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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마트 2층에 사는 돈후앙의 가르침

2011-08-25  

국립극장 판의 <천수마트 2층> 퍼포먼스에 부쳐

 

‘마법사들은 언제나 들판이나 숲의 경계에서 별종적인 위치를 가졌다. 그들은 줄곧 경계를 따라간다. 그들은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거나, 두 마을 사이에 있다(천의고원/들뢰즈)'

앉을자리를 찾기 어려울정도로 어두운 소극장, 동공이 열릴 때 쯤 핀 조명이 켜지고 작은 스피커를 허리에 찬 정장의 여자가 무대에 등장한다. 자신을 현재 덕수궁에서 일하고 있는 도슨트로 소개한 여자는 퍼포먼스의 기획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덕수궁에서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전시는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객석에선  웃음이 번졌다. 이어서 그녀는 소극장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몇 개의 설치작품들을 하나씩 불을 밝혀가면서 설명해 나가는데, 그 작품은 아트선재센터 정문 앞 천수마트 2층에 기거하는 노화가의 그림들이었고 그 그림들을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게 제작된 설치물과 조명등은 ‘길종상가’의 ‘장치’들이었다.

 

 

 

한 시간 남짓 어둠속에서 차례로 불을 밝히면서 관객에게 소개되는 그림의 주인은 서류상 1919년생인 조성린 화가. 천수마트 2층에 십여년간 홀로 기거하며 서예와 그림을 그리는 그는 평생 서예와 그림을 그려왔지만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도, 정식 미술전시회 경험도 없다. 공연의 막바지, 관객들이 일어나서 가까이 대한 그의 그림들은 도슨트의 설명대로 원근법, 비례 그리고 상식적인 재현을 포기한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그림들로서 새,한복을 입은 인물,가족, 소싸움 등등이다. 이 그림들은 일견 인사동 어느 구석방 또는 시골마을이나 산속에서 홀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그러나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어느 노인들의 키치적 그림에서 나타나는 기이함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둠속의 극장에서 길종상사의 장치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순간, 그것들은 관객을 아리조나의 마지막 인디언 주술사 돈후앙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마법사, 주술사,약초장,치료사 중 어느 하나이며 그 모두를 합친 실재 인물이었던 돈후앙을 찾아온 인류학과 대학원생(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은 환각을 경험케 하는 페요테 선인장과 주술에 대한 성급한 질문을 던졌고 돈후앙은 선문답으로 답했다. ‘난 오로지 그것에 대해 배우고 싶은게 전부입니다. 맹세컨대 돈후앙 난 절대 나쁜 의도를 갖고 알려고 하는게 아니예요’ 돈후앙은 답한다. ‘그대를 믿는다. 내 이미 그대를 들이마셨다’ 노화가 조성린 역시 다르지 않았다고 도슨트는 설명한다. 노새를 타고 가는 한복을 입은 인물 머리위에 그려진 비행접시 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두 마리 새그림 연작에 빨갛게 불타는 눈을 가진 새가 부엉인지 매인지 물어보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목이 새1 새2 ...’ 화가에게 그것이 부엉인지 매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비행접시 의 정체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더욱 난망하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는 동굴같은 천수마트 2층의 작은 화실에서 스스로 깨우치며 원근법을 버렸을 때 ‘인과관계’를 함께 폐기 했을터, 당나귀를 탄 한복남과 비행접시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며 천기를 언어로 누설한다 해도 이해될 리도 없다. 서양은 20세기 중반 양자물리학의 등장으로 인과율을 포기하는데 까지 2천년이 걸리지 않았는가.

 

 

 

“분리되어 조화될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실체들도 상대성 이론에서는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넘어감으로써 이와 유사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 상대성 물리학의 4차원적인 세계는 힘과 물질이 통일된 세계다. 이곳에서는 물질이 비연속적인 입자들이나 연속된 장(場)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4차원의 공간을 수학적 형식화를 통해서 ’경험‘할수 있지만 시각적 상상은 감각의 3차원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의 언어와 사고의 패턴은 이런 3차원의 세계에서 계발돼 온것이기 때문에 상대성 물리학의 4차원적 실재를 다루기에는 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된다.“ ( Tao of Phisics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핵심은 이런것들을 논리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3차원적 세계에서 계발 되어온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그냥’ 이라고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조성린돈후앙의 내공이다.

