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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비엔날레는 무엇을 말했고, 어떤 질문을 받는가

2011-03-24  

John Baldessari, Ocean and Sky (with Two Palm Trees), Venice Biennale, 2009

사고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특이성에 따라서 도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도-래로 열리는 것이다.  예술작품이 하는 것은 이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예술작품은 세계로 찾아오면서, 이 작품 이전에는 상상 불가능했던 색채의, 혹은 소리나 말의 놀이를 현전시킨다.  이것은 특히 추상화가 창출된 이래의 현대예술에서의 진리이다. 

-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 <비인간적인 것 L'inhumain> 중에서 -


짝수 해인 2010년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비엔날레들이 개최되었다.  한국의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대만의 타이페이 비엔날레, 싱가폴 비엔날레, 중국의 상하이 비엔날레와 호주의 시드니 비엔날레 등이 한꺼번에 열렸다.  이들 가운데 어떤 비엔날레들은 동시대미술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본격적인 대안을 탐색하고 있고, 또 어떤 비엔날레들은 시대적 정황에 따른 이슈들을 점검하고 있으며, 또 다른 비엔날레들은 기획자의 인문학적 지평을 가시화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시를 꾸리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비엔날레들이 열리자 2010년에는 많은 비평지들이 지난 10여 년 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비엔날레들에 대한 평가와 문제점에 대한 논쟁들에 지면을 할애하면서 비엔날레 개최의 의미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제고하였다.  특히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은 지난 60년 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회의론에 대해, 예컨대, 수퍼플렉스(Superflex)의 뵈른스티에른 크리스티안센(Bjornstjierne Christiansen)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세계에서 비엔날레는 실험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창작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장이다”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비엔날레를 둘러싼 기본적 질문들을 다시 한 번 재고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비엔날레에 대해 말할 때 제기되는 주로 질문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비엔날레는 ‘예술’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2) 비엔날레는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수없이 많은 변형된 형태를 통해 혹은 별개로 혹은 조합된 형태로 비평, 저널, 토론, 가십 등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첫 번째 질문은 윤리적, 근본주의적, 근대주의적 목소리를 통해 주체가 세계와 자연 안에서 발견해야 하는 진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예술적 근본주의(artistic fundamentalism)라고 부를만한 태도가 떠오른다.  비엔날레가 예술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속에는 ‘예술’에 대한 해묵은 정의적 논쟁의 불씨가 남아있다.  즉 예술을 ‘진리’와 연관 지어 말하려는 의도 말이다.  이 논쟁은 모더니즘까지의 서구의 예술을 참조하는 과정에 크게 의존한다.  반면에 그 이후의 역사, 즉 후기-모더니즘 혹은 그 이후에 해당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부정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것은 엄격히 말하자면 비엔날레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 자체에 대한, 우리 시대의 현실성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두 번째는 ‘리얼리즘’에 대한 것으로, 이 질문은 좌파적, 정치적, 혁명적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이 질문이 비판하고자 적시하고 있는 현실은 ‘자본주의적’ 현실이며 그것은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계급적, 반-주체적, 식민적 상황으로부터 비롯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한 인식여부를 묻는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비엔날레가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안에는 ‘현실’에 대한 범주적 한정이 있다.  이러한 한정을 벗어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제를 호도하거나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엄격히 말하자면 비엔날레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동시대미술 자체에 대한, 동시대미술이 재현하는 동시대적 현실 내에서의 반-자본주의적 대안 여부를 묻는 질문인 것이다.  ‘리얼리즘’은 추상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대중의 미적 판단 자체에 대한 개입여부를 문제 삼을 것인가에 있다.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을 공적인 것으로 객관화하여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엔날레 뿐 아니라 동시대 미술에 관해 ‘리얼리즘’을 거론하는 것은 또 다른 ‘진리’에 대한 논쟁으로 직결된다.  즉 예술이 다루어야 할 주제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그것이 일정한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해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비엔날레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예술적 창작과 비평의 생산을 담지하는 장(場)이 된 데는 두 가지의 중요한 역사적 계기들이 있다.  이 계기들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비엔날레 제도에 대한 성찰과 평가를 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엔날레는 역사적인 형식이며, 한국에서 비엔날레의 현재성을 그것의 독자적 맥락 속에서 다룬다 하더라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슈들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먼저, 비엔날레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 이후 당시 유럽의 유일한 비엔날레이던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서구 지식인들의 공감을 통해 모더니즘을 프로모션하고 확산하는 주요 기구가 되었다.  이는 곧 1951년 브라질의 치치요 마타라쪼(Ciccillo Matarazzo)에 의한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1955년 독일의 아놀드 보데(Arnold Bode)에 의한 5년마다 열리는 전시인 카셀 도큐멘타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들에 의해 ‘퇴폐예술(Entartete Kunst)’로 간주되어 축출되었던 전전(戰前)의 추상미술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전후 유럽 일반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카셀 도큐멘타는 처음부터 ‘퇴폐예술’의 범주로 분류되었던 20, 30년대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이를 통해 모더니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정신과 저항이라는 이슈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에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비엔날레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퇴폐예술’의 역사가 만들어낸 역설적인 함의이다.  자발성과 개인들의 사상적 자유를 기반으로 ‘추상(abstraction)’이라는 개념에 다다른 이들 예술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시대정신과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이후의 모든 아방가르드와 실험예술에 윤리적 정당성을 확립해 준 이러한 정황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시대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대로,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그리고 이후 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강요한 재현적 리얼리즘에 대한 반감은 반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적으로 ‘리얼리즘’과 ‘재현’이라는 단어들을 비평적 담론의 장에서 배제시켰다.  1995년 장 클레어(Jean Clair)가 기획한 <동일성과 타자성 (Identita e Alterita)>이 ‘인물화’를 중심으로 한 재현적 사실주의를 비엔날레의 맥락에서 복권하려 했을 때 촉발했던 격렬한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적 계기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Founder of the Documenta, Arnold Bode, 1959 in front of a painting by Jackson Pollock,
Foto: Documenta-Archiv

