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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도 퍼포밍 아트도 아닌, 남화연 인터뷰

2010-03-27  


『Operational Play』남화연/ 푸른호랑이, 사막의 전갈,여왕 같은 걸프전등에서 실제 전생시 사용했던 작전명의 가면들을 주변 인물들에게 착용시키고 역할을 수행 하도록 한 퍼포먼스 작업.


에르메스 전시 이전에도 퍼포먼스라기 보다는 희곡, 연극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 미술 작가가 연극화에 관심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연극에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 관심이 자연스럽게 연극적 성격을 띤 작업들로 연결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희곡이나 연극화와 직접적 관련을 갖는 작업들 외에 드로잉 작업도 이미지라기보다는 어떤 이야기의 단서들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극이나 퍼포먼스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나 태도는 어떠한 것인가? 현대 연극이나 현대 무용에도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연극이나 현대 무용의 반대적 입장이 『작전하는 희곡』같은 작품을 탄생하게 했는가?
연극이나 퍼포먼스, 무용 모두 나에게 흥미로운 레퍼런스들이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잘 알지 못해서, 반대적 입장을 취할 만한 능력이 아직 못 된다. 하지만 스스로 배우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또 특정 장르에 관심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어떤 장르의 세부적인 요소들과 요소들을 병치했을 때 오는 평화와 불화에 관심이 있다.

평화와 불화란 표현이 흥미롭다. 작업에 이 두 가지가 공존하게 되는가? 좀 더 설명해 달라.
설명하기가 힘든 것 같다. 나는 요소들 간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것보다는, 어떤 이물감과 함께 다다르는 이상한 평화에 관심이 간다.

『작전하는 희곡』을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을 설명해 달라.
『작전하는 희곡』이라는 타이틀로 2007년에 처음 텍스트를 썼다. 물론 중간에 여러 번 수정을 했지만, 생각해보면 희곡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설계도나 매뉴얼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지 모르겠다. 걸프전에 쓰였던 사막의 폭풍이 결정적 단어였다. 나는 평소에도 어떤 완결된 문장보다는 특정한 단어에 집착하고 반응하는 편이다. 어쨌든 군사 작전이나 실제 전쟁에 쓰이는 코드들을 조사했고, 엄청난 양의 코드화된 세계를 봤다고 할까. 그것에 대한 내 감정은 딱 잘라 설명하기 힘들다. 리스트를 쭉 뽑아서 단어장에 하나씩 적었다. 그리고 단어장을 늘어놓고 무작위로 단어들을 골라 끼워 맞춰가면서 텍스트를 썼다. 마음만 먹으면 몇 개고 텍스트를 쓸 수 있는 양의 단어들이었다. 단어들, 그러니까 작전명들은 내가 쓴 텍스트의 등장 인물, 무대 장치 및 소도구가 되었다. 텍스트로 남아 있던 것을 에르메스 전시를 하게 되면서 실행해 보게 되었다. 덧붙이면 작전하는 희곡이라는 타이틀은 2007년에 썼고, 에르메스 전시를 하면서 오퍼레이셔널 플레이로 바꿨다. ‘오퍼레이셔널 플레이’라는 제목이 갖는 작전하는 희곡, 작동하는 놀이, 심지어 작전/작동하는 재생 이라는 다중적 의미가 재미있는 것 같아서였다.

퍼포머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설명하고 주문했는가?
일단 텍스트와 단어들이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했다. 참여자들은 하나의 등장 인물을 골라서 연기를 했다. 이 연기는 처음부터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푸른 호랑이나 자줏빛 전사, 빙하를 어떻게 연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전문적인 퍼포머가 아니었다. 어쨌든 푸른 호랑이의 몸짓을 해보라고 부탁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내 작업을 완성해주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vulnerable) 위치로 일종의 역전된 상황이 더 중요했고 흥미로웠다.