가히 십수년간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화실 천수마트 2층은 동굴이었다. 티벳의 동굴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가부좌를 튼 상태로 완전한 어둠속에 몇 달동안 환각의 상태를 경험하며 깨우침에 도달하는 수련자처럼, 계룡산의 동굴속에서 수년간 수련을 통해 접신하는 무당이나 산속의 암자에서 깨우침을 터득한 고승처럼, 그리곤 페요테 선인장을 통해 차원이동을 하거나 비일상적 현실의 깨달음을 얻은 인디언주술사 돈후앙의 거처처럼 말이다. 일주일 내내 화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조성린 할아버지는 천수마트 동굴 속에서 이세상이 3차원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두 개 이상의 연작그림을 통해서 나타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느 할머니의 초상을 자세히 보면 무당의 기이한 기운이 발산되는데 같은 할머니의 그림이 조금 다르게 그려진 연작이며, 두 마리의 소를 손에 들고 있는 중년 남자를 두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은 길종상가(작가 박길종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특별히 제작된 회전 장치 등을 통해 그 기기묘묘한 느낌을 더한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연작그림이 모네의 루앙성당 연작과 다른 이유는 모네가 3차원적 시간과 공간속의 빛의 광학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표현했다면 할아버지는 한 인물이 유클리드와 뉴튼의 3차원적 시간과 공간으로 고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할아버지와 그림속의 인물 속 즉, 관찰자와 대상의 ‘관계성’에 의해 변환된다는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쉬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며 죽을 때 까지 20세기 양자물리학자들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1세기 현대과학은 결국 양자물리학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미시세계의 소립자들이 3차원적 시간과 공간처럼 절대적 위치 값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결국 ‘관찰자의 시점과 관찰자가 측정할 때마다’ 그 위치값이 변환된다는 ‘관계성’이다. 인디언 주술사 돈후앙은 이미 현대물리학의 4차원적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며, 그것은 불교와 선의 경지에 오른 고승들의 사유와 거의 같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홀홀단신으로 천수마트 동굴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교류와 친분을 쌓고 있는 사람이 고승 이란 점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 작품중 단연 돋보이는 그림은 ‘소싸움’ 과 ‘어른과 아이’ 이다. 언듯 단순한 두 마리의 소싸움과 두명의 심판관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그러나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는 순간 양자물리학이 발견한 ‘4차원적 시간과 공간의 관계성’의 해설판에 가까움을 깨닫게 된다. 할아버지는 이 그림이 소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심판관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싸움일 뿐이다, 구경하고 있던 소들이 덩달아 옆에서 싸움이 붙게 되었다’ 라고. 익히 알려진 선어(禪語) ‘당신이 선을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다, 선을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깨달음을 얻고 나면 산은 다시 산이고 강은 다시 강이다’ 는 관찰자와 대상간의 관계를 서양의 전통적 시간과 공간의 사유을 뛰어넘는다. 이런식의 동양적 사유를 서양이 이해하기위해선 아인쉬타인 이후 양자물리학자들이 등장한 20세기 중반이 돼서야 가능했으며 양자물리학자들의 저서엔 이미 돈후앙과 선(禪)에 대한 인용이 종종 실려 있다.

 

 

 

