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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다원예술론

2012-03-31  

‘다원예술’의 재명명 혹은 재발명

글: 김남수 (안무비평)

 

1. 지난해 10월말 페스티벌 도쿄(예술감독 치아키 소마)에서 비평 레지던시의 행사로서 ‘한국의 다원예술’(사회 모리야마 나오토 교토조형예술대학 교수)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행사를 추진한 주최측에서는 ‘다원예술’에 강하게 방점을 찍었다. 이 새로운 예술 개념에 흥미를 느낀다면서 설명을 요청했다. 그 배경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한자로는 多元藝術이라고 쓰고 ‘다겐예술’이라고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개념의 독특함이 사라지고 일반화되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런 성격의 것은 일본에도 많이 있(는 듯하)지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에서 최근 활발하게 펼쳐지는 ‘다원예술’ - 정확히 이렇게 읽어주었다 - 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니까, 타자의 호출에 따른 다원예술의 불가피한 인정투쟁이 비로소 일어난 것 같아 잠시 아찔해졌다. 우리는 이처럼 엄밀한 개념의 창안 하에서 ‘다원예술’을 통용시키거나 구체적 문맥 속에서 사용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제기한 “공동체(언어 게임)와 공동체 ‘사이’에서 어떻게 교환(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이제 이 어스름한 개념인 ‘다원예술’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답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좀 과장하면, 이러한 이웃한 공동체로서의 타자가 요청하지 않았다면, ‘다원예술’은 그 사이라는 간극 혹은 틈을 통해 가능한 인정의 순간도, 그리고 객관적 존립의 순간도 맞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개인적으로는.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다원예술이란 일본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예술일 것입니다. 연극이 미술과 접합한다거나 춤이 미디어가 서로 간섭하면서 새로운 리듬을 고안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일 수 없습니다. 이는 태초에도 예술이 종합의 형태로서 진행되어온 것처럼 20세기초 연극이란 이름으로 예술의 종합을 꿈꾸었던 미래주의자나 다다이스트에게도 마찬가지의 사항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해체를 넘어 융합과 복합이라는 트렌드가 넘실거리는 시대인데, 이러한 다원적인 움직임이 새삼스럽게 주목받을 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원예술이라는 이 신종의 예술 개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것이 설명의 시작이었다. 유아론적 세계에서 편의적으로 사용되어온 ‘다원예술’을 재명명 아니 재발명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다원예술 분과’를 만들고 급기야 ‘다원예술매개공간’을 설치 운영해온 예술행정의 의사결정에 따른 결과와는 상당히 무관한 타입이었다. 먼저 정책당국에서 하향식으로 범주를 설정하고 예술계의 하부구조가 그에 따른 ‘헤쳐모여’식의 재구조화를 이뤄가는, 다분히 발주-하청 같은 도급제 형태의 편의주의와는 별개라는 말이다. 당시 다원예술매개공간을 중심으로 다원예술의 정의를 둘러싼 논의들이 있었지만, 탁상공론에 그쳤던 것도 그러한 편의주의가 선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억지춘향식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낳은 당연한 실패였다.                 

하지만 다른 언어게임을 하는, 상당히 이질적인 담론 공간에서 요청한 ‘다원예술’의 개념은 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왜? 유아론적 영역에서의 자기명명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반해, 타자의 개입은 보다 개방되고 확장된 영역으로 관점이동 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의 시작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라는 형태를 취한다.”(<철학적 탐구>, 123) 라고 말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정직하지 않을까. 솔직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른바 생각의 시작이다.

