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MAN TO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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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진 vs. 이나현

2009-12-24  

허명진: 당신의 춤은 베이컨의 자화상에서 얼굴의 지워지는 궤적을 움직임으로 재해석한 윌리엄 포사이드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그 작품을 아마 봤을 듯) 혹은 “변신의 조짐이 가득하다”고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나현: 윌리엄 포사이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안무가 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전시도 보았고 독일에서 그의 공연을 보았었는데 그 여운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임프로비제이션 테크놀로지는 나의 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변신이란 말은 나의 춤 메소드에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난 무용수들에게 자기 안의 괴물을 꺼내 보이라고 말한다.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신체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고 정형화된 동작과 신체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상적 코디네이션의 부정이기도 하다.

허명진: 그만큼 움직임에 대한 접근이 독특한데, 어떤 방법론이 있는가.

이나현: 우선 내가 생각하는 무용수의 신체는 고체의 딱딱한 조직이 더 이상 아니다. 몸이 기체나 액체 상태같이 어느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컹물컹한 재질의 무 형태의 신체에 숨을 불어넣어 우직임이 시작 되고 춤이 된다. 다시 말해 움직임을 유발하는 것이 근육의 운동에서 시작된다고 보지 않는다. 움직임의 출발점을 더욱 깊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독일에 있을 때 만든 Below the Surface라는 작품을 통해 완성된 나의 새로운 움직임 접근법이다. 신체의 각 부분은 독립적이다. 난 이걸 무용수들에게 지방분권적으로 통제를 줄이라고 말한다. 아르토와 들뢰즈가 언급한 기관 없는 신체가 내가 생각해 온 무용수의 몸에 대한 개념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유기체로서의 하나의 몸을 해체하여 각 신체부분을 분리하고 그것을 새로운 질서로 조합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신체 각 부분의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연결하여 면을 만들고 그 면들을 연결하여 입방체를 만들고 그 부피감을 그대로 살려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신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체를 만나 그 선이 연장이 되고 그것이 공간과 만나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조합의 새로운 질서는 일상성에 반하거나 극점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길을 찾아가고 갈 수 있는 최대 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처음 질문하신 변신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내 안의 괴물이 나오는 순간이다.

허명진: 이는 또한 “춤으로써 춤을 부정하는 춤”으로써, 이미 메타적 시각과 비판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부정성의 운동 자체가 춤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이는데, 그러한 의식적인 깨어있음 자체에 도달하기에는 매우 힘들지 않은가? 혹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하는가?

이나현: 내가 춤에서 부정하는 것은 정형화된 무용동작에 대한 부정과 생생히 살아있는 움직임, 즉 몸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움직임을 방해하고 춤으로 정형화하려는 뇌의 통제인 것이다. 결국 춤은 더 이상 정형화된 동작의 나열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부정은 출발한다. 한국에 돌아와 한국 무용수들이 뛰어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움직임에서 부피감이나 질감이 살아있는 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에서 이러한 나의 생각이 발전되고 정리 된 것 같다. 동작은 너무 잘하는 데 단면적이고 숨이 없는 죽어있는 춤이라고나 할까?춤은 특정한 동작을 개발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하여 나는 무용수들에게 정형화된 무용의 스텝을 학습할 때는 춤을 출 것을 강조하고 반대로 움직임이 동작화 될 때 춤을 추지 말라고 강조한다. 움직임에 익숙해 지면 그 단계에서 우리는 긴장감을 잃게 된다. 이러한 단계에서는, 즉 공연이 될 때는 다시 그 춤을 생경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긴장감을 살려야 한다. 공연에서 오는 긴장이 아니라 낯섦 에서 오는 긴장감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눈을 감고 뭔지 모르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질 때의 긴장감. 기계적으로 움직임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의 살아있는 맛을 잃게된다. 온몸의 감각이 깨어서 그 감각들이 움직임을 관할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추어지게 만들라고 설명한다. 내가 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체가 추는 것이다.
 
허명진: 당신의 춤은 굉장히 미세지각을 요구한다. 안무가 라면 전체적인 시야가 필요할 텐데 원근 조절을 어떻게 하는가? 안무가 빌티 존스(Bill T. Jones)는 자신의 즉흥을 녹화한 영상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나현: 난 내가 한 움직임을 잘 기억 못한다. 그래서 무용수들의 몫이 크다. 기억력 감퇴가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움직임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더 기억을 못하게 된 것 같다. 기억은 무의식적 반복을 유발하고 그건 창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선은 몸이 움직이게 만들고 그것을 천천히 분석하고 변형하고 발전 시킨다. 이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그들이 대충이라도 그림을 기억하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내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는 무용수가 나에겐 참 중요하다. 움직임이 빠르고 복잡해서 더더욱 그렇다. 처음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매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쓴다. 손끝 하나 발끝 하나의 움직임 모두 걸러낸다.

