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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후기 개념미술 / Korean Post Conceptual Art

2012-02-08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1910년부터 시작된 마르셀 뒤샹의 ‘녹색상자’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고, 1917년의 다다 선언문을 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1957년의 국제상황주의(Situationist International) 창설과 1959년 피에로 만쪼니의 등장, 같은 해에 열린 이브 클라인의 전시 <공허>, 앨런 캐프로우의 해프닝, 1960년대 초 소개되기 시작한 마르셀 부르터스, 앤디 워홀, 에드 루샤의 작품들과 존 케이지, 라 몬테 영의 음악들이 초기 개념미술의 사례들로 간주될 수도 있다. 63년 조지 마키나우스의 플룩서스 선언문과 미니멀리즘을 개념미술로 발전시킨 로버트 모리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토니 갓프리는 1966년 멜 보크너의 <미술로 보일 필요가 없는 종이 위의 작업 드로잉과 그 밖의 다른 시각적인 것들>이라는 전시를 최초의 개념미술 전시로 인용하고 있다. 몇 가지 드로잉과 문서들만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사진이나 사물과 같은 시각적인 제시 뿐 아니라 전시 자체 혹은 전시에 대한 관객들의 경험이 예술적 내용을 구성한다고 간주하게 하였다. 이 사례들로부터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개념미술이 출발부터 다양한 정황과 맥락에 따라 매우 상이한 시간대와 형식들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들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개념미술을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숱한 의견과 주장들이 있어왔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일종의 ‘부정적 정의’(negative definition)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개념미술을 구성하는 속성들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열거하는 방법을 통해 개념미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파악해 나가는 접근이 그것이다.

Working Drawings And Other Visible Things On Paper Not Necessarily Meant To Be Viewed As Art, 1966

Robert Morris, Untitled 1996, felt (Photo courtesy Sonnabend Gallery)

