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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건축(Unrealized project)

2010-05-18  

다음은 2010년 2월 공간 해밀톤에서 열렸던「미완성의 건축(Unrealized project)」전시에 참여했던 건축가들과 큐레이터의 라운드테이블 기록이다.

정소영 큐레이터 (설치작가)
김호민 Poly.m.ur
고기웅 Kokiwwong office
이승진 공구리 공방
홍성민 계원대학교 교수

전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 http://neolook.net/archives/20100205h


홍성민: 오늘 건축가들과 작가들이 만난 자리이니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 거리가 있겠지만,
먼저 「Unrelized Project 미완성의 건축」을 큐레이팅한 정소영씨가 전시 취지에 대해 정리해 달라.

정소영: 건축이 이미지로서 많이 발표되고 이는 건축가가 환상의 공간을 그리는 화가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공사장 가림막에 그려진 근미래에 건축될 건물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과연 그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것인가를 꿈꾸게 한다. 또는 건축가들이 짓지도 못할 것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놓기도 하기에, 건축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몽상적인 동시에 치밀한 사람들로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업들을 보면서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홍성민: 이번 건축가들의 전시는 사실 일반적인 건축 박람회의 전시성격과는 다르다. 해밀톤이라는 공간에서 콘템포러리 아트의 맥락에서 선보였는데, 당사자들의 느낌은 어땠나?

김호민: 작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두 번째 경험이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방, 1/4 규모로 축소된 공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완성(unrealized)'은 아니었다. 해밀톤과 이태원은 뉴타운으로 변화되는 시점에 놓여 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부유한 지역과 혼자 사는 쪽방의 접경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밀톤에서 혼자 사는 쪽방의 개념으로 풀어 보았다.

고기웅: 건축가들이 10개를 설계하면 실제 건축으로 구현되는 것은 1-2개뿐이다. 여러 이유로 못짓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도면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공간이 존재한다. 나는 이 전시에서 조형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래 위로 평판이 움직이면서 건물 형태를 만들어 낸다. 평판이 수직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건축 구조를 재현해 낼 수 있을지 고심했다.

이승진: 참여건축가 중 나이나 경력으로 막내이기에 프로젝트에 대한 미완의 개념은 더욱 더 익숙하게 대면해 왔던 현실이다. 건축은 일련의 프로젝트를 수주부터 준공까지 이끌어갈 자격의 (license)습득과 필수적 경험의 기간이 타 전문직종에 비해 무척 길다. 내 또래의 전문 직종과 비교하면 아마추어적인 위치를 절감하게 된다. 미완의 개념은 건축에선 단순한 것이어서 '모든 지어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절대논리가 은근히 통용된다. 단세포적인 접근이겠지만 구현되지 못한 모든 paper works는 미완을 대변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내 물질적 구축을 통한 완결성을 염두하면서도 일시적인 점유 후에 영구 해체되는 미완결성에 주목했다.


A Partial house 2010, 설치, 이승진(공구리공방)

홍성민: 이승진씨의 작품은 가장 해체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즉, 나무 모듈로 쌓아진 구조물위에 제작과정에 있었던 대화를 영상으로 프로젝션했다. 본인작품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이승진: 초기 의도와는 다르게 작업의 흐름이 과정을 거쳐 크게 변질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미완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축을 위한 자본의 관계 내지는 한계점을 그대로 보여 주려 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볼 때 작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행착오, 과정의 비약적인 전개를 정리하여 보여주기 위해 구어체의 가상의 대화들을 뒷면에 프로젝션해야만 했다. 파라메트릭 툴(parametric tool)로 설계한 바늘들의 배열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수작업을 통해 구현되었다. 완성도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의 다른 대안은 없었기에 시공자체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홍성민: 건축가들은 그것을 발견했을지 모르지만, 시각예술가인 내게 기술적인 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물과 이미지 텍스트의 과정적 조합과 충돌에서 개념적 차원이 먼저 눈에 띈다.


Accidental drawing 2009, 영상, 양성구

정소영: 이번 전시를 보면 각 건축가의 작품들이 건축 창작 과정의 한부분씩을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의도되지 않은 설정인데 각자 나름의 개성을 잘 살린 작품들이 나온 것 같다. 양성구씨는 아이디어 구상의 제일 첫 단계인 아이디어 스케치부분을 즉흥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으로 보여 주고, 고기웅씨는 그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는 도면을 가지고 영상 설치물을 제작하였다. 이승진씨는 도면을 바탕으로 목재로 물질적으로 구현시킨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며 김호민+유승우는 건축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개념을 하나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선보였다.

