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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야! 액체공포의 근원

2011-07-20  

월요일 아침부터 맛 있는 던킨 도너츠를 먹고 있던 나를 습격한 것은 셔츠에 떨어진 누렇고 끈적끈적한 설탕물시럽 같은 것이었다. 나는 새로 산 보라색의 예쁜 셔츠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만일 그 시럽이 강한 산성이라든가 락스 같은 것이었으면 셔츠는 색이 변하고 녹거나 찢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 끈적한 물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해로운 것인가 아닌가를 즉석에서 분석해 보았다. 당장 그 물체의 산성도 같은 것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제일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 시럽인가 아닌가, 즉 액체냐 고체냐 하는 것이었다. 시각과 촉각을 동원한 분석결과, 다행히도 셔츠에 묻은 것은 설탕물시럽이 아니라 설탕덩어리였다. 즉 액체가 아니라 고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덩어리를 간단히 털어낼 수 있었다. 나는 그러고는 마치 암판정을 예상했다가 감기로 판정 났을 때 마음을 놓듯이 안심했다. 짧은 순간이었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나름 공포스러웠다.

액체공포는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어떤 것에 대한 공포이다.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라는 한국군의 구호에서 보이듯이,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물이 새는 것이다. 1970년대에 어린 우리들의 공포판타지를 사로잡았던 일본만화 요괴인간의 첫 장면에는 실험실에 놓아둔 실험용기에 담겨 있던 요괴인간의 원료들이 스멀거리며 살아나 용기를 타넘고 바닥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원래 귀신과 비슷한 뜻을 가진 요괴라는 말이 그 만화의 캐릭터인 벰, 베라, 베로에게 붙여진 이유는 사람이 되고 싶으나 액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가사로 된 요괴인간 노래는 오래 동안 우리들의 판타지 속에 들어 있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경계를 넘어버리는 어떤 존재에 대한 공포와 연관돼 있다. 그것은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의 공포이며, 주한미국대사관에 앉아 비자심사를 하면서 미국에 입국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영사의 공포이며, 입시에서 자기 학교의 기준에 미달하는 응시생은 반드시 떨어트리기 위해 노력하는 시험관의 공포이다. 그것은 또한 회사에 대한 정보가 몰래 새나가지 못하도록 누구든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에서부터 USB 드라이브까지 모든 기록도구의 지참을 금지하는 첨단 전자기기 공장 책임자의 공포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확장된 액체공포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을 패닉에 빠트리는 액체는 침입자이며 무질서이며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를 뜻한다. 하긴 영화 속 에일리언이 무서운 것도 그 흉측한 이빨이 아니라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 같은 것이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 속에 어떤 종류의 외계우주바이러스가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도마뱀인 코모도 드래곤이 다른 동물을 물면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입 속에 있는 박테리아가 침을 통해 상처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그 동물은 살이 곪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그러면 스토커 처럼 그 동물의 뒤를 며칠이고 졸졸 따라다니던 코모도 드래곤은 병들어 쓰러진 동물을 여유 있게 먹는다. 자연계의 액체는 코모도 드래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나름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인간계의 액체는 어떤 드라마를 쓰고 있는가.

액체가 두려운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유동성 때문이다. 고체는 그 자리에 가만 있으니까 두려울 것이 없다. 고체가 두려운 경우는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달려들 때인데, 일상 속에서 움직이는 고체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닌 한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고 스케줄 되어 있다. 즉 무엇이 어디로 어느 정도나 빠르게 운동할 것인가가 정해져 있어 우리는 거기에 맞춰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버스가 출발하는 것이건 건물이 철거되어 무너지는 것이건 말이다. 이때 정하중 즉 정지상태의 하중은 움직이는 힘 즉 동하중으로 바뀌는데, 이런 변환은 대체로 통제되어 있다. 건물은 무너져서는 안 되고, 버스는 언제 출발하는지 승객에게 다 알려져 있다. 물론 가끔 사고는 난다. 건물은 무너지고, 버스는 인도로 돌진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론적인 대비는 되어 있다. 신문기자는 어떤 사고에 대해 어떤 기사를 쓰면 되는지 다 알고 있고, 그에게는 과거의 무수한 사고사례의 데이터 베이스가 있어서 어떤 사고가 나도 놀라지 않도록 돼 있다. 그래서 그는 “어지러이 널려진 신발만이 사고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호남고속도로에서 케이비에스 박광태기자입니다”하는 식으로 말하면 사고는 처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액체는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물론 이과수폭포 같이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액체도 있으나 브라질은 한국에서 멀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액체는 마개를 꼭 닫아두지 않으면 스멀스멀 움직여서 어디론가 새어나가 버린다. 새어나가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것 하고 섞여서 예상치 못한 어떤 것을 만들어 버린다. 셔츠에 도너츠의 시럽이 떨어진 것이 두려운 이유는 당연히 셔츠가 망가질까봐서이다. 색이 변한다거나 천이 상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예상치 못한 변화인 것이다. 공포는 모르는데서 오는데, 셔츠에 어떤 액체가 묻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액체의 공포이다. 액체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강하다.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액체금속인간 T-1000이 강했던 이유는 금속에서 순식간에 액체상태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의 쇠창살도 쉽게 통과하고 방바닥에서 쑤욱 하고 일어나서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는 액체금속인간을 만들어낸 제임스 캐머론의 상상력도 실은 나의 어머니가 방바닥에 물이 흘러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닐까?