우선, 1) 개념미술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예술이라고 간주해 온 형태들로부터 벗어나는 형식들을 취한다. 소재, 구성, 제시방식, 해석에 있어 기존의 미술이 추구해온 가치와 이상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은 난해하거나 예외적인 미술로 간주되기도 하고, 심지어 미술이 아니거나 지적인 현학, 속임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원형은 1910년대 뒤샹의 작품들과 다다이스트들의 태도에서 발견된다. 2) 두 번째로, 개념미술은 시각적 결과물에 대한 감상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작품을 둘러싼 관념, 경험, 지식의 ‘개입’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수용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개념미술은 ‘게임’처럼 개개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일정한 관념, 경험, 지식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 이것이 개념미술을 ‘언어적’ 조건들을 기반으로 한 미술로 이해하게 하는 이유이다. 3)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개념미술은 개념미술 자체의 정의적 범주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에 든 예시들에서 보듯, 개념미술의 역사는 사실상 모더니즘 이후의 동시대미술의 역사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개념미술의 역사는 끊임없이 기존미술의 정의적 범주들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으며 더욱 더 세계 그 자체의 현상과 그것의 함의를 명석하게 가시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를 개념미술의 시대로 기억하거나 특정한 형태를 개념미술의 전형으로 이해하는 것은 개념미술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념’은 기본적으로 ‘단어’ 혹은 ‘말’을 가리키는 것이며, 여기에서 언어가 대두되는 이유는 시각적 실천이 ‘사유’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개념’ 미술에서 단어는 제목에서 나타나거나, 좀 더 일반적으로는 개념과 등가적인 지위를 지닌 ‘이미지’ 혹은 ‘사물’로서 제시된다. 따라서 개념미술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시각적 대상은 시각적으로만 인지되는 것이 아닌 ‘기호’ 혹은 ‘기표’, 나아가 단어 자체로 얼마든지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개념미술이 언어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바로 개념미술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정의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현재의 사유는 기존의 사유를 갱신하며 확고해 보이는 것에 의문을 품거나 새로운 사유로 대체한다. 그것이 왜 ‘개념’을 사용하는 작가들이 끊임없이 태도의 변화를 추구하는가를 설명하는 이유이다. 사유가 시각적 형태 속에 ‘투명하게’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언어는 윤리성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으며 그것이 심미적인 것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에서 제시한 “윤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은 동일한 것이다”와 같은 명제는 개념미술 초기의 사유에 원형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개념미술은 80, 90년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분석적, 정의적 성격에서 좀 더 해석학적인 방향으로 확대되었으며, 사실상 개념미술이라는 역사적이고 장르적인 범주 대신 ‘개념’을 강조하는 모든 형태의 창작들로 삼투, 분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 데는 몇 가지 변인들이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의 개념미술을 평가하는데 있어 고려할만한 참조들을 제시한다. 그 첫 번째는 모더니즘에서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적 흐름의 변화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 구조주의는 개념미술의 성찰적이고 자기지시적인 예술형식에서 구체적이고 관찰을 강조하며 개별적 서사(narrative)들로 이어지는 새로운 유형의 개념적 형식들을 프로모션했다. 따라서 예술가 집단을 중심으로 한 개념주의적 태도는 예술계 외부의 공동체와 미시적 삶들을 향해 열린 관계들로 대체되었다. 개념은 관념에서 조건들로 바뀌었고 실재(reality)는 픽션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90년대 이후 역사적 장르로서의 개념미술이 사라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잠재성이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유화와 조각을 망라한 거의 모든 예술작품들 속에서 개념적 태도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개념은 이미지와 오브제에 상응하는 일반적 재료가 되었다. 사실상 개념미술을 ‘개념적’인 미술들로 확대한다면 이미 1960년대 초기에 상당히 다양한 유형의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맨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개념미술의 시점을 어디로 잡는가에 따라 개념미술의 폭과 다양성은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이 90년대에 좀 더 분명하게 지각되기 시작한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변인은 후기 모더니즘의 상황 하에서 신-좌파적 태도가 새로운 개념주의적 비평에 제공한 지적 모델이다. 1960년대에 개념미술을 추구하던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기존의 미술이 지닌 지나친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968년에 등장한 ‘아트&랭귀지’와 같은 그룹 역시 기본적인 태도는 난해한 작품들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일반적인 문학적 소양만 지니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브루스 나우만이나 로렌스 비너와 같은 작가들 역시 예술작품이 구축하는 아우라와 위계에 저항하면서 가장 구체적인 형식으로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과정을 공개하였고 그 안에서 어떤 것이 핵심적인 주제인지를 제목을 통해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주의자들의 작품들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예술작품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에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개념미술의 형식적 요소들을 차용할 때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관객들이 작품을 자기완결적인 예술품으로 바라보도록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는 90년대 미술 속에 좀 더 구체적이고 개방적인 서사들이 빈번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 정보화, 동시화의 물결 속에서 동시대미술은 보다 시민들에게 익숙하게 읽힐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더욱 활발해진 예술가들의 모노그래피 출판, 기획중심의 전시, 매스미디어를 통한 효율적인 전달에 힘 입어 동시대미술은 9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인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도큐멘타와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의 yBa와 터너 프라이즈, 새로운 또래집단(peer group)으로 등장한 큐레이터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는 이러한 개념적 미술의 보편화와 동시대미술의 확산이 몰고 온 필연적인 결과들이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초부터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70년대 한국 개념미술의 지적이고 반-위계적인 태도를 이으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문화를 자신들의 창작태도 안에 포용하거나 차용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의 실패와 한국에서의 민주화의 실현, 그리고 88년 올림픽 이후의 강력한 시장경제의 대두와 더불어 이들은 80년대의 강박적이고 정치적인 태도 대신 팬터지와 유머, 싸구려 문화의 비주얼과 허름한 전시공간 등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탈-위계적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에 ‘신세대’ 작가군으로 불리며 ‘혼성모방’ 혹은 ‘키치’(Kitsch) 등의 키워드로 수식된 이들의 작업은 이후 글로벌리즘의 물결을 타고 한국의 동시대미술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더욱 개념적인 성향을 띠면서 한국 동시대미술의 주도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ART-LANGUAGE, THE JOURNAL OF CONCEPTUAL ART Vol. 1,No. 1 (May 1969)