김호민: 전시를 하면서 '재활용'에 대한 생각을 했다. 실현, 비실현은 이분법적 구분이다. 이승진 작업의 경우엔 완성된 건축물의 일부분으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건축은 건축 나름의 생성논리가 있다. 건축의 계열이란 차원에서. 시스템, 프로토타잎, 그리고 탈 사이트적인 측면이 있는것이다.

홍성민: 건축에서 계열은 어떤 것인가? 건축 나름의 생성논리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김호민씨의 작품처럼 모듈화된 부분들이 확장되어 다른 사이트에서 적용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김호민: 건축 나름의 생성논리란 과거 르코르부지에와는 다른 어떤 것이다.

고기웅: 몇가지가 적용될수 있겠지만 '카테고리'가 있을 수 있겠다. 1층, 2층과 같은 식으로 건물을 올려가는 것은 현대건축가들조차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주거에 대입할 경우, 정원에서 올라가면서 주거가 있고 파사드가 등장하는 식이다.

홍성민: 그렇다면 건축에서의 계열이란 정원, 주거, 파사드 같은 요소들의 콤비네이션을 말하는가.그 것이 건축이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건축 자체의 생성논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김호민: 정소영씨 작업이 설명이 될수 있겠다. 해밀톤의 좁은 입구 골목에서 있어야할 자리에 작품이 걸려있다. 로컬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다. 픽셀화된 유닛이 컴퓨테이션 과정을 거쳐 확장되어 다른 장소로 옮겨질수  도 있다.

홍성민;:이해가 잘 안된다. 일반적으로 콘템포러리 아트에서 '로컬'이란 지정학적 또는 국제주의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픽셀화된 쪽방의 유닛이 전혀 다른 장소로 그대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국제주의적 개념 아닌가?

김호민: 내가 말하는 것은 픽셀-로컬을 말한것이다.

정소영: 근대 건축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주자들에게 건축 환경에 따른 마인드셋을 어느 정도 요구한다. 김호민씨가 말하는 로컬의 개념이란, 거주자가 유닛화된 개인공간에 거주함으로서 그것이 건축으로 발전되어간다는 차원인 것 같다.

이승진: 다른 생각으로 접근하면 유목민적인 접근의 로컬로 해석 할 수도 있겠다. 가령 근대건축의 파쇼적인 거대매스를 주시한다면 김호민씨는 정주하지 않은 혹은 유동적인 성격을 위해 셀(cell)의 단위를 취했다고 보여진다. 셀이 지닌 복제와 재배열을 통한 환경적응력을 주목한다면 입자로의 접근자체는 로컬에 대응하는 또 다른 전략인 듯 하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건축에서 논의된 '지역성'과는 별개로 보여진다.  

정소영:  경제학에서 말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 같은 것 아닌가.

이승진: '현지화'란 개념으로 보면 일맥상통한 것 같다.

화제를 바꿔 건축이 가지는 열등감을 말하고 싶다. 근래 건축은 컴퓨테이션의 영역과 결부되어 하이테크(hi-tech)를 지향하지만 다른 산업들과의 상대적인 위치에선 본질적으로 로우테크(low-tech)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노가다이다.

고기웅: 건축은 항상 느리게 발전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철학, 문학, 순수예술에 비하면 느린 것이 사실이다.

이승진: 과장하여 말하면 현재의 건축은 하이테크를 위장하여 어떻게 하면 충격을 주고, 건축가로서 살아남는 전략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화 된 건축의 양상이 그러하고 그에 현혹된 건축학도들의 성향도 유사하다.

홍성민: 건축이 느리다고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타장르에 비해 건축이 가장 빨랐다. 왜 건축이 느리다고 말하는가?

이승진: 현 시대를 비춰볼 때 느리다는 이야기다. '제1의' 의미를 지닌 'arch'의 어원를 보더라도 고대부터 근대까지 건축이 장악하는 스팩트럼은 넓었다. 근대건축이 외치는 계몽 혹은 망상일 수 있는 선민사상, 즉 '공간이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는 것을 엿보더라도 선도의 파괴력은 대단하지 않았나. 그러나 기술의 가속화가 엄청난 지금에선 타산업에 비해 건축이 느리게 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고, 이즘(ism)과 철학의 부재 속에 경제논리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현실도 건축의 느림에 한몫을 하지 않나 싶다. 요지는 '느리다는 것'이 전혀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빨리 가는 방법론'도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김호민: 컴퓨테이션으로 인해 이제 로컬라이제이션이 용이해졌다

홍성민: 나는 아직도 건축에서의 로컬 개념이 혼돈스럽다. 지역을 옮기면서 건축적 유닛이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인가?

