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CRITICS

List Print Share

대안공간 이후

2011-12-29  

‘대안공간 이후’란 없다. 한국에서 90년대 후반기부터 활동을 벌여왔다고 여겨지는 대안공간을 대안공간으로 정의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대안공간의 이후에 다음세대가 ‘어떠한 대안’을 내 놓을 것인가라는 맥락으로 생각해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안공간을 정의할 때 통상, 7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된 미학적 제도적 움직임을 참조한다. 당시 모더니즘 경향의 전시 위주로만 운영되는 미술관과 화랑의 관행으로 개념미술, 행위예술, 그리고 소수민(족)의 예술이 소개될 만한 장소가 부재하자 작가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의 작업실을 쪼개어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를 대안공간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미국의 연방예술기금(NEA)은 대안공간과 같은 주변부적인 예술에 대한 지원을 급속도로 늘려갔는데 페미니즘, 퀴어, 소수민(족)의 권리문제가 대두 그리고 신장되는 당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자 함이었고 이들 대안공간의 활동에는 더욱더 박차가 가해졌었다. 반면 한국의 대안공간은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반대 항이라 할만한 미학적인 입장이 모호하다. 다만 작가들이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경제적으로 열악했다는 점 이외에는 시대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반대 항이 없다. 더욱이 첫 대안공간이 생기고 10년여가 지난 지금 대안공간들 대부분은 문을 닫거나, 그 활동이 미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대안적인 활동이라고 표방했던 프로그램은 미술관이나 국공립 레지던시, 그리고 상업화랑에서 훨씬 더 큰 규모로 수행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안공간에게 쏟아 부어진 관심과 기대, 제도권진입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권력화된 집단이라는 내용의 질시와 질타의 크기와는 상반되게도 대안공간은 제도로서 정착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공간은 실패한 운동인가? 그렇지 않다고,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성공이었다고 서동진 교수(계원디자인예술대)는 말한다. 그의 말은 그렇다면 이들의 활동은 대안이 아닌 다른 지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이를 고민해 보려면 대안공간이 생겨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공간의 시작은 1999년 시카고를 졸업하고 돌아 온 몇 명의 작가들이 홍대 앞에 전시장과 카페가 동시에 운영되던 in the LOOP로 본다. 당시 IMF (구제대출)이후 한국은 금융구조의 변혁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수입 및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했다. 실상 중국과 같은 나라로부터의 수입은 인플레이션으로 올라간 한국의 물가에 비해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었으며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의 보호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조건 아래 놓여진다. 세계화도 거의 막바지에 이른 당시 한국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도 국가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세계의 타국가와의 무한경쟁이라는 시장구조에 놓아야만 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독려되어 왔던 세계화는 그저 해외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선망의 목표가 아니라 이제는 한국경제의 유일한 해결책이자 문제로서 국가경쟁력을 통해 이겨야만 하는 현실이 되었다.

미술계도 같은 정신적 정치 사회적인 환경 안에서 실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안공간 풀의 사회적 이슈의 표현과 아카데미 프로그램, 쌈지스페이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국제교류, 한국적 팝으로 대변되는 키치예술의 적극적인 소개, 아트마케팅을 장치로 예술과 기업을 결합, 모든 대안공간이 실천했던 신진작가의 지원, 브레인 팩토리의 큐레이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전시 운영, 사루비아 다방의 장소특정적 설치 예술, 인사미술공간의 작가역량강화, 대안공간 루프가 진행하는 국제 큐레이터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전시기획, 등 나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대안들을 내놓으려는 노력을 보였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되돌아 왔는데 90년대 초 세계화 정책과 함께 시작된 유학 자율화로 떠났던 유학파의 첫 세대가 돌아오는 시기이기도 했거니와 3배 가까이 뛰어오른 환율을 감당하지 못한 이유도 상당부분 작용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예술인들의 예술실천양상이나 해외미술시장과 미술담론 관련 정보의 접근용이성의 증가는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가능성을 높였고 한국작가의 해외전시도 늘어서 한국미술의 세계화 및 국제 시장진출에 대한욕구에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미학적 실천은 각 작가와 작품의 질적인 평가와는 달리 국제미술계에서는 굳이 대안이라고 언급되기 어려운 양식이었으며 <한국의 대안공간 실태 연구>에 실려진 대안공간 루프의 서진석 대표의 언급은 대안공간의 활동을 ‘글로벌 스탠다드로의 적응의 과정’이었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대안공간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부분과 대중매체로부터 상찬을 받았던 그리고 타 형식의 예술기관들에 의해 모방 내지는 훨씬 더 수월하게 진행되었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대안공간들의 미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전시시장에서의 작가의 경쟁력 강화 기능을 수행했던 프로그램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중 신진작가 발굴과 역량강화, 프로모션은 미술계 내외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2006-8년 경을 전후로 해서 미술관과 상업화랑, 국립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들이 대안공간의 역할이라 여겨졌던 상기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화랑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신진작가와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시립미술관은 포트폴리오 전을, 정부는 전국적 국공립 창작스튜디오를 설립, 대대적으로 실행함으로써 같은 프로그램을 시작한 대안공간의 위상은 유명무실해진다. 사회학적용어로는 비교우위가 소멸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대안공간의 짧은 10년간의 성공은 대안공간의 성공이 아니라 시장의 성공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안공간은 예술이 경제사회학적인 논리에 의해 작동할 때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 모델사례이다. 이는 이들이 미술시장에 휘둘렸다라는 말이 아니라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는 의미임을 일러둔다.

