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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역사 - 언리스티드

2011-10-18  

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논의는 종종 소비주의의 대리인으로서의 그래픽 디자인과 예술의 객체이자주체로서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양극단을 오간다. 그 정의는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릴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많은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관련 작가들의 희망은 분명 예술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이 특정 역사와 논쟁, 초상들이 현대 그래픽 디자이너들 작품의 '맥락(context)'를 통해 (그래픽) 디자인 담론 속에서 구체화 되어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그래픽 디자인 '오브젝트'가 서적, 잡지 등에서 등장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그 오브젝트들은 '중립적'인 초기 모더니스트의 화이트 배경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용 가치와 2차원적인 모방으로부터 작품을 구별하기 위해, 화이트큐브의 전시공간으로 스스로를 확장하였다. 큼지막한 이미지들과 짤막한 텍스트들이 실린 그래픽디자인서적들이 전시카탈로그, 혹은 미래의 경매 카탈로그처럼 읽혀지기 시작했다. 현대 그래픽 디자인 출판계에서 이 둘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후자가 컨텐츠를 좀 더 회고적으로 추켜올리고 신성화하고 평가하는 것일 뿐이며, 그들은 모두 이 일련의 작업을 (다소 패셔너블하게) 선점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하얗게 유지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픽디자인이 가진 즐거움의 일부는, 도시의 작은 미술품이라는 물리적 존재로서, 그것이 사용된 역사를 반영하는 닳아버린 외양에 있다. 이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은 '객관적인' 관점을 위해 장소의 특성을 지우는 것이다. 하지만, 백색벽의 갤러리, 박물관 그리고 다른 문화적 공간들처럼 사실상 이들 출판들은 지속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암호화하고 있다 ㅡ 그들은 평론가들을 위해 체크 박스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을 미화하고 페티시화한다. 여기서 ‘목록’은 분명 은유적인 것이지만 이들 그래픽 오브젝트들이 시공간ㅡ 어떻게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어쩌면 가장 기묘하게 사용자의 맥락에서 동떨어진 ㅡ을 떠다니는지 주의를 끌게 한다. 무엇이 그래픽 디자인을 살아있고 실생활에 가까운 것으로 만드는 것일까? 분명 그 역동성은 '현실' 세계에서 그것의 활용과 실용적인 존재에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물리적, 정신적으로 갤러리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반면, 그래픽 디자인과 광고계, 첨단의 상업계는 거리에서 예술계 안으로 편입하려 애쓰고 있다. 갤러리가 닫힌 공간으로, 100여년 전부터 일련의 아방가르디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배척되었음을 생각하면 꽤 역설적이다. 19세기 말 런던과 파리의 살롱은 그들의 기준에 맞는 예술과 예술가들을 정한 엄격한 '게스트 리스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리의 낙선자 전람회(Salon des Refuses)는 이 리스트에서 배제된 예술가들을 전시에 참여시킴으로써 예술사의 발전에서 '정체'를 깨뜨리는 동시에 소규모 예술평론 동인의 독점을 해체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을 필두로 한 이들 저항 예술가들은 궁극적으로 모더니즘이 발전하는데에 일조하였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를 상상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예술가의 삶은 전시목록을 통해, 후자는 클라이언트 목록을 통해 조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가 마이클 랜디(Michael Landy)는 그의 전시 『분해(Break Down)』에서 이러한 목록에 얽힌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2001년, 장장 14일 동안 그는 런던 옥스퍼드스트리트의 빈 가게에서 그가 가진 모든 물리적인 물건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설치예술, 부분적으로는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랜디(Landy)의 작품을 예술사적 맥락(context)이나 예술적 가치로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목록의 예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1: 『분해(Break Down)』 마이클 랜디(Michael Landy)