정소영:  그런 것 같다. 유닛화된 건축이 지역으로 옮길 때 마다 수정된다. 채광이나 공간이 컴퓨테이션 테크놀러지의 도움으로 조절되지 않는가. 나는 전문기획자도 건축가도 아니지만, 공간과 공간이 규정하는 주어진 공간이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는 한국 건축계의 대가들을 제외 했다. 여기 모인 작가들을 선별한 주된 이유는 '완성된 결과물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공간 해밀톤 이라는 소박한 공간 내에서 '구현'을 하고자 했을 때에, 가장 큰 '격차'를 낼수 있는 작가들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건축물을 지었을 때 가장 격차가 클 것 같은 건축가들, 그럼으로써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예상 못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작가들이라고 생각했다.

홍성민: 이승진씨의 '공구리 공방'이라는 명칭에 대해 말해 달라. 전시를 보기 전에 공구리 공방이란 명칭이 큐레이팅을 한 정소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진: '공구리'란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콘크리트'를 지칭하는 속어다. 바른 말을 놔두고 속어를 쓰는 이유는 소위 '집장사'를 하신 부모님의 영향 탓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흔히들 쓰는 건축자재의 '공구리' 외에 '실체가 있는 구체적인 견고함' 을 염두하여 만든 명칭이 '공구리공방'이다.

홍성민; 실직적인 의미에서의 견고함이 아니라 개념적인 의미에서의 견고함이란 모더니즘적인 건축의 의미를 갖는가?

이승진: 개념적인 견고함은 시대를 떠난 건축이 가지고 있는 몽상이다. 지어진 건축물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지어지고 해체되는 순환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아무리 거장이란들 영속성을 가진 건축물을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불변이나 이데아적인 것들에 대한 매력내지 환상을 더욱 지닌다고 본다. 본인도 동상의 꿈을 꾸기에 오랜 시간 기억될 수 있는 견고한 건축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홍성민: 다시 한번 컴퓨터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컴퓨터가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대 미술은 기술적인 차원에서 다른 분야에 비해서 그렇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건축에서는 어떠한가? 컴퓨터가 단순히 효율성 차원이 아니라 건축 담론의 차원에서 지각변동을 가져 왔다는 것인가?

김호민: 나는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건축의 구조적인 한계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해왔다. 알다시피 건축은 사전에 1:1사이즈의 모델로 제작해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완성된 건축물은 축소된 모델 안에서 건축가의 상상과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완성된 건축물과 설계도면 상의 건축물에는 차이(Gap)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중요하다.

홍성민: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닌, 완성된 건물과 설계도의 차이에 있어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차원인지 미학적인 흔들림인지 알고 싶다.

고기웅: 건축물은 1:1의 모델을 만들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컴퓨터 안에서의 모델은 1:1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 컴퓨터 안에서는 스케일이 의미가 없어진다. 볼 수 없는 작은것들까지도 컴퓨터 안에서는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말씀 하셨었는데, 컴퓨터가 효율성을 가져다 줌으로 인해서 더 많은 창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고 있다. 디자인을 할 때 건축가나 디자이너는 직관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창작물의 문화적인, 환경적인 그리고 제도적인 면이 고려될 때 컴퓨터는 이 모든 것을 잘 계산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정소영:  비디오나 사운드 작품에 있어서 어떠한 새로운 플러그인(plug-in)이 개발되느냐에 따라서 작업의 개념이나 내용이나 결과물이 많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또한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창작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진보라고 불러왔는데 결국 이런 변수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들이 자연과 연관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에 적용되는 열효율성을 고려하거나하는 기술들이 자연의 순환이나 체계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최첨단이라고 부르는 디자인이나 건축물들은 인간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자연의 모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자연에 접근하기 위해 창작가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기웅: 이승진 작가의 작품같은 경우도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지만, 모형을 그리고 제작하는 과정 전부를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리는 것은 컴퓨터가 하지만 만드는 것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만약 기계가 작품을 직접 만들었다 해도 지금의 결과물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진 작가의 작품에는 역설적인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홍성민: 컴퓨터가 작업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이승진: 대학 초년때 의례적으로 제도판과 삼각자를 잡았지만 사실 나는 컴퓨터만으로 드로잉을 배운 첫 세대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손으로 그려 형태를 뽑아내는 부분이 상당히 퇴화되었다. 오히려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상을 최대한 그려내고 재빨리 모니터 상에 구현해 내는 것이 익숙하다. 그리고 구상을 유지하면서 기계적인 손놀림에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내려 한다.

