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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의 만화 미장센

2010-08-24  


만화책의 그림 칸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이차원적 미장센의 구성에서 상업 광고와 축약된 기호가 재전유된 이미지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u, 1965)에서 다이아몬드 모양의 눈을 한 호랑이 그림,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Deaux ou trios choses que je sais d’elle, 1967)에서 롤스로이스에 기대선 여자의 만화컷, 「중국 여인」(La Chinoise, 1967)에서 베트남에게 제국주의적 복수를 하는 배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맑스-레닌주의자들이 그들의 경구를 아파트 흰색 벽에 휘갈기는 말풍선 류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 인용은 절충주의적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로서 고다르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나 고다르가 빌려오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일렬로 된 만화 이미지들 역시 단순히 미적으로 콜라주된 소재가 아니다. 고다르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작품처럼 이런 인용들 아래에는 보다 전반적으로 예술과 시각기호의 역할에 관해, 그리고 동시대 사회에서 그 역할에 대한 사유를 품고 있다.

게다가 고다르의 만화(역주: 이 글에서 ‘만화’의 범주는 인쇄물로 제한된다)적 미장센은 고정적인 미적 실체로 볼 수 없다. 「메이드 인 USA」(1966)에서는 만화를 재맥락화시킨 이미지들을 그래픽적 수단으로 사용하며 만화가 구성되는 스타일을 활용했던 반면 「중국 여인」에서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아이콘과 상징들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했다. 고다르의 만화를 인용하는 것에서부터 모방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1972년에 장 피에르 고랭(Jean-Pierre Gorin)과 협업해 만들어진 「만사형통」(Tout va bien)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이런 미적 변화를 상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팝 아트, 포스트 모더니즘, 만화 기호학의 얼개로 볼 수 있는 세 영화의 해당 시퀀스를 형식적으로 각자 분석할 것이다.

 


1. 「메이드 인 USA Made in USA」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의 「붉은 사막」을 인용하면서) 나는 나 자신이 그런 식으로 영화를 제조(manufacture)하는 법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만 제외하고 나는 그런 종류의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졌다. 「메이드 인 USA」는 그러한 충동을 처음으로 반영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이해받지 못한 이유이다. 「메이드 인 USA」는 (재현 영화가 아닌) 다른 그 무언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마치 재현 영화처럼 본 것이다.”  — 장 뤽 고다르 [1]


「미치광이 삐에로」에 두 만화(Nickel Footed Gang, Gerald Norton)를 등장시키면서 고다르가 만화 인용을 영화에 넣기 시작했다면 「알파빌 Alphaville」(1965)의 주인공 레미 코션은 만화의 히어로와 하드보일드 형사 캐릭터에서 따오기도 했다. 「메이드 인 USA」는 고다르가 시각적 재현의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목표와 함께 “이미지 안으로 지나갈 수 있는” 시도라고 말했던 첫 결과물이다. [2] 나는 「메이드 인 USA」의 형식적인 분석을 위해 폴라 넬슨(안나 카리나)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이지 않는 습격자에 의해 정신을 잃고, 깨어나 리차드 위드마크(라즐로 자보)와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를 골랐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해당 프레임의 이미지들이 쇼트의 순서와 대략적인 시간과 함께 제공될 것이다.


쇼트 1A와 1B, 폴라가 걸어가다가 습격을 당해 정신을 잃는다, 34:33—34:57


쇼트 2, “!…Bing” 삽입, 34:57—34:58; 쇼트 3, 폴라가 깨어난다, 34:58—35:58


쇼트 4, 위드마크, 35:58—36:13; 쇼트 5, 위드마크와 폴라, 36:13—36:32


쇼트 6, 폴라, 36:32—36:57; 쇼트 7, 위드마크, 36:57—37:12


쇼트 8, 잡지 그림(Pulp Art) 삽입, 37:12-37:17; 쇼트 9, 폴라와 위드마크, 37:17-37:30


쇼트 10, “?” 삽입, 37:30—37:44; 쇼트 11: 위드마크, 37:44—37:56)


