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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아트 계속 할 것인가, 현대예술의 새로운 인스티튜션 이란?

2009-12-24  



#왼쪽 하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홍성민 (작가)
김장언 (독립 큐레이터)
유진상 (미술평론가)
김현진 (독립 큐레이터)

본 토론은 2회에 걸쳐 자유롭게 진행된 토론회였으므로 그 맥락을 살리기 위해 실명을 삭제하지 않았으며, (유진상과 홍성민의) 구어체를 그대로 기록했음을 밝힙니다.

유진상 : 컨템포러리아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심지어 오늘 우리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폐기해야 할지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김장언 : 한국 미술에서 동시대성이 이해되는 방식은 언제나 기형적이고 변태적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컨템포러리 아트라고 이야기되는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도 동일한 차원으로 진행된다고 생각된다. 나에게 동시대 미술 혹은 현대 미술은 작가의 세계에 대한 해석 혹은 반응이다. 이것은 세계와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최근 보여지는 예술과 사회적인 것에 대한 반응 역시 단순히 사회적인 것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현대미술이 모두 시엔엔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플랫폼 2009와 신호탄은 현대 미술 혹은 현대미술과 동시대성에 대한 한국 미술계의 극단의 지점을 드러내는 어떤 징후 같기도 하다. 플랫폼 2009가 동시대성에 대한 어떤 지점을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드러내고자 노력했다면, 신호탄은 ‘설치미술이란 이런 것’을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후자가 참담한 것은 어떤 세계관으로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이미 상정된 미술의 스펙타클을 향해 모든 미적 태도가 재배열되는 전시였다는데 있다.

김현진 :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유진상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던 것-김선정 선생님이 언급한, 위급함과 절박함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내 생각에는 이런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현장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일 텐데, 즉 제도적 시스템 하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필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필요가 제기된다. 플랫폼은 기무사에 대한 전시이자, 공공기관의 큐레이터쉽에 대한 예가 될 수 있는 어떤 제안처럼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술현장 안에서 돌아가는 여러 가지 상황 내에서 오래 활동해 왔던 분으로서, 지금 서울에서의 미술 현장이 돌아가는 방식 현대미술관이 기무사를 가져가는 상황에 대해 다른 방식을 제시하신 듯하다. 큐레토리얼의 내용과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본인의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예시하거나 제안하거나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그 이후의 신호탄은 새로운 비전보다는 국공립기관의 구태의연한 낙후된 큐레이터쉽을 보여준다. 현 정권하에 다시 90년대 전반 식 설치를 보여주는 전시 같았다. 즉,  ‘신호탄’ 전은 “설치란 바로 이런 것이야”라고 과시하는 전시 같다.

김장언 : 나는 신호탄을 보면서,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대 미술에서 동시대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토록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동시대성에 대한 개념 없이 미적인 것을 향해 경주하는 이상한 올림픽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차원에서 동시대성에 대한 의미를 다각화하고 그것을 개념화하는 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동시대 미술의 폐기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와 관련되어서 어떤 지점을 이야기하는지 알고 싶다.

홍성민 : 동시대미술의 폐기란,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말을 동시대 미술로 보지 않고 '동시대예술'로 보아야 그 의의가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 '미술'의 폐기인가 동시대 '예술' 전체의 폐기인가? 미술은 공연등 타 장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진보적인 동시에 가장 개념적이기에 고립되어 있는 지점이 없지 않다.

김현진 : 내용적으로 비전을 보여주는 기관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현재의 현장과 진부한 공기관들의 행보에 카운터파트가 될 수 있다. 현재는 현장의 좋은 컨텐츠를 더 상위로 올릴 수 있는 경로들이 많이 없다. 큰 국공립 미술관에 컬렉션이 되어 역사화의 과정속에 놓여져야 하는 작업들이 아직도 많이 방치되어 있는 문제 또한 있다. 지금 우리가 미술현장에서 나아가는 방향과 국공립 미술관의 움직임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다. 우리 미술관들은 때론 구닥다리 박물관같이 유물이 된 것들만 흡수하는 거 같다.

#플랫폼 2009 Platform in KIMUSA

유진상 : 그렇다면 오늘 미술관의 기능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자. 왜 각자의 컨템포러리 아트가 세계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가?  모든 활동이 시기가 지나면 시스템화 된다. 컨템포러리 아트도 일정한  형식이나 이슈가 위계를 가지고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개개인의 바디 안에서 구현되었는데 이제는 의미 속에서 존재한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각각의 예술가들이 컨템포러리 아트를 대함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스타일라이즈 한다..