단단한 깡통 같은 로보캅과 액체금속사이보그인 T-1000이 서로 싸우면 T-1000이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액체가 가지는 유동성과 다양한 형태로의 전환성 때문이다. 흡사 단단한 갑옷 같은 껍질로 무장한 악어와 싸워 삼켜 버리는 유연한 아나콘다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액체의 다면성과 다양성(versatility)이 T-1000에게 강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이미지는 영화에서 고전적으로 나오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반복성의 연장이기는 하다. 슬라보이 지젝이 13일 금요일에서 제이슨을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공포를 실재의 귀환(return of the real)과 비교해서 말했던 것처럼, 흡사 시지프스가 계속 굴러떨어지는 돌을 언덕 위로 굴리듯이, T-1000은 액체의 성질을 이용해서 계속 반복해서 터미네이터의 성질로 되돌아온다. 그는 제이슨의 첨단기술판타지 버전인 것이다. 영화의 초기에 그가 나타날 때 만해도 새로운 물질과 인간개념에 놀라움과 신기함이 있었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아무리 쏘고 때리고 녹여도 안 사라지고 다시 나타날 때 관객들은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그의 반복성에 질리는 것이다. 즉 물은 계속해서 물이고 기름은 계속해서 기름인 그 반복성 말이다.

그의 손끝이 쭈욱 늘어나서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린다 해밀턴의 어깨를 찌르는 장면은 인간이 철을 제련하여 녹여서 수 많은 담금질과 열처리를 거쳐 칼을 만드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한 장면으로 압축처리한 것이라 놀랍다. 사실은 그렇게 강한 철도 한때는 액체였던 것이다. 그 장면은 역사의 패러다임이 고체 중심에서 액체중심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그런데 왜 그 알레고리는 액체금속인간이라는 무시무시한 형상을 통해서 나타날까? 아마도 인간은 액체로의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면 그것은 근대가 확보해둔 물질과 가치들이 흐물흐물해져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원제는 Liquid Modern Age)>에서 액체에 대한 공포를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유동하는 공포’란 언제 어디서나 출렁이는 위험 앞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 위험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식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것에 대항해 무엇을 해야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우리의 무력함에 대해 붙인 이름이다. 근대성에 대한 그의 분석은 상황들이 마치 액체처럼 유동적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예측불가능 해졌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 그에게 액체는 불확실성인 것이다.