이 시퀀스는 고다르의 미적 양식이 빠르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쇼트 1은 정원을 배경으로 한 직전의 두 쇼트처럼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20초 넘게) 이어지며 폴라가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와서 공격을 당하여 정신을 잃게 되는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팬 기법으로 좇는다. 이 부분과 그 전 쇼트들에 있어서 고다르의 카메라 사용 기법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하지 않음으로 공간과 시간에 충실한 현실적인 설정에 기대고 있다. 여기서 고다르의 공간과 시간에 충실함은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적인 미적 모델을 완벽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다르의 에세이 「몽타주는 나의 괜찮은 관심사」(Montage My Fine Care)에서 몽타주와 미장센의 이론을 통해 자신의 미적 관념이 “미장센이 자동으로 몽타주를 암시한다”는 데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3] 쇼트 2에서 시퀀스가 진행되는 것처럼 고다르는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Bing,”이라 적힌 만화칸을 삽입하고 1초 동안 보여준다. 이 이미지에는 영화적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그의 신념이 담겨 있었다.

이 시퀀스 전후로는 볼 수 없는 이런 삽입 이미지에는 크게 들리는 쾅 소리도 함께 한다. 그 이미지는 원래의 맥락 안에서 동작의 종결을 찍을 뿐 아니라 고다르가 이미지의 영역을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쇼트 3에서 폴라는 깨어나 어디서 그렇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쇼트가 시간상으로 꽤 긴데도(약 일 분 가량)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으며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쇼트 3은 쇼트 2가 감축시켰던 것을 한층 더 진전시킨다. 연쇄적인 쇼트들에게서 움직이는 행위는 오직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프레임 안과 밖을 드나드는 폴라와 위드마크에 의해서만 볼 수 있으며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이다. 쇼트 3에서 7까지 살펴보면, 이것이 두 등장인물의 대화를 일련의 그림들로 이은 만화책의 레이아웃과 상응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영혼의 근원The Origin of The Spirit」 [4]


만화는 내러티브를 진전시키기 위해 연쇄적인 이미지들에 기대는 영화와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화를 전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맞추는 쇼트/역쇼트의 영화적 설정에 기대지 않는다. 주요 이유는 만화, 만화책, 그림책의 물리적인 제한 때문이다: 쇼트/역쇼트에 의존하는 레이아웃은 너무 많은 칸을 잡아먹어 읽기 버겁게 만들 것이다. 상단의 윌 아이즈너(Will Eisner)작 「영혼 The Spirit」 첫 페이지를 예로 들어보자. 데니 콜트가 경찰 국장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서 그와 도망간 악당의 행방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아이즈너는 공간의 연속성을 위해 쇼트/역쇼트 기법을 절대로 쓰지 않았다. 사실상 세 번째 칸에서 네 번째 칸 사이에서 영화에서의 180도 규칙이 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즈너의 만화칸들은 정면으로 독자들을 향하게 구성되었다.

고다르의 시퀀스의 두 번째에서 열 번째 쇼트 사이에는 단지 만화 그래픽만이 인용된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폴라와 위드마크 사이의 대화의 공간적인 구성(쇼트 3-7, 11)이 만화의 공간적 레이아웃에 바탕을 둔 미장센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대화주요색상(빨강, 흰색, 파랑), 평평한 구성, 쇼트/역쇼트 기법의 부재에 기댐으로써. 이 시퀀스가 공간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점은 미로같은 복잡한 플롯에 의해 영화의 더 큰 부분으로 확대된다. 정말로 고다르가 보는 이에게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부분은 나중에 폴라와 위드마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폴라가 그의 전애인의 살해로 몰아간 사건을 찾으려고 애쓰며 “나는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자 위드마크는 “미장센, 미장센. 오, 미장센.”이라고 대답한다.

고다르가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성으로부터 영화 형식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하지는 않다. 1967년 이전에 고다르의 형식에 대한 실험은 필름 장르, 그 중에서도 특히 자주 프랑스의 범죄영화나 필름 누아르 안에서 이루어지곤 했으며 「메이드 인 USA」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임스 로이 맥빈(James Roy McBean)은 그의 영화 리뷰에서 “고다르는 일반적인 영화 관람자들의 경향을 잘 알고 있다. 일화가 많고 때때로 영화에 대한 몰입과 색감과 구성과 빛의 미묘한 언어를 이해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플롯’ 구조에 그들은 집중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5] 그러나 맥빈의 관찰은 고다르가 「메이드 인 USA」에서 플롯과 스토리텔링에 덜 신경을 썼던 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시도를 위한 영화를 만들기 위함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위해서였다. 플롯은 거의 의미가 없는 반면, 형식의 논리는 그렇지 않다. 맥빈은 이 뒤의 형식적 논리가 소통 기호의 탐구로 인해 일어났다고 했고, 이런 고다르식의 또 다른 수사법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에서 완벽하게 드러나 있다.