시장이 승리를 쟁취한 이후 한국이나 전세계의 예술계는 구조적인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구겐하임과 같은 미술관은 전시서비스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갖추었고, 한국의 대안공간은 Gallery King, Kim Kim Gallery 와 같이 상업화랑의 조직체계를 선택하거나 작가 동호회로 시작한 달링 레지던시는 AB군단과 같은 전시운영 서비스 사업을 함께 벌이며 운영금을 충당한다. The Book Society는 영리 서점운영과 함께 소규모 공연과 토론회를 기획하는 예술단체이다. 정부의 경우 영국과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국가가 30-50%에 이르는 예술관련 지출예산의 삭감을 단행하고 있는 한편 네덜란드의 라익스 아카데미, 비트드비트Witt de with, 박(BAK)과 같은 진보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미술관에 주어지던 정부지원은 2013년을 기점으로 끊길 예정이라 한다. (2011년 6월 발표) 반면 한국 정부의 경우는 외국에 비해 예술관련 예산이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줄어들지 않은 예산이 사용되는 경향은, 즉 지출정책은 문화거버넌스(협치)라는 모토아래 두 가지의 흥미로운 기조를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문화사회적기업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과 지원이다. 다른 하나는 공공미술의 형식을 갖춘 시민참여형의 재개발(혹은 재생)사업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아마도 대안공간 이후로 얘기될 수 있다.

 

 

상기한 현상들을 통해 도출되는 결론은 현재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제도적 변화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에 예술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생존 메커니즘으로 보인다 이다. 신생 예술단체들이 기본적으로 영리사업체의 구조를 갖추려 한다거나 정부가 문화사회적기업을 소개 육성하는 현상은 70년대 복지국가의 이상을 추구하던 정부주도의 경제계획, 개발체제의 사회와 대조적으로 자유경제시스템을 시발점으로 삼는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로 보았을 때 이들 예술단체들이 맞닥뜨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대부분의 국가가 국민과 기업의 사유재산과 이윤추구의 자유만을 국가가 보장하는 정책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원리로 하고 무한경쟁 속에서의 이윤추구 활동을 하는 동안 시장의 원리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일정한 질서를 갖추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민 개개인은 소비자로서 좀더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부여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활발한 경제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통제의 기능을 수행하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경제사회 전분야의 민영화를 가져왔고 정책은 문화거버넌스라는 기본 이념 아래 결정되며 국민들은 공공사업의 소비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특히 최근에 대두된 문화사회적기업이란 심지어 복지의 분야까지도 국민개개인이 시장원리하에 책임을지는 현재의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이다. 먼저 정의부터 살펴보면,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및 조직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사회적기업이란 상기한 기업 및 조직의 활동이 문화와 연결된 경우에 해당한다. 정부는 10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발령하여 문화사회적기업의 자격요건을 갖춘 단체에게 2-3년 동안 임금을 지원하며 이들을 육성하고자 한다. 사회적기업육성법 1조1항이 명시하는 바는 “사회적기업의 설립•운영을 지원하고 사회적기업을 육성하여 우리 사회에서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전문개정 2010.6.8]” 공익사업이란 그리고 예술이란 이른바 예술경제학자 보몰(Baumol)이 분석해낸 바에 의하면 ‘시장의 실패’가 불가피한 영역이고 이에 따라 69년 이후 전 세계는 인권선언과 문예진흥법을 제정해 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공익사업과 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렇다면 문화사회적기업은 모순일까? 보몰의 분석에 의하면 모순이 존재하지만 실제는 정책이 시작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으로써는 두고 볼일이다.