두 번째로,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여파와 정치-사회적 담론의 대중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시상제도를 폐지시키고 국가관들에서 시행되던 개별 작가 위주의 전시형식을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기획하는 주제전(thematic exhibition)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부터 비평가 출신의 전시기획자들이 동시대미술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데, 유럽과 미국의 신-좌파성향에서 출발한 이 지식인들에 의해 비엔날레는 문화에 있어서의 전복적 장치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988년에 안토니오 네그리는 지안마르코라는 지인에게 보낸 서한에서 64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이 당시의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는지 상기시키고 있다.  네그리에 의하면,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유럽 지식인들은 기존의 리얼리즘을 대체할 새로운 ‘현실성(reality)’와 ‘창조적 역능(creative capacity)’이 그들에게 도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엔날레는 예술에 있어서의 전복적 시위의 장이 되었으며 기존의 문화적 위계와 관행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1969년 브라질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대로 진행된 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보이코트 운동과 1974년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에 대한 반대를 주제로 기획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러한 정치적 상징성을 대변한다.

Robert Rauschenberg, Monogram 1955-59

지난 60년 간 비엔날레는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지지와 전복적 시위의 장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특질을 축으로 하여 2년마다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68혁명을 즈음하여 시작된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의 담론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이미 자기-재현(self-representation)의 과정으로 들어선 모더니즘의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근대성, 역사, 이성, 인간, 진보 등의 개념들을 서구적 주체에 대한 비판, 역사의 복수성, 서구적 이성에 대한 역사적 비판, 탈-인간중심주의, 범-세계적 유대와 같은 관념들이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비엔날레는 서구중심의 담론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90년대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전지구적 확산을 일으켰다.  물론 여기에는 유럽 비엔날레의 성공을 모델로 한 각 문화권에서의 지역-정치적, 문화관광산업적 타산과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의 확산은 1) 전위적, 전복적 미술이 내포하는 자율적, 민주적, 창조적, 탈-식민적 현실의 지속과 완성을 위한 조건들의 전지구적 전파와 공유, 2) 전위적, 전복적 이슈들의 발견과 활성화(actualization)를 위한 잠재적 기구, 거점들, 망(network) 혹은 공동체로서의 새로운 역할, 3) 동시대미술의 서구중심적 체제를 무너뜨리고 창작, 비평, 가치생산, 수용의 중심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촉매제의 역할, 등을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적 범주의 미술을 지칭해온 동시대미술이 지난 10여 년 간 모더니즘 미술과 마찬가지로 자기-재현의 과정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의 징후들은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첫 번째 징후는 각 지역에서의 비엔날레들의 난립과 더불어 그 특질이 퇴색되는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비엔날레의 성공을 몰고온 전위성과 전복성은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역사에 대한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탈국가주의적 자본에 기반한 새로운 ‘제국’의 시대에는 대응해야 할 전체성과 억압의 주체를 가시화하는 경계나 윤곽이 불분명하다.  아시아, 동유럽, 중동 지역에서의 비엔날레들은 억압적인 권위주의 체제나 자본주의에 대한 전위적, 전복적 노력보다는 자국의 문화시장이나 심지어 체제에 대한 선전의 방편으로 이용되곤 한다.  유럽이나 북미에서조차 동시대미술의 기획자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권위주의적 이점들을 문화시장의 논리 안에서 자신들의 우위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감추지 않는다.  국가나 도시 마케팅이 지나치게 강조된 비엔날레의 난립은 최초에 그것을 성립시킨 조건들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계는 무너지고 전선의 혼돈은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자발성과 개인들의 창조적 자유가 전복의 관점에서는 이미 그 의미를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포섭(subsumption)과 편입(integration)이 편재하는 제국 내에서 전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어떤 비평적 공격도 일시적인 불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지엽적이고 선정적인 것이거나 과대평가된 불평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징후는 동시대미술이 더 이상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비엔날레는 68년을 기점으로 동시대미술을 당대적 주제에 의거하여 2년마다 갱신, 분절하는 체제로 전환시켰다.  