「메이드 인 USA」에서 보여준 고다르의 기호에 대한 탐구는 구어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으며 소리와 시각 사이라는 두 성분 중에서 이미지에 대한 믿음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이드 인 USA」에서 고다르는 언어에 대한 불신을 여러 장치들을 통해 보여 주었다: 전화 벨소리나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에 묻히는 대화가 그 예이다. 또한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왜곡된 소리도 있다: 음성 녹음과 폴라, 노동자, 바텐더가 등장하는 씬에서이다. 그러나 고다르는 이 청각적인 것을 청각적인 것으로 끊었을 뿐 아니라 시각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 예를 들어 15초가량 지속되는 열 번째 쇼트에는 물음표가 삽입되어 폴라와 위드마크가 그의 남편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 장면의 종결을 찍는 영화적 수단이 되었다. 이 기능을 통하여 물음표만큼이나 꽤 직접적으로 고다르는 “이미지 안을” 통과할 수 있는 문을 제시하려 한다. 이는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의 미국 팝아트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림 2: 리히텐스타인의 「블램 Blam」 1962; 그림 3: 「익사하는 소녀 Drowning Girl」 1963


리히텐스타인은 고다르처럼 만화 인용을 시각적 기호 쪽으로 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대니얼 야커본(Daniel Yacavone)이 지적한 바 있듯 고다르와 리히텐스타인은 인용의 방식에 있어 서로 다르다. 고다르는 이미지를 인용해 그것을 몽타주의 일부로써 사용하고 그럼으로써 기존 이미지를 재맥락화하는 반면, 리히텐슈타인의 인용은 이미지 시퀀스를 완전히 무시하고 하나의 캔버스 위에 하나의 만화칸으로써 감축한다. [6] 나는 그에게 동의하는 한편, 고다르와 리히텐슈타인의 인용 방식이 각기 다른 결과를 내도록 이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예술사학자 조나단 파인버그(Jonathan Fineberg)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기호를 그렸다. 그의 진정한 주제는…미디어의 어법에 대한 해석과 그 변용의 암시이다.” [7] 리히텐슈타인에 반해 「메이드 인 USA」의 인용은 해석의 암시나 그런 미적 차원으로부터 나와 복잡화된 것들에 의구심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목표가 시각적 차원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화를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흘렀다: 고다르는 말로써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만화 이미지를 사용함으로 영화의 청각적 효과가 보여주는 가치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만화 미장센의 사용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와 논의가 이어질 「중국 여인」에서 더욱 성공적으로 시각적 기호를 탐색하도록 발전시켰다.

 


2. 「중국 여인 La Chinoise」
 “오늘날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만화 스트립 안에서 사는 것 같다.” — 장 뤽 고다르 [8]


「중국 여인」은 여기서 논의되는 범위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시퀀스들을 담고 있지만, 간결하게 하기 위해 한 시퀀스와 미적 특징이 다시 잘 드러나는 또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먼저 배트맨의 기관총 몽타주, 퓨리 병장과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시퀀스를 분석하기로 한다. 다음과 같이 해당 프레임의 이미지들이 쇼트 순서대로 시간과 함께 제공될 것이다:

 
쇼트 1: 이본느, 35:06—35:12; 쇼트 2: 기욤, 35:12—35:17

  쇼트 3: 배트맨, 35:18—35:18; 쇼트 4: 퓨리 병장/캡틴 아메리카, 35:18—35:19
[쇼트 3과 4는 기관총 소리와 함께 몇 프레임마다 번갈아 등장한다, 35:18—35:28. 대략 열여섯 번 교차한다.]