홍성민: 그렇다면 건축에 있어서의 유비쿼터스적인 컴퓨테이션이 적용되는 하이테크놀로지의 건축물들이 점점 더 자연과 가까운 환경을 구성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이 현대건축의 가장 큰 흐름이나 지향점으로 보아도 되는 것인가?

고기웅: 건축가라는 것이 가장 오래된 직업중의 하나이며 건축은 자연환경, 도시환경과 사람의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자연과 관계를 가지고 인공구조물이라 하여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을 한다.

이승진: 나는 조금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적 상황을 볼 때 지금의 건축은 또 다른 네오 로코코(Neo-rococo)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싶다. 조소적인 형태들을 볼 때 고전적인 작은 장식에서 매스 차원의 거대 장식으로 스케일이 변화되었다는 느낌도 들고 '닥치고 형태만'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관점의 차이이긴 한데 고기웅씨는 소통과 관계란 측면에서 유기적인 형태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시는 반면 저는 장식을 먼저 만들고 기능과 논리를 억지로 가져다 얹히는 것들을 많이 봐왔다. 

홍성민: 서울에서의 디자인 정책이라함은 서울시를 관광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하회마을이 관광지화 된 후 망가진 모습이 재연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승진: 관주도의 하달식 정책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나마 일관된 철학을 바탕으로 정책이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긍정의 여지는 있겠지만 그간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을 보면 정신착란적인 모습을 보여 두렵기까지 하다. 일례로 종로 변에 위치한 옛 도시조직인 피맛길의 경우 구도심의 재정비를 목적으로 전면철거를 통해 재개발에 들어갔다. 일방향의 논리만 진행되다 시민들의 우려로 다시 복원을 계획하지만 원전이 없는 이미테이션은 의미가 없다. 디자인을 일방향적 정책의 도구로만 쓴 결과이다.

고기웅: 이러한 발전이 건축적인 미 보다는 건설성과 수익성에 의존해 발전되고 진행되는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만들어 지고 있는 것들은 획일화, 단일화, 대규모화라는 키워드 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해결해야 될 문제이다. 나는 도시가 상품화 되는 것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다. 도시의 쾌적성을 따졌을 때 청계천을 만들고 100만 평 규모의 공원을 미군기지에 건설하고 이런 것들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상징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질 보다는 규모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호민: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계획에 비판에 소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어떠한 다른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경제발전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문화적 수준이 높지가 않다. 물론 청계천을 볼 때 비판의 요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청계천은 효율성의 논리를 바꿨다고 생각한다. 양재천은 동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조성되었다. 도시한복판에 청계천을 구축함으로서 단순한 휴식 터가 아닌 경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 이라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는 건축가들이 단순히 거주민들의 쾌적함 만이 아닌 경제적 효과가 있을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기웅: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그 질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해주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에 높아진 질이 자본으로 반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호민: 퀄리티가 퀄리티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홍성민: 하달식(top-down)이라는 형식이 문제일 뿐이라는 견해들이다. 과연 자본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을까. 좀 더 적극적인 건축적 대안은 필요 없는 걸까. 자연으로 돌아가서 건축물을 만들거나 공동체를 만드는 대안적인 시도들도 있을 수가 있다. 자본이 퀄리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많이 된다.

김호민: 자본이 퀄리티를 만드는 것이 아닌 퀄리티를 만드는데 자본이 반영이 된다는 것이다.

이승진: 전 좀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서울토박이 출신이라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해왔다. 공무원들이 해외답사를 다녀와서 ‘외국의 이게 좋더라.' 라는 방식이 우리 모습을 오히려 망치는 것 같다. 6.25 이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압축된 시간이 쌓여왔다. 우리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타자들은 오히려 충격적으로 우리 도시의 모습을 본다. 흔적의 켜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응축된 시간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소영: 그런 서울시 일에 동참하고 계시잖아요! (웃음)

모두: (웃음)

이승진: 제가 일하는 회사가 서울시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급적 과거 서울의 흔적을 유지하는 방식의 개발을 노력한다.

김호민: 그러나 한국 지금의 실정은 이러한 논리가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이 바뀌고 쿨해지고 히피적인 문화가 정착이 돼서 사람들이 퀄리티를 퀄리티로 볼 수 있게 되면 다양한 문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97년 IMF이후에 오히려 더 획일적인 삶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 퀄리티가 자본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줄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홍성민: 서울시가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보듯 해외 스타급 건축가들을 선호하는 것들에 대한 젊은 건축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고기웅: 해외 스타 건축가들이 미치는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공무원들의 대응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평당 건축비가 4-500만원에 불과하던 것이 외국 건축가들이 구조, 판넬, 마감등에서 완성도를 올리면서 2,700만원까지 올리는 모습을 공무원들이 지켜보게 된다.