『분해(Break Down)』전시에 입장해 160미터의 컨베이어 벨트를 포함한 전시물들의 충격이 사그라들면, 재고, 부제, 스폰서들과 할일 목록과 같이 당시 랜디의 삶에 있어서 기억의 조력자 역할을 담당했던 목록들의 작성 기제를 파악할 수 있다. 14일의 말미에는 5000개가 넘는 개인적인 물건들이 구겨지고, 부서지고, 산산조각나 주의깊게 기록되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책으로 편집하였고 별도로 파괴된 아이템 목록의 한정판까지 제작하였다. 그의 삶은 그래픽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유일하게 남은 목록은 랜디의 삶을 축소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체성이 반영되도록 '분해되었다(break down)'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eael Craig-Martin)이 언급했듯이 이 목록은 '물리적인 기억의 표방'이다. 여기에서 목록의 요점이 추려지고 개인화된다. 왜냐하면, 이 목록을 읽으면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앨범의 기억을 공유하거나 운동화 브랜드 선택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등 삶의 파편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아주 탁월한 정보 디자인의 일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분해(Break Down)'는 삶에 맥락을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목록을 제공한다.

조금 더 진부하고 실용적인 정보디자인은 전화번호부이다. 전화번호부의 주된 기능은 삶을 목록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을 또는 도시, 국가 전체를 정격화된 컬럼과 유형으로 축약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화번호부는 그래픽디자인의 역사와 타이포그래피를 융합한다. 전화와 그에 동반한 번호부는 근대의 역사에 온전히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둘은 기술의 발전과 근대 프로젝트가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을 대변해준다. 전화번호부는 전화 기술이 퍼지면서 급격하게 발전하였고, 그 디자인은 공간 활용에 있어서 대표적인 실례가 되었으며 20세기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 공간과 '그리드'가 동의어처럼 인식되게 하는 데 기여했다. 도시 사회학자 리차드 세네트(Richard Sennett)는 도시 계획에 있어서 '그리드'에 대해 언급하며 '그리드'를 지우개, 다시 말해 미국의 새 거대 도시들이 장소의 감상과 그에 얽힌 기억, 맥락, 역사(소유권)를 지우는 방식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전화번호부는 선택된 그리드의 한정된 백색공간에 의해 지배되는 컨텐츠와, 사회적 도덕성이나 정체성보다는 과학적인 사고의 전략을 반영하는 타이포그라피를 대변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유비쿼터스 아이템이 되었고, 가장 순진한 형태의 리스트가 되었다. 몇몇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이런 지우개의 비유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제기하려는 시도를 했다. 타이포그래퍼인 마르틴 마주르(Martrin Majoor)는 마이클 랜디(Michael Landy)처럼 역사적인 맥락 내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그는 네덜란드의 통신 회사인 KPN을 위해 전화번호부를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기존의 전화번호부의 전체 속성들로부터 기계적인 질서 외에는 그 어떤 충실함도 결여된 유니버스(Univers)체의 가로형식을 계승하였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기술적인 변수들의 개념을 끌어안은 '텔레폰트 리스트(Telefont List)'과 '텔레폰트 텍스트(Telefont Text)'라는 활자체를 고안하되 단순한 공식이 아닌 유기적인 무엇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시각적인 문화 양식을 지우기보다는 그 양식을 기반으로 하는 활자체를 만들었다. 마주르(Majoor)의 활자체는 한 겹 한 겹 투명하게 겹친 레이어들처럼 축적되어 확립된, 타이포그래프의 역사와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을 통해 랜디(Landy)와 마주르(Majoor)는 그들의 작업으로부터 단순한 각 부분들의 합 이상의 목록을 만들어냈다. 비록 그들이 껍데기와 흔적, 기억, 이야기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까지 일련의 이름과 숫자로 축약시켜버렸지만, 이것은 새로운 또 다른 끝이며 그 자신의 역사와 친숙한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사진2: 텔레폰트 텍스트(Telefont Text)

역으로 말하면—우리의 주된 관심이기도 한데—일종의 수련으로서의 그래픽 디자인은 매우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역사'로 확립되기 전에 '목록'으로 축약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질서와 직업의 두 가지 면에서 그래픽 디자인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운동에서 운동으로, 작가에서 작가로의 문맥적 기반을 제공하는 예술사의 혈기왕성함 덕분에 최고의 예술가 열명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최고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라고 하는 것이 맥락에 대한 감각이 없이는, 추후의 패션 경향이나 기업의 요구로 대체될 때까지 당시의 선호를 나타내는 이미지들의 단순한 목록이 되어버릴 수 있다. 디자이너 엘리엇 얼스(Elliot Earls)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그저 단순히 시대 정신에 편입되어 이를 작업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성은 좋은 작품에 대한 척도일 수 없다.'

