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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역사 A History of the Present

2011-04-15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영국 브리스톨(Bristol)의 ‘Picture This(www.picture-this.org.uk)’가 기획/주관했던 ‘고스팅 프로젝트(Ghosting Project)’는 컨템포러리라는 동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아카이브/아카이빙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들을 고찰하며, 이 과정에서 실험적이고도 비평적인 태도를 유지하고자 했다. ‘고스팅 프로젝트’는 영상과 비디오 매체를 사용하는 세 명의 젊은 작가의 작업을 통해 과거에 대한 기록, 시간의 집적, 역사와 기억이 남기고 간 흔적으로서 아카이브/아카이빙이 의미화되는 전제된 상황들과 그 경계에 관하여 질문을 던진다. 안수만 비스와스(Ansuman Biswas), 해럴드 오페(Harold Offeh), 에리카 탕(Erika Tan)은 필름과 비디오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역사에 대면하는 아카이브의 의미를 재 맥락화한다. ‘Picture This’는 2003년부터 2년간 작가들의 연구과정과 전시를 지원하였고, 작가들은 본인의 주제와 연관된 특정 아카이브를 리서치 하여, 이후 그들의 연구결과에 따른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협업의 과정을 만들었다. ‘고스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된 “Ghosting: The Role of the Archive within Contemporary Artists’ Film and Video”는 참여작가는 물론 미술사학자 및 큐레이터, 평론가, 예술가들이 협업한 출판 프로젝트이다. 이 출판물에 소개된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암나 마릭(Amna Malik)의 “현재의 역사 (A History of the Present)”를 번역 소개한다. 이 에세이는 비스와스, 오페 그리고 탕, 세 작가의 연구 결과물을 탐구하면서 아카이브라는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들의 작업이 집단의식과 무의식, 역사와 기억, 시간과 망각, 단절과 파편, 환영과 꿈들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고, 교차하고, 충돌하고, 진동하고, 공명하는 ‘운동성(movement)’과 ‘일시성(temporality)’을 통해 그 의미와 가능성들을 열린 의식의 체계로 확장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Picture This’에 의해서 2006년에 출간된, “Ghosting: The Role of the Archive within Contemporary Artists’ Film and Video”에 처음 수록되었으며 (ISBN: 0-9539872-8-0), 저자, Picture This, 번역자와 normal type의 동의 아래 한글로 번역되어 소개된다. 이 글의 원 저작권은 저자와 Picture This에 있으며, 한글 번역본의 저작권은 번역자와 normal type에 있다.

 

현재의 역사 A History of the Present

글 / 암나 마릭(Amna Malik)

 

  ‘… 나는 장미 여왕과 그녀 옆에서 옷의 긴 뒷자락을 잡아 주는 어린 소년의 살아 있는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 날이나 그 후에도 무척 애를 썼지만 나는 그 역할을 하는 나 자신을 기억해 내지 못했어요. 나는 그 후 여러 차례 이 사진을, … 확대경으로 살펴보았지만 조그만 단서도 찾지 못했어요. 그때마다 나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러 와서 아침 여명 속의 빈 들판에서 도전을 받아들이고 그 앞에 닥친 불행을 물리치기를 기다리는 시동의 살피는 듯한 눈빛에 사로잡힌 것처럼 느꼈어요.’ <1>

W.G 제발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 구절에서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그 때까지만 해도 상실했던 그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에 관한 사진적 증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의 의식으로부터 어린 시절을 단절 시켰던 그 사건이 있기 전에 포착된 자신을 보게 되는 순간, 흔적으로서 그 사진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그를 더 멀어지게 한다.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빈 틈으로써, 앞섰던 순간들의 소멸은 이미 흐릿해진 그의 자의식을 넘어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고, 시간의 마비상태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차이들을 모호하게 하는 망자의 유령 같은 현존으로 드러난다. 제발트의 소설은 기억과 역사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정체성의 안정적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호소력 짙은 문학적 논의가 되었다. <2>

아우스터리츠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붕괴는 우리의 집단의식을 집어삼킬 수 있는 문화적 망각을 현존케 한다. 반면 지금, 현재(the present)에 관한 역사적 우발성은 ‘픽쳐 디스(Picture This)’가 기획한 커미션 시리즈인, ‘Ghosting’ 안에 편재한다. 안수만 비스와스(Ansuman Biswas)의 ‘Season’(2003), 헤럴드 오페(Harold Offeh)의 ‘Being Mammy’(2004), 그리고 에리카 탕(Erika Tan)의 ‘Persistent Vision’(2005)은 고색창연한 시대에 관한 과거를 포착하는 공공 아카이브와 시청각 자료에 대한 작가들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일리지(가축의 겨울먹이)를 만드는 시골 농부를 촬영한 16mm 흑백필름 속에서 그 희미한 입자들을 보게 되고, 영국 남서부 지역 공장 노동자들이 우유에 병을 채워 넣는 이미지들 속에서 기계화의 초기 단계를 목격하며, 이집트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가는 유럽 관광객을 Super 8으로 촬영한 1950년대 코닥 필름의 강렬한 색상대비를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각광과 스포트라이트라는 섬광 속에 포착된 유모의 몸동작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조명의 조합은 할리우드와 근대성(modernity)에 관한 ‘아카이브’로 흡수되기 이전, 소가극적(vaudeville) 단계의 그 순간을 특징 짓는다.<3>