셋째는 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비롯된 새로운 반-예술적 태도와 비엔날레 체제를 중심으로 한 신-아방가르드의 등장이다. 냉전의 붕괴가 서구 자본주의의 승리로 간주되면서 글로벌리즘의 동력을 제공한 초국가적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은 동시대미술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통신, 여행, 교역에 있어서의 폭발적인 기술적 발전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관행을 바꾸었다. 90년대 초의 서구 미술시장의 붕괴는 당시의 급격한 사회변동이 불러온 경제적 불안감을 반영한다. 반면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는 장르들 즉, 설치, 영상, 퍼포먼스, 미디어, 사진 등의 비-시장적 매체들은 비-시장 전문가 계층인 큐레이터들의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90년대의 미술계를 지배하였다. 이 매체들은 70년대 개념미술의 등장과 더불어 심화, 발전되었던 매체들이기도 했기 때문에 90년대의 동시대미술은 자연스럽게 70년대의 개념미술을 계승한 것처럼 보인다. 대형 갤러리 중심의 개인전들에서 바로 시, 정부 주도의 대규모 기획전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가게 되자 기존의 베니스 비엔날레와 도큐멘타와 같은 전시들이 프로모션의 핵심이 되었다. 여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 큐레이터 그룹의 성장은 이들 청년 지식인들이 지닌 이념 즉, 예술에서의 반-자본주의적, 탈-위계적 프로그램의 구현과 그것을 통한 사회 변화의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만한 예술적 프로젝트들의 전시로 이어진다. 동시대미술은 끊임없이 1910/20년대의 예술적 혁신과 1968년 5월 혁명의 궁극적 실현이라는 두 가지 이상을 과거로부터 수혈 받고 있다. 이것이 90년대 이후 새로운 개념미술의 지평이자 70년대 개념미술과 공유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개념미술을 시기적으로 나누어 보면 크게 4개의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1969년에 출발한 A.G 그룹과 1971년에 창립전을 가진 S.T 그룹으로부터 시작되는 70년대 아방가르드의 활동으로 요약된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생각되므로 세세한 점들은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이 당시의 미술은 동양의 자연주의 사상과 서구의 분석철학 등을 이론적으로 차용하면서 당면한 한국의 정치, 사회, 역사적 상황들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당시의 예술적 이슈들은 크게 1) 부재하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 2) 언어적 주체로서의 작가의 위치, 3) 탈-예술적 실천의 형식에 대한 탐색 등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이후의 개념적 창작방식들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창작에 대한 비평적 담론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고 참조되었다. 특히 언어적 주체로서의 작가에 대한 의식이 구체화되고 다양한 역할 요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치-사회-역사적 상황들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첨예한 이슈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요구는 80년대에는 좀 더 직접적인 언어들로 이어졌으나, 90년대 이후에는 우회적, 반어적, 지연적, 서사적 언어들로 변이하였다.