그리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땐 세세한 움직임을 한동안 보지 않는다. 전체적인 무용수들 간의 타이밍이나 관계만을 본다. 난 이럴 때 멀리서 초점을 흐릿하게 만들고 전체를 보려 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면 다시 부분으로 파고 들어가 정리하고 다시 이 정리된 것을 흐트러트리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허명진: 미세지각을 요하는 춤이어서 인지 보기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나현: 그게 내 작업의 맛이 아닐까 한다. 어렵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은 그럴지 모르지만 이러한 작업에 익숙해 지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감을 열고 추는 춤이다 보니 오감을 열고 봐야 하는 것 같다.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것이 대중성에 대한 질문이라면 글쎄 참 어려운 문제다. 무시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는 문제라서 말이다.

허명진: 첫 안무에서 연극연출가와 공동작업을 통해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는데, 이후로는 독자적으로 움직임의 영역에 천착하고 있다. 공동작업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욕구는 있어도 아직 잘 맞는 작업자를 만나지 못한 것인지. (가령, 당신의 작업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온몸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안무를 보여주는 에미오 그레코 같은 경우,공동작업자와의 협력을 통해 좋은 작업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나현: 참 오래 전의 일이다. 97년도 이야기니 12년 전 작품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 작품 인간병동 이후 안무가로 많은 부족함을 느꼈고 이러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용수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안무작업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무용장르의 가장 근본적인 질료인 몸과 움직임에 대해 파고 들고 그것을 확고히 다졌다. 타 장르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는 작업은 혼동만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제대로 된 만남을 위한 준비작업을 끝냈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무용은 종합예술이라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원한다. 그런데 그것이 만남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정말 잘 맞는 사람과의 공동작업이어야만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구상하고 있는 작업은 영상작업이 들어가게 될 것 같다.

허명진: 해외에서 인정받으면서 잘 풀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또 다시 진출할 계획은 없는가?

이나현: 인터뷰때 마다 받는 질문인 것 같다. 해외진출에 참 관심들이 많다. 난 이미 해외에서 내 작품을 공연해 보았고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획이고 경영이다. 그것을 맡아서 해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쓰는 것이 벅찼고 우선 작품에 전념하고 싶었다.

지난 2008년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뉴욕에 초청공연을 다녀와서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접은 상태다. 기회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마다할 일이 없겠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내 작품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가고 싶지는 않다. 요즘 무용단 경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걸 맡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물론 해외시장은 넓고 매력적인 시장임에 틀림이 없다.
 
허명진: 언젠가(1,2년 전인가)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윤곽선 지우기"라고 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나현: 그것을 처음 시도한 것이 알려지지 않은 땅이라는 작품이다. 2007년도 작품인데 올해 다시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과천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재공연을 올리면서 흐느적 거리는 무 형태의 신체가 조금 더 그려진 것 같다. 결국 형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인한 파장을 느끼는 것이다. 2009년 신작 틈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는데 항상 쓰여지는 건 아니다. 결국 형태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가장 마지막 단계에 다시 이를 흩으러 놓고 뒤흔들어 윤곽선의 겹을 여러 개로 만드는 것 혹은 하나의 윤곽선을 파장으로 인해 여러 개로 보이게 하는 것인데 가끔 그게 이루어지면 혼자 행복해 한다.

결국 실행의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이제 무용수들이 나의 메소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무용수들에게 흩으러 트리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그것을 몸으로 실현해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이나현은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이후 무용수로서 한국은 물론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의 주요 무용단에서 다양한 안무가들과 작업을 하였다.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솔로 탄츠 페스티벌 최우수 무용가상을 수상하였다.
본격적인 안무 작업을 위해 2005년 귀국하여 UBIN Dance를 만들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으며 차세대 안무가로 자신만의 고집스런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내 주요 페스티벌 초청공연 외에, 2008년 미국 뉴욕 재팬소사이어티 초청공연을 가졌다. 대표작으로, <소녀와 죽음>(2007), <사막열>(2007), <알려지지 않은 땅>(2007), <텅 빈 혼잡>(2008), <겨울>(2008), <틈>(2009) 등이 있다.

www.ubindance.com


허명진은 무용전문월간 <몸>지 기자로 활동하던 중 2003년 제11회 무용예술상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각종 매체에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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