필자가 여기서 생각해보기를 제안하는 부분은 문화거버넌스라는 정책이 전제하는 태도이다. 문화 거버넌스는 자유로워진 선택을 가진 민간 문화소비자 부분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방점을 두는 태도이다. 여기에는 정책이 극복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사회적기업의 지속성은 문화소비자로서의 관객이 소비성향(입장권 매출)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프로그램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는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관객이 재미없어 하는 프로그램은 살아 남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남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의, 표현의 다양성을 담보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문화거버넌스 이념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두 번째 정부의 사업은 공공미술의 형식을 구비한 시민참여형의 재개발(혹은 재생)사업이다. 문화를 통한 재생사업에 정부와 지방자치 정부의 관심에 동기를 부여한 것은 앞서 언급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스페인 빌바오에서의 성공이 상징하는 경제개발 도구로서 문화사업의 가능성이다. 빌바오의 성공은 문화의 민주화의결과로 빚어진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정신적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문화와 지식의 민주화는. 어떤 이념도 자유주의라는 이름 하에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이해관계에 따라 가치관의 차이만을 가지는 다문화주의의 근거가 된다. 현대사회의 시민들은 어떤 이념이나 어떤 문화적 요소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며 자신의 그때 그때 정체성으로 선택한 트랜드에 의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은 라이프 스타일이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을 소비함으로써 유니폼을 갈아 입듯이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게 된다.

빌바오의 경우 프랭크 게리의 건축과 구겐하임의 현대미술에 대한 브랜드 파워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수요가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 정치적 이유로 시작된 광주비엔날레도 일정부분 광주를 빌바오와 같은 문화의 도시로 만들려는 취지를 바탕으로 비엔날레가 운영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 이의 발전된 비교적 소규모의 기획이 마을 만들기, 문전성시 프로젝트 등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재개발을 함께 도모하는 공공미술을 민간예술단체에 공모를 통해 수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도시재생을 목표로 함으로써 공공미술사업이 시행되는 지역민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문화거버넌스의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이어서는 아닐까? 미술계도 장소특정적예술,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그리고 관계미학이라는 예술담론에 부응하는 이들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고 관객과의 관계 그리고 관객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장소에 대한 개연성이 예술작품 가치정립의 척도가 되는 지금 이러한 공공미술-도시재생사업의 대두는 필연적인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이와 동시에 신자유주의와 시민의식의 발전, 문화거버넌스 개념 모두와 교집합을 가지는 공동체 기반의 소규모 예술프로그램 형식이 대두하고 있다. Listen to the city, 옥인 컬렉티브, 무늬만 커뮤니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각각 4대강 사업, 서울의 재개발사업, 노인복지 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이슈라는 공동관심사를 가지고 개인이 할 수 없는 네트워킹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 이전의 행동주의가 이데올로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대조적으로 이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목소리와 주체적인 사고의 표현을 통해 정책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한다는 지점에서 발전해 가는 시민의식이 고취된 현 사회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필자는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남겨준 소비자로서의 적극적인 태도 아마도 이기심에 출발하기에 위험하지만 몇 안되는 긍정적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싶다. 달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면서 우리는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우리의 정신적인 발전 가능성을 시장에 맡긴 셈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문화소비자로서 그리고 정책의 소비자로서 큰 목소리를 가진다. 그 목소리는 바로 시민권의 발현이기도 하다.

정부 보조금이 거의 유일 하다시피 한 한국예술계의 실정을 감안하면 정부의 문화정책은 예술의 방향결정에 크게 작용하리라는 예상은 쉽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남겨줄 정신적인 환경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문화소비자-시민으로서 우리의 책임과 권리를 위한 정책방향의 결정을 주도해야 할 것이며 혹시 현재의 정책이 이에 상반된다면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바뀌는 날까지의 우리의 과제는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현재의 정책에 적응하는가가 아니라 정책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현재의 정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글  신현진

독립기획자, 전 SAMUSO: 전시실장, 쌈지스페이스 제1큐레이터, Asian American Arts Center에서 프로그램 매니저. 현 홍대 미술비평학과 박사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현대미술 실천의 역학관계에 대한 논문 준비 중.
 

 

 

본 기사는B-ART, 2011 10월호 기재되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Tag :
List Print Share
COMMENT

관련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