2. 다시 말해서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진행되는 트렌디한 흐름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다원예술, 커뮤니티 아트, 융복합 예술 등등 근사한 네이밍은 다분히 유령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문학이나 철학의 유행사조만큼이나 ‘새것 콤플렉스’와 공모하여 기금을 사냥하는 타입이 적지 않다. 이러한 일체의 소모적인 흐름은 지금부터 말하려는 소위 ‘다원 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백남준식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네이밍은 “최신식”을 뜻할 뿐, 그 의미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우선 ‘다원예술’은 전면적인 태도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적어도 장르간의 혼합이라거나 기능적인 다원주의적 실험이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다원예술’은 세계관의 문제이다. 예술의 종합이 시도되는 지점에서 “예술의 완성도를 제련하자”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술 실천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굵은 질문을 재발명하는 것이다. 세계-내-존재로서 예술가는 이 자본주의에 어떤 태도를 취하며 어떤 액션을 선택하게 되는가 하는 것. 여기서 ‘선택’(choice)‘이란 단어가 주저된다면, ’우연(chance)‘로 바꿀 수도 있겠다. 좌우간 9.11 이후 이 굵은 질문은 세계 공연예술계의 질서를 버라이어티한 춤으로부터 ‘언어의 귀환’이란 형식으로 이루어진 미학과 정치 사이의 연극으로 방향전환 시켜 버렸다. 벨기에 산의 완성도 높은 춤의 향연이 아니라 독일의 거친 표면이 있는 포스트드라마틱 씨어터로 권력이동한 것이다. 즉 "거칠다는 것은 인간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일부입니다." (베누아 만델브로트) 라는 태도이다.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에서 비평적 디자이너가 남한과 북한 사이의 경계를 넘어 ‘피자’ 레시피의 암시장 루트 유통을 통한 사회적 교란과 그에 뒤따르는 일련의 실재적인 피드백을 보여주는 과정은 ‘다원예술’이 얼마나 담대하게 현실의 결에 개입하는가를 증명한다. 디르크 플라이슈만의 <나의 패션쇼>는 개성공단에 주문한 의류를 남한에 유통시키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전시 개념이었는데 이 역시 시대와의 녹록치 않은 접전이었다. 그런가 하면, 임민욱의 <불의 절벽>은 야만의 역사로부터 고문의 현상학을 호출하여 현재의 시간 아래에 “아이롱처럼”(천상병) 깔려 있는 고문 피해자의 현존하는 몸을 다시 한번 ‘분쟁 지역’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분쟁지역’이란 몸과 세계가 길항하면서 감각의 불편함을 낳는 영역이다.
이처럼 ‘다원예술’은 포스트모던의 전성기에 생겨난 ‘거품’ 즉 유희적 절충주의로 접근하는 예술의 종합이라거나 통섭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차원의 놀이가 점차 현실을 다루지 않게 될 때 등장한 것이다. 현실에 개입하고 사람의 몸을 역사화하는(푸코) 장면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예술의 존재론이 될 때 예술은 단순한 인지도구 그 이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게 요즘 진짜 예술인가. 가령, 철학자 랑시에르는 미학과 정치 사이에서 생겨난 ‘불편함’이야말로 감각을 새롭게 재분할할 수 있다는 빛을 던져줬지만, 직접적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예술과 무관하다는 그림자도 던져줬다. 이 빛과 그림자의 명암 사이에서 ‘다원예술’은 어떤 예술 실천을 해야 하는가.

우선 랑시에르는 그러한 명암을 미술 진영의 ‘관계 미학’에 던진 바 있다.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는 그런 지적은 랑시에르 스스로 모든 곳에서 공식적인 것만 보고, 나아가 프로파간다의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취지의 반박을 한다. 그렇다면 ‘다원예술’도 그러한 섬세하고 세밀한 독해가 요청되는 것일까.

미학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는 예술 실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원예술’은 장소성, 시간과 공간의 배치,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식별, 의미있는 언어와 무의미한 소음 사이의 경계 등등 무차별한 지대로부터 분화하는 예술 실천의 가장 중요한 감각들이 결국 어떻게 재설정되는가를 실험한다.

예를 들면, 여의도 상공에 방사능 바이러스를 스마트폰으로 뿌리는 김지선의 작업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서구 근대에 대응하는 압축근대화의 시기에 유토피아 수정궁 프로젝트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한 건축가 김수근의 부재와 그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현실 공간 속으로의 산책 - 시간축 위에서의 산책 - 이 일어나는 서현석의 <헤테로토피아>, 독일의 어느 도시의 재정난을 해소해줄 아랍 부호가 부재중인 채로 부조리한 블랙코미디 타입의 회의를 거듭하는 데스크의 쌍방향 화상 회의가 장치된 베를린의 <태그피쉬>는 미묘한 감각의 재분할, 재설정에 얼마나 민감하며 새로운 미학적 정치가 출현하는 경계 설정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형의 시뮬레이션부터 잠정적인 기억의 부활과 변용, 그리고 여기 부재중인 자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현실적 인간들의 꼭두각시 부조리극까지.

 

김지선,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이것은 랑시에르가 던진 이중구속의 메시지를 돌파해가는 퍼포머티브(performative) 즉 수행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재차 질문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퍼포머티브란 예술의 현실 개입이 비예술의 잠재성으로부터 예술의 현실성으로 이동해가는 길 위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범주이다. 이것은 예술 실천이 모두 프로파간다라는 도맷금식 비난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를 옹호한다. 감각 속으로 투신하는 에트나 화산의 철학자처럼 문득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은 단순한 용기의 문제는 아니다. 퍼포머티브는 예술가의 실천이 어떻게 예술을 존립하게 하는가의 문제이다. 떨판의 신체와 떨리는 세계 사이에서 퍼포머티브가 신체와 세계를 관능적으로 융합시킨다. 나는 이것이 춤이라고 믿어왔는데, 어느덧 춤은 골방의 향락에 젖어 현실을 잊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의 공포 속으로 보다 활달하고 대범한 스타일, 소위 ‘다원예술’이 몰려온 것이다.