제발트의 소설에서 아카이브는 주인공인 체코인 이민자, 아우스터리츠가 그의 생존 가족을 추적하게 해주는 문서들 속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망각의 장벽을 통해 점차적으로 파열되는 일련의 우연적 일치와 사건들, 그리고 환영과 꿈들 속에서도 존재한다. 이와 유사하게, 참여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생성되는 아카이브는 시간의 잔여물에 대한 관심에 놓여져 있다. 이 잔여물들은 이미지의 아우라적 힘을 축적하면서, 실제 기록으로써 사진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증거물과 스펙터클로써 이미지의 정서적 범주라는 반영성의 아포리아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이러한 파문은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원’ 자료의 본질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다른 곳이나 ‘원주민’이라는 이국취향과 같은 여행이라는 주제가 부각될 때에도, 작품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바로 민족지학과 그 대상 사이의 근접성, 그리고 유럽외부지역이라기 보다는 유럽중심적 사고의 경계선 안에 있는 그 현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들, 영국식민지 관료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촬영한 홈무비, 혹은 농업의 기계화 과정의 첫 번째 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건 간에, 이러한 영상기록물들은 그 국가의 공식적 수사학도 식민지적 권한도 아닌 일상생활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경험이라는 소우주에 대한 강조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수집된 오브제, 유물, 자료화면들과 연관되면서 확장된 문화사에 주목한다. 2차세계대전과 전후(戰後) 대중매체의 폭발적 증가를 아우르는 이 시기는, 분명 영국 내에서 확장된 민주주의의 시기였으며, 또한 제국과 선도적 강대국이라는 영국의 부흥 속에 내재하는 거대한 격변을 목격하게 하는 시기였다. 19세기 식민지 착취라는 경제논리는 부분적으로 인구과잉에 의한 영국 내 사회갈등에 의존했고, 결과적으로 빈곤수준을 악화시켰다.<4> 레닌(Lenin)은1895년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코멘트, ‘내가 늘 이야기해왔듯이 제국은 생업의 문제이다. 내란을 피하고 싶다면 당신은 제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를 통해 19세기 말 영국에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다음 단계로 발생하게 될지에 대해서 요약했다.<5> 1920년대부터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신식민지주의로 변화되었는데, 식민지 독립운동의 성공은 과거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제력이 남겨지는 현실을 야기했다.<6> 이번 전시에 의뢰된 작업들에서도 이러한 논리의 복잡한 특성은 대중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아카이브의 예들에서 보여진다.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소우주 속에서 그 자신의 우발적 특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유럽중심적 세계관이 갖는 욕망과 쾌락 그리고 자긍심은 노스탤직하고, 근시안적 관점에서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근대성(modernity)에 관한 특정한 의미를 제공한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거주지이기도 했던 식민주의적 아카이브에 대한 민족지학적 현장연구에 관한 중요한 예술적 반응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발화의 다양한 형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리듬과 움직임을 통해 일시성(temporality)으로써 경험되는 어떤 미적 특징을 드러낸다.

 

Ansuman Biswas, Season, installed at Dartington, UK, 2003 © John Melville, Picture This

이러한 점은 특히 천을 매달아 만든 네 개의 스크린에 영상을 프로젝션한 비스와스의 설치작업, ‘Season’에서 두드러지게 보이게 된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관객들이 네 개의 반복되는 시퀀스 속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그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시퀀스들은 네 개의 각기 다른 영상작업인, ‘Birth’(17분), ‘Sraddha’(43분), ‘Rhythm’(18분), ‘Devon’(24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네 개의 영상작업은 번갈아 가며 표면 위에 상영된다. 이 영상들은 음향적 영역과 시각적 영역 사이를 누비며 일련의 율동적인 상응적 연쇄성을 창조한다. 음향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영상 작업들의 이미지들과 상응하며 주의 깊게 조작되었는데, 어떤 장면들에서는 소리가 더 잘 들리고, 어떤 장면들에서는 소리가 서서히 사라진다. 언뜻 보기에 벵골(Bengal)의 향신료 찧는 소리가 영국의 산업용 그라인더 소리와 충돌하는 듯하고, 그 음향들은 우리들에게 상반되는 이미지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강요하는 듯이 보인다. 첫 번째 장면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클로즈업된 동시대의 향신료 생산 장면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희미한 흑백 이미지로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후자는 마치 시간의 흐름이 지리학적인 거리보다 더 큰 장애물인 것처럼 더욱 생경하고 낯설게 보여진다. 설치는 소리들이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의 세심한 통합체처럼 보인다; 울어대는 닭들, 장례식을 집도하는 성직자, 대나무로 짠 키로 쌀을 탈곡하는 뱅골의 농부들, 거대한 통 안에서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점프하며 사일리지를 만드는 데본(Devon)지방 사람들. 우리는 더욱 복잡하게 얽힌 역사와 대응하기 위한 시도로써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동요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충돌은 사운드의 사용을 통해 점차적으로 일치되고, 우리는 그 청각적인 충돌이 야기하는 끈질긴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그 장면들을 융합시켰던 것은 아닐지 하고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Season’에서의 아카이브는 인도 독립운동 발생에서 그의 역할이 간디의 업적에 의해 간과되었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대신 사용된 다양한 이름들 속에 위치한다. 인도 독립 사에서 주요한 기폭제로써 타고르의 업적은 서벵골 지역에 학교이자 연구소인 산티니케탄(Santiniketan)을 설립한 것을 포함한다. 산티니케탄은 인도의 지역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정신적이고 생태적인 계통을 따라 형성된 타고르의 철학에 영향 받았다. 초기 혁명정치의 근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시사하면서도, 이러한 역사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상징으로써 전원생활의 영위라는 힌두교적 권리로 전유되어 지금의 인도사회에서도 변방에 위치하게 되었다. 엘렘헐스트 부부(Leonard and Dorothy Elmhirst)에 의해 설립된 달팅턴 홀(Dartington Hall)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당시 생태적 중요성은 빈민층을 위한 학교와 거주지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포착한 그들의 홈무비를 통해서 기록되었다. 엘렘헐스트 부부는 어떤 다른 점에서 낙후된 지역 농촌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을 착수했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예전 지역 농업 방식의 기계화를 통해서 근대성의 발생과정을 담은 기록영화들에서 확인될 수 있다.<7> 비스와스는 농업 전통에서 사라져버린 연결고리, 즉, 식민정책에 대한 저항의 일부로써 인도에서 재건된 농업 전통이라는 개념을 따라서 아카이브 영상자료들을 신중히 선택했다.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서, 벼 타작과 신 기계화의 몸짓 사이에서 발생하는 율동적 상응은 영국 지방에 있는 동일한 농촌의 삶을 동시에 파괴했다.