아마추어 대신 전문 배우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텍스트를 썼을 당시에는 전문 배우를 생각했다. 굳이 전문 배우와 함께 작업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당시에 관심 있었던 것은 어떤 아름다움이나 완결성은 아니었다. 나는 무력함, 히스테리컬한 웃음, 우스꽝스러움, 견고하지 않은 에너지 이런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해한다. 당신의 작업에서 그런 점이 충분히 보인다. 옥상 위에 각종 사인판과 함께 춤추는 작업을 좀 설명해 달라.
그 작업은 『핑 핑 핑』이라고 불렀다. 그 작업도 오퍼레이셔널 플레이와 함께 전시했는데,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었다. 『핑 핑 핑』은 옥상 위로 땅바닥의 사인들을 끄집고 올라가 꾸며놓고 밤에 춤을 춘 기록이다. 실제로도 촬영은 두 번에 끝났고, 짜여진 안무도 없었고, 하루 밤을 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핑 핑 핑』이 일종의 에필로그나 오퍼레이셔널 플레이의 스타카토 버전처럼 느껴졌다. 신호, 장식, 위치의 이동, 그리고 댄스댄스. 대단히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개인적인 감상이나 심지어 회고랄까. 현 모씨가 ‘사이키델릭 돌진’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여기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작전하는 희곡』에서 푸른 호랑이, 사막의 전갈 같은 작전명을 전혀 다른 분야로 변주하는 아이디어는 사실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마추어에 의한 ‘허접한 퍼포먼스’로 구현되었을 때 작품이 신선해 지는 것 같다. 왜냐면 그것이 시각예술, 퍼포먼스, 그리고 연극, 세 장르에 포섭되지 않거나, 세 장르가 겹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점을 의식하고 작업을 하지는 않았나?
재미있는 질문인 것 같다. 특정 장르에 포섭되지 않거나, 모두 겹쳐지는 지점이 있다는 부분에 동의한다. 처음부터 그 점을 의식하고 작업을 하지는 않았고,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을 발견해 갔다.

현대 무용에도 관심이 있는가? 좋아하는 현대 무용가가 있는가?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직 잘 모른다. 몇 달 전에 오하드 나하린을 재밌게 봤고, 몇 년 전 윌리엄 포사이스 『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를 봤을 때 아주 인상적이었다. 더 많이 보고 싶다.

윌리엄 포사이스 『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


윌리엄 포사이스가 비주얼 아트의 경계로 들어설 때 간혹 ‘깨는’경우가 발견되긴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코레어그래퍼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시어터에서 비주얼아트로 넘나드는 점이 그 반대인 경우인 당신의 그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극장 내에서의 연출에도 관심이 있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업의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면 좋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레지던스 경험은 어땠나? 기회가 된다면 유럽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는가?
아직 유럽의 레지던시에 참여한 적은 없다. 유럽에서 활동할 생각은 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른 것보다 작업을 하게 되는 동기가 중요한 것 같다. 활동을 어디서 하는가는 그 다음 문제다. 그리고 여행하는 즐거움도 거부하기 힘들다.

어느 곳을 여행해 보았는가? 어느 지역이 좋았나? 여행 때는 무엇을 하는가?
뉴욕, 파리가 좋았고 멕시코가 특별했던 것 같다. 서점에 들리고, 전시를 보러 가고. 쇼핑도 좋아한다.

멕시코는 어떻게 가게 되었나? 무엇이 특별했나?
대학을 졸업하고 멕시코에 갔었다. 멕시코의 역사, 유적, 색깔이 특별했던 것 같다. 나는 미국 북동부(upstate new york)에서 학교를 다녔다. 업스테이트 뉴욕의 풍경은, 물론 좋은 계절도 있지만, 단조롭고 을씨년스럽다. 그래서 졸업식 후 갔던 멕시코가 다채롭고 현란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멕시코시티 근처 테오티후아칸에는 죽은 자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젊은 여자를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종교적 의식을 위해 압도적인 스케일의 도시가 작동되었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었다. 또 무덤 위에서 본 밝은 색깔의 아기자기한 장식들도 인상적이었다.

극장용 작품을 페스티발 봄에 출품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작품인지 설명해 달라.
오퍼레이셔널 플레이를 무대로 옮겨와서 하려고 한다. 요즘 가장 큰 영감은 어떤 의식이나 축제들이다. 멕시코 사자의 날, 타일랜드 유령 축제, 일본의 아와오도리, 우리 나라의 굿 같은 것들을 보고 있다. 이런 축제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갖는 이중성이 흥미롭다. 죽음과 웃음, 힘의 긴장과 이완 같은 것들이 묘하게 공존한다고 할까. 생각해보면 작전명들을 모아 텍스트를 썼던 행동 자체가 일종의 카니발성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도시 안에서 텍스트를 실현하고 영상으로 기록했고, 이번에는 무대로 옮겨올 것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하나의 텍스트가 움직이면서 진동하고 증폭되는 것이 하나의 퍼레이드로 느껴진다.