 
지금까지 예로 든 작품들은 대체로 페스티벌 봄(예술감독 김성희)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 행사의 자의식은 기본적으로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 걸려 있는 한국의 아트 신이 어떻게 ‘압도적인 비대칭’ 구도를 깨고 ‘기우뚱거리는 대칭’ 구도로 동적 평형을 잡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러한 동적 평형의 시도가 의미있는 것은 서구의 문법을 추종하는 방식이 아닌 독특성의 실험이 감행되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에 의해 “굴종당했던 지식의 반란”(푸코)이란 것이 그러한 실험에서 반향하는 것이 퍼포머티브의 또 한 가지 층위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들이 각자 오후 3시부터 리허설에 임하면 진행할 자기 몫의 연습 장면을 랜덤하게 쏟아놓아 임의적인 편집이 이루어지는 홍성민의 연극 앗상블라주 작업은 연극에 대한 제도비판으로서 재현적인 것 너머로 나아간다. 이것은 아르토와 브레히트라는 서구의 양극단과는 무관하게 한국적 연극 멘털리티와 아비투스를 공격하고 있다. 또한 김윤진은 한국의 최상위 1%를 위한 상징공간 타워팰리스와 마주보는 극빈의 게토지역 구룡동이라는 저 아래의 바닥에서 신화가 어떻게 다시 탄생하는지를 놀라운 현상학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양극화 비판 같은 통속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과 신화 사이의 교환 작용이 실재적으로 일어난다는 아시아의 새로운 문법을 증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열대병>과 함께 봐야하는 것이다.

홍성민, 엑스트라스                                          김윤진, 구룡동 판타지-신화재건 프로젝트


한국의 ‘다원예술’은 서구에서 촉발된 리서치 베이스의 예술 작업에 영향을 받았지만, 페스티벌 봄에서 출현한 구체적인 작품들은 세미 다큐멘터리 씨어터 또는 다큐멘터리 씨어터라는 이미 지배적인, 제도화된 서구의 예술 형태와 별로 상관 관계가 없다. 포스트모던의 장점은 자유의 극대화인 것처럼 비예술과 예술, 잠재성과 현실성, 리서치와 공연 등등 게임의 규칙의 한계 너머로 나아가는 모험의 열기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등장했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예술이 역사화되기 이전에는 유동하는 에너지 그 자체인 것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다만 예술이 자본주의라는 스폰서에 의해 태어난 근대로부터 조롱과 자기야유에 시달렸고, 현재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하에서 예술가 계층이 소상공업자처럼 오인되어버렸지만, 예술이 본래 자기의식을 갖게 되면 자본주의보다 오래된, 아니 태초와 한순간에 연결된 것임을 단박에 자각할 수 있다. ‘다원예술’은 이러한 예술의 자기 의식화가 강화된 특이점에 있다. 동시대란 무엇인가. 아감벤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 그래서 이런 뜻에서 비시대적인/비현실적인 자”가 바로 동시대인이다. ‘다원예술’은 이러한 간극과 시차를 통해서 지금 한국에서 소수자로 출현한 것이다.

 

 

실재, 혹은 매체의 확장: 미술과 공연예술의 경계에서

글 : 서현석(연세대학교 영상학과 교수)
 

2008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무대로서의 세계(The World as a Stage)>라는 전시를 공동기획한 큐레이터 캐서린 우드(Catherine Wood)는 전시도록에서 (전시의 제목이 함의하는) 미술과 연극의 만남에 대해 몹시 조심스러운 태도를 드러낸다. 갤러리의 ‘하얀 큐브’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영역으로 작품의 진행 및 전시공간을 확장하고 내러티브의 요소들을 재활용한 작품들을 야심차게 소개하면서 우드가 신중을 기한 것은 ‘연극성’(theatricality)이라는 개념이 너무 오랫동안 모더니즘의 가장 적대적인 금기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우드가 환기시키듯, 논리적 견고함과 형식적 자가성, 과정의 담론 등을 이상적으로 추구한 모더니즘이 20세기 전체에 걸쳐 가장 철저하게 지양해온 것은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 양식을 지배했던 환영주의의 신화였다. (연극 무대의) ‘네 번째 벽’(the fourth wall)을 위한 미학과 섞일 수 없는 (미술관의) ‘네 개의 벽’(four walls)의 힘은, 외부 세계를 지시하는 즉각적인 기호를 배제하고 폐쇄된 영역에서 창작의 가치를 자가적으로 성립시키는 수행적 언술력에 있었다. 미술이론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선언했듯, 계몽적 자기성찰의 은총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못하고 ‘재현’의 덫 속에 처참하게 침잠해 있는 연극의 폐쇄적 정서는 미술의 ‘노골적인 적’(outright enemy)이었던 것이다.

20세기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쩔 수 없는 비교를 한다면, 공연예술의 발전은 분명 시각예술에 뒤쳐졌다. 많이 뒤쳐졌다. 회화와 조소, 사진, 영화 등 다른 예술 영역에서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졌던 문제의식과 성찰과 고민은 최근 들어서야 공연예술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포스트드라마 연극’(postdramatic theatre)이라는 개념으로서 최근 공연예술의 변화를 주시한 한스-티에스 레만(Hans-Thies Lehmann)은 이러한 지연이 공연예술의 높은 제작비용 때문이었다는, 안위에 가까운 짧은 해명에 안주한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연예술은 폭넓은 관객을 확보해야만 했고, 위험부담이 따르는 실험이나 변혁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적게 따르는 회화나 시, 작곡 등에서 다루어진 개념들, 이를테면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 비구상(non-figurative), 추상/구체(abstract/concrete), 기표의 자가성(autonomization of signifiers), 순차성(seriality), 우연미술(aleatoric art)’ 등은 1970년대 이후에야 ‘무대’에 던져졌다.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i) 연출의 <지옥>(Inferno, 2008)에서 둔탁한 공기의 파장을 일으키며 위로부터 무대 바닥에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지는 텔레비전 모니터들처럼, 무대에 ‘던져진’ 미술의 화두들은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지각의 세계로 진입한다. ‘지금’과 ‘여기’의 언어로 전환되어.