그런 액체의 성질은 그것을 반드시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부엌의 사령관인 어머니에게는 통제되지 않고 멋대로 바닥에 흘러 있는 물은 치밀한 방공망을 뚫고 도심에 침입한 적전투기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그 통제가 국가적인 차원이 되어도 여전히 통제자는 액체를 두려워한다. 군중들에게 유동성(mobility, fluidity)이 부여될 때 말이다. 본래 인화물질을 안전하게 병에 담아 뚜껑을 꼭 닫아두듯이 어떤 곳에 안전하게 담겨져 있어야(contained) 할 군중들이 휘저어져서(agitated) 운동성을 가질 때 그들은 폭발할 수 있다. 인화물질이 되는 것이다. 현대의 공권력이 군중의 액체성을 통제하는 각종의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액체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군중을 병 안에 가둬 둘 수는 있으나 그것은 매우 압력이 높은 액체이다. 시위를 진압하는 것을 영어로 contain이라고 쓰는 것은 군중을 액체로 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에 대해 기체성으로까지 이어지는 액체성으로 맞서고 있다.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견고한 것들은 녹아서 대기로 사라진다(everything solid melts into air)‘라는 유명한 구절을 말 했을 때 두 가지를 의미한 것이었다. 첫째는 자본주의가 그 본성상 끊임없이 확장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혁신을 할 것이며, 도시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케일의 것들을 파괴하고 동시에 새로이 꾸며내면서 어떤 단단한 것도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즉 그것은 파괴적인 액체성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돈이라고 하는 허깨비 같은 추상화로 환원시켜 버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하여 추상화된 가치와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자본주의의 인간은 그 실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주의가 고체를 액체로 바꾸는 위력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자본이 집어삼킬 수 있도록 알맞게 준비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이 사람을 대접하는 일에서부터 어떤 이미지나 소리를 만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유동화되고 액체화되었다.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타클의 사회>는 사실은 모든 사회관계가 추상화되고 허상화되어 잡히지 않는 액체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액체는 위협적일 뿐 아니라 삼투적이기도 하다. 즉 스며든다는 말이다. 그게 액체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액체의 공포의 특징은 다른 어떤 것을 상징하지 않으면서 액체 그 자체로 끔찍스럽다는 것이다. 대개 공포영화나 공포만화는 악령이나 귀신 등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한 암시가 숨어 있기 때문에 무서운데, 액체는 그 어떤 것의 상징이나 알레고리도 아니면서 공포를 가져온다. 즉, 오로지 물질 그 자체의 함의인 것이다. 액체는 상징성이나 언어성과 상관 없이 역겹고 두려운 것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 그것은 언어화 이전에 성립하는 어떤 의미의 기호학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의 요소들>(1964, New York, Hill and Wang)에서 어떤 이미지나 사물도 언어의 도움 없이는 그 자체로 의미를 띨 수 없다고 했으나 액체는 액체라는 사물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액체는 특권을 가진 물체이다. 유동한다는 것, 묻을 수 있다는 것, 자신 만이 아니라 다른 것의 상태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 붙잡아 두기 힘들다는 것이 액체공포의 근간이다. 레베카 혼은 설치작업으로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얕으막한 관처럼 생긴 긴 나무상자에는 모터가 달려 있어서 천천히 앞뒤로 기울며 시소운동을 한다. 그런데 그 움직이는 각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상자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만 움직일 뿐이다. 상자의 안에는 검은 흑연가루를 뒤집어쓴 수은이 들어 있다. 상자가 움직이는 각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수은은 우주괴물처럼 아주 천천히 스멀거리며 움직인다. 그 형태는 흡사 터미네이터의 액체금속인간이 깨졌다가 녹아서 다시 스멀스멀 합치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수은은 결코 명랑한 액체가 아니어서, 무겁고 천천히 유동하기 때문에 아주 징그럽다. 액체공포를 이렇게 잘 표현한 작가는 없다고 본다. 이불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썩은 생선을 설치하는 개인전을 열었으나 철거당해야만 했던 이유도 생선이 썩어서 생기는 액체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생선이 생선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다른 것으로 스스로 전환하는데 대한 두려움과 징그러움 때문에 전시는 철거됐을 거라고 본다.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어둠의 목소리> 중 글리세리드편에 나오는 기름인간은 온 몸에서 기름이 줄줄 나온다. 그의 여동생은 유도(油度)라는 말을 만들어서 집안에 공기 중에 기름기가 얼마나 차 있는지 나타내 왔는데, 기괴한 분위기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서 유도는 99%에 이른다. 그러면서 얼굴에서 엄청난 기름을 줄줄 흘리는 오빠는 여동생의 얼굴에 징그럽고 끔찍스러운 기름을 짜낸다. 이토 준지 만화그림의 특징은 액체성이 있는 물질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인데, 실제로 코끝을 짜보면 나오는 기름을 과장, 확대해서 그린 이 만화에서 역겨운 기름들이 동생의 얼굴에 흘러내려 작은 또아리를 만드는 장면은 그의 만화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액체는 징그럽다. 병에 담긴 생수는 징그럽지 않지만 부엌바닥에 흐르면 징그러워진다. 맑은 계곡물은 징그럽지 않지만 갑자기 홍수가 나서 시뻘건 물이 괴물처럼 계곡을 가득 채우고 바위들을 쓸어내려오면 징그러워진다. 유동성 때문이다. 특히 점성이 높은 액체가 징그럽다. 이토 준지의 또 다른 만화 <인형의 집>에는 ‘아이스크림 버스’가 나오는데, 동네를 돌며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아이스크림 버스는 아이들을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더 인기를 끈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그렇게 인기가 있나 들여다 본 어느 아이의 아빠는 아이들이 그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다 녹아서 아이스크림이 되었고, 아이들은 서로를 핥아 먹으며 친구의 맛을 즐기고 있음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들이 액체가 되었다. 기존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아무렇게나 유동하여 어떤 실체도 없는 액체가 되버린 아이들의 공포는 이토 준지 만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 하다. 그의 만화에서 가장 공포스럽게 묘사되는 동물이 달팽이인데, 유동적이고 액체적이기 때문이다. 달팽이가 된 인간, 혀가 달팽이가 돼버린 여고생 등 액체적인 동물에 대한 공포는 그의 섬세한 그림체와 함께, 읽는 이를 액체공포의 늪 속에 빠트려 버린다.