비스와스는 노래하는 시인들처럼 농민들이 부르는 조화되지 않는 화음의 리듬 속에서 역사를 춤추게 한다. 그리고 산업화의 충격은 산티니케탄의 교육적 모험과 그 영향관계에 있는 달팅턴 홀 이면에 놓여진 민속적이고 토착적인 전통에 대한 축하연으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한다. 무용과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음향적이고 시각적인 상응의 사용은 작업, ‘Season’에서 아카이브와 기억에 대한 비평적 논의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청각적 패턴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공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서는 특히 마을의 이야기꾼으로 유명했던 비스와스의 할머니의 사체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작가에게 있어서 타고르의 문화적 유산의 한 부분이었던 과거 농업사회의 유산과 의미심장하게 연결된다.

벵골의 한 마을에서 모셔진 작가의 할머니 장례식 장면과 영국 웨트포드(Watford)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산모를 담은 1970년대 교육영화 장면을 뒤섞은 비스와스의 결정은 이주라는 특정한 경계와 역사를 따라가는 고향과 세계 사이의 공시성을 제시하며, 이러한 유형은 특수성과 보편성, 죽음과 탄생이라는 주제들에 공명한다. 비스와스의 설치작업에 내재하는 이러한 이주의 유형들이 드러내는 운동성 안에서 그 대상이 가지는 율동적 본성은 호미 바바(Homi Bhabha)의 텍스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영상들에서는 또한 어떤 단절감이 느껴진다. 출산이라는 의례와 관련된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유대를 제거하는 유니폼을 입은 의료진과 마스크를 쓴 얼굴의 과도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영상이 생명을 산출하는 과정을 병에 우유를 채워 넣는 기계적 과정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학적 상태는 관찰자와 어머니로서의 경험 사이에 이성적 거리를 부여하기 위한 필요성을 함축하는 듯 하다.

 

Ansuman Biswas, Season, installed at Chapter, Cardiff, UK,2003 © John Melville, Picture This

달팅턴과 벵골의 마을을 함께 그리며 만들어 내는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리듬들은 ‘세계와 마주하기 (worlding)’이라는 근대성(modernity)의 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세계를 서사한다는 행위를 인식하기 위하여 호미 바바에 의해 발명된 이 용어, ‘세계와 마주하기(worlding)’는 망령들, 떠나지 않는 노예제 과거, 그리고 정치적 현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한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소설, ‘Beloved’(1987)에서 차용되었다. 다른 의미에서 ‘Beloved’의 내러티브가 내포하는 ‘고향을 떠난 듯한 낯설음(unhomely)’ 이란 측면에서 ‘세계와 마주하기(worlding)’는 타고르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호미 바바의 에세이에서 나타난다. 바바는 그의 에세이 제목을 타고르의 유명한 소설, ‘Ghare Baire’(1916)의 번역본 제목인, ‘The Home and the World’(1919) 그대로 사용했다. 바바는 벵골 출신인 타고르가 그의 소설, ‘Ghare Baire’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인 비말라(Bimala)를 “규수(閨秀/home-made)”, “비좁고 사방이 막힌 공간의 생성물”로 묘사한 사실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규방과 같은 여성들의 영역인 제나나(zenana)를 언급했다. 바바는 “인도물산운동(Swadeshi)과 자치운동으로 활활 타오르는” 1905년 벵골의 정치적 폭력사태와 맞닥뜨리게 되는 비말라의 경험을, 모국(집)과 세계(외부) 사이의 변증법적 작용이 만들어내는 폭력적 혼란의 트라우마로써 역사적 기억의 한 사례라고 언급한다. 바바의 에세이가 ‘Season’과 이번 ‘고스팅 프로젝트’를 위해서 커미션 되었던 다른 작업들에 미치는 중요한 점은 일시성(temporality)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바바가 제시하는 미학적 모델에 있다. 역사적 기억은 예술작품의 사물-성(object-hood)에 내재하는 물질(materials)에 대한 형태와 진실에 대한 둔감 효과를 제거하는 근대성(modernity)의 각축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미적 과정(the aesthetic process)이 또 다른 구체화된 매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역사의 ‘사건’을 의미화시키는 또 다른 하나의 일시성(temporality)으로써 사회적 현실에 대한 우리의 독해 속에 유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 미적 과정을 특징짓는 현재란 초월적인 통로라기 보다는 ‘경유’의 순간이다. 경유의 순간으로써 일시성의 형식은 괴리와 단절이라는 개념에 열려있고, 예술과 상당히 유사하게, 사회 현실을 틀 지우고 이름 짓는 협상에 관여하는 역사의 과정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현실의 내부 혹은 외부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과연 어디에 ‘의미 있는’ 선을 긋는가(혹은 새기는가)에 관한 것이다.”<8>