타 예술 영역과 대비되는 상대적인 지연 현상은 무용에서는 개념적인 혼란으로 나타났다. 무용이론가 샐리 베인즈(Sally Banes)가 지적하듯, 1970년대에 무용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 무용’이라는 개념은 공교롭게도 다른 예술 영역에서는 ‘모더니즘’의 핵심으로 여겨졌던 특징들을 갖는 것이었다. 무용에서 말하는 ‘반모던’적 성향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른 예술 영역에서 일컬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이를테면 다른 작품을 인용하거나 차용함으로써 작가의 고유성이나 독창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무용 작품의 사례는 극히 드물었을 뿐 아니라, 드문 와중에서도 그러한 작품은 정작 무용계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례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이봔 레이너(Yvonne Rainer)가 1960년대에 스스로의 작품을 ‘포스트모던’이라 일컬었을 때에도, 이는 단지 ‘현대무용’이라 칭해졌던 작품군의 다음 세대에 대한 막연한 순차적 개념으로 사용되었을 뿐, 작품의 미학적인 특징이나 무용의 양식적 전환을 지시하는 적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베인즈에 따르면,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포함한 근원적 본질에 대한 질문과 접근, 구체적인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환영적 묘사의 배제, ‘작품’의 구조적 완결성으로부터의 구성 요소들의 분리 등과 같은 이른바 ‘포스트모던’ 무용이라 일컬어져 온 작품들의 특징은 전형적으로 ‘모더니즘’ 예술의 담론에 속하는 것들이다. 딜레마는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패시티시(혼성모방, pastiche)라던가 이중 코드, 역사에 대한 인용, 결과를 우선하는 과정의 중시 등 시각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표현 방식들이 무용에도 적용된 것은 ‘포스트모던’ 무용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나서 한참 뒤의 일이다.

임민욱, SOS-Adoptive Dissensus(2009), Light and Sound Site Specific Performance, 9분.
이 장소특정 작품에서 관객은 한강 유람선을 타고 실재와 연극적 상황이 중첩되는 배, 강, 강변의 상황의 일부가 된다.(c)Minouk LIM


'현대연극’(modern theatre)이라던가 ‘현대무용’(modern dance)의 ‘현대’로 번역되는 ‘모던’(modern)이라는 개념은 공연예술 외의 다른 예술 영역에서 일컫는 ‘모더니즘’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무용에서만 하더라도, ‘현대무용’이라 함은 발레나 오락을 위한 무용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어떤 공연적인 시도들까지도 모두 포용하는, 넓고도 넓은 개념적 울타리다. ‘현대무용’은 시초부터 전통주의(academicism)와 제도적 관습에 대한 반향으로 나타났지만, 베인즈가 지적하듯, 1950년대까지는 이미 독자적인 스타일과 정교한 이론적 기반을 갖춘 미학적 체제로 발전하였다. ‘현대무용’의 일관된 형식과 기준은 여전히 ‘학파’를 형성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말하자면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oli)가 아방가르드의 중요한 특성으로 꼽은 ‘운동’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아방가르드 이전의 예술 담론이 그러했듯, ‘현대무용’은 여전히 자체적인 이론적 ‘교리’와 교육적 지침으로 이루어진, 기관적이고 규범적인 체계였다. ‘포스트모던’ 무용이 비판적으로 접근했던 전례에 ‘현대무용’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발레도 포함되었던 것은 ‘현대무용’이 여전히 발레와 같은 고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홍성민, 엑스트라스(2011)
기존 연극 작품의 배우/인물이 '레디메이드'가 되어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 작품은 연극의 재현적 장치를 전경화한다. (c)홍성민

 

한스-티에스 레만이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정리한 최근 공연에서의 ‘탈고전적’인 실험과 시도들 역시 전형적인 ‘모더니즘’의 성향을 따르고 있다. 말하자면, 공연예술에서의 가장 변혁적이고 전복적인 시도들은 개념적으로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근거하는 셈이다. ‘모더니즘’ 영화가 문학과 연극의 기반이었던 ‘드라마’로부터 탈피하려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포스트드라마 연극’ 역시 말 그대로 전통 연극의 절대적인 드라마적 기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레만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틀 안에서 이러한 작품들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포스트모던 연극’이나 ‘포스트모던 드라마’와 같은 개념들이 피상적으로 사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던’ 무용과 마찬가지로 그가 다루고자 하는 작품들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성향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화예술 전체적으로 그러한 것처럼 공연예술에서도 더 이상 정확한 실용성이나 구체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할 포스터(Hal Foster)의 지적대로 한때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치장되었던 이 개념이 이제 “진부할”(banal) 뿐 아니라 “부정확한”(incorrect) 사어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연극과 무용이야말로 그러한 개념적 사멸의 필연성을 이미 자체적인 담론적 모순을 통해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영국 극단 ‘포스드 엔터테인먼트’(Forced Entertainment)의 클래어 마샬(Claire Marshall)이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 어떤 연출가든 “작업을 시작할 때 ‘포스트모더니스트’ 작품을 만들겠다고 작정하지는 않는다.” 베인즈의 말대로, ‘포스트모던’ 무용 역시 일관된 미학적 성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되던 안무가들을 한데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매체에 대한 사유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과감한 형식적 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절실한 의지일 뿐이다.

