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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줄리언의 만 개의 물결이 불러일으키는 만 개의 질문의 물결

2011-05-27  

스펙터클 사회의 비디오 아트, 아이작 줄리언의 만 개의 물결이 불러일으키는 만 개의 질문의 물결

(미술관으로) 들어가며

어느덧 우리는 미술관에서 우리의 감각을 압도하는 비디오 영상의 위력에 경탄을 보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1990년대부터 비디오 아트가 ‘기술의 감동’을 증배시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해 준 게다. (빌 비올라 등이 당당히 미술관의 벽에 걸었던) 최초의 플라스마 모니터의 감흥을 어찌 잊으랴. HD프로젝터로 쏘는 그림은 육안으로 보는 현실보다도 생생하다. ‘스펙터클’이라는, 비디오 아트의 본연의 적이 언제부턴가 그 정체성이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미술계를 훑고 지나가니, 초기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저항했던 대중 매체와 영화적 장치의 권력은 하루아침에 비디오 아트의 권력이 되었다. 매체에 대한 모더니즘의 성찰은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서나 보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빌 비올라이나 매튜 바니로부터 (심지어는 ‘관계미술’에 연루된) 더글러스 고든이나 필리페 파레노 등에 이르기까지, 비엔날레를 수놓는 대부분의 단골 작가들에 있어서 이미지의 환영적 기반은 고민해야 할 딜레마가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성찰”을 고지식하고 진부한 과거의 흔적으로 축소시킨 것이야말로 테크놀로지와 스펙터클의 헤게모니가 제조한 위대한 업적이다. 미술관의 스크린을 통해 발산되는 것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숨은 열망일까? 스크린의 환영적 마력과 관객의 영적 몰입에 대한 부러움의 고백일까? 영화관의 객석이 자연스럽게 확보하는 ‘부동성’의 계약을 미술관에서 구현하려는 소망은 그토록 절실한 것일까? 비디오 아트도 이제 ‘블록버스터 시대’를 맞은 지 오래다. 가장 저항적이고 전복적이었던 어제의 예술은 할리우드의 미학적, 제도적 장치에 그 어떤 다른 문화 행위보다도 친밀해져 있다. 최신식 디지털 장비가 동원되는 비디오 아트 작품의 전시에는 그에 걸 맞는 할리우드식 기획이 실행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무비스타 장만옥을 캐스팅한다던가.) 비디오 아트 덕분에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터클의 사회』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필독서로 남을지도 모른다.

“More Is More"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되는 아이작 줄리언의 <만 개의 물결>은 압도적이다. 2010년 시드니 비엔날레를 필두로, 엑스포에 맞추어 상하이에서도 전시된 이 신작은 제목부터가 광활하다. 아홉 개의 대형 스크린은 중국 역사와 신화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촬영감독 자오 샤오시의 현란하고도 정제된 영상미는 오감을 온통 애무한다. 스크린의 육질은 눈이 시릴 정도로 수려하다. 여기에 장만옥과 양푸동, 왕핑, 공파겐 등 중국을 대표할 만한 영화배우, 미술작가, 시인, 서예가가 확실한 ‘흥행요소’로 가세, 마쭈신에 관한 신화에 현대적 관점을 심어 넣는다. 여러 스크린으로 영사되는 이미지들을 통합, 분할, 충돌, 교접시키는 줄리언의 장인적 솜씨는 이제 가히 그가 이미지로 보여주는 중국 장인들의 실력에 비견할 만큼 훌륭하다. 하긴, 커다란 나라의 신화를 커다랗게 다루려면 커다란 스크린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해상도와 밝기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으니, 갤러리 벽 정도를 압도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리. "Less is more"라는 모더니즘의 슬로건은 그 말뜻만큼이나 왜소해졌다. 하지만, 다른 예술영역이면 몰라도, 적어도 비디오 아트만큼은, 저항과 불일치를 태생적 근원으로 삼았던 그 삐딱하고 까다로운 미학적 장치에서만큼은, 그 매체의 ‘진화’가 ‘기술’이 아닌 ‘발상’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면, 그것은 편집증적인 시대착오일까?