Erika Tan, Video still from Persistent Visions, 2005 © Erika Tan, Picture This

 반면, ‘Persistent Visions’은 세 개의 스크린 설치작업이다. 여기에서 에리카 탕은 (대영)제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된 수많은 홈무비를 통해 드러나는 제국주의적 백인남성의 응시를 재생하면서, 동시대 집단의식의 내부 접점 안에 존재하는 은폐라는 그 은밀한 공간에 주목한다. 그러나 정부가 제작한 선전영화 혹은 선교용 다큐멘터리 대신 이러한 장면을 보여주는 작가의 결정은 또한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무성 몽타쥬를 굴절시킨다.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영국 여행자들, 정착민들, 그리고 관료들이 다리를 건너고, 낙타를 타고, 거대한 산악풍경을 따라 여행하고, 역사적인 유적지의 고대 폐허들을 따라 걷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탕은 수없이 다양한 내러티브들과 주제에 깊이 관련된 본성을 삭제한다. 세 개의 스크린들은 지속적으로 작동되며, 동일한 장면이 동시에 상영되도록 맞춰져 있다. 마치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강박적으로 되돌아오는 하나의 기억에 고착되어 심안이 되는 것처럼,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특정 장면의 반복은 강박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침묵은 육체 없는 목소리인 아쿠스메트르(acousmetre)의 압도적 본성에 대한 지각을 일깨운다. 영화에서 목소리는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지시하는 권위적인 대리인을 만들어 낸다. 미셀 시옹(Michel Chion)은 아쿠스메트르(acousmetre)가 나타내는 징후들의 두 가지 양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육체 없는 목소리는 미결정 공간을 떠돌며 제왕적 시선과 상응하는 청각적 유사성을 띄는 듯이 여겨지며, 때때로 자신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특정 개인의 신체 내부에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9> 탕은 우리가 많은 식민지 정착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호주관적 공간을 만들고 있는 그녀의 남성, 백인 카메라맨들을 침묵하게 한다. 어떤 면에서 탕은 백인남성이라는 작가적 주체의 언어를 율동적 소란스러움으로 대체시키고 있다. 이 소란스러움은 아마도 더욱 서정적이고 감각적이며 장난스럽게 드러난다. 탕의 작업에서 생성되는 리듬은 관객들로 하여금 세 개의 스크린에 영사된 Super 8 필름의 반복적인 무성 이미지 시리즈들을 매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탕이 선택한 클립과 그것이 갖는 다양성은 식민지적 상황과의 조응을 기록하고 고착시키고자 했던 그 클립의 원저작자들의 강박적 요구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다수의 영화들은 19세기 후반의 우편엽서나 파노라마 이미지와 유사한 풍경화 포맷의 구도를 유지하거나, 또는 ‘African Queen’(1952)이나 ‘Mogambo’ (1953)와 같은 영화의 구상주의적 프레임에 의해 정제된 일상생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야만’과 ‘문명’의 범주들은 숏의 범위와 카메라 시선이 갖는 소유욕에 따라 중재되기도 하고 교란되기도 한다. 설치의 순차적 논리에 따라 산허리를 따라 길게 구불거리는 도로가 뻗어있는 흑백의 파노라마의 전경과 화물을 하역하는 화물선을 공중에서 촬영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미지들의 몽타주는 백인 남성 카메라맨의 아내, 그리고 ‘토착민’의 순으로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 틸트(camera tilt [역자주: 카메라 축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위 아래 수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에 의해 분열된다. 탕에게 있어서 이러한 다양한 카메라 각도는 매개된 영화의 매력에 대한 개인적 만남의 변곡점들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아마도 우리는 카메라 각도가 실재하는 특정한 힘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복잡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복잡성은 홈무비라는 개인적 공간에서 혹은 연인들 사이의 친밀한 공간에서, 알지 못함(unknowing)에 대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즉, 관계(engagement)의 방식으로써 욕망하는 시선과 식민지적 스펙터클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련성(affiliations)과 혼합은 ‘우연적 만남(encounter)’이라는 의미로 단순화되고, 이러한 만남은 재현방식들의 재생산 속에서 그러한 반영적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자기 인식의 결핍을 드러낸다. 이런 점이 아마도 그녀가 찾아낸 장면들이 매우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특정한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 같다.