 
무용이나 연극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비선형적으로 혼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각미술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다다른 사유의 영역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중요한 지향점들은 이미 무용이나 공연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매체적 특징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무용계에서의 시대착오적인 혼란, 그러니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이 묘연해지는 개념적 구멍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혼재향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서현석, 헤테로크로니(2011.12.18)
관객은 퍼포머와 1:1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구 서울역 일대를 함께 산책하다가 시선이 차단되거나 현장에서 어긋나는 음향을 듣는 상화 등에 노출된다. (c)서현석

 

미술의 가장 변혁적인 흐름을 모더니즘의 실질적이고도 사상적인 뿌리, 즉 ‘매체’(medium)에 대한 성찰에서 찾는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북해에서의 항해: 탈매체 환경 시대의 미술(A Voyage on the North Sea: Art in the Age of the Post-Medium Condition)』(2000)은 이러한 점에서 공연예술에 대해서도 함의하는 바가 크다. ‘매체’가 가진 물질적 기반에 대한 성찰을 중시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식의 미학, 즉 크라우스가 ‘환원적 모더니즘’(reductivist modernism)이라 칭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거대한 미학적 혁명은 회화와 조소로부터 사진, 영화로 번졌고, 1960년대에는 이로부터 또 다른 변혁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더니즘의 한정된 ‘물질’에 대한 집중은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함축하듯) 그로부터 파생되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이탈이기도 한 역설적인 파장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탈매체’적이라 하는 이러한 성향은, 더 이상 매체의 근원이 캔버스나 셀룰로이드 필름과 같은 특정하고 단일한 구성 요소로 환원되지 않고 혼성적이고 복합적인 예술의 메커니즘에 대한 사유로 확장됨에 근거를 둔다. 이미 1960년대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와 같은 아방가르드 영화 작가들에 의해 구체화된 이러한 ‘현상학적인 지향점’(phenomenological vector)은 영화를 ‘매체’가 아닌 ‘장치’(apparatus)로 인식하면서 급격하게 진화하였다. ‘매체’로서의 영화가 필름과 같은 구체적인 물질적 기반으로 환원되는 것이라면, 영화적 ‘장치’는 본질적인 구성 요소들로서 필름을 비롯하여, 카메라, 프로젝터, 스크린과 같은 기계적 도구들은 물론이고, 스크린이라는 평면과 그에 다다르는 빛, 프로젝터와 스크린 사이에 놓인 물리적인 거리와 그곳에 배치된 객석까지 포함하는 유기적인 개념이 된다. ‘환원적 모더니즘’의 ‘매체’에 해당되는 단원적 물질, 관객의 시야로부터 은폐된 기계적 도구들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비물질적인 현상에 이르기까지, ‘장치’를 이루는 구조적인 부분들은 다원적이고 다차원적이다. 이어지는 이후의 미술사적 흐름은 ‘장치’의 다원적인 물질성마저도 뛰어넘는, 보다 입체적인 혼성에 의해 추진되었다. 즉물적이기보다는 개념적이고, 결과물보다는 과정이 중시되며, 평면적인 전시 형태를 배제한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담론으로서의 미술행위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크라우스는 오늘날 각종 비엔날레 전시장들을 온통 메우는 이러한 작품들이 대부분 ‘매체에 대한 성찰’이라는 역사적 유산과 단절되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휩쓸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모더니즘의 숙제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존 예술영역의 경계를 횡단한다고 칭해지는 작품들, 특히 연극이나 무용을 기반으로 하거나 그를 지향하는 작업들이 크라우스가 말하는 미술사에서의 ‘탈매체’의 맥락에서 중요해질 수 있는 이유는 매체의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멀어지는 탈주로의 지평에 공연예술이 이미 자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앞서가던 부지런한 토끼의 앞에 잠을 자고 있는 거북이가 갑자기 거대한 위용을 보이며 등장한 꼴이다.)

 
“아무 것도 없는 어떤 빈 공간을 가상하고 그것을 빈 무대라 불러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이 빈 공간을 가로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연극 행위로서의 구성 요건은 충분하다.”


연극에 대한 정의로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피터 브룩(Peter Brook)의 이러한 설명만 하더라도 이미 ‘연극’을 크라우스가 말하는 ‘매체’로서가 아닌 ‘장치’로서 바라보고 있음은 명백하다.