양자물리학자들이 종종 관찰자와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위해 사용되는 이 선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방식에 따라 도출된 자연이다. 관찰자는 그가 어떻게 자기의 측정을 진행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이조정에 따라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들이 어느 정도 까지는 결정 지어진다. 실험상의 배열이 변경되면 이번에는 관찰되는 대상의 속성이 변할 것이다" 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초석이 되었던 ’불확정성의 원리‘를완성한 하이젠베르크가 깨달은 ’만물의 통합성과 관계성‘을 설명 하는 것과 닮아 있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소싸움은 소싸움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선 소싸움이 소싸움이 아니고 사람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소싸움은 소싸움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인디언 마법사 돈후앙은 강한 환각성을 가진 페요테 선인장을 통해 도달하는 깨달음의 환각적 세계를 일컬어 ‘비일상적 현실( non -ordinary experience) ’ 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초현실’과 구지 구분했다. 돈후앙에 따르면 비일상적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선 도마뱀등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는 그 동물과 식물들을 사람처럼 호명했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 그림속의 소가 싸움을 잘하게 만들기 위해 인공적으로 사육된 투우를 그린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현실과 비일상적 현실 서양식 사유방식으로 실재와 환상으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합되어 있으며, 비일상적 현실과 실재가 그렇듯 관찰자와 대상과의 관계는 서로 ‘관계적’으로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것은 두 마리의 소를 들고 있는 두남자 와 더불어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또 다른 그림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진다. 이 그림에서는 확연히 어른과 아이로 구분되는 두 사람의 모습과 관계가 자세히 보면 역전 되어있다. 어린아이는 꾸중을 듣는 듯한 자세의 어른을 훈계 하는듯한 모습이며 어린이의 몸은 성인의 비례를 갖고 있는 이상한 모습이다. 덕수궁을 탈출한 도슨트의 설명이 공연 막바지에 이를 즈음 이제 천수마트 동굴에서 탈출한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그림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기인의 서툰 비례와 묘사라는 의심을 훌훌 떨쳐내게 된다. 그리고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식의 훈계적 묘사 수준이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의도가 아님에 확신이 든다.

작가 김범은 도망가는 사슴과 잡아먹으려고 뛰는 치타의 동영상을 바꾸어 전복 시킨바 있다. 김범의 전복된 동영상에서 사슴은 더 이상 사슴이 아니고 치타이며, 치타는 CG의 힘으로 깔끔히 사슴으로 바뀌었는데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전복은 조금 다르다. 들뢰즈가 명쾌히 설명하는바 ‘아이되기’ ‘동물되기’ 란 아이가 될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에도 결국 동물이 될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고 밝힌바,몸체안에는 여전히 어른과 아이 인간과 동물 남자와 여자의 요소들이 존재한 상태로 오버랩된다는 것일진데 이 그림에서 아이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여전히 어른의 비례를 갖고 있고, 어른의 모습또한  아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김범의 그것과는 차이를 드러낸다.

 

 

 

 

 

 

 

 

 

 

 

 

 

 

한편 인디언 마법사 돈후앙 또는 서양의 디아블레로(diablero)들이 행했던 둔갑술로 어른이 아이로, 아이가 어른으로 둔갑했을 수도 있는데, 둔갑술은 아이나 동물로 변환되었어도 여전히 둔갑하기 전의 어른이나 사람의 정신과 육체적 속성을 어느정도 유지한다. 놀라운 것은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가 동굴 속에서 조용히 앉아 동서양 고도의 철학적 사유의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큐레이터 현시원이 고백하는바 역술을 통해 미래를 점치고 꿈과 현실을 뒤섞은 비선형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돈후앙처럼 그 역시 서예가이자 화가이며 역술가이자 아마도 주술사일 것이다. 천수(天水)마트 2층에서 즉, ‘하늘의 물’이 고여 있는 그 위의 동굴에서 십 수 년간 도를 닦은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가 아닌가. 그는 서예를 보기위해선 국립박물관으로, 그림을 보기위해선 과천미술관으로 , 미래를 점치기 위해선 미아리 고개로 가도록 ‘분배’ 해놓은 기이한 바깥 세상 풍경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연극/무용/동양미술/서양미술로 분배된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과 제도권 미학은 그의 세계를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틈에 어이없는 지식인 어른들은 ‘통섭’이나 ‘다원’이라는 서양식 타협을 주장한다).