그린버그(Greenburg)나 페브스너(Pevsner)와 같은 작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래픽 디자인 역사는 작품 선집 그 자체로 역사를 생산하는, 그야말로 '선집'의 단순 반복일 뿐인 개개의 작품/평론의 잔치라 할 수 있다. 대개 목록으로서 기록된 역사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그래픽 디자인이 전통적인 예술과 구별되는 하나의 질서로서 발전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늦둥이이자 여전히 사춘기의 고뇌 단계에 있다. 우리의 목표는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가 좀 더 차별화되고 현실을 더 반영하도록 촉진시키는 것인데, 실제로 이러한 사항들은 절실하다. 그러나 목록의 역사는 우리가 총체적인 과거와 소통하는 방법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역사가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준다. 역사와 이론은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삶의 흔적을 회고하는 식의 기법으로 기껏해야 문서화하고 기록하고 번역할 뿐이다. 작품 선집으로서의 역사는 이러한 '목록'이 논의의 여지를 개방하고 활용할 때 최선이 될 수 있다. 즉, 선의 끝이 아니라 교차점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인 것이다.

시작점으로서의 목록은 다양한 동기를 부여한다하더라도, 전통적인 예술사내에서 선언의 형태로 이미 만연해있다. 그것들은 직접적이고 은유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비트루비우스(Vitruvius)부터 미래주의(Futurism)까지 20세기를 지나왔다. 미래주의는 출판계와 뒤샹(Duchamp)이 궁핍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마리네티(Marinetti)는 언젠가 이탈리아인들에 '너희를 굼뜨게 하는 파스타 먹기를 그만두라' 고 충고하였다. 지금, 아마도, 시각문화는 「도그마 '95(Dogma '95)」 그리고 브루스 마우의 「성장을 위한 미완성 선언' (Bruce Mau's 'Incomplete Manifesto for Growth')」,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FTF)」, 「64」와 「2000」과 같은 현대적 선언의 목록들로 크게 성장해왔다.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는 제목 자체가 일상 생활에서 준수해야 할 아젠다(agenda) 목록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다. 1960년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 아젠다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경제 붐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소용돌이치던 소비자 문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목록에 등재된 작가들은 그래픽 디자인을 상업의 도구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보길 원했다. 1998년,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경이적인 성공작 『노 로고(No Logo)』이 야기한 시대 사조를 요약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가 재판되었다. 이 두 번째 판은 반세계화담론의 맥락 속에서 1960년대 본래 선언의 정신을 다시금 포착하는 데 성공하였다. 각각의 선언에는 두가지 목록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디자이너의 재능이 낳은 폐기물로 만들어진 상업적인 것들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기술들이 좀 더 온화하고, 풍요롭고,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는 영역을 묘사하고 있다. 이 목록들은 부분적으로는 사회적이지만 주로 상업적 관심, 즉 좋은 고객과 나쁜 고객이라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60년대식 이분법을 다루고 있다. 요즘에는 단순한 영웅과 악인의 분류로 논하는 것이 점차 문제시되고 있지만, 40년의 세월동안 이러한 목록에는 아주 약간의 변화만이 있었다. 주된 변화는 내부에서 외부로의 변화이다. 64년 '위장 파우더(stomach powders)' 포장 사건부터 2000년의 '헤어젤' 사건까지 '나쁜 소비자'를 구성하는 요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역으로 지난 몇 년간 선언들에 전수된 내부적 이데올로기는 외부적인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는데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문서, 기업의 설명서 같은, 2000목록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둘 모두 그래픽 디자인을 일련의 목록, 점점 세계화되어가고 있는 세계의 일반적인 반대 개념으로 축소하고 있다.

사진3: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


광고하지 말 것. (개 과자, 디자이너 커피, 다이아몬드, 세제, 헤어 젤, 담배, 신용 카드, 운동화, 라이트 맥주, 튼튼한 RV.)