연극과 무용은 구체적인 물질적 기반으로서의 ‘매체’를 이미 배제한다. ‘환원적 모더니즘’의 그림자가 무대에 드리워짐으로써 공연예술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촉발시킨다면, 무용이나 연극은 이미 ‘매체’로서의 정체성을 뛰어 넘은 상태로 잠자고 있다. 신체, 텍스트, 조명, 의상, 소품, 몸짓, 극장이라는 건축적 장치 등 온갖 물질적, 비물질적 부분 요소들의 복합적 총체가 ‘연극’이고 ‘무용’이다. 이러한 혼성적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개념은 ‘매체‘가 아니라 ‘장치’다. ‘장치‘는 곧 개념의 확장을 위한 사유이자, 사유의 확장을 위한 개념이다. 모더니즘의 숙제는 공연예술에서는 이미 높은 단계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변혁을 위한 미술의 몸부림에 ‘연극적’인 것들이 도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만에 있어서 연극의 근원적 특징이자 매력은 신체적 행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의 말대로, 연극은 “특정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거나 매체를 통해 소통을 이루는 다른 예술 형태와는 달리, 미학적인 행위 그 자체와 그것을 수용하는 행위가 ‘지금’, ‘여기’에서 실재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개념미술 이후 미술이 추구해 온 지향점과 중첩된다. 신기루가 아닌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현현으로서.
할 포스터가 지적하듯, 1980년대 이후 미술은 “매체의 표면으로부터 미술관의 공간으로, 제도적인 틀로부터 담론적인 네트워크로” 그 영역을 전환해 왔다. 완결보다는 과정이, 기교보다는 소통이, 정확한 정체성보다는 가변적인 관계의 역동성이, 개인의 무의식의 탐구보다는 사회적 역동성의 수행이 새로운 사유와 발상의 영역으로 펼쳐져 왔다.

안은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011)
"오늘날 '할머니'들은 춤을 어떻게 추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 기반이 되는 이 작품은 전문적으로 무용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수많은 실제 노년 여성들과의 교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민족지학 무용'이다. 최종 무대에도 이들이 등장하여 부자연스럽고도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c)안은미

 
파생적인 재현 장치들이 작동하기 이전에 보다 기본적으로 선행되는 연극과 무용의 시공간적 ‘실재’, 즉 신체와 장소와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발생시키는 ‘실재적인 모임’(real gathering)이야말로 결과물 중심의 기반으로부터 탈피하려는 현대미술이 그려온 이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몸’의 즉각적 현전,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여기’와 ‘지금’의 생생한 역학이야말로 미술의 지평에서 아른거리는 공연예술의 가장 오래된 ‘본질’이다. 어쩌면 ‘탈매체’의 현대미술사는 공연예술이라는 ‘노골적인 적’이 이미 점유한 영역을 지향하면서도 그와의 공통된 영역을 정교하게 피해 지나가려는 교묘하고도 신중한 궤적이다.

그 궤적의 주변에서 시각미술과 공연예술은 새롭게 만난다. 공연예술의 가장 식상한 전통 속에서 미술의 새로운 힘이 창출되며, 모더니즘 미술의 진부한 문제의식은 무대를 생경한 차원으로 견인한다. 한때 미개하고 나태한 유물로 여겨졌던 ‘노골적인 적’은 끊임없는 미래형으로 다가오며, 가장 미래지향적인 추진력의 원천은 묵은 유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서로의 개입과 반영에 의해 기존 영역들의 경계는 입체화된다. 예술의 역사는 진행형의 혼재시다.

 

 

나의 작업,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다: 기계비평

글 : 이영준(기계비평가)
 

‘경계를 넘나든다’는 말이 무엇이든 된다는 말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면 내가 하는 기계비평도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의 대상은 삭막한 기계이지만 비평이라는 방법은 예술에 대한 비평에서 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예술을 비평하듯이 기계를 비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요즘 예술의 트렌드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왜냐면 요즘 예술은 ‘무엇’ 즉 소재에 아무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법에도 아무 제한이 없다. 자기 몸에 총을 쏴도 예술이고 동물의 시체를 반으로 잘라도 예술이다. 기계를 만들어도 예술이고 기계를 해체해도 예술이고 기계를 그려도 예술이다. 다만, 기계비평은 예술화된 기계가 아니라 원래 하드한 기계의 영역에 있는 기계만을 다룬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MSC Daniella,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을 보고 그 크기와 용량을 가늠해 보려고 했다.

기계비평이 어떤 활동인지 알고 싶다면 나 자신의 가장 최근 작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페가서스 10000마일』이라는 책의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책은 딱 1년 전에 했던 한 달간의 항해의 기록이다. 중국 상하이에서부터 영국 사우스햄튼까지 길이 363미터의 배에 실린 6천 7백 개의 컨테이너와 더불어 90끼의 식사, 디지털 카메라와 HD급 캠코더, 노트북 컴퓨터와 바다의 역사에 대한 세 권의 책,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귀, 거친 바다에서 벌어진 온갖 일들에 대한 수많은 대화와 한 마리의 죽은 고양이, 30일간 10000마일의 항해. 이것이 내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CMA CGM Pegasus를 타고 겪은 여행의 내용이다. 나는 그 여행에서 내가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들을 다 기록했다. 그 여행에서 물빛깔이 다른 전 세계의 바다들을 관찰하고, 그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겉과 속을 속속들이 관찰하고, 그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과와 생각과 입맛을 관찰하고, 그 배들이 닿는 항구들을 일일이 관찰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이루어내는 인간-기계-환경의 인터페이스를 관찰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과는 멀리멀리 떨어진 곳에서 뭔가 특수하고 무시무시한 일을 해내는 기계는 어떤 것일까, 그것들을 부리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보고자 했다.