어쩌면 현실의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조성린돈후앙할아버지 에게 십여 년간 월세를 인상하지 않고 있는 천수마트 주인분 들이야 말로 가장 먼저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비범함을 알아차린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인분 들이 아닐까. 두 번째로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의 비범함을 알게 된 사람은 큐레이터 현시원 이었다. 그녀는 그가 아트선재센터 정문 바로 앞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마법사들은 언제나 들판이나 숲의 경계에서 별종적인 위치를 가졌다. 그들은 줄곧 경계를 따라간다. 그들은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거나, 두 마을 사이에 있다(천의고원/들뢰즈)’ 현시원은 천수마트와 아트선재센터, 고도의 세련된 동시대예술과 독학으로 배운 정체를 알수 없는 그림의 경계에 존재한 마법사를 알아본 것이다. 돈후앙을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조력자 즉, 페요테와 같은 환각성분의 약을 철저히 억압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현시원은 기꺼이 조력자의 몫을 자처 했다. 좋은 동시대예술은 마약의 긍정적 역할을 대체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또 다른 두 명의 조력자들을 섭외 했다. 한 시간 만에 ‘마법사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우매한 관객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조치였다. 길종상사의 대표 박길종 작가는 현시원과 함께 몇 달간 마법사의 세계로 적극적으로 빠져 들었고, 멀쩡히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를 설명하던 도슨트는 마법처럼 국립극장 소극장 판으로 불려 와서 배우로 변환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해리포터가 차원이동을 위해 뛰어드는 플랫폼 9.3/4 이 런던 시내의 번잡한 킹크로스역 이었음을 일반인들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처럼 조성린돈후앙은 걔념적으론 경계지만 물리적으로는 번잡한 시내 구멍가게 2층에 살고 있었다. 해리포터에게 보내온 호그와트의 편지처럼 현시원과 박길종은 도슨트의 입을 통해 우리를 그의 비일상적 현실로 인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돈후앙이 분명히 구분했듯 ‘서양식 초현실적 세계’나 해리포터의 환타지의 세계가 아니라 실재와 관계하면서 인간의 의식을 확장해주는, 양자물리학이 증명해준 비가시적 미시의 세계이자 우주였다. 그 체험은 현시원의 교묘한 재배치의 전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트선재센터를 마주보고 수행한 조성린화가,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를 설명하고 있던 도슨트 황호경, 현대미술가로서의 야욕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설 대행업소를 차린 길종상사의 주인 박길종을 재배치 했다. 국립극장 소극장의 어둠과 조명아래 도슨트는 무대 위 배우로 치환 되었고 조성린화가는 처음으로 이상한 공연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작가 박길종은 무대 세트 디자이너로 전환되는 순간에 큐레이터 현시원은 창작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자신의 기존의 역할을 버리고 도슨트의 설명대로 ‘낮선’ 장소로 재배치 되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편 자신들의 역할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재배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큐레이터 현시원은 큐레이터의 역할을 했고, 조성린화가는 전시회를 치른 것이며, 도슨트는 온전히 도슨트의 역할을 했을 뿐이며 길종상가의 박길종은  돈 받고 위탁받은 ‘장치(작가 박길종은 공연에서 자신의 설치물들을 반드시 장치라고 불러달라고 강조한다) 만 제작했을 뿐이니 전혀 역할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들뢰즈식 ’차이와 반복‘을 불러온다. 차이가 없는 반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저서 ’반복과 차이‘에서 들뢰즈는 주체와 대상 혹은 경험하는 자와 경험되는 것의 대립 시키는 전통적 주체철학을 부정하고 ’주관적 동일성도 객관적 동일성도 요구 하지 않는 ‘함께 옴‘을 설명한다. 영민한 이들은 피카소가 아프리카의 탈에서 차용한 아이디어나 반고호가 우끼요예에서 얻은 표현법을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하여 서양식 미학으로 맥락화 하는 식,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수집 각색하여 연극적 이야기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재현함으로써 타자를 착취하는 우를 피해간다. 40여분 남짓 도슨트가 더도 덜도 없는 담백하게 노화가 조성린 화가의 그림과 이야기를 전하는 어둠속에서  바닷 속 고래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작가 박길종이 자신에게 요구한 것은 단한가지, 발로 눌러서 켜지는 조명장치를 최대한 ’우아‘하게 눌러달라는 것이었다고 도슨트가 설명하는 순간 관객석에선 웃음이 퍼졌다)

국립극단의 수석 연구원 김남수와 연구원 김해주에 의해 기획된 전체 퍼포먼스 시리즈의 제목은 <고래, 시간의 잠수자>, 고래는 시력은 안 좋아서 몇 십 미터 앞도 제대로 못 보지만 깊은 바닷 속에서 태평양 해저의 등고선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천수마트 이층에서 두문불출 서예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성린 화가는 천수마트 2층에 앉아 창너머 아트선재센터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꿰뚫고 있었을 것이며 소극장 판의 어둠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필시 조성린돈후앙이 큐레이터 현시원으로 둔갑하여 전시를 기획했을 것이다.

 

홍성민 작가/계원예술대학 교수

 

 

<천수마트 2층>큐레이어 현시원, 작가 조성린,박길종 도슨트 황호경

2011.8.19 국립극장 소극장 판.  