Erika Tan, Persistent Visions, installed at the Chinese Arts Centre, Manchester, UK © Tim McConville, Picture This

이러한 영화들의 보존 저장소인, The British Empire & Commonwealth Museum은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기성세대가 여전히 갖는 식민주의적 권력이라는 살아있는 기억은, 글로벌 시대의 영국의 정체성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명백히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차이라는 질문에 대한 관례적 접근과 같은 의도적 망각과 결탁한다. 이는 스테판 로렌스(Stephen Lawrence)의 폭행, 살인 사건 조사 이후, 현재 영국에서 야기되는 인종차별주의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실패하는 이유가 부분적으로 후기식민지주의적 멜랑콜리아 -영국이 세계적인 정치력과 문화적 명성을 유지했었을 당시인 2차 세계대전 말 이전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 에 기인한다는 폴 길로이(Paul Gilroy)의 의견에 무게를 더해준다.<10> 탕은 그들의 언어를 지워내면서, 반복과 영상의 진동하는 표면을 통해 창조되는 리듬과 움직임의 행태로 그것을 대처한다. 어두운 배경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영상은 우리로 하여금 몸짓과 패턴 그리고 먼 수평선의 순간적인 파편들을 뒤쫓게 하고, 한때 또한 강경했었던 이들의 역사적 기억 위로 우리 자신의 내러티브들을 만들어가게 한다.

다소 다른 태도이기는 하지만, 음악적 특성(musicality)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이주의 형태들은 민스트럴 쇼(minstrelsy [역자주: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미국에서 유행한 대중오락공연. 남북전쟁 이전에는 백인이 흑인분장을 하고 공연했지만, 그 이후는 흑인이 직접 공연했다.])의 검은 얼굴을 재해석한 헤롤드 오페(Harold Offef)의 작업 속에서도 발견된다. 작가는 서구 대중문화 속에서 등장하는 유모라는 캐릭터에 관한 연구 중 한 부분으로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오페는 1980년대 초 영국의 텔레비전에서 상영했던 흑백 민스트럴(minstrel [역자주: 백인 가수가 흑인으로 분장하여 노래하는 것])이 인기를 얻었던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관심은 그가 영화, ‘Gone with the Wind’(1939)에서 유모 역을 맡았던 흑인 여배우 헤티 멕다니엘(Hattie McDaniel)의 삶에 대한 탐구에 일부분 영향을 끼쳤다. 검은 얼굴을 한 오브제들에 맞선 작가의 따라하기(emulation)는 남북전쟁 이전 노예제 시대, 미국 남부 지역 몇몇 미국인들의 노스탤지어 속에 현존하는 노예제의 유물로써 유모라는 인물이 내포하는 조금 더 넓은 문화적인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지금까지 여전히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 지역에서 관광용 기념품으로 판매된다. 오페는 이러한 오브제들을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오브제로써 노예의 역할을 증명하는 문화적 형태들로써의 그들의 지위를 연장시킨다. 시계로 디자인 된 장식용 삼보[역자주: 인디오와 흑인과의 혼혈아]들과 제마이마 아줌마(Aunt Jemima)의 모습을 갖고 있는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시럽 병은 이러한 오브제들 중 몇몇 가지의 예이다. 컬렉터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러한 오브제들은 노예제도에 근원을 둔 예능인들과 말 그대로 욕망을 담는 용기로 변해버린 소유의 대상으로써 검은 얼굴이 갖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장인의 기술로 장식된다. 이러한 오브제들을 복제한 오페의 모형들은 넌지시 이러한 판타지의 내면화된 세계를 암시하면서 가정용 진열을 위한 장식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수전 슈트어트(Susan Stewart)는 “기념품은 내러티브를 통해 기원과 관련된 맥락을 끊임없는 소비 형태의 맥락으로 대체한다. 기념품은 이것을 만든 제작자의 살아있는 경험이 아닌, 이것을 소유하는 자/이것의 주인이 갖게 되는 ‘중고’적인 경험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11>