비엔날레로 간 대항영화의 유망주

아이작 줄리언은 1980년대에 인종문제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과감한 형식적 실험으로 풀어내면서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영화감독’이다. 흑인의 관점에서 영국 사회를 보는 것이 얼마나 복합적인가를 절묘하게 풀어낸 <구역들(Territories)>(1985)로부터 1920-30년대 흑인 문화운동인 할렘르네상스를 조명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랭스톤을 찾아서(Looking for Langston)>(1989), 그리고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극영화 <젊은 영혼의 반항아들(Young Soul Rebels)>(1991)에 이르기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인종과 계급, 성에 관한 사회의 편견적 장치들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영화의 주제나 내용도 파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다루는 문제들의 복합적인 층위들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단지 사회적 상황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연동되는 다층적인 기제들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내러티브나 다큐멘터리 등 하나의 정해진 형식에 귀속되지 않고 현실들만큼이나 다각적인 수사 방식들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영화 작품들이 소통하는 중요한 메시지였다. 다큐멘터리에 연출된 상황이 섞이는가 하면, 허구적 연출에 실재적인 것이 난입하고, 역사적 사실은 사적인 생각이나 시적인 정서를 거쳐 사유되기도 했다. ‘장르’의 경계를 뛰어 넘는 이러한 혼성적인 형식은, 사회적, 역사적 사실들이 고정된 정보의 군집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이나 동기를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늘 관객에게 상기시켰다. 작가적 창의력과 역사적 현실은 서로의 경계를 교란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문제들은 보다 세밀한 질감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와 역사에 수행적(performative)으로 접근하게 된 것은, 그가 형식적으로 다루는 인종, 성, 사회 계급 등의 문제가 추상적인 역사적 과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몸소 투쟁적으로 접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곧 일상이자 현재요, 사회 문제는 사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영화는 곧 역사이며, 그 말은 영화의 구조나 형식이 정해진 평면적 관습이나 장르에 묶이지 않는, 열린 담론이어야 함을 의미했다. 오늘날 갤러리 벽을 화려하게 수놓는 대부분의 비디오 프로젝터 이미지들에 담기지 않는 중요한 목적의식이 줄리언의 멀티스크린에는 깔려 있으니, 바로 ‘영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미학적 기반은 극장의 평면적인 스크린이었다. 상영관의 건축적, 미학적 조건들을 거부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 비판적인 내용이나 형식적인 실험을 지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노선이라는 말이다. 멀티스크린은 곧 ‘태도’였다.