김장언 : 기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우리가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가 누구와 이야기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와 같은 제3세계 국가는 늘 서구를 향한 말걸기 혹은 제국의 비준을 받기 위한 몸부림에 익숙하다. 아시아를 이야기할때도 혹은 제3세계 간의 다른 연대를 이야기할때도 우리는 언제나 제국의 동의와 인정아래 그 의미를 확인할 때가 많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 제국인양 타자들과 만나는 모습또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는 우리의 동시대성이 아닌 제국의 동시대성에 의해서 용인되는 동시대성을 향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우리의 동시대성의 문제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고찰하고 작동시키고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비단 수구적인 우리것을 찾자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와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타자를 개발하며 그들과 동시대성의 맥락을 작동시켜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현진 : 그간의 리서치를 통해서 아시아적 상환에서는 오히려 매우 심도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국제적 담론의 트렌트에 명확히 부합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매우 ‘로컬’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인터내셔널한 맥락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작가들의 경우 오히려 작업이 섣부르고 안 좋을 경우 쉽게 국제적 ‘클리셰'가 될 뿐이다.  특유의 형식 언어들을 다루는 작가들이 글로벌 네트워킹이 강화된 미술신에서 오히려 단순히 서구적인 폼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는데, 국제적 미술신에서 흥미롭게 다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이국성을 전략으로 삼지 않기 때문인지 여전히 많은 피상적인 서구 큐레이터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 동시대가 단순히 서구 대 비서 구의 이분법의 구조 속에 있지 않다. 우리는 다양한 중심들이 네트워크된 글로벌씬 안에 있기때문에 이국성의 장치는 자신의 지정학적 문화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작가 중에 매우 그 형식이 이디오신트라틱함에도 불구하고 정서영 작업들은 외국 큐레이터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거나 국가전이나 주제전 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다. 내가 일본에서 리서치를 할 때도 형식을 흥미롭고 심도깊게 다루는 작가는 대부분 로컬하게 남겨져 있어 국제적인 현장의 관심밖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리서치를 통해서 다각적으로 열심히 하면서 다각적으로 시도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일부 유명큐레이터들 조차 각각 나라에서 대표 작가리스트를 만들어 돌리면서 전시를 하곤 한다. Serpentine에서 인도 작가 전시를 했을 때 이런 것은 국가 대표적인 리스트인데, 이 리스트는 일본의 모리미술관의 인도전시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이다. 

유진상 : 우리가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주시되어야 할 부분이 '왜 우리는 타인의 시각으로 생각하느냐' 이다. 우리 스스로를 '이디오신크라시'라고 얘기하는 레이블을 만들므로 이러한 것들을 셀렉션하고 센터의 관계 속에서 이런 것들을 생산한다. 어디엔가 맥도날드같은 프랜차이즈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불고기 버거같은 것을 만들어 보고자한다 하는 시도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김장언 : 국제 미술계에의 주류에는 그들의 게임이 있다. 그리고 그 게임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방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전략이 먹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혹은 국가적 노력을 통해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작품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 정도 수준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후 게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모든 상황을 알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상황을 다국적 기업 모델로 이야기해보면,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있으며 그 다국적 기업들 속에는 로컬화된 다국적 기업들의 변종이 있다. 그리고 로컬에는 다국적 기업들과 상대적 위치를 점유하며 지역에서 작동되는 기업들이 있다. 로컬한 기업이 다국적 기업으로 변화되느냐 혹은 로컬한 기업이 다국적 기업의 지역 지점으로 변신하느냐, 로컬한 차원에서 다른 확장을 이루어내느냐 등으로 로컬한 기업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위말하는 서구 혹은 제국의 기업들은 그것이 설립되면서 다국적 기업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갖고 출발하는 반면, 제3세계국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익숙치 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은 처음부터 로컬한 기업으로 혹은 한국의 기업으로 자신을 작동시키기 보다 글로벌한 맥락에서 작동시키는 기업들도 보인다. 즉 유럽시장에 혹은 미국시장 진출이 목적이 아니라 처음 출발부터 동남아시아든 중동이든 혹은 유럽이든 상관없이 전지구를 상대로 자신의 비즈니스를 작동시킨다. 한국 미술의 젊은 세대들은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백남준 예술상

홍성민 : 백남준 미술상에 안은미, 이승택 등이 포함되었다. 유럽담론에 포섭되지 않은 작가들을 뽑은 것이다. 로컬리티와 관련하여 선택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 참여했는데 포스트 안은미를 찾아내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국제적 콘텍스트에서 쉽게 읽히는 젊은 컨템포러리 작가와 이런 authentic 한 작가들 사이에서 갈등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에르메스 상과는 변별력을 갖을수 있었다.

김현진 : 그런건(백남준 미술상) 괜찮았던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김영은의 작업은 어땠나?

홍성민 : 특정 작가의 시그니쳐들이 오버랩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진 : 우리는 오늘날 빈 기호(empty signifier) 들의 범람 속에 있다 김영은은 그러한 빈 기호를 저글링(juggling)하는 또 하나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이 유사한 기호와 제스쳐를 취하나 진정성이 없는 스타일로 그러한 제스추어들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김영은의 경우 젊은 작가가 전시 하나를 만들어 내는 역량은 돋보이나 그녀의 작업은 “어떤 스타일의 채택과 그 레퍼런스들의 반복”으로 귀결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어떤 점에서는 근과거 작가들의 역사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후배 작가들이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레퍼런스들을 분명히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자신의 스타일로 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혹은 더 이상 새로운 형식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김장언 : 최근 한국 미술씬에서도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를 개념적으로 전유하는 작업들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부쩍 늘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역사를 전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선배들의 개념적 태도를 단순히 스타일로 변형시키면서 새로운 트랜드로 인식하고 그것을 작업으로 변화시키는 태도 또한 엿보인다. 이것은 아카데미에서 거장의 그림을 모사함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전통적인 미술교육의 한 방식의 개념적 변화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태도에서 기대될 것은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자신이 전유한 역사적 레퍼런스를 드러내는 것, 자신과 과거가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 그 과거가 어떻게 자신에게 사건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구성한 과거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유진상 : 알면서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상황 일 것이다. 비평가들이 그것을 느끼지만 말을 할 수 있는가? 현재 상황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허용되나 밖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평론가들의 글을 읽었을 때 담론을 끌어내는 방법을 로컬에서 허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현진 : 김영은의 작품은 단지 여러 기호들을 펼친 개인의 극장(theater)이다. 작업의 요소요소를 놓고 개인의 극을 종합적으로 연출한 듯 느껴진다. 문제는 형식성에 있어서 과거 작가들의 형식적 태도가 김영은의 작업속에 스며들어있는데, 그 특유의 형식적 태도는 과거에는 정치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의 양식화된 반복 속에서 그것은 정치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결과적으로 탈정치화된 기호들의 총체극이다. 또 하나 요즘 미술계 일각의 문제는 정확히 자신이 채택하고 있는 형식적 레퍼런스를 밝히지 않으면서 스타일화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형식(form)의 세부들을 구분해내야 한다. 일례로,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는 60-70년대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관심이 불러일으켜졌는데, 이 경우 과거의 레퍼런스를 밝히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으로 작업을 하거나, 혹은 그러한 레퍼런스들을 자신의 리서치 영역으로 밝히곤 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홍성민 :  '뛰어난 미학의 소설이 문고판으로 대량생산되는 순간 더 이상 미학적일 수 없다'라는 진보적 예술의 입장의 말이 생각난다. 난 이 말을 지지 하는 편이다. 사실 콘텍스트와 인스티튜셔널라이즈 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미학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다.