쇼트 5: 이본느, 35:28—35:41


이 시퀀스는 약 삼십 초 정도로 꽤 짧다. “제 2막”(이보다 나은 말을 찾지 못했다)의 클라이막스가 있는 영화에서, 그리고 그 부분에는 기차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정지 쇼트들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약 4분가량 지속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짧은  시퀀스를 특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여기서 인용의 형식은 큰 시퀀스에서 만화칸들을 각기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메이드 인 USA」에서의 만화칸 “!…Bing” 과 “?”의 용법을 명백히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한 번 고다르의, 바쟁의 미장센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미지와 몽타주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 주게 만든다. 만화의 인용에 대한 접근 방식이 영화 전체의 내용과 교차하도록 하는 형식으로써 고안된 것이다.

「메이드 인 USA」는 만화가 씬에 시각적 종결 형식으로 들어가면서 공격을 받은 폴라의 동작과 위드마크와의 대화를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반면 「중국 여인」 시퀀스에서의 만화 인용은 정치적으로 쓰였고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메이드 인 USA」에서의 만화 사용의 방식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함께 연결지어 미디어에 대한 해석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중국 여인」의 인용은 그런 해석의 결과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두 유력한 만화 출판사의 수퍼히어로들을 인용함으로, DC(배트맨)과 마벨(퓨리 병장,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씬의 맥락이 「메이드 인 USA」의 동작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기능을 뛰어 넘었다.


그림 4: 캡틴 아메리카…코미 스매셔 [9]


여기서 고다르가 수퍼히어로를 쓰는 방식은 (특히 「캡틴 아메리카」에서) 만화가이자 이론가인 스캇 맥클라우드(Scott McCloud)가 아이콘 또는 “사람, 장소, 사물 혹은 생각을 표상하는 어떤 이미지”라고 묘사했던 것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표상하는 상징, 그 두개 모두에 해당된다. [10]

이러한 가설은 고다르가 「중국 여인」의 제작 동안에 미국 만화를 자주 보았었다는 추측에 기대어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만화 「캡틴 아메리카」는 그 적장이 공산주의였던 한 영웅을 묘사한다. 1960년대 초반, 「캡틴 아메리카」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닉 퓨리(Nick Fury)와 그의 “하울링 특공대”에 합류했다. 고다르가 기욤에게 참전 국가들의 국기들이 그려진 선글라스를 끼게 함으로 베트남 전쟁의 선포를 알렸던 “의식” 다음에 「캡틴 아메리카」와 퓨리 병장의 이미지를 배치했던 것으로 보면 원작의 내러티브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고다르는 기욤에게 마오쩌둥의 「작은 붉은 책 Little Red Book」에서 “제국주의와 모든 반동 세력은 종이 호랑이들이다. 그것들은 사나워도 정말로 힘이 세지는 않다.”를 읊게 함으로써 만화 몽타주를 슬쩍 비추어 보였다. “베트남이 게임 캐릭터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기욤은 그의 손가락을 튕겼고 장면은 바로 베트남 삼각 모자처럼 전등갓을 머리에 쓴 이본느(줄리엣 베르토)에게로 넘어간다. 해당 시퀀스의 첫 번째인 그 쇼트는 종이 호랑이(이 이미지는 「미치광이 삐에로」와 1967년 「주말」에서도 쓰였다)를 등장시켰고 그것은 마치 은유적으로 베트남의 네이팜 폭탄 사건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이 장면 다음에 고다르는 기욤으로 돌아가 (쇼트 2) 그가 “첫째로 몇 가지 사실들, 마치 진실이 거기 있는 것처럼”이라고 말하게 한 다음 만화 몽타주를 시작한다.