관능과 냉철 사이

(전주영화제와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1990-2000년대의 줄리언의 멀티스크린 작품들은 언제나 육감적이었다. 초대형 스크린의 엄청난 자력, 육즙이 흐르는 듯한 강렬한 색상과 질감, 여러 스크린에 걸쳐 안무된 현혹적인 움직임의 벡터, 감각적인 편집에 의한 세련된 리듬감 등 그의 영상작품들은 조형적 완성도에 목마른 미술관의 관객에 섹시한 달콤함을 한껏 선사했다. 스크린과의 육감의 섹스를 구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진한 관능 속에는 정치적 첨예함이 유전자처럼 흘렀다. 사회의 통념에 대한 투사적 정신이 폐쇄회로를 따라 순환했다. <파라다이스 오메로스(Paradise Omeros)>(2002), <웨스턴 유니온 - 작은 배(Western Union: Small Boats)>(2007) 등은 남성적 신체를 미화하며 서구 미술을 지배해온 이성애적 이데올로기의 장에 불온하고 불편한 ‘시각적 쾌락’을 부가했다. 관능은 흑인과 동성애라는 두 정체성의 좌표를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디지털 포토제니’는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설파하는 비언어적 항변이 되었다. <마자틀란으로 가는 먼 길(Long Road to Mazatlán)>(1999)에서 차용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중의 "뭘 봐?"라는 유명한 대사는 한 나체의 미남 카우보이의 입에 담기며, 남성적 신체에 대한 (미술관 내에서의) 은밀한 시각적 쾌락을 들추어낸다. 위협과 폭로가 섞인 이 외마디 대사는 미술관 내의 "미학적" 응시들에 묻혀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략하는, 그에 기꺼이 동조해온 관람객들의 허를 찌르는, 도발적 반문이었다. “우리는 정녕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떤 쾌락을 취하고 있는가?” <발티모어(Baltimore)>(2003)에서는 1970년대 블랙스프로테이션 영화(blaxploitation film)의 대부 멜빈 반 피블스(Melvin Van Peebles)가 텅 빈 현대미술관을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지배 미학의 아성 안에서 저항문화의 아이콘이 배유하는 광경은 가히 언캐니하다. “흑인이 텅 빈 현대미술관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보다 더 전복적인 이미지가 어디 있겠는가?" 2004년 전주영화제에 초청될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줄리언은 강조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때깔 좋은 신작들에 맹목적으로 현혹될 것을 거부하는 일부 관객들이 초기작들의 정치성을 배신한 것은 아닌지 반문할 때에도 그는 단호했다. 초기의 상영용 ‘영화’들보다 멀티스크린 작품들이 더 입체적인 “저항”임을. 동성애나 인종에 관한 편견을 말로 비판하는 것보다 이미지로 지배 문화를 “오염”시키는 것이 더 위협적인 “전복”임을. 그의 사전에서 ‘쾌락’은 ‘저항’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더 나은' 미술?

<만 개의 물결>에 흐르는 정치적 냉철함을 읽고자 한다면, 아홉 개나 되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그 작은 단서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이 작품이 상하이의 ‘ShanghART' 갤러리에서 전시될 때 바로 옆에서 벌어진 엑스포는 “Better City, Better Life"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줄리언은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는 정부 프로파간다의 역사에 냉소적으로 접근한다. 그가 재활용하는 문화혁명 시기의 기록영상은 ‘더 나은 삶’을 선전하기 위해 행진을 하는 무리들을 보여주며 신화라는 이 작품의 기반에 역사적 맥락을 중복시킨다. 마을 사람들을 구원하는 마쭈신에 관한 연출된 화면 역시 이를 촬영하는 현장 화면과 충돌하며 이미지에 대한 통시적인 관점을 생성한다. 특히 마쭈신을 연기하는 장만옥이 컴퓨터 합성을 위해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신화의 ‘신화적’ 기반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감을 시원하게 제안한다. 스크린 이면에서 작동하는 영화적 장치에 대한 이러한 메타비평적 시선은 이 작품을 신화에의 환상적 도취로부터 이미지의 근원과 역사에 대한 성찰로 유연하게 이동시킨다. 초기 영화의 성찰적인 혼성적 구성은 이제 아홉 개의 스크린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만 개의 물결>은 분명 신화와 (사회적) 역사,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 등 영화적 장치가 재현할 수 있는 이미지의 이중성에 대한 질문을 진중하게 던진다. 그 질문들은 신화를 다루는 이미지를 접하는 관객이 이를 복합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층적인 텍스트로 해독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어쩔 수 없이 일으키는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질문들은 그가 보여주는 적당한 자기비판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 만족을 넘어선다. 오늘날 이미지에 대한 성찰은 얼마만큼 진중하게 구체적인 정치적 태도로 이어져야 하는 걸까? MTV 이후 자기반영성이 아예 소비의 논리가 된 시점에서 스펙터클에 대한 자기비판적 태도는 얼마나 ‘깊숙하게’ 이루어져야 할까? 자본주의의 논리와 수사에 동참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갖는 유희적인 비판의식이 ‘비평’으로서 얼마나 유효한 것일까? 스펙터클을 전람하면서 그 신화적 기반에 대한 분석적 지평을 열어 놓는 것이 스펙터클의 신화를 맹신하는 것보다 “더 나은 미술”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며, 그 근거는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 무엇보다도,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 것들인가?