김장언 :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과 다른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이 작가의 작업을 설명할 때, “이 작가의 ‘전략’은...”과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표현을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는데 왜냐하면 작품 세계가 하나의 전략으로 학생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취업전략, 투자전략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영담론이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 같다. 그럴때마다 나는 전략이라는 단어를 왜 사용하는지를 물어보면서 그것이 소위말하는 작가의 성공전략이라고 여겨진다고 할지라도 작품은 그 작가의 태도와 가치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작가의 ‘전략’은...” 이라고 말한다.  ‘태도’나 ‘생각’이 아니라...  생존에 민감한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롤 모델의 작가의 학습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발표할 때 작가의 태도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보기보다 작가의 전략으로 캐치한다.

김현진 : 형식의 내제적인 언어를 다루는 작가를 카피하느건 힘든 일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카피도 가능하다. 문제는 언어를 세부적으로 구분해 줄 비평적 토대가 필요한데, 그보다는 우리 비평은 오히려 너무 저널리즘적이고 혹세무민으로 정화기능을 하지 못하는 점 또한 많다.  김훈 왈 “말은 잘하는데, 말 잘하는 것으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얘기했는데, 우리 비평계에도 분명 그러한 인물들이 있다.  

김장언 : 한 작가와 대화에서 그는 어쩌면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한국 학생들에게는 모두다 추상미술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한국 인스티튜션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내용들이 현재 작동되는 동시대 미술과 너무나 괴리가 있어, 그러한 동시대 미술의 역동적 움직임을 기사나 사진 등 간접적 매체를 통해서만 접해야 하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기사를 보고, 사진을 보고 그 작품과 전시에 대해서 상상해야하니 모든 것이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상상을 원활하게 할 배경지식도 부족하니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동시대 미술과 동시간대에서 작동되는 기관이 부족하기 때문에 야기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외부의 소식을 전하는 기관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현장으로서 작동되는 기관이 있다면 그리고 그 기관을 통해서 전시와 토론 교류가 원활게 이루어진다면, 현대미술이 추상적 대상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현재가 곧 동시대 미술이 작동되는 현장이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면, 대학 수업시간에 현대미술에서 중요하게 부상하는 논문들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같이 읽는데, 한 학생이 유럽이나 미국 미술대학에서도 이러한 글들을 읽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 학생의 질문에, 서구의 미술대학에서는 이러한 글들을 수업시간에 읽지 않고 이러한 글들을 쓴 저자를 직접 대려와 강연을 듣는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논의되는 담론들이라는 것 역시 학생들에게는 추상적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수준과 담화는 일치할 수 없다. 이러한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떨쳐내야한다. 다른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문제제와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이 기관의 역할과 맞물려 있다. 컨템포러리라는 걸 위해 존재하는 공간은 반복적이다. 기관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 기관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동시대의 미술을 관찰하는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김현진 : 마틴 크리드 전시는 마치 “유럽투어를 끝낸 오아시스”가 90년대가 아닌 2000년대 말에서야 한국에 온 것 상황과 유사하다. 우리 사회는 1세계를 바라보고 있고, 이제 우리는 당대에 글로벌 씬을 이곳에서 직접 만나고 생산해 내야 한다. 국제적 검증을 거친 후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그런 씬들을 이끌는 데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외국에서 레이블이 만들어져야 초청하는 관례는 없어져야 한다. 물론 이제라도 우리가 만나야 할 작가들과 역사가 있긴 하지만, 이제 우리 기관들과 큐레이터들은 스스로 국제적 현장에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이끄는 역할들을 해 나가야 한다.

홍성민 : 다양한 인스티튜션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 즉, 다른 인스티튜션을 위해 남겨주는 것이 부족하다. 우리는 자본을 갖고있는 내가(인스티튜션이) 싹쓸이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인스티튜션을 대안적으로 만들더라도 전방위적으로 선점해야 된다고 생각. 도미넌트한 위상을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 강박 관념이 있는것 같다. 서구에서는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로컬에서 컨템포러리 인스티튜션을 만들어 끌고 간다.

유진상 : 차이점은. 서구에서는 내가 안하면 할 사람이 없어서 한다는 외로움이 존재한다. 어떤 결정이던 문제든 내가 만들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홍성민 : 서구든 한국이든 메이커들은 사실 그렇게 한다.