기관총의 총성으로 종결되어 결말로 향하도록 편집한 해당 몽타주의 마지막 쇼트에서 고다르는 캡틴 아메리카와 퓨리 병장의 이미지에 이본느의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국가해방전선이 이길 것이다.” 이 몽타주 시퀀스는 캡틴 아메리카와 퓨리 병장이 드러낸 미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호랑이와 종이 상징을 병치시킴으로써 기욤이 인용한 마오쩌둥의 말을 그린다. 그런 식으로 고다르는 만화의 인용에 대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은 해당 시퀀스의 마지막 쇼트에 의해 강화된다: 「작은 붉은 책」들로 세워진 벙커 뒤에 숨은 이본느가 이동식 라디오로 기관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전체적인 시퀀스의 모습은 대중예술의 형식이 우세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치에 개입해 그 이데올로기에 맞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분석에서 고다르의 이런 식의 몽타주 사용의 효과에 대해 논했다. 제임슨은 “다음과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다르 영화에서 매우 격하고 훈계성으로 병치된 것들—광고 이미지, 인쇄된 슬로건, 뉴스 장면들, 철학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그 게스투스나 허구적 캐릭터—는 관람자들이 메시지의 형식으로 합쳐 버릴 것이며, 특히 옳은 메시지만 남을 것이다.” [11]  이렇게 기관총 몽타주의 형식에 대한 분석이 보여주었듯 고다르의 병치가 메시지로 해석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옳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논쟁적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의 첫 부분에 드러났듯 고다르의 주어진 목표는 분명한 이미지(그림 5)로 막연한 생각들에 맞서는 것이다. 기관총 몽타주는 이러한 하나의 시도로써 보이며, 나는 미국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미국의 수퍼히어로의 상징을 성공적으로 이용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제임슨의 비평이 상기시키는 관점에서, 고다르를 연구하는 윌러 윈스턴 딕슨은 「중국 여인」이 “형식주의 프로파간다의 따분한 작업이며…놀랍도록 나이브하게…마오의 가르침을 신봉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딕슨은 “옳은” 메시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2] 고다르가 혁명 운동을 찬성했을지도 몰라도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은 다섯 가지 방법으로 드러나는데 그 중 네 가지는 내러티브이고 한 가지는 형식적이다. 네 가지 내러티브 사건은, 그룹이 첫 번째로 고른 암살자 키릴로프의 자살, 앙리의 추방, 베로니끄가 철학자 프랜시스 장송과 벌인 좌담회 그리고 그녀가 큰 실수를 한 암살 시도의 비극인데 모두 마오를 “놀랍게도 나이브”하게 신봉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나머지 한 가지인, 형식적 측면에 있어서의 논의는 「중국 여인」의 최종적인 미적 특징으로의 분석으로 이어진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아파트 벽에 칠한 텍스트를 고다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관해서이다. 여기서 고다르의 미적인 선택은 그의 초기작들과 같지 않았다. 고다르가 텍스트를 사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이틀 카드의 삽입을 종종 썼던 반면, 「중국 여인」은 그 수사적 장치를 장소 안에 물리적으로 배치했으며 나는 이것이 고다르가 「메이드 인 USA」에서 썼던 만화 미장센보다 보다 정교한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만화는 명백하게 텍스트를 사용하는데 이는 (그림 1의 말풍선에서 볼 수 있듯) 대화나 청각적 종결(만화칸 “!…Bing”)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서술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림 5: “분명한…”, 1:53-2:43; 그림 6: “우파 혁명의…”, 4:01- 4:51

그러나 이론가 데이빗 캐리어(David Carrier)가 지적했듯이 만화에서 텍스트는 일반적으로 “수동적인 요소이다…단어들은 그저 그림에 동반할 뿐이며 이미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13] 캐리어의 의견은 여기서 유용하게 쓰인다. 고다르의 타이틀 카드의 사용은 수동적이지는 않지만 그것들의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분리라는 특징 때문에 이미지에 동반하거나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 타이틀이 일련의 해설을 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논의되는 미장센의 형식처럼 캡션의 역할을 충족하지는 않는다. 캡션은 타이틀 카드와는 다르게 그것의 시각적 부분과 함께 직접적인 대화와 연관해 있다(이는 「만사형통」의 분석에서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5와 6의 캡션은 어떻게 시각과 연계되는가?