 
한 달간의 항해에서 나는 인간이 그 알 수 없는 검은 심연의 바다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았다. 바다의 인간들은 밥 먹고 잠자고 텔레비전 볼 때는 여느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나 바다의 힘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된다. 그것은 인간과 바다가 맺는 아주 특수한 관계이다. 그 중간에 초대형 컨테이너선 CMA CGM Pegasus가 있다.

 
그것을 비평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주제들은 어떤 경우는 여행의 날짜별로, 혹은 여행의 경로에 따라 나눠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강철과 바닷물과 음식 같은 물질별로 나눠지기도 하고 혹은 거기서 일하는 인간들의 역할과 태도에 따라 나눠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바다-배-인간이라는 네트워크를 가능한 한 많은 선들로 가로지르는 작업이었다. 기계비평은 단일한 지식이라기보다는 그런 선들이 만들어 내는 지식들의 집합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물이 주위의 다른 사물이나 지식과 맺고 있는 네트워크를 따지는 일이다. 배라는 기계는 바닷물을 끌어올려 선체의 균형을 잡기도 하고 엔진냉각수로도 쓰고 걸러서 각종 용수로도 쓰는 복잡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는 배를 뜨게 만드는 모태이면서 또한 배를 파멸에 빠트리는 무서운 어머니이기도 하다. 엔진은 공기를 숨 쉴 뿐 아니라 바닷물로 자기 몸을 식히고 벙커시유를 들이마시고 윤활유로 자기 내장을 적시고 뜨거운 공기와 매연이라는 배설물을 내뱉는 복잡한 작용을 한다. 항해는 항법과 지리, 기상학과 항만운영, 안전수칙 등의 지식과 관계를 맺고 있는 복잡한 활동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끊임없이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라는 위협을 느끼며 자신을 중심에 세우려고 애쓴다. 기계비평은 그런 작동들을 읽어내려는 활동이다.

영하의 바닷물에서 체온을 보존해주는 비상용 드라이수트를 입은 필자


 

 

DIWO; 동시대 다원적 예술의 태도들

글 : 홍성민(계원예술대학 교수, 예술가)
 

‘다원예술’ ‘다원아트’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원예술이 있다면 다원예술가가 존재해야 할진데 세상 어디도 다원예술가로 불리거나 자칭하는 예술가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없으니 당연히 유통, 소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원예술이란 용어는 문화예술 지원행정을 위한 명칭으로만 존재한다. 국내에서만 문화예술 지원행정에서 언젠가부터 빠짐없이 등장하는 다원예술은 문학, 미술, 공연 등의 전통적 분류법에 포섭되기 힘든 ‘요상한’ 또는 ‘변두리 예술’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사실 다원적 태도의 동시대예술이란 변두리가 아니라 시내한복판의 핵심이다. 이제 (다원예술이 아니라) ‘다원적 태도’는 21세기 동시대예술의 본류가 되었고 다원적 태도 또는 다원성에 대해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DIY가 20세기 예술가들의 태도였다면, 21세기 예술의 두드러진 특징은 DIWO(Do It With Others) 즉, ‘타자와 함께 하기’인테 이것이 다원적 태도의 키워드이다. 나와 다른 커뮤니티, 나와 다른 백그라운드의 타자들과 교류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나서기 시작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아예 예술가 콜렉티브를 만드는 이유다. 예술가 콜렉티브는 동종교배가 아닌 이종교배가 필수다. 디자이너, 인문학자, 예술가, 패션디자이너 등 서로 다른 타자들이 이접된다. 서양은 뒤늦게 자신들이 분리, 분배해놓은 예술, 학문 간의 경계를 극복하고 다원성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원성이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시대적 요구이다.