김현진 : 여담이지만, 한 뉴스에서 사형제 찬반에 대해 인터뷰로 갑론을박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논리가 서구유럽의 선진적 예를 따라야한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많은 인권문제를 지닌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내야한다는 논리가 더 낫다.

유진상 : 모든 것이 ‘유럽에서 하기 때문에’ ‘라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것이 안전해야한다. 위험한 것은 안 된다. 실험적인 것은 만들어 지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한다. 컨템포러리는 무엇인가? 이러한 생각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물어보지 않으면 되지 않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삶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만들다. 이 지점 때문에 컨템포러리 아트가 이상해진다. 교육, 언론 모든 것이 주체를 관객으로 설정한다면 예술이라는 게 성립이 안 된다.

홍성민 : 작가의 포섭되지 않음이 가장 큰 미덕이다. 다른 장르에 비해서 탈주하자마자 바로 포섭이 될 지언정 해야 한다. 시스템이 발달이 되어서 빠르게 포섭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결국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나 창작자들은 탈출을 한다.

김현진 : 나는 어떤 터키작가가 서구 미술사의 역사적인 무게를 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자신의 역사는 바로 자기가 하는 것의 행보라는 말이다. 사실 멋진 말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꼭 맞는 말을 아니다. 작가들도 서구와 자국의 중간에 무언가의 무게를 벗어나 작업하려하지만 양쪽에서의 갈등이 있다. 이런 부분이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문제이다. 사실 지금 동시대 미술은 시작부터 서구 미술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내 조상이 만든 역사는 아니지만 그것의 토대 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또한 이 굴레와 전혀 상관없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딜레마가 있다. 

홍성민 : 그러한 사람들도 맥락은 알고 있다. 결국은 누가 대안성을 이고 지고 갈 것인가의 문제일터, 우리의 대안공간은 이제 젊은 작가들이 한번 밟고 지나가는 스테핑 스톤의 장소로 전락되어 버렸다.

김장언 : 우리나라에서 인스티투션들 심지어 대안공간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성격을 들어내는 방법이 행정적이다.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는 것은 행정적인 것이다. 한편 나는 한국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운데 왜냐하면 그것은 로컬한 차원을 특수성으로 전환시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를 엿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태도에는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시간을 초월적 시간 즉 동시대성이 삭제된 추상적 시간으로 전치시키는 태도 또한 엿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가 선(禪)과 결합되면서 동시대적 맥락이 삭제된 것이나, 한국의 산업화와 군사독재 경험을 한국만의 특수한 역사적 사실로 상정하여 민중미술 혹은 사회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미술의 태도를 한국만의 독특한 미술형식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 모두가 이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인스티튜션 이야기를 하면, 미술계의 시스템 및 구성원들의 작동 방식은 너무도 행정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가들이 또한 되지도 못한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시스템 없는 행정화가 한국미술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안공간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행정적이다.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는 것은 개념적 태도가 아니라 행정적 태도이다. 관례적 공모전 역시 그렇다. 인스티튜션의 작동방식이나 큐레이터의 활동 역시 창조적 지적 활동의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래적인 행정은 이러한 지적 활동을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홍성민 : 새로 오픈된 해밀톤을 인스티튜션의 맥락에서 보자면, 예술교육과 현장이 접점을 이루는 지점에서 해밀톤의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졌다. 물론 예술교육과 현장이 종속적이지 않고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 조건에서 상호 긴장있는 피드백을 교류할수 있는 공간이라면 새로운 시도일것 같다.

유진상 : 젊고 유능한 큐레이터들이 일하는 공간을 원하는 것은 우리는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특정한 태도가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의 날에 대해 이야기해왔지만. 현실의 날 이 라는게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고, 날을 대면하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그런 장소로서의 치열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을 조건으로부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NOW HERE. 그러나 모든 건 없다 모든 것들을 조건 하다보면 여기 지금 이 없어진다.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는 '여기, 지금' 이다. 그걸 가지고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존재로서 태어나서 시간을 보내면서 소멸되는 게 지금, 이런 날이 선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홍성민 :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새로운 인스티튜션의 지점에서 대안적 교육을 하고 있는 하자 센터가 떠올려 진다.

유진상 : 그러나 꽃은 지고 피는 것이다. 대안교육도 유행처럼 없어질 수 있다.

홍성민 :물론이다. 대안공간이 그렇듯. 현재는 유행처럼 대안학교가 입시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김장언 : 대안학교 중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하자 센터인데, 이곳은 한 문화학자의 관심과 연구의 확장 속에서 만들어진 현장으로써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활동성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을 위해 노력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 및 활동가들이 있으며 심지어 학생들 역시 학교 만들기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왔다.

홍성민 : 유행적 형태의 대안학교 지원 붐이 인다고 할지라도 대안학교들의 존재 자체는 포지티브한 것이다. 대안공간 들이 만들어진 시기와 대안학교가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한 것이 신기하다.

김현진 : 하자 학교는 98,99년쯤 오픈했다. 처음에는 중산층 엘리트 부모들의 리버럴한 아이들도 많았다. 초기의 하자는 내부의 클래스 갭 같은 것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흐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홍성민 : 하자센터 출신들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대안학교 출신들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교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들은 모토는 상위기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생존할 수 있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루프나 풀은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도, 즉 더 이상 지속적인 얼터너티비티를 가지려 하지 않는듯 하다.