(미술관 밖으로) 나오며

<만 개의 물결>은 정치적으로 묘묘한 작품이다. 스펙터클의 헤게모니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본주의 문화의 매혹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궁극적인 혜안을 줄 필요성을 끝없이 유보하기 때문이다. 그 유보의 필요성을 문제시하지 않고 즐기도록 종용하기 때문이다. 담론을 유희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ére)는 (매튜 바니, 빌 비올라 등) 최근의 일부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신화’에 대한 19세기말의 관심을 재활용함을 주시하면서, 이러한 신화로의 회귀는 오늘날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의식이 붕괴된 것에 대한 환영적 미봉책이라 규정한다. 그가 중요시하는 문제는, 이러한 미봉책에 적용되는 정치적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오늘날의 작가들이 갖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지극히 미온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작품을 ‘미학적’으로 감상하려는 우리에게 그 어떤 명료한 정치적 비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단지 포스트모더니즘의 효과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공유하는 근본적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오늘날 비디오 아트가, 미술이, 당면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근본적인 정치적 불확실성이야말로 새로운 스펙터클 사회의 인기 있는 소비품이 된다는 사실이다. 조형적 수려함과 어중간한 자기반영, 스펙터클에 대한 동의와 그에 대한 (사과에 가까운) 부수적 설명, 이미지 신화의 확고함과 불화의 미적거림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론적인 양가성을 계속해서 지적인 쾌락으로 소화해도 좋을까. 반론이 스펙터클에 버무려진 감치는 양념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아티스트도 이미 모두 알고 있다면, 그 반론에는 어떤 최소한의 무게와 책무가 따르는 것일까. <만 개의 물결>의 정치적 모모함의 씁쓸한 잔상들은 사실 비디오 아트의 기능과 역사를 돌아봐야 할 필요성으로 남는다. 만 개의 질문들의 물결로 다가온다. 이제 테크놀로지의 원대한 현란함에 대한 관대한 동조가 비디오 아트의 생명으로 작동하는 것도 충분히 즐기지 않았는지. 미술관이 관객들에게 마치 영화적 체험을 확장한 듯한 통감각적인 감흥에 푹 젖어 이미지의 신화적 권력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약발이 다하지는 않았는지. 오늘날 미술담론에서 스펙터클을 자기반영이라는 양념에 버무려 전람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오는 비디오 아트의 스펙터클화에 대한 더 과감하고 냉철한 비판적, 역사적 담론이 아닌지. ‘커다란’ 비디오 아트의 제스처들이 이제는 이와 같은 질문들을 갤러리 벽에 투사할 때가 온 건 아닌지. 미술이 사회 변혁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조각이 오늘날의 비디오 아트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고 믿어도 되는지.






<Isaac Julien/Ten Thousand Waves>

아틀리에 에르메스 <아이작 줄리언/만개의 물결> 2011.4.19 - 2011. 7.17

9개의 스크린으로 투사된 마이애미 전시의 오프닝 장면 2010.12.1

http://www.youtube.com/watch?v=Le4O0CXppF4

*이글은 2011년 <아트인컬쳐> 5월호에 실린 동제목의 글의 원본글 입니다.

글 서현석

서현석은 현재 영상과 관련된 연구와 퍼포먼스 창작을 하고 있으며 미국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비디오아트 전공으로 M.F.A.,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하며「지루함의 충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방송 영화 전공 교수이다. 2006년도에는 광주 비엔날레 열린비엔날레 참여 프로젝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페스티벌봄 등 여러 공연연출에도 참여하였다. 책으로는「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2007, 공저) 등이 있으며, "초기 비디오 아트에 나카나는 지루함과 마저히즘에 관해"를 비롯하여 영화와 전신분석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창작 활등으로는 영상 설치 개인전 「실종」(2004), 연극「FAT SHOW: 영혼의 삼겹살」(2008) 장소특정적 공연「헤테로토피아」등이 있다. 최근에는 「괴물 아버지 프로이트: 황금박쥐/요괴인간」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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