Harold Offeh, Video still from Being Mammy, 2004 © Harold Offeh, Picture This

 과거 노예제의 집단적인 아카이브로 부터 기억의 복제품 같은 오페의 오브제들은 이러한 끊임없는 소비의 이상야릇한 본질을 입증한다: 저을 때나 먹을 때 사용되는 잘려진 검은 머리들로 장식된 나무 수저들, 그로테스크하게 과장된 혀 모양을 한 벽과 탁자 위를 찰싹찰싹 때리는 파리채들,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달라고 애원하는 듯이 우리를 노려보는 하얀 눈을 단 손가락인형들이 그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오브제들은 미국의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 가속화되었던 미국 남부 백인들 사이에서 흑인에게 가했던 폭력적 처벌에 나타나는 가학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검은 육체를 오랜 시간 동안 자르고 괴롭힐 수 있는 오브제로 바꾸어 놓는 그 쾌락은 폭넓게 유포되는 이러한 사건들과 관련한 많은 사진적 기념품들 안에 담겨있다. 검은 육체를 조작하고 절단하고 소유하기 위한 욕망은 이것이 가진 흉포함과 섬뜩한 아름다움을 길들이기 위한 어떤 욕구와 연관되어있다. 사적 소장품으로 검은 얼굴을 한 수많은 수집대상물들의 존재는 하인들, 예능인들, 그리고 민스트럴 쇼 출연진들을 미니어처로 만들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중요성은 오브제로써 그들을 소유하고 길들이려는 유사한 필요성을 나타낸다. 또한 이러한 전형성들은 남북전쟁 이전 노예제에 대한 향수와 한 폭의 그림 같은 미국 시골 농장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의해 지시되었다. 슈트어트에 의하면 관광객들에게 판매되는 이국적인 기념품들은 ‘어린아이 같은 원시성, 동시대 문명의 시초이자 가장 순수한 단계로서 원초적이라는 관념과 관련된 그럴듯한 경험의 진실성을 제공한다’.<12> 슈트어트의 모델이 ‘이국적인’ 지역들을 방문한 서구 여행객들에 의해 발견된 어떤 종류의 오브제에 적용 가능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수집할만한 것들과 특히 오페가 만든 유모 캐릭터 인형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오페의 유모 캐릭터 인형들은 어린 시절을 암시하면서 지배력에 대한 상실과 같은 노예제의 폐지 속에서 구체화된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초-모성적 부활과 같은 유모의 역할에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한번 스튜어트는 이와 관련하여 유용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러한 이국적인 오브제의 진정성은 원시적인 문화, 그 자체에 의해 인정된 상태 속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원과 원시적인 것/이국적인 것 사이에 놓여있는 유사성으로부터 야기된다.

이러한 분석은 문화적인 맥락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의 소설과 이후 영화의 유명세를 통해서 실감하듯이 남북전쟁 이전 시대는 집단적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가졌던 순수의 시대로 비춰졌다. 이러한 수집할만한 대상들은 노예를 부릴 형편이 못되거나, 더 이상 노예를 소유할 수 없는 중산층들과 엘리트들을 위한 대체물이라는 비판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제마이마 아줌마(Aunt Jemima) 메이플 시럽 튜브처럼 대량소비를 위한 오브제로써 보다 폭넓은 유통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위한 지배력의 가능성을 허용했다. 오페의 오브제들은 일상적인 사물들을 검은 육체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로 바꿔버리는 태연함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내제된 음험한 성향을 드러낸다. ‘Gone with the Wind’의 유모 캐릭터와 유사하게 옷을 입고 펼치는 오페의 퍼포먼스는 아카이브를 작동시키고, 이러한 기념품들을 움직임이 없는 사물들에서 살아있는 대리자들로 변형시킨다; 이 과정에서 문자 그대로 소유의 대상들로써 검은 얼굴을 한 수집 대상물들과 민스트럴의 모습을 한 그들 존재의 현존 사이의 미끄러짐은 큰 문제를 제기하며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Harold Offeh, Being Mammy installed at Aspex, Portsmouth, UK © Woodley & Quick, Picture This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토착문화와 관련한 근대성(modernity)이란 개념에 관하여 휴스턴 베이커(Houston A. Baker Jr.)는 ‘흑인의’ 소리를 예로 들며, 민스트럴 쇼에서 가면의 형태에 대한 변형성과 지배력에 대해서 언급한다. 베이커에 의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토착문화는 언어, 몸동작, 움직임 등에서 나타나는데, 민스트럴 쇼에서 이러한 수행적 지위는 이것 자체를 ‘흑인의’ 소리로 잘못 알아듣는 백인중심의 미국사회에 의해서 종종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백인중심의 미국이란 국가에서 이것을 원 아프리카 출신, ‘니그로’의 전통적인 목소리로 착각하게 한다는 것이다.<13> 흑인분장을 하고 ‘Jazz Singer’(1927)에서 노래를 부른 알 졸슨(Al Jolson) 같은 백인 예능인들이 이러한 수많은 예들 중에 하나이다. 가면 뒤의 덫에 걸려버린 헤티 멕다니엘의 비극적 상황에 내재된 흉내내기(mimicry)는 정확하게도 베이커가 주장하는 딜레마와 연관이 있다. 이 딜레마는 무대 위에 올려진 민스트럴(minstrel)의 연극적인 과장과 함께하는 ‘흑인적’ 표현성의 토착적 양상들에 대한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후자에 속하는 백인 관중들은 언어의 기형적 변형에 대한 숙련도와 아둔한 ‘니그로’의 발화 행위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엑스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 위치한 빌 더글러스 센터(Bill Douglas Centre)의 헐리우드 수집품 컬렉션은 거의 대부분 역사에서 잊혀진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과 손잡은 영국의 복잡한 동맹이 남긴 중요한 물질적 잔여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내 미국 대중문화의 폭발적 증가는, 영국이 가졌던 과거 제국주의 권력의 쇠퇴와 미국과 영국 사이의 권력의 반전을 나타낸다. 퍼포먼스가 갖는 일시성을 통해 오페는 영국 내에서 잊혀진 이러한 역사에 관한 불편한 반응들을 관찰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유모의 외피 안에 존재한다;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작가 자신이 검은 얼굴의 민스트럴(minstrel) 예능인과 유모로 등장하는 짧은 영화들도 이 점에 있어서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30년대 민족지학자들에 의해 녹음된 소작농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어색하게 립싱크를 하는 한 인물이 있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불법적으로 폭력을 당하거나 이러한 운명을 결사적으로 피하기 위하여 북쪽의 도시들로 이주를 감행했고, 그 곳에서 이러한 토착 형태들이 스윙과 비밥(Be-bop)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정된 사물의 반응둔화효과와 같은 행복한 노예의 이미지와 함께 한 폭의 그림 같은 연상에 의존하는 기념품으로써 검은 얼굴과, 영상 안에서 그 자신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가면과 같은 이러한 오브제의 지위를 작동 시키는 것 사이에 반향이 생겨난다.