김장언 : 대안학교에서는 대안학교가 대학교를 위한 하위 교육기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작동시킬 수 있도록 교육하고자 한다. 자기주도 학습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안학교 이후, 대학교를 가든 아니면 새로운 무엇을 하든 그것은 학생이 선택할 몫인 것이다. 대안공간을 떠올려 보면, 미술계에서는 큐레이터이든 갤러리스트이든 심지어 작가들도, 대안공간을 어떤 통과의례의 과정으로 여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대안공간을 통해서 입문하고 이곳에서 작품 좀 보여주다가, 상업화랑이나 미술관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안공간이 젊은 작가들 만을 인큐베이팅하는 곳은 아니다. 작가들과 어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로서 어떤 미술 담론을 작동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젊은 작가를 위한 인큐베이터라는 식의 의미는 어쩌면 90년대 상황에서 긴급히 요청되었던 대안공간의 역할이었을지도 모르며, 또한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토대를 확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변화된 시점에서 어떤 의미로서 자신을 작동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대안공간 주체들 스스로 진지하게 토론해야할 것이다.

김현진 : 한국 사회는 지독하게 인맥과 학연지연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서 젊은 이들이 사회에 진입하고 안착하는데 있어 하자라는 공간의 대안성만으로는 이들을 사회 내부에 진입시키는데 한계를 안겨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자를 나온 친구들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자기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대안 교육 기관이나 대안 공간이 때문에 단순한 어떤 수순으로 이용 되어서는 안 되지만, 각 개인들의 경험과 사고가 그 이후의 행보를 통해 현 사회와 현장에 적극 개입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유진상 :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작가를 블레임할 자격은 없다. 그렇기는 해도 다시 관객이 아니라 배우의 입장으로 나를 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최소한 나는 관객이 아니라고 얘기해야한다. 관객이 아니라 배우가 프로덕션 하는 것이다. 즉흥이다. 작가들은 순간순간자기의 입장을 관객의 입장에 놓는다.

홍성민 : 작가들이 작품을 팔리기를 원하던 원치 않던 프로덕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은 태도의 문제고 얼터너티브 플레이스의 형식에 대한 문제이다. 대안공간 큐레이터의 역할을 바운스하는 역할로 만든다. 자기 입장에서 얼터너티브스페이스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진상 : 작가는 처음서부터 스스로를 임파워먼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이용하면서 간다고 생각하는 작가도 있다. 좋은 작가가  스스로가 밝히지 않는한 알 수가 없다. 작가, 큐레이터, 크리틱이 똑똑해지면서 게임이 어려워지고 있다.

김현진 :  유진상 선생께서 기관을 새롭게 정립해가는 어떤 예에 대해서 물으신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제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보겠다. 내가 일했었던 네델란드 반아베미술관같은 경우는 찰스에셔가 관장으로 부임했을 때,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혁신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 동안의 반아베는 잉글로섹슨 계열의 컬렉션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덜란드 미술관들의 컬렉션은 주로 미국미술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간 대다수 네델란드 디렉터들의 역할은 뉴욕화단과 마켓에서 작품을 구매하여 자신의 기관의 컬렉션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찰스 에셔는 '정치적 미술‘의 계보를 이어가고, 특히 미국 패권주의를 지양하고 비서구권 작가들을 콜렉션에 적극 수용하고 포함시키는 등, 몇가지 스스로의 원칙에 기반하여 프로그램을 혁신하고자 했다. 또한 정체된 내부의 인하우스 큐레이터들을 쇄신하기 위해 외부의 젊은 큐레이터들을 초청하여 연구기간을 주고 전시하게 하는 등 어떻게 기존 시스템에 재 개입할 것이냐를 고민했다. 현장과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에서는 새로운 비전을 가진 큐레이터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며 그것이 변화를 이루어낸다. 

유진상 : 국립현대 심포지움에 참여했었다. 주제는 국립현대의 법인화였다. 국립현대 미술관은 법인화로 가기에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능력이 안 된다. 또한 전문가들이 국립현대를 날이 서있는 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거기를 박물관이라고 본다. 스스로를 국립미술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김장언 : 백화점 같은 컬렉션이 계속될순 없다.

유진상 : 그들은 그런 것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김현진 : 사실상 기관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면 현재 한국 미술계 안에서는 정작 미술관에 컬렉션이 되고 관리되어야 할 작품은 박이소의 작품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유진상 : 그들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의식의 평균치가 전체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충분히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공무원보다 조금 낫다. 심포지움의 논쟁은 노조들이 나와서 문광부를 성토하는 자리처럼 됐다. 모든 논의는 전문가들에게 문의해야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야심을 더 크게 갖거나 스스로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야한다. '이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한다. 비전을 세운다 하더라도 뭉뚱그려져 있다. 법인화가 된 다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현진 : 관장직 2년은 사실상 좀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적인 시스템에서 관장직이 2년 인 것이 어떤 면에서  다행이기도 하다(웃음). 그러나 백남준미술관의 경우 현 관장의 열정이나 그 노력이 지속될 기회가 더 부여되어야 한다고 보며, 계약기간은 미술관이 자리잡고 성격을 잡기 위해서도 연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네델란드의 Vanabbe의 예를 들어보면, 거기서는 5년을 테스트 기간을 주고 이후 그 기관의 성과를 통해서 관장을 영구 고용한다. 2년이면 스탭들과 맞춰가기도 버거운 시간이다.

