもの。古くは古社寺保存法および国宝保存法によって指定されたが、1950年(昭和25)8月、新たに文化財保護法がつくられ、現在はそれに基づいて行われている。これによって従来の旧国宝はいったんすべて重要文化財と改められ、このなかからさらに重要なものを選んで新国宝に指定している。また1950年以後に重要文化財となったものから国宝に格上げされた文化財も多く、すべてをあわせると2007年(平成19)3月現在1073件に及んでいる。なお、人間国宝というのは重要無形文化財の保持者に対する俗称である。”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하여 1,2,3번 등으로 번호를 붙여서 관리하는 패러다임도 물론 일제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학계에서는 국보의 개념이 일본에서 왔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일본의 국보총목록을 보고 싶으면 다음을 클릭하면 된다. http://ja.wikipedia.org/wiki/%E5%9B%BD%E5%AE%9D%E4%B8%80%E8%A6%A7

<2> 참고로, 國語도 일본말이다. 일본판 위키백과는 국어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とはその国家を代表する言語で、その国家の公用語あるいは公用語的扱いとなっている言語をいう。国民国家形成の必須条件である。”  


 

글 이영준

기계비평가. 저서로 『사진 이상한 예술』, 『이미지비평』, 『기계비평』, 『사진이론의 상상력』, 『비평의 눈초리』 등이 있으며,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FAST Forward》, 《서양식 공간예절》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의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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