이미 언급된 바 있는 그림5의 캡션, “분명한 이미지로 막연한 생각과 맞서야 한다.”는 약 1분 동안 등장인물 없이 지속되는 정지 쇼트이다. 쇼트 내내 우리는 기욤과 무명의 여자가 임대와 여자의 부모님의 직업에 관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이 캡션은 고다르가 사운드와 이미지를 통해 영화적 언어의 장벽에 대해 계속해서 사유하고 있음을 다시 드러낸다. 이 장치의 다음 등장은 그림6에서 볼 수 있듯 고정된 공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우파 혁명의 길에 선 마이너리티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다.”라는 뜻의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서 등장인물 없이 쇼트가 시작되며, 곧 베로니크가 프레임 안으로 재빨리 들어와 키릴로프를 위해 문을 열어준다. 그는 의식을 잃은 동료 앙리를 데리고 온다. 앙리는 그가 다른 맑스-레닌주의자 무리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베로니끄에게 알렸으며 그 다음으로는 오프스크린 상으로 기욤이 “적에게 공격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사이를 가르는 구분을 명확히 하기 때문이다.”로 대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텍스트는 씬에 대위적 요소를 부여한다. 이 씬은 아파트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자신이 속한 이데올로기 무리에 의해 공격당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헨릭 입센의 재해석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용구를 감안하면 그 무리의 목적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첫째, 만일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진정 이데올로기적 마이너리티라면 그들이 속한 무리 안에서 육체적 폭력을 부추긴다는 점은 놀랍도록 아이러니하며 기욤이 “적”이 되는 것을 판단하는 모습도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맑스-레닌주의자들의 추종자들이 “적”이라고 할 만한 다른 파벌들을 이해하는 지점까지 너무 커져버렸을 경우엔, 그들의 위치가 과연 마이너리티에 있냐는 질문을 품게 할 것이다.
고다르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형식적 비판은 변증법적 방식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그의 만화 미장센에 대한 탐구와 교차한다. 기관총 몽타주는 (스튜어트 홀의 작품으로부터 빌어와) 반-제국주의 메시지로 “해독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맑스-레닌주의의 신념 체계를 완전히 지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이런 고다르의 경향에서 두 번째로 나타난 미적 표현인 캡션은 반대로 드러날 수도 있겠다. 캡션 “우파 혁명의…”는 「메이드 인 USA」의 삽입 이미지처럼 설정에서 일어나는 행동들을 뒷받침하는 대신 행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 의문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캡션이 맑스-레닌주의자들의 행위와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확인시키기 위함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씬의 미장센 뿐 아니라 영화 전체적인 논리(형식, 내러티브 둘 다)까지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만화 미장센과 캡션의 사용이라는 주제를 한층 더 확장시키기 위하여 나는 고다르와 고랭(Jean-Pierre Gorin)의 「만사형통」을 마지막으로 분석하겠다.


3. 「만사형통 Tout Va Bien」
 “장 뤽 고다르의 멋진 공식은 영화를 ‘음악을 칠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를 그대로 가져와 만화에 적용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만화 이미지들은 영화의 이동하는 이미지만큼이나 그림 그리기와 많은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는 사이의 간격들(시각적 지속성이 영화 매체의 불연속화하는 성질을 지워버리는 것과도 같다)을 보여 주면서 리드미컬하게 그에 맡겨진 이야기를 풀기 때문이다.”  — 티에리 그로엔스틴 (Thierry Groensteen) [14]


지가 베르토프(Dziga Dzyga) 집단과 협력한 많은 작품들 하나인 「만사형통」에서 고다르와 고랭은 만화칸을 인용하는 데서 벗어나 만화책 한 쪽의 레이아웃을 통째로 모방한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로써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소시지 공장 내부를 가로지르는 트래킹 쇼트를 들 수 있겠다. 아마도 혹자는 이것이 하나의 미적 표현으로써 씬을 간단히 쓰기 위해 단순화했고, 또한 이 쇼트는 제리 루이스의 「레이디스 맨The Ladies Man (1961)」를 인용했다며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랭은 이 시퀀스를 만화 미장센 형식의 인용으로 보는 관점이 허황되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한 번 더, 프레임을 재현한 트래킹 쇼트는 상당한 횟수로 등장한다.

쇼트 1A, B, C, D: 공장, 12:16—14:17

[시퀀스는 (마치 만화책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며 쇼트 C와 D에서의 카메라는 원래 공간 설정으로 도로 트래킹하여 돌아간다 (그러므로 쇼트 B와 D 는 서로 닮았다).]