홍성민 : 유럽에서 에셔가 5년에 했다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백남준 미술관장은 2년만에 해낸것 아닐까. 한국이기에 가능한일일것 같기도 하다(웃음). 우리의 유독 철저히 연한을 제한하고 순환하는 방식 이를테면 2년씩 순환하는 대학의 학과장직이나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의 순환 따위가 전문화와 퀄리티를 약화시킨다. 돌아가면서 한번씩 하는 보직이 하향 평준화의 주범이다.

김현진 : 제도의 형식을 바꾸는게 필요하고, 내용을 바꾸는 것들이 필요하다.

김장언 : 우리나라에서 큐레이터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이상하게 오해되거나 무엇인지 모른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전시가 큐레이터의 지적 활동의 결과로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정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당황한 적이 있다. 직급과 연차에 따라서 큐레이터의 전시에 대한 자율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차원에서 이러한 자율성은 곧바로 비리의 한 형식으로 변환 될 수도 있다. 모 일간에 나온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지방 시립미술관에서 작품구입과 관련되어서 큐레이터의 비리가 문제가 되자 불법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 미술관의 구입작품 선정을 공개입찰 형식으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윤리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야기되는 현상인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큐레이터의 자율성과 대면하는 현실은 이렇다.

유진상 : 대안공간은 좋은 모델이었다. 한국의 현대 미술을 10년 20년을 앞 당겼다. 좋은 모델이 있으면 최소한 5 ~10년을 앞당긴다. 모델이 필요하다. 아무런 사례가 없으므로 문제점만을 지적해야한다. 이런 식은 안 된다.

김장언 : 나는 최근 가끔 이제 구청장이라도 만나러 다녀야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소위말하는 쿤스트 페어라인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구청 소속의 전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간이 지금 너무 현장성 없이 사용되고 있어, 이곳을 새로운 미술의 센터로 변화시켜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구청 소속 전시장의 전시들은 공무원이 기획하거나 전국적 미술조직에 의해서 점유되거나 동호회의 발표장으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현진 : 반 아베 미술관 같은 곳도 사실은 시 소속의 미술관이고, 그곳도 정도의 문제가 있긴하지만 유사하게 관료주의와 부딪혀야 하는 행정적 문제들은 늘상 존재한다. 즉, 어디나 그런 정치적 관계를 성숙하게 협상해 나가는 역량도 양측에 다 요구된다. 서구에서는 거대 기관이 지역의 작은 기관들과 연계하면서 어떤 책임감과 연대감을 발휘하는 예를 발견할 수 있는데, 네델란드의 경우 큰 미술관의 디렉터가 아주 작은 동네 대안공간의 오프닝에 스피치를 하기도 하고 늘 그런 작은 기관들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서구 미술계도 그런 개인들의 성숙한 역량이나 연대를 통해 변화해왔다.

유진상 : 그리고 그런 것들을 지원하는 인원이 있다.

김현진 : 가령, 공기관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서울에서는 너무 조용하게 진행된다. 북유럽에서도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미술관 지원 예산이 삭감되고, 기구가 아예 이름을 바꾸거나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공적 자산에 관한 문제이므로 미술인들과 지역주민의 서명운동이 일어난다거나, 지역사회와 국제 미술계에서 이러한 일들을 공론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공동의 연대감이 필요하다.

김장언 : 미술계에서 이슈들은 언제나 파벌간의 갈등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가 그 문제를 야기했는지에 따라서 지지층이 달라진다. 개념적 미학적 갈등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어떤 가치를 생성하지 못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갈등하더라도 서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일지도 모른다.


홍성민 : 우리는 공기관등의 토론과 세미나에서 상호 갑론을박을 펼치게 될 경우 그 자리를 떠난후에도 감정으로 연장되는게 문제인것 같다.

유진상 : 틀려도 괜찮다. 이야기 해야한다.

홍성민 :  벨기에 에서 만난 퍼포먼스 작가이자 평론가인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나이가 60이 넘은 그는 100개에 가까운 작은 방을 가진 시골 수도원 사들여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 각 지역의 진보적 퍼포먼스 작가들을 불려 들여 일년 내내 세미나와 발표를 진행한다. 나는 '유럽에는 비싸지 않은 성도 많고 저택도 많으니까...' '돈이 많으니까' 등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죽을 때까지 대안적일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무엇이 끊임없는 대안성을 가능케 하고 어떤 여건이 필요한 것일까?

유진상 : 공간을 지원하는 사람에게 조언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홍성민 : 땅이 좁아서 그렇다

유진상 : 판도가 컸다면 담론의 싸움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 중국 한국은 분위기가 다르다.일본은 천왕의 존재로 개인을 중심으로 둘 수 없다. 중국 또한 사회주의 체계로 인해 중심을 둘 수 없다.그러나 한국은 집단과 개인이 스스로를 중심으로 둔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좋은 부분이다.

김현진 : 그렇기 때문에 작업이 역설적으로 진보적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과 비교해봐도 상대적으로 자기 오너쉽이나 독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있긴 하다.

유진상 : 왕권이 존재했다면 달라질 것이다.

홍성민 : 중심이 없다는 점에 동조한다. 예전 종교가 센 이슬람 국가를 다녀와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의 정신의 부재가 이승만 정권이 업고 들여온 개신교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존경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정주영과 장동건을 롤모델을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현진 : 영국에서는 계층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매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90년대 YBA세대의 성공 이후, 아티스트가 계급을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인식되거나, 예술적 성공을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계층이동이 여전히 유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예술가의 입지는 점점 더 열악하다.

유진상 : 한국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홍성민 : 이러한 특성으로 인스티투션을 만들어야한다(웃음).