비스와스, 오페 그리고 탕은 문화적 기억이 담겨있는 먼지 쌓인 다락방을 뒤적거리는 민족지학자들이 아닌 예술가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작업이 칸트에서 기원한 물질과 매체의 특정성(specificity)에 충실한 근대적 형식주의, 즉 예술이 고정된 오브제라는 성격을 대체하는 일시성(temporality)에 관한 특별한 종류의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다루는 민족지학자 같은 예술가들의 역사는 인스티튜션이 갖고 있는 취향과 유럽중심적 세계관 사이의 힘의 관계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예술적 실천의 사회적 정당성은 이러한 인튜티튜션이 가진 지배력에 도전하지 못했고, 반면에 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비스와스, 탕, 오페 등 세 명의 작가가 제작한 작품을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그(Aby Warburg)의 ‘도상 아틀라스(Picture Atlas)’에 내재하는 서구 기준의 ‘아카이브’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미술관과 컬렉션의 성장 속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갖는 감식안과 취향에 관여하는 유럽중심적 학문체계로써 미술사에도 동일한 압력이 강제되어왔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진다.

시간예술의 성장은 일시성, 리듬, 그리고 운동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기존 이미지와 오브제를 사용하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평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재고를 촉구한다. 비스와스, 탕 그리고 오페의 시간성에 내재하는 이질적 순간들에 대한 전유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에서 지배적이던 관객의 소외로부터 벗어나, 몽타쥬라는 개념에 관한 재인식을 요청한다; 그러나 크렉 오웬스(Craig Owens)가 글쓰기와 같은 역사적 검토를 위한 패러다임으로써 언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에 존재하는 ‘알레고리적인 충동(allegorical impulse)’을 규정했던 그 지점에서, 이 작업들은 리듬과 운동성을 그들의 주요 표현 양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춤과 리듬의 가진 내연(connotation)은 이산 예술가들(diaspora artists)에게는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가들이 도전하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어떤 차원의 본질적인 관념들은 그것을 강화하는 듯한 세계화된 문화 안에서 이들의 행위가 민족성 자체를 마케팅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Picture This’에 의해 커미션 된 이 작업들이 미술에서 미학적 평가를 수행하는 방법을 어떻게 변경하고 있는지를 재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바르부르그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는 북 아메리카 퓨에블로(Pueblo) 지역 원주민들의 뱀 춤 의식을 연구하기 위해 1895년 뉴 멕시코와 아리조나로 떠났던 그의 여행에 집중한다.<14> 이러한 연구들은 이미지의 주관적이고 촉발적인 양상들에 주목하고 기억에 중점을 둔 문화연구와 함께하는 다소 다른 유럽중심의 미술사 지식체계와 민족학 사이에 중요한 연결지점들을 형성하여왔다. 미술사학에 대한 바르부르그의 관념은 고정된 대상들과 이질적인 이미지들 사이에서 형성된 몽타쥬 같은 연결지점들에서 드러난다.<15> 이미지들의 표명과 그들 사이의 운동성을 통해 역사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 이와 같은 유사한 주목은 이들 작가들의 프로젝트가 가진 율동적 역동성에서도 나타난다. 표현적인 형식이 가진 연속성(continuity)에 관한 나의 주장은, 영국의 제국주의적 과거에서 잊혀진 측면들과 밀접하게 맞물린 인덱스로써의 정체성과 문화적 차이에 관한 질문을 던진 비스와스, 오페 그리고 탕의 공유된 인식론적인 접근에 기초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원시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바르부르그의 ‘의식구조(mentality)’에서는 문명적인 것이라는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어떠한 구원적 가치를 찾으려 한다기보다<16> , 나는 비스와스, 오페, 탕의 영상 아카이브의 탐구에서 나타나는 율동적 역동성이 - 바르부르그의 ‘도상 아틀라스’에서처럼 - 운동성의 중요성을 나타낸다는 것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들 각자의 예술적인 프로젝트들을 통해 아카이빙 역사에 관한 바르부르그의 방법론 읽기는 우리들이 어떻게 서구 미술의 규범에 대한 특성을 평가하고, 이를 검토할 수 있는가에 관한 중요성을 암시하며, 역사적 전개(展開)로써 시간의 연속성 상에 위치한 미학이라는 개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필자 소개