박길종의 길종상사 www.bellroad.1px.kr

 

돈후앙의 가르침;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사는 야키 인디안의 마지막 주술사이자 마법사 돈후앙을 만난 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는 그와의 6년간의 경험과 대화집 <돈후앙의 가르침>을 1968년에 펴냈고 17개국 언어로 번역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페요테와 흰독말풀등 환각식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차원이동을 하는 돈후앙과 제자 카스타네다의 경험은 마치 무술의 비법을 얻고자 산속의 도인을 찾아와서 수련하는 동양의 전형적인 방식처럼, 선문답과 훈련을 통해 어렵게 전수되는데, 실재와 비일상적 현실(환각), 자연과 인간, 관찰자와 피 관찰자에 대한 서양과는 전혀 다른 관념과 사유는 히피즘의 미국젊은이 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신비주의’를 벗고 종종 양자물리학자의 저서에 인용되거나 들뢰즈의 저서에 인용되곤 한다.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환각식물 페요테는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의 오리지날인 앙토냉 아르토가 멕시코 인디안과 함께 기거하면서 즐겼던 선인장이기도 하다. 멕시코 인디안과의 경험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앙토냉 아르토는 기관없는 신체론 과 더불어 ‘잔혹극’으로 천년 서양연극의 미학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현재 한국어본이 절판된 <돈후앙의 가르침>은 연세대 등의 도서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ps. 현시원큐레이터가 조성린의 둔갑술 이란걸 못믿겠다고? 독자들이 쉽게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는 둔갑술과 차원이동이 가능했다던 인디언 주술사 돈후앙에 버금가는 디아블레로임이 틀림없다. 그단서의 첫 번째는 바로 <천수마트>라는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구멍가게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천수는 물론 하늘의 물(天水), 즉 천상수를 뜻하며 ‘마트’는 롯데마트에서 사용하는 영어 'mart' 가 아니라 고대 이집트어 마트(Ma'at)라는 사실이다. Ma'at 는 고대 이집트의 ‘진리의 여신’으로서 이집트인들은 우주의 법과 조화 그리고 진리가 여신 마트Ma'at 에 의해서 다스려 진다고 믿었다.

 

 

 

 

 

 

 

 

 

 

 

 

 

 

Ma'at  

여신Ma'at 는 머리에 깃털을 꽂고 왼손에는 천수를 담고있는 물병을, 오른손에는 깃털을 들고 있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는 디아블레로인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그의 그림에서 즐기는 중의적 말장난으로 <천수마트>에 비밀을 숨겨놓았다. 오른손의 깃털은 이번 퍼포먼스에서 발표된 붉은 눈알의 비상하는 기이한 새의 것임은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디아블레로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를 인정할 때 그의 그림과 이해할수 없는 현상들이 명쾌하게 해독 된다. 즉, 천수마트 2층에 앉아 세상의 진리를 꿰뚫으며 서예로 부적을 쓰거나, <천수마트 2층>퍼포먼스가 끝난후 현대미술을 배운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대번에 이해하고 즐거워 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가 천수마트에 기거하기 시작하자 마자 아트선재센터가 생겼고 가회동과 삼청동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는 사실이다. MART 는 'Museo d'Arte moderna e contemporannea di Trento' 즉 2002년 완공된 이태리 현대미술관의 약자이기도 한데 조성린돈후앙은 MART 미술관이 건축되는 2001년 1년간 천수마트 2층에서 존재를 감추었다고 한다. 또한 천수마트앞 아트선재센터의 실질적 디렉터였던 김선정부관장이 미술관을 떠나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천수마트 대각선자리에 새로운 현대미술관 의 신축을 발표했다. 기이한 아우라를 풍기는 이태리 미술관 MART 의 급작스런 등장, 아트선재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은 ‘진리’를 아트를 통해서 구현하겠다는 디아블레로 조성린 할아버지의 존재와 <천수마트 天水Ma'at>를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조성린돈후앙 할아버지가 자신의 거처를 정독도서관 바로 옆으로 정한이유가 뛰어나게 머리가 좋은 아이들을 뽑아 마법을 전수하기 위함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동그란 뿔테안경을 낀 어린 남학생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중고등학생들한테 퍼져있다. 정독도서관안 식당 옆 화장실에는 진리의 여신 Ma'at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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