리미니프로토콜 '카르고 소피아' 개조된 트럭에 탄 관객은 실제로 이동된다. 2006

공연예술에서 다원적 태도의 ‘타자와 함께 하기’(DIWO)의 대표적 작품은 유럽의 3인조 콜렉티브 리미니프로토콜의 <카르고 소피아>다. 서유럽에서 동유럽을 오가는 장거리 트럭운전수의 루트에서 착안된 이 작품은 관객을 통째로 트럭에 싣고 이동하며 트럭 운전수의 ‘실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3인의 예술가와 공연관람객은 노동자계급인 타자(트럭운전수)의 경험을 온몸으로 맞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21세기 진보적 예술교육을 위해 찰스 에셔는 반-전문화, 반-고립(자율), 반-하이에라키를 선언했는데 이 세 요소는 흥미롭게도 21세기 공연예술이 고민하고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리미니프로토콜의 작업들은 훈련된 전문연기자가 아닌 일반인을 선택하며(반-전문화), 블랙박스(극장)가 아닌 길 위의 트럭을 선택했다. (반-고립) 또한 트럭운전수의 실제 스토리텔링에 전적으로 의존된다는 것은 과거 공연예술에서의 시나리오-연출가-퍼포머-관객 간의 전통적 하이에라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유럽의 또 다른 젊은 예술가 콜렉티브 ‘베를린’의 작품도 이런 다원적 태도의 요소들을 충족시킨다. 이들의 공연작품 <모스크바>는 격동하는 모스크바의 여러 모습들을 각계각층의 모스크바 시민들의 인터뷰와 함께 보여주는데, 큰 천막 극장 안에 설치된 여러 개의 대형모니터들이 트랙을 타고 이동되거나 심지어 모스크바의 시위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머리 바로 위까지 이동되어 평면적인 다큐멘터리를 입체적이며 공간적인 체험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 역시 모스크바 시민들이라는 타자와 함께 그들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된 방식으로서 미디어 테크놀러지를 적절히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90년대 독일의 칼스루에미술관, 도쿄의 ICC센터 등 예술과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만남을 통해 21세기 문화예술을 선점하려던 기획은 지지부진해졌으며, 이렇듯 관으로부터 수직적으로 기획된 A+B의 만남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90년대 국내에서 유행한 수많은 예술과 과학의 만남, 무용과 미술의 만남, 연극과 음악의 만남 등의 수많은 실패한 짝짓기들을 우리는 목도해왔다.

베를린의 '모스크바'. 바닥에 앉은 관객 머리위로 여러 개의 모니터가 천막 극장 안에서 다양한 궤도로 이동된다. 2009

맞선보기식 일회적 만남이 아니라 동거가 필요했다. 통섭이나 융합이라는 용어로 귀결되기까지 그동안 학제간, 다제간, 초제간 등으로 번역돼 온 서양의 용어들이 결국 맞선보기식 일회적 만남의 땜빵을 위해 고안되었음을 서양은 뒤늦게 깨달았다. 다원적 예술의 태도란 일회적 만남이 아니라 이음새 없는 융합이나 반대로 그 이음새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통섭을 필요로 한다. 93년 태국출신의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의 개인전(갤러리에 초대된 관객들이 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전시의 전부였다)에서 시작된 미술에서의 ‘타자와 함께하기’ 프로젝트들은 수없이 많다.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스터는 전시회를 위해 갤러리스트의 자서전을 만들어 주었고, 최근 구겐하임미술관 개인전에서는 미술관 전체를 파란색으로 물들이며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연주를 떠올리는 음악연주회에 관객을 몰아감으로써 미술관 전체를 침몰해가는 타이타닉호로 변형시켰다. 일본 캐릭터회사의 캐릭터를 싼 가격에 구매하여 동료 예술가들과 번갈아가며 스토리텔링을 창발했던 피에르 위그에서부터 미술관을 술집, 만남의 광장, 춤추는 장소 등으로 바꾸었던 수많은 미술가들의 작품, 타자(또는 타커뮤니티)와 만나겠다고 나선 90년대 후반 이후 수많은 실험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큐레이터 니콜라부리오에 의해 <관계적 미학>이라는 명칭으로 정리되었다.

리크릿 티라바니자의 개인전. 전시장에 초대된 관객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상호 교류 하도록 유도된다.

(좌)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스터. 'T 1912'.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맞아 작가는 관객들을 타이타닉호의 탑승객으로 변환시켰다.
(우) 동양의 샤먼 의식은 언제나 융합적이었고 다원적이었다.

21세기 예술의 화두가 된 다원성이란 일회적 만남도, 서로 다른 장르를 나열한 뷔페요리도 아니다(뷔페음식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또한 ‘다원아트’ 또는 ‘커뮤니티 아트’ 따위의 또 다른 장르로 추가될 틈새시장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다원적 예술의 태도란 수백 수천 년간 ‘분리의 전문화’의 길을 걸어온 서양 철학과 예술의 근본적 반성일 뿐으로서 우리에겐 사실 해방 전까지 존재해왔던 미학이란 사실에 주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동양의 공연예술은 이미 다원예술이었고 미술역시 분리되지 않아왔다. 시와 서예와 산수화 즉, 문학과 캘리그라피와 회화는 하나의 평면 위에 공존했으며 그 시를 낭독하고 이어받아 시를 지어가는 것이야말로 문학, 미술, 퍼포먼스가 융합된 다원예술이 아닌가. 초대된 무당(예술가)이 마을사람들(커뮤니티)과 만날 때, 퍼커션과 무용과 음식이 자연풍경 속에 벌어지는 한판 굿이야말로 앞서 말한 DIWO의 다원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다원적 예술이란 진보라기보다는 회귀에 가깝다(물론 정확히 말하면 과거를 돌아보는 동시대성),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다원적 태도의 공연예술은 ‘다원아트’가 아니라 ‘정극’이다.

 



출처:웹진 아르코 http://webzine.ark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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