이 쇼트의 미장센은, 영화의 처음 부분 내내 몇 번씩이나 되풀이되면서 만화책의 레이아웃을 모방할 뿐 아니라 만화 기호학자 티에리 그로엔스틴이 고다르에 대해 앞에서처럼 묘사했듯이 만화를 “리듬적인 기능”으로써 경쾌하게 사용한다. 그로엔스틴에게 리듬적인 기능은 칸에서 칸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분절을 통해 드러난다. 시간의 분절이 공평하게 1분에 24번 이루어지는 영화와 달리 만화책에서의 연속적인 프레임들 사이의 지속 시간은 가지각색이다. 게다가 스캇 맥클라우드가 설명했듯, 개별적인 칸은 작가가 소리와 대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1 초 이하부터 30초 혹은 그 이상 등 다양한 시간적 지속을 이끌어 낸다. [15] 그러나 이 쇼트에서 고다르와 고랭의 모눈 구성의 사용은 매우 복잡하게 나타난다. 이 쇼트는 여러 칸들(매니저의 사무실, 비서의 사무실, 계단 등)이 있는 만화책의 한 페이지 형식을 취하고 또한 이 시간에는 만화책이 가지고 있는 모눈 모양의 검은 줄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 쇼트는 마치 서로 다른 구획에 있는 행동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담으려는, 시간적으로 모호한 칸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쇼트는 “프레임들의 연속이 부과한 리듬”을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카메라의 트래킹 기법, 구획으로 나누어진 미장센 내 배우의 행동, 그리고 음악의 사용으로 만들어지는 리듬을 드러내지 않는다. [16] 「중국 여인」에서 아이콘과 캡션을 쓴 방식처럼 이 쇼트의 리듬 역시 내러티브 안에 있는 맑시즘에 대한 사유와 교차하게 된다. 카메라가 매니저(비토리오 카프리올리), 미국인 기자 수잔(제인 폰다), 그의 남편(이브 몽땅)이 있는 매니저의 사무실로부터 멀어지면서(프레임 왼쪽 윗부분) 그들은 동작을 멈추며 대화를 끝맺는다. 그러나 고다르와 고랭은 이 정지하는 방식을 더 이상 이어 나가지 않는다. 카메라가 프레임 안의 다른 구획들로 들어갈 때에도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네가 이 살라미처럼 계속한다면 노동계급이 널 혼내줄 거야.”라는 저항가로 단결되어 있다.

이 쇼트에서 만화 미장센의 두 번째 특징이 드러난다. “고용주들을 가두어라. 무기한 파업”이라고 써진 배너로써 나타난 캡션이다. 그것은 「중국 여인」의 그것과 다른 기능을 발휘한다. 첫 번째, 「중국 여인」의 캡션들은 벽에 그려진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벽에 그려댄 결과로 확고한 위치가 있는 반면 그 캡션은 꼭 등장해야 하는 온당한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그 배너를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소시지 공장의 지붕에 있었다. 그러나 뒤의 트래킹 쇼트를 통하여 그것은 말도 안 되게 빌딩 안 공장의 벽이어야 할 곳에 걸려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캡션은 병치 기법을 통해 씬을 향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형식적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캡션은 「메이드 인 USA」의 삽입 화면처럼 씬에 있는 행동들을 강조하고 문자로써 표현하고 있다. 이 쇼트는 프레이밍과 시간적 지속의 힘을 빌려 노동자들이 고용주를 가두고 끝나지 않는 파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퀀스에서 해당 쇼트의 형식과 그 위에 붙여진 캡션을 가지고 끌어낼 수 있는 의미로는 무엇이 있을까? 전체적으로 텍스트를 다 보고 두 번째로 관람했을 때, 이 쇼트가 수잔이 나중에 수퍼마켓에서 “우리의 삶들을 서로 분리해 놓으려는 경향에 반해 어디서부터 투쟁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던 질문을 그려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형의 집”을 쓴 것은 이 생각을 그대로 말로써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인형의 집에서 보스와 노동자들은 각기 다른 방에 위치해 있으면서 수잔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모든 곳에서.” 쇼트의 긴 지속과 트래킹 기법이 이어지는 동안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 분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단결하려는 태도로 연합한다. 또한 수잔의 질문과 대답을 잇는 연결고리는 형식에 있어서도 그 스스로를 명백하게 만든다. 제인 폰다가 대사를 전달하는 쇼트 내내 고다르와 고랭은 수퍼마켓에서 일전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긴 트래킹 쇼트를 재현했다. 이 트래킹 쇼트에 대한 콜린 맥케이브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치에 대한 내용은,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폰다의 보이스오버의 진실이라는 가시화된 증거로써 행동하는 이미지에 의해 전달된다.” 이 문장을 동일하게 영화 첫 부분의 소시지 공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17]