카니발과 굿의 이중성은 앙토냉 아르토가 『연극과 그이중』에서 설파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국내 시어터에서의 카니발 해석이 관념적이고 외연에 치우치는 편인데, 극장작업이 기대된다.
극장은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다. 아르토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당신이 요즘 즐겨 읽는 책은 어떤 것들인가.
최근에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을 다시 읽었고, 페터 바이스『마라/사드』를 읽었다. 지금은 코맥 매카시의『핏빛 자오선』을 읽으려고 하고 있다.

(미안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에르메스에서 상금을 받았다면 상금으로 무엇을 했겠는가?
상금을 받았다면 부모님께 금일봉 드렸을 테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한 턱 냈을 거고, 아마도 다음 작업을 하는 데에 썼을 것 같다.

당신만의 (독특한 또는 비밀스런) 취미나 집착 같은 것이 있는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문장보다 단어에 반응하고 집착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는 가정식 백반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가정식 전구, 가정식 잠옷, 가정식으로, 이렇게 대입해 보고 좋아하는 정도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름이 알려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만약 경제적인 조건을 포함하여 여러 조건이 갖추어 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은 꼭 예술 분야에서의 일로 국한 되지는 않는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여러 가지 작업을 해보고 싶다. 가깝게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작업하고 싶다. 또 현시원과 함께 ‘사계절 큐큐’라는 일종의 콜렉티브 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이라기 보다는 꾸러기 교실쯤 되는 것 같다. 우리 나름의 사이비 리서치를 바탕으로 총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사계절 큐큐에 대해 설명해 달라. 꾸러기 교실과 사이비 리서치에 대해서.
우리는 궁금한 것들을 우리 식대로 조사하고 연구하려고 한다. 한 예를 들면, 지난 번에 전자 야자수(electric palm tree)와 협업으로 이미지의 요리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고,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이미지들을 모아, 그것들을 일종의 요리의 재료로 레시피를 썼다. 물론 절대로 먹을 수 없는 요리들이다. 비록 레시피 10개 정도 쓰고 끝났지만, 계속 써 나갈 생각이다. 꾸러기 교실은 심정적 표현이고, 사이비 리서치는 말 그대로이다.

당신에게 콜렉티브 작업과 개인작업은 어떤 차이를 갖는가? 당신에게 풍족한 (경제적, 사회적)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콜렉티브 작업만큼은 즐겁게 계속하고 싶다는 말은 그것이 공공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개인작업이 메인이라면 콜렉티브 작업은 사이드이기 때문에, 콜렉티브작업은 편한 마음으로 취미처럼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콜렉티브 작업은 물론 개인 작업과 차이를 갖는다. 개인 작업을 하지 않으면서 콜렉티브 작업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계절 큐큐는 익숙하지 않은 어떤 시도이면서 호기심의 대상이다. 현재는 탁구공을 주고 받을 때 나는 소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할까? 계속 공이 왔다 갔다 하는 재미도 물론이다. 사계절 큐큐가 앞으로 무엇이 될 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대감이 생긴다.

사실 본래 질문의 취지는 ‘내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이라는 가상의 상황에서도 컨템포러리 아트를 계속 하겠는가’였다. 답해줄 수 있는가?
그럴 것이다.

상투적일 수 있지만 앞으로 모든 인터뷰어에게 이 질문을 공통으로 하려 한다. 가급적 짧게 대답해달라. 한문장도 좋고 농담도 좋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너무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예술은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몸짓이건 괴성이건 뭐든 될 수 있는데, 자신이 만드는 박자가 변화무쌍할수록 일단은 스스로 재미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남화연 연극 되어지다(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08), 연례보고(광주비엔날레 2008), I have nothing to say but I am saying it(플랫폼 서울 2008), Now Jump(백남준 아트센터 2008),Grammar of the world (CASCO: office for art,design, theory 2009),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아뜰리에 에르메스 2009)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인터뷰어 포도아가씨







남화연『작전하는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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