김장언 : 그러나 문제는 모두가 관객이라는 점일 것이다. 한국은 어찌 보면 어떤 절대적 권이가 이제는 만들어지지 않은 곳일지도 모른다. 앞서 우리의 역사를 전유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슬슬 한국 미술계에서도 권위로서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현대미술은 천장이 뚫려있는 무한도전이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가 관객이라는 것이 상황을 암울하게 한다. 쇼를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필요할때만 취사선택한다. 어떤 차원에서 쇼핑의 천국인 것이다. 어떤 씬을 조성하고 만들고 작동시키는 모든 과장이 그 씬의 역사, 즉 이야기인데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도 없다. 오리혀 관객의 입장을 벗어나 배우가 되려고 혹은 연출자가 되려고 하면 견제가 들어온다.

유진상 : 여기는 제국의 일부이나. 일반적 제국이 아니다. 가족단위로 생존해야한다.

홍성민 :  가족주의야 말로 한국의 아킬레스건.

유진상 : 유럽은 아이가 신화이다. 따라서 가족도 신화가 되어있다.
한국은 아이가 신화는 아니나 가족은 신화화 되어있다.

홍성민 :  우리나라는 엘리트 사교육을 누구나 원한다. 일반 교육과 사교육의 갭이 크다. 세계 어디나 배타적인 엘리트 사교육은 존재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엘리트 사교육을 원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현진 : 우리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계층이 뒤바뀌거나 이동할 수 있다는 환상이 크다. 점점 이러한 것이 어렵게 되가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홍성민 : 한국이 무한경쟁체제라면 상대적으로 북서 유럽의 몇개 국가는 노동층이 살아갈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한경쟁을 통해 살아남고 나면 독식하고자 하는 보상의 욕구가 생기는것 같다.

김장언 : 이번 정권은 계급 유동성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계급 고착화를 보다 강화시키고자 하면서도 하위 계층에게 계급 유동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유진상 : 성장을 하면 파이가 커진다. 들어갈 구멍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성장신화는 한계가 있다. 남은 것은 교육이다. 걱정이 되는 점은 교육의 포화다. 역량을 내부에 가두어 두었을 때 힘들어진다. 결국은 사람들을 내 보낼 수밖에 없고 인적 자원을 바깥에서 써야한다. 그랬을 때 국내에 사람이 남지 않는다. 결국 한국은 한국을 떠난 한국 사람들의 식민지가 된다.


김현진 : 이제는 단순히 유학이나 외국 학교 이름 때문이기보다는, 국내에서 수학이 어려운 분야거나, 새로운 이론을 하고 있는 혹은 현장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면서 이론을 행하는 교수진 때문에 유학을 선택하고 있다고 본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유학파와 국내파를 나누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은 현장에서 별 의미가 없다.

김장언 : 유학의 경험 혹은 외국에 대한 경험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외국이라는 것이 동경, 탈출구, 변신을 위한 어떤 미지의 세계였다면 이제는 하나의 일상으로 변화되었다.

김현진 : 우리 세대에는 버블 경제로 학과의 반정도가 방학때면 외국을 들락거렸고, 덕분에 한층더 글로벌한 문화권 속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20대는 또 다른 상황일 것이다. 점점 계층적 간극이 더 커져서 문화적 풍부함속에 놓인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갭이 더 큰 것 같다.

유진상 : 돌아다니면서 보고하면서 여기 상활을 느끼면서 객관적으로 저도 로컬이 됐고 사람을 본이 아니게 콤플렉스로 몰아넣는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근거가 없다고 느낀다. 컨템포러러리 아트가 최종적인 시스템인가?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의 시도들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50/100년 후에 과연 무엇을 가지고 힘의 관계에서 주체의 위치를 취할 것이냐?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진행할 경우 뒤에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손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장언씨와 김현진씨의 역할이 크다.

김현진 :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는 다시 인스티튜션으로 돌아온다. 인스티튜션은 꼭 규모가 클 필요는 없으나 지금의 대안공간과는 다른 방식을 취해야한다. 이제는 정말 힘있는 담론과 큐레토리얼 쉽을 생산 해내야한다. 밀도있는 작업과정이 필요하며 단순히 양적인 것이 아닌, 보다 완성도 있는 작업들이 나와야한다.

유진상 : 그렇기 때문에 홍선생님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난 10년간 월간 미술과 아트인컬쳐를 통해 이미 다 논의될것은 다 논의 되었다. 그러나 액티비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가지고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김현진 : 그러나 사실상 퀄리티를 내기위해 적정 예산을 필수이다. 더 이상 시시때때로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금에 기대고 젊은이들의 노동수혈에 기대어 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유진상 :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라.

홍성민 : 해밀톤을 진행해보니 사실 생각 이상의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더라.

김장언 : 현재 대안공간의 변신의 최대의 결림돌은 어쩌면 물적토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챕터를 위한 물적 토대가 시급하다. 한편, 지난 10년간 대안공간을 자신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지에 대해서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간 공적 자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곳 중의 하나가 대안공간이다. 인스티튜션으로 작동되는 것은 개념적으로 그 인스티튜션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레마스가 이야기했듯이 학파를 형성하는 것은 성당을 짓는 것과 같다.