두 번째는, 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정치적 미술과 비평이 담론을 지배하던 ‘민중미술’의 시기이다. 비평가 성완경과 ‘현발’(현실과 발언)을 주축으로 1980년 출발한 ‘민중미술’은 곧 문화운동의 형태로 발전되어 제 5공화국 체제의 군사독재로 대변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정치성과 윤리성을 결합시켰다. 뉴욕 퀸즈 미술관 관장이던 제인 파버에 의해 1999년에 출간된 의 한국 부분을 맡은 성완경은 한국에 있어서의 개념미술을 한 마디로 ‘민중미술’이라고 요약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즉 ‘개념주의’(conceptualism)의 두 가지 측면인 반-자본주의적 기원과 언어적 주체로서의 작가의 위상을 기억한다면 한국 근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 사회, 역사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그것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민중미술을 탁월한 개념미술로 간주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평가에 대해 다른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논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평가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관점은 사실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세 번째는, 90년대 한국과 서구 중심의 세계와의 동기화에 의해 나타난 변화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사이에 일어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트랜스 아방가르드, 신-표현주의 등의 퇴조와 맞물려 세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의 흐름이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담론들을 대체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설치미술, 퍼포먼스, 영상, 사진과 같은 탈-시장적 매체들이 주류를 이루고 비엔날레와 큐레이터들에 의한 기획전시들이 영향력을 지니게 되면서 6, 70년대 개념미술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게 된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개념미술을 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첫째는, 70년대의 10년 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국제적 개념미술의 흐름 속에서 예술적 생산에 대한 비평적 태도를 견지하는 전통이 80년대의 정치적 혼란을 거치면서 거의 단절된 것이다. 두 번째, 반대로 제 5공화국 체제 하에서 발생한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민중미술이 주류 담론을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것이 80년대 십 년 간의 대부분의 개념적 시도들을 대체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인식은 90년대 이후의 비평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세 번째는, 개념주의적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흐름이 1995년 제 1회 광주비엔날레를 전환점으로 국제적 흐름과의 새로운 연결점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부터 대중문화, 지역성, 비-주류성, 소수성, 하위문화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작가들이 청년층에서 대거 등장하였다. 이불, 최정화, 고낙범, 홍성민 등의 이들 신세대 작가들은 아이러니와 정치성, 일상과 팬터지, 지적 교류와 유희, 무관심과 신체성 등을 혼재시키면서 소위 ‘컨템포러리 아트’의 도래를 알렸다. 한국에서 컨템포러리 아트 즉, ‘동시대 미술’이라는 용어는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이라는 표현을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 안에는 1) 탈-냉전으로 진입한 세계의 새로운 범주적 전환, 2) 인간, 이성, 역사, 진보 등의 근대적 관념들에 대한 비판, 3) 집단적으로 전개되어 온 역사에 대해 거리를 취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가능해진 ‘개인’이라는 관념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식, 등에 대한 각성이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동시대미술은 그 바탕으로부터 개념미술의 새로운 지평과 맞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의 동시대미술은 또 다른 새로운 상황들을 맞았다. 지난 10년 간 한국 뿐 아니라 세계는 전에 없는 많은 변화들을 겪었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더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9.11 테러로부터 리만 사태로 상징되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가속화되는 전지구적 차원의 재난과 격동들은 개개인의 삶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생존방식들에 전에 없이 심대한 변화와 충격을 가하고 있다. 사건들은 이전과 달리 광범위한 지역을 배경으로 이념적, 이론적, 역사적 시계(視界) 안에서 벌어지는 대신 종교, 문화, 경제, 기술과 같은 범주들의 세부영역에서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세계 전반과 지역들을 동일한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세계와 그 안에서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개인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사유와 성찰의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한국의 개념미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보다는, 국제적 창작환경의 복잡한 변인들 속에 한국의 작가들이 전위적으로 자생하는 방식을 밝히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10년 간 주요 작품들의 개념적 이슈들을 살펴보면, 1) 잠재적 공동체에 관한 픽션들, 2) 배치와 조합 - 수수께끼(riddle), 3) 작품의 구성요소로서 무대와 시점의 부각 등이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로 김범과 김홍석 등을 꼽을 수 있다. 김범은 <변신술>, <고향>, <눈치> 등의 글쓰기를 통해 허구적이고 잠재적 게임의 방법, 전략, 규칙 등을 수립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비-실재적 공동체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그것이 어떤 예술적 혹은 정치적 실재와도 명시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모호하거나 황당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거리’는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실재적 조건들이 지닌 복잡성과 다중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개념은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의식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작품은 단지 그것의 방아쇠 역할 만을 할 뿐이다. 방아쇠의 형태는 관객들의 의식을 향해 구조화되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작품에 특정한 서사를 부여하는 이유가 된다. 방아쇠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추상화되며 비-실재적인 것처럼 보인다. 김홍석은 다양한 픽션들을 현실의 공간 속에서 사건으로 실현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Translation 프로젝트’나 ‘창녀 퍼포먼스’ 등은 실제와 허구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안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공모자들로 변화시켰다. 최근의 ‘공공의 여백’(People Specific Public Blank) 프로젝트는 공공장소에 설치될 수 있을 커다란 규모의 모뉴멘트들에 대한 것으로, 상상 속의 ‘공공성’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팬터지를 일종의 제안서 형태로 구성한 것이다. 여기에서 제안되는 10개의 기념물은 모두 글과 간단한 드로잉으로만 설명되어 있으며, 그 내용들은 실제 구현된다면 그것만으로 일종의 파격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제안서’는 70년대의 개념미술이 지니던 ‘문서예술’의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팬터지’의 공개라는 점에서 급진적으로 다르다. 2) 배치와 조합은 2000년대 한국미술에서 중요한 개념적 장치들이다. 예컨대, ‘장영혜 중공업’의 작품들은 상호지시적인 단서들을 각각의 텍스트 작업들 속에서 내장하고 있다. 김범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단서들을 수수께끼의 형태로 작품 속에 담고 있으며 이불, 김소라, 박윤영, 양혜규 등의 작품들에서도 작품의 이해를 위한 단서들이 이차 텍스트나 드래프트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만큼 작품의 일차적 감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작품 외적 참조들의 중요성은 2000년대 이후 개념적 작업들에서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작품의 감상이 시각적 외연의 차원이 아닌 감상자의 모든 지적 자원을 동원한 적극적이고 활발한 몰입의 차원으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의 구성방식이나 제목, 2차 텍스트의 구성, 작가 자신의 삶과 작품과의 동기화 등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는 것이다. 3) 무대와 시점적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이나 감상자의 위치가 미술에서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정연두의 작품은 사진이건 동영상이건 모두 일종의 시점적 착각이나 연극적 몰입을 전제로 한 연출로 이루어져 있다. 연출(mise-en-scène)은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이 아닌 시점의 이동(shift)을 전제로 한다. 임민욱의 영상작품들은 퍼포먼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다중적인 시제와 시점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강 유람선을 이용한 퍼포먼스 프로젝트 는 연극과 퍼포먼스, 파티, 여행 등의 상이한 형태들을 하나의 무대 위에 올리고 있다. 퍼포먼스의 약진은 이러한 다양한 요구들이 집약된 현상이다. 2008년부터 퍼포먼스는 새로운 개념적 이슈들을 한데 묶어 다루는 예외적인 장르가 되고 있다. 김성희가 기획하는 , <봄> 등의 퍼포먼스 프로그램과 백남준 아트센터, 사무소 등이 꾸리는 프로그램들 역시 퍼포먼스에 방점을 찍고 있다. 모든 정보와 사건들이 가상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시대에 퍼포먼스는 구체적이고 즉물적인 시공간 안에서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예외적이고 대안적이다.