암나 마릭(Amna Malik)은 런던 UCL의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마릭은 이산(diaspora)이라는 개념과 관련한 동시대의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며, 미술 문화정치 정신분석학 사이에서 이들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많은 글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관련 텍스트로는 Surface Tension, Reconsidering Horizontality Through the Practices of Contemporary Iranian Diaspora Artists, in Identity Theft: Cultural Colonisation and Contemporary Art (Jonathan Harris ed., Tate Liverpool and Liverpool University Press, 2007), Shame, disgust and idealisation in Kara Walker's "Gone" (1994), in Shame and Shamelessness (Ivan Ward and Claire Pajakowska eds, London: Routledge, 2007), Patterning Memory: Ellen Gallagher's “Icthyosaurus" at the Freud Museum (Wasafari, November 2006), Migratory Aesthetics: (Dis)placing the Black Maternal Subject in Martina Attille's Dreaming Rivers (1988), in Black British Aesthetics Today (Victoria Arana ed., Cambridge Scholars Press, 2007) 등이 있다.

역자소개

현아(Hyun A)는 런던에서 사진과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현재 서울에서 작업과 번역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1> W.G. Sebald, trans. Anthea Bell, Austerlitz (2001), (London and New York: Penguin Books, 2002). p. 260. ,[W.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을유문화사, p.203. 번역본 수록]

<2> 소설에서 화자와 중심인물의 목소리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지 않게 종잡을 수 없는 어떤 특징을 유발하면서, 역사와 건축 디자인에 관한 수많은 여담들 사이에서 종종 혼란스럽게 드러난다. 이러한 상태는 허구로써 자서전과 같은 소설에 대한 관점을 상기시킨다.

<3> 비스와스는 달링턴(Dartington)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동안 지역에 관한 자료화면들을 플리머스(Plymouth)의 South West Film and Television Archive에서 이용했고, 오페는 할리우드의 이피머러(ephemera [역자주: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홍보물과 같은 것])를 소장한 엑스터 대학(Exeter University)의 Bill Douglas Centre에서 많은 것을 참조했으며, 식민지주의에 관심이 있었던 탕은 브리스톨(Bristol)의 the British Empire & Commonwealth Museum이 소장한 아카이브를 이용했다.

<4> Robert J.C Young, Postcolonialism: An Historical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2001), p. 22.

<5> V. I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A Popular Outline [1917], (Peking: Foreign Languages Press, 1965), pp. 93-94.

<6> Robert J.C. Young, op. cit., p.45

<7> 레오나르드 엘렘헐스트는 1920년대 초 미국에서 타고르와 만남을 가졌고, 1921년에 그와 함께 인도로 돌아가 1925년까지 그의 비서로 활동했다. 타고르의 조언과 함께 농촌과 문화개혁에 대한 실험으로써 미국인 재력가이자 미망인이었던 도로시 스트라이트(Dorothy Straight) - 후에 그녀는 레오나르드의 부인이 된다 -의 경제적 후원을 받아 데본(Devon)에 위치한 달팅턴 홀을 설립하게 된다. Michael Young, The Elmhirsts of Dartington, The Creation of a Utopian Community,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and Kegan Paul, 1982).

<8> Homi Bhabha, ‘The World and the Home’ in Dangerous Liaisons, Gender, Nation, & Postcolonial Perspectives. eds. Anne McClintock, Aamir Mufti, and Ella Shoha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pp. 447-448.

<9> Michel Chion, The Voice in Cinema, ed. and trans.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10> Paul Gilroy, Joined-Up Politics and Postcolonial Melancholia, (London: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Pamphlet, 1999).

<11> Susan Stewart, On Longing, Narratives of the Miniature, the Gigantic, the Souvenir, the Collection,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1993). p 135.

<12> Ibid. p. 146.

<13> Houston A. Baker Jr., Modernism and the Harlem Renaissance,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p. 16-21.

<14> Aby Warburg, Images from the Region of the Pueblo Indians of North America (1923) trans. with an interpretive essay by Michael P. Steinberg, (Ithaca, New York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95). 마가렛 아이버슨(Margaret Iversen)은 나의 논의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르부르그 방법론의 ‘여성적인’ 차용을 제안한다.  Iversen, ‘Retrieving Warburg’s Tradition’ (1993) in The Art of Art History: A Critical Anthology, Donald Preziosi ed. (New York, Oxford; Routledge, 1998). pp. 215-225.

<15> 비슷한 방법으로 필립-알랭 미쇼(Philippe-Alain Michaud)는 서구적 주체의 민족지학의 형태로써 초기영화의 발생과 유사한 바르부르그의 ‘도상 아틀라스’에서 무빙 아카이브의 잔여물을 추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은 본질적으로 영화적(cinematic)이다. Michaud, Aby Warburg and the Image in Motion, trans. Sophie Hawkes, foreword by Goerges Didi-Huberman, (New York: Zone Books, 2004).

<16> 메튜 렘플리(Matthew Rampley)의 맥락적 에세이를 참조할 것. Matthew Rampley, ‘Art History as Cultural History: Warburg's Projects’, Critical Voices in Art, Theory, and Culture, Richard Woodfield ed., (Amsterdam: G & B Arts International,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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