유진상 : (40대)작가들은 한 제너레이션이 완성이 됐다. 그 밑의 작가들은 어떻게 가야하는가. 누군가가 일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들이 방치되어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김장언 : 그것은 작가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의 경우도 동일하다. 미술계를 생각한다면 다음 세대 큐레이터들을 위한 어떤 토대를 앞세대가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

유진상 : 그러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현진 : 나는 최근 큐레이터로서 상업적 모델에 개입하는 것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갤러리 플랜트의 설립에 조언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하나의 또 다른 갤러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갤러리는 시장의 면모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현 한국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고 비평적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시장과 큰 거리를 두고 있는 작가들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정말 요구된다.

유진상 : 제너레이션의 포밍....

김현진 : 스스로 11년차를 맞이하면서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큐레이터로서 느끼는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크며, 이 일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지속해나가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김장언 : 이러한 위기 의식은 나를 포함한 지금 동시대 큐레이터들이 갖는 동일한 위기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젊은 큐레이터들이 전향하거나 딜러로 변신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앞 세대 역시 많은 큐레이터들이 상업화랑을 오픈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갤러리스트로 혹은 딜러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절차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스스로 형성할 젊은 세대들을 배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제까지 수입해서 들어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유진상 : 내가 느끼기에, 비전에 있어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을 찾을 경우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

김현진 : 그러나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많은 위기감이 있다.

유진상 : 여러분들 가상으로라도 프로젝트를 만들어라. 언젠가는 로테이션이 진행된다. 누군가의 자리를 채워야하는 시점이 온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김현진 : 문제는 꿈을 언제가 되야 펼칠 수 있을까하는 회의다. 큐레이터들에게는 현장의 변화가 많은 듯 하지만 막상  더디고,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 일하는 기반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수석 큐레이터 이상을 뽑을 때, 국공립 기관은 나이와, 성별, 그리고 정치색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나에게 왔던 한 제안은 공립기관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위해 일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단 30대 여성인 관계로 수석큐레이터로는 기용될 수 없고  40-50대 남성인 수석 큐레이터 아래에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어서 고사한적이 있다.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이나 그 내용과 혁신성에 기반을 두고 나이 성별, 정치색을 초월하여 인물을 기용해야 미술계에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유럽은 30대 관장들이 중요 기관에 들어가 이슈를 만들고 변화들을 그려내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각광받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세대 큐레이터들에게 국내에서는 기존 시스템에 파고들어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참 적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대별 적체 현상을 고려하면 사실상 우리 위 세대의 불안정성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유진상 : 당신들이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자리는 더 커 질 것이다. 전문성도 변형되면 필요성에 의해서 사람을 뽑게 된다.

김장언 : 언제나 필요성은 존재했다. 문제는 어떤 필요성인가에 있다. 지금 우리가 답답해 하는 기성 미술계에 활발히 발맞추며 자신을 변신시키고 적응하는 같은 세대의 큐레이터 평론가들도 많다.

유진상 : 사람들은 이제 문제가 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찾는다.

김현진 : 그래서 미술계에 연대 가능한 동료들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있으나 함께 토대를 만들 물리적인 조건이 힘들다. 또한 이러한 것을 이루어나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적으로나 국제 현장을 바라보는 비전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공동의 합의가 있는 구성원들이어야 한다.

유진상 :  결국은 스쿨끼리의 경쟁이다. 그러나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선정씨가 독주했던 체제가 지속될 것인가? 기획력과 글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

홍성민 : 작은 커뮤니티에 활동하는 사람들과 글을 자주 오픈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유진상 : 앞으로는 필요에 의한 흡입력이 중요하다.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는 앞으로는 대중의 수준이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불과 3,4년 후 일이다.

김장언 : 불과 3,4년이지만, 그 시간을 식물인간이 아닌 주체로 견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요즘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유진상 : 그건 각자의 문제이고 각자가 서바이벌 해야 할 문제이다. 역사의 터닝 포인트에서 튕겨나간 사람은 많으나 각자가 극복해 나가야할 문제이다. 그러나 내가 진단하기에는 지금의 스탠다드가 상향하는 시점에서 인력수급이 되지 않는다. 퀄리티의 문제는 해결되야한다. 퀄리티에 대한 욕구는 완전히 다른 문제로 미술관 필드 아카데미 컬렉터에게 다 적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빠른 시일 내에 구체화 될 것이다. 그래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동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고, 이런 기관이 해야 할 미션이 나오고, 그것이 기관과 인스티튜션의 비젼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생각하고 향상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김장언 : 어려운 조건 속에서 개인을 하나의 기관으로서 작동시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매우 기생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며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작동될 수 있는 공적 인스티튜션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각각 자신들의 미적 태도에 근거해서 작동되는 영역이 전무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의 모더니스트들은 자신의 물적 사회적 토대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동시대적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다.

김현진 : 영화계에서는 90년대 적극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현장의 지원을 받아 젊은 친구들이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국제무대를 연구 조사하여 반영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하기위해 참여하고 일조했다. 변화가 가능하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적극 수용할 수 있다면 여러 방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등장시키는 데 우리도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용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간의 국내외 기관에 대한 경험과 국제적 환경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큐레이터들의 공동의 리서치를 바탕으로 기무사를 위한 어떤 제안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이렇게라도 우리가 함께 보다 바람직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은 아닐까. 바람직한 기관의 모델이 없이는 미술계는 본질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김장언 :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챕터가 필요하다. 다른 챕터는 설사 지난 챕터에서야기된 문제들이 결코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보듬고 넘어갈 다음 챕터이다. 10년전에 했던 이야기를 동어반복하지 않으면서, 10년전의 이야기를 전유할 수 있는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다른 챕터로의 전환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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