이승진: 젊은 건축학도들에겐 잡지에서만 보던 모습을 실제에서 구현해준다. 더불어 브랜드의 힘도 좋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진정성의 문제일 것이다. 동대문 건축물은 사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것이 아니지 않나. 아랫사람이 한 걸 우린 고마워하면서 받는다. 심지어 2-30년전 스타 건축가의 스케치를 받아와서 완성되는 건물도 있다.

정소영: 유럽에 있는 많은 건축가들은 나라의 건축과 관련된 정책 때문에 새로운 하나의 건물을 짓는 시도 자체가 힘들다고들 한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단기간에 일어나는 건축물들이 없어지고 새로 지어지는 상황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도 젊은 건축가들은 그들의 실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정말 유명하고 실력을 갖춘 건축가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젊은 건축가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이 그다지 나쁜 것 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울에는 갈등적 요소가 숨어 있는 곳들이 많다. 이러한 요소들이 가능성을 제시 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이승진: 갈등적인 요소를 비빕밥의 다양성으로 보자. 고고학적인 접근으로 보면 서울은 상당히 응축된 시간이 퇴적되어 있는데 가치 있는 흔적을 선별하며 남겨두고 신중하게 계획된 미래의 조직들을 다시 입혀나가는 것들이 필요하다. 상업지역, 주거지역처럼 블록화된 도시보다는 짜깁기와 같은 혼란의 역동성이 서울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홍성민: 마지막 질문이다.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좋은 건축물은 어떤 것들인가.

고기웅: 타워호텔을 말할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리노베이션 중인데 기존 건축물을 보전하는 측면에서 좋을 것 같다. 한편 발전되기 전의 삼청동도 좋다. 삼청 터널을 지나면 기대치 이상의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다. 다소 허름한 산동네의 마을풍경이 아름답다.

이승진: 나는 서울의 구도심을 좋아한다. 사대문안에 존재하는 서울의 조직들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소주 한잔 한뒤 새벽 2-3시경 카메라를 들고 이 공간을 촬영하는 것을 즐긴다. 이 안에는 여러 가지들이 교차하는 지저분하면서도 영속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홍성민: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 세상의 어느 도시에 소주 한잔 마신 후 새벽에 그것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나!

모두; (웃음)

이승진: 예를 들어 낙원상가에서 우연히 만난 게이가 데려간 공간,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하는 것. ‘지저분하게 아름다운 것, 연속적이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들이 나에게 화두였다.

홍성민: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 서울의 특징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정소영: 나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하기 때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급변화하는 도시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특히, 한남대교를 넘어갈 때 보이는 산위에 지어지어진 집들이 마치 집들이 지어져 산을 만든 듯 보이는 옥수동, 한남동 일대의 풍경과, 멀리서 바라보는 이태원 근처의 너무나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이슬람사원 그리고 그 옆에 대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빨간 십자가들 나는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이승진: 콜라주적 도시, 혼성, 집밖을 나와서 영유할 수 있는 스펙터클들이 있을 진데, 그사이에서 모습을 경험하면서 거주 하는 것.

홍성민: 현대예술의 미덕중 하나가 불연속성일진데, 서울이 그렇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흥미롭고 이국적이게 보이겠지만 실제 거주자들에겐 너무 분열증적이어서 가혹한 것 아닐까?

이승진: 사실 대부분의 서울은 획일적이다. 다양한 체험을 유도하는 것. 구획이 문제다

고기웅: 우리 문화 자체가 정신분열증적 아닌가. 대표적으로 테헤란로를 생각한다면 현대적 건축물 바로 뒷골목엔 안마시술소등 온통 섹스 산업 건물들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밥상문화’라고 말해야 하나.

홍성민; 한국의 밥상문화야 말로 대표적인 넌리니어 방식이다.

이승진: 건축은 그래도 우아하다.

정소영:  난 강남역 한복판에서 운 적이 있다. 수년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인데 그 스펙터클과 혼돈 때문에 울었다. 아일랜드 소도시에서 4개월간 레지던시를 한 적 이 있는데 집들의 색이 참 다양하다. 너무 힘들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엄청 나게 넓은 아파트 단지들에 모두 같은 색이 칠해져 있더라. 아파트의 경우 분열증적인 것이 매시브한 경우 오히려 적응이 빨리 되더라. 아, 건축가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과연 자신이 만든 집에 산다면 좋을까?

이승진: 나라면, 아파트와 같은 집을 짓겠다.


김호민 & 유승우(poly.m.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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