이를 통해 지식인들은 세계와 예술이 당면한 이슈들을 평가하고 해석하여 비엔날레를 통해 창조적으로 가시화하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였다.  동시에 동시대미술은 그러한 가시화를 통해 현실에 내재하는 추상성을 정교하게 드러내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동시대미술이 당면한 문제는 미술의 문제만이 아닌 당대의 대중들이 당면하는 실존적 문제들 전반을 포함한다.  비엔날레가 예술에 대한 정의적 논쟁에 스스로를 가두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슈를 제기할 경우 혹은 예술에 대한 정치적 객관성을 과도하게 강요할 경우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호해지거나 지나치게 단순해질 위험에 빠진다.  현재의 비엔날레 체제는 복수의 비엔날레들이 각자 자신의 의제들을 통해 동시대미술의 당대성을 논의해 나가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어떻게 평가되고 기록될 것인지에 대해 공유된 관점 같은 것은 아직 없다.  반면 수많은 저널과 비평을 통한 다양한 관점들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공유된 의제의 부재는 비엔날레의 국제적 확산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처럼 보인다.  그리고 비엔날레의 역사 속에서 의제들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적은 수의 비엔날레만이 그것의 의제를 일반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해왔다.  전위와 전복성은 수사가 아닌 특이성, 투명성, 유머, 자발성 등과 같은 자질들에 의해 구성된 구체적 형태가 야기한다. 

비엔날레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우리가 세계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실망으로 이어지기 쉬울 것이다.  동시대미술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관조의 대상으로서의 ‘자연 상태’에 대한 것이나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완결된 세계의 ‘투사’에 대한 것이 될 수 없다.  대안은 우리가 세계의 현실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우리의 기대치 역시 달라질 것이다.  비엔날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불충분함이나 부재(absence)가 동시대미술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  부재는 우리가 추상적인 다중(多重, multitude)으로 인식하는 세계 내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생산되어 왔다.  비엔날레는 세계가 그러하듯이 이미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공적인 미술제도와 미술시장, 미술대학과 비평가들이 있다고 말하는 동안 세계는 수없이 많은 조건과 환경들로 미술과 그것과 연관된 영역들을 둘러싸고 있다.  거기에는 디자이너, 엔지니어, 과학자, 발명가, 소설가, 사운드 아티스트, 하위문화 종사자들로부터 방송인, 공무원, 정책입안자들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전문분야와 경험적 지식들이 개입한다.  우리가 위치하는 곳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곳이어야 한다. 

1950년대 이후 비엔날레는 반-시장적 태도와 반-권위주의적 토양 위에서 지식인들과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어왔다.  오늘날 많은 비엔날레들이 그러한 고유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해본 적이 없거나 그러한 경험을 주체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은 지역들에서 열리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다루어지는 상황은 탈-역사성을 넘어 공격적 일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많은 동시대미술의 비평가들과 전시기획자들이 아트페어와 같은 미술시장의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컬렉터들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동시대미술이 지식인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실천적 영역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경우에 따라 포섭과 영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광주아트페어에 미술시장 전문가, 딜러들과 함께 패널로 참여한 아이 웨이웨이나 오쿠이 엔웨저와 같은 인물들이 이러한 낙관적 입장을 대변하는 유일한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네그리는 자본주의적 권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권력의 논리를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대항권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동시에 예술적 생산가치를 시장에서 환산하도록 용인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고 있다.  자본을 앞질러 미래를 선취(anticipate)하는 전위적 장으로서의 비엔날레가 도래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미래에 존재하기 때문에 실현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부정할 수는 없다. 

-2011년 월간미술 게재

 

글 유 진 상

미술평론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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