분석되었듯이, 고다르(그리고 나중에 그의 협업자 고랭)는 「메이드 인 USA」, 「중국 여인」, 「만사형통」을 통해 만화 미장센을 쓰는 기법을 발전시켰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미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메이드 인 USA」에서는 내러티브의 단서들을 말로써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만화를 리히텐슈타인적으로 빌려왔고 이는 폭행당한 여성(!…Bing) 이거나 알 수 없음을(“?”) 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여인」에서는 이런 미적 인용을 해석한 결과를 사유했고, 수퍼히어로의 도상 텍스트와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보여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연계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만사형통」은 만화의 칸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시각적인 부분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모눈 형태와 만화의 형식을 활용했다. 이 기법은 「메이드 인 USA」와 흡사하지만 내러티브적인 사건들을 말로써 드러내는 대신에 철학적 생각들을 깨닫기 위한 “시각적 증거”로써 제공된다. 아니면 「중국 여인」에서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벽에 그린 캡션을 통해 표현했던 것처럼: 막연한 아이디어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라는.


Special thanks to Janet Bergstrom, Michelle Bumatay, and Jean-Pierre Gorin.


인용
[1] Jean-Luc Godard, “Struggling on Two Fronts,” Cahiers du Cinéma 194 (October 1967), reprinted in Cahiers du Cinéma (1960-1968): New Wave, New Cinema, Reevaluating Hollywood, Ed. Jim Hillier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6), p. 297. 
[2] Allen Thiher describes Alphaville as “the limits of experience have come to be defined by comic strip language”, yet simply equates “the comic strip side” (which he never really defines) as “a Brechtian form of ‘distanciation’.” See Allen Thiher, “Postmodern Dilemmas: Godard’s Alphaville and Two or Three Things I Know about Her,” boundary 2, 4.3 (Spring 1976), p. 950. 
[3] Jean-Luc Godard, “Montage My Fine Care,” Cahiers du Cinéma 65 (December 1956), reprinted in Godard on Godard: Critical Writings by Jean-Luc Godard, Eds. Jean Narboni and Tom Milne (New York: Da Capo Press, 1972), p. 39. 
[4] Will Eisner, “The Origin of The Spirit,” The Spirit (June 2 1940), in The Best of The Spirit (New York: DC Comics, 2005), p. 11. 
[5] James Roy MacBean, “Painting, Politics, and the Language of Signs in Godard’s Made in USA,” Film Quarterly 22.3 (Spring 1969), p. 18. 
[6] Daniel Yacavone, “Jean-Luc Godard and Roy Lichtenstein: Originality, Reflexivity, and the Re-Presented Image,” unpublished conference paper, pp. 3-4. 
[7] Jonathan Fineberg, Art Since 1940: Strategies of Being, 2nd ed., (Upper Saddle River: Prentice Hall, 2000), p. 261. 
[8] MacBean, p. 24. 
[9] Author unknown, Captain America 78 (September 1954) (New York: Marvel Comics, 1954). 
[10] Scott McCloud, Understanding Comics: The Invisible Art (New York: Harper Perennial, 1994), p. 27. 
[11]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 191. 
[12] Wheeler Winston Dixon, The Films of Jean-Luc Godard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7), p. 81. 
[13] David Carrier, The Aesthetics of Comics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2000), pp. 33-34. 
[14] Thierry Groensteen, The System of Comics (Jackson: University of Mississippi Press, 2007), p. 45. 
[15] McCloud, pp. 94-97. 
[16] Groensteen, p. 45. 
[17] Colin MacCabe, Mick Eaton, and Laura Mulvey, Godard: Images, Sounds, Politics (London: Macmillan Press, 1980), p. 71.

출처: http://www.sensesofcinema.com/2009/feature-articles/godards-comic-strip-mise-en-scene/

저자: 드류 모튼(Drew Morton)
드류 모튼은 UCLA의 영화학 박사과정 학생이다. 그는 영화와 텔레비전에 관해 「밀워키 저널 센터널」, 「UWM 포스트」, 「플로우」 등의 매체에 기고한 적이 있으며 현재 만화와 영화가 어떻게 미적인 융합을 이루는지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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