김홍석 Kin, Hong Seok, Public Blank /2006-2008, 102 x 73 cm,16개의 액자로 이루어진 드로잉 작품, 인화지 위의 피크먼트 프린트

2010년대에 개념미술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선, 개념미술이라는 역사적 형식은 이미 동시대미술 안에 삼투되었다. 동시대미술은 그 자체로서 개념성을 전제로 할 것을 예술가들에게 요구한다. 심지어, 가장 직관적인 회화나 드로잉, 조각과 같은 전통적 매체에 있어서도 개념성은 어떤 차원으로든지 적용될 수 밖에 없다. 개념은 심지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안에서조차 ‘침묵’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이미지, 오브제와 더불어 개념은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세 가지 측면 중 하나이다. 개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어떤 개념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보다 실질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개념미술의 출발에서 고려되었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인 탈-위계성과 반-자본주의적 성격은 여전히 중요한 동시대미술의 전제로 남아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이한 입장의 차이들이 있다.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서조차 가장 급진적인 예술가들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대안적 시장이나 부업, 기금, 공적 지원과 같은 다양한 선택들을 하고 있다. 교육이나 정책과 같은 위계적 구조의 생산양식에 대해서는 혁명이나 전복 대신 참여와 간섭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동시대미술이 어떤 새로운 이름을 지닌 범주나 양식으로 전개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예술 자체가 아닌 세계의 변화를 전망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1910년대 경 최초의 탈-위계적 미술이 ‘레디메이드’라는 형태로 시작된 이래 정확히 한 세기가 지났다. 어떤 미래가 동시대미술의 성격을 결정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여기에 임박하고 있다.

 

2011년 경기도미술관 <팔방미인>전 세미나 원고

유진상 / 계원예술대학 교수. 2012 미디어시티서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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