디자인하라. (문화적 중재, 사회 마케팅 캠패인, 책, 잡지, 전시, 교육 도구, TV 프로그램, 영화, 자선 운동 등의 정보 디자인.)

목록은 균열된 것들을 문서화하고 합리화한다. 세계화는 경험의 시각적 서술(visual narrative) 또는 구문(syntax)을 제공하는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모두가 같은 "테이크 아웃 라떼"를 마시는 세계를 합리화하고 화합한다. 목록은 스폰서를 광고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문화적 경험과 정보 자체를 형성한다. 많은 잡지들이 실질적으로는 빛나는 제품의 목록일 뿐이다. 박물관들은—하나의 예만 들자면 V&A와 같은—점차적으로 광고를 예술의 하나인 양 전시하고 있다. 2003년,전 세계 수도의 스타벅스 유리창에 던진 몇 장의 벽돌이 기업문화를 전복시키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랜디의 작업처럼, 기업화된 세계는 '분해되거나(break down)' 등재(list)되고 파괴될 수 없다. 현대 그래픽 디자인 수많은 지류를 정리하려고 노력해왔던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 그녀의 영향력 있는 저서 『No Logo』는 가장 악독한 브랜드 리스트를 만들어 보이콧하고 전복시키거나 파멸시키길 독려하면서, 두 단어는 많은 이들에게 모토처럼 받아들여져왔다. 클라인의 위치는 이것의 반대인 것 같다. 그녀에게 있어, 이런 외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20년에 걸친 디자인과 구매, 이미지—표면—의 분석에의 중독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이들 세계화의 기제를 표면화시키기는 과정에서 그녀는 거대 브랜드와 기업에 비판을 집중하는 것은 더욱 광범위한 부수적 손실을 가져오는 제조업자와 운송업자, 포장업자, 그리고 다른 중간 상인들에의 관심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역설한다. 로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야말로 쉽지 않은 상대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선언/목록의 요점인 듯 한데, 우리가 목표로 삼을 로고가 없을 때, 목록은 시선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합리화된 근대 정보 디자인의 표지는 그래픽 디자인의 특정영역에서 적확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의 영역 내에서, 사람들을 의도된 '랜드마크'로 단순히 인도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현대 문화의 모든 양상을 다루는 좀 더 견실한 구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2003년 여름, LCP의 그래픽 디자인 학생들은 그들의 송년 쇼의 이름을 '계주(Relay)'라고 붙였다. '계주'라는 개념은 시각문화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그의 역할을 위한 은유이자 형용사로서 꽤나 쓸모가 있었다. 그래픽디자인은 예술과 상업계를 오가는 바통처럼 쇼핑 바구니나 갤러리 벽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속적인 '의미'의 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큐레이터의 선택, 집행자의 의도, 역사가 쓰여지는 방식 등, 여러 가지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그래픽디자인이라 부르는 일련의 경험과 관계들을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도구를 이용해 살피는 것은 이러한 내재되고 다층적인 '사이의' 상태를 조명한다. 대신, 유혹은 용이한 재생산을 위해 이러한 다층 구조를 이미지나 목록화된 적절한 어구들로 '단순화'시킬 수 있었다. 포토샵에서 이미지의 여러 레이어를 '(하나의 레이어로) 단층화' 하지 않으면 저장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가 2차원화된 이미지를 '저장'하고 싶겠는가? 그래픽 디자인과 영상이나 음성 인터뷰등의 목록은 꽤 자주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에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부대와, 공중 포격, 포탄 낙하, 생산된 대포, 부시의 영원이 순환되는 악의 축, 산산 조각이 난 시민의 몸(비등재됨), 벙커, 빌딩, 군인들과 그 밖의 부차적 피해(등재됨) 등, 여러 종류의 목록을 생산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여기서의 목록들은 모든 것들을 동일한 중요도(혹은 비중요도)로 축소시킨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이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과업은 과거로 돌아가 목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상세 항목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총구는 상상과 기억의 정보를 쏘아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우호적인 발포겠지만.

originally published in Limited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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