액체공포에 빠진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무엇이 무너지거나 달려들 듯이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인간은 무엇이 적셔지는지 모르고 있다. 사실 공포영화의 핵심이 시간인데,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등 뒤에서 나타날 듯 말 듯 하고, 그 길고도 끈적한 시간 동안 주인공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나 그 시간과 공포감에 대해 어쩔 수가 없다. 관객도 주인공과 똑같이 그 시간 동안 의자에 얼어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스멀거리며 다가오는 공포에 푹 젖는 것 밖에는.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액체가 고체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차원은 시간의 차원이라고 한다. 인간은 시계를 발명하고 스케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지각하면 처벌하고 늦으면 짜증 내고 동선을 줄이고 동작을 분석하여 그 시간을 관리하고 지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액체는 유동성의 시간 때문에 위험하다. 그래서 통제돼야 한다. 그것이 독극물이나 마약이건 눈에 안 보이는 바이러스건 말이다.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대단히 아이러니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검역에 대한 것이었다. 비행기 승객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기 전에 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를 쓰게 되는데, 거기에는 포장가공되지 않은 동식물체는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써 있다. 여행객이 나무에서 딴 잎이나 풀, 과일이나 열매 등을 가지고 들어오면 압수당하게 되어 있다. 거기 딸려 올 수도 있는 해로운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이다. 검역당국은 해로운 유체의 침입을 막는 필터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입국심사에서는 해로운 범법자나 테러리스트를 걸러내는 필터노릇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람이나 물건이 이동하는 모든 곳에는 필터가 있는데,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심사하는 것, 건물 경비실에서 신원확인 하고 나서야 들여보내는 것, 극장에 표를 내야 들어가는 것, 입시에 통과하고 돈 내고 등록해야 수강할 수 있는 것, 방진시설을 통과해야 반도체 생산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심원조회에 통과해야 대통령 만날 수 있는 것 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필터들이 해롭거나 질이 떨어지는 유체의 흐름을 차단하고 걸러내고 있다. 인천공항은 그 중에 좀 중요하고 큰 곳이다. 국가가 오염되지 않도록 막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필터링을 잘 통과해서 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해서 입국장 로비에 들어오면 갖가지 관광안내정보들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남침땅굴견학코스이다. 그 땅굴의 영어이름은 North Korean Infiltration Tunnel이었으니, 외부로부터의 해로운 것들을 걸러내는 거대한 필터인 공항이 그 손님들에게 북한의 침투(infiltration)를 관광적 스펙타클로 즐기라고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걸러냄을 책무의 하나로 삼고 있으면서 또한 구경거리로 제공한다는 이런 아이러니는 마치 한 쪽에서는 살인을 개탄하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또 한 쪽으로는 살인을 구경거리로 즐기는 할리우드 영화를 방영하는 텔레비전 채널처럼 서로 모순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남한이 수도권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 만큼이나 두려워 하는 북한의 침투전술이 땅굴이나 해안선을 통한 은밀한 침투이다. 게릴라전이 정규전보다 어려운 것은 베트남전 때 베트콩군의 존재를 미군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고 표현했듯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썰물이 들어올 때 불규칙한 지형을 따라 미처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물이 들어와 갯뻘에서 조개를 캐던 사람이 빠져 죽듯이, 게릴라는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유동하듯이 침투한다. 강릉잠수함공비침투사건 때 그런 침투에 대한 패닉은 남한 전체를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산 속에 숨어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액체 같은 공비들 때문에 특전사군인들도 떨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액체성 침투의 장치인 남침땅굴을 관광 스펙타클로 즐긴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몸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놀라거나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타클로 즐기는 정신착락의 상태가 아닐까?

바우만은 오늘날의 지배의 양상은 유목성에 있다고 보았다. 즉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빨리, 가볍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가들과 비즈니스맨들은 각종 모바일 통신기기와 비싼 자가용 제트기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생산품의 지속성과 오래 유지되는 신뢰가 아니라, 생산품의 순환과 재활용, 노화와 폐기와 대체과정에서의 그 경탄해 마지않을 속도”이기 때문이다. (바우만 『액체근대』 ) 인간은 이윤을 창출하고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액체가 돼야 한다. 그런데 그러러면 자신의 고체적 운명을 극복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까 정신착란이 오는 것이다. 오늘날 액체는 도처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또한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하는 어떤 기이한 상태의 이름이자 그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글 이영준

기계비평가. 저서로 『사진 이상한 예술』, 『이미지비평』, 『기계비평』, 『사진이론의 상상력』, 『비평의 눈초리』 등이 있으며,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FAST Forward》, 《서양식 공간예절》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의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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