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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 제롬 벨 가상 인터뷰

2010-07-20  


제롬 벨(Jérôme Bel) (사진: The New York Times)

 

포도아가씨: Bonsoir, 반갑다. 좀 더워 보이긴 하지만 털 코트가 잘 어울린다. 얼핏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포스가 느껴진다. 이젠 요셉 보이스마저 전유하려고 하는가?

제롬 벨: 어디 죽은 토끼 한 마리 없나?

포도아가씨: 당신은 한 번도 빠짐없이 페스티발 봄에 초대되어 왔다. 특히 이번엔『베로니끄 두아노』(Veronique Doisneau) 와 『루츠 푀르스터 』(Lutz Förster)가 동시에 소개되었다. 주빈 작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고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제롬 벨: 한국 음식을 좋아하기에 다시 오고 싶었지만 작년의 기억 때문에 오지 않았다.

포도아가씨: 그 기억이란 『PK와 나』공연 시 일어난 해프닝을 말하는가? 공연 도중 미술평론가 이정우가 “퍽유”하고 소리쳤고 당신이 공연을 잠시 중단했던 것?

제롬 벨: 그렇다.

포도아가씨: 태국의 민속춤과 콘템포러리 퍼포먼스를 충돌시키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오리엔탈리즘이 노출된 것에 대한 이정우의 지적은 아시아의 관객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당시 당신의 반응이 실망적이었다.  공연을 잠시 중지시켰고, 이정우가 나가지 않으면 공연할 수 없다고 했다.

제롬 벨: 공연의 80%가 PK에 의해서 진행되며, 모두 그의 춤에 관련된 것 들이었다. 나는 태국 전통춤의 상징성에 경의를 표했다. 왜 그 공연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졌단 말인가.

 


『PK와 나』 사진(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 ⓒ R.B.)


시디라비(Sidi Larbi)의 『Sultra』

포도아가씨: 공연의 외연은 그랬지만 내포가 문제였다. 그 작품이 제1세계에서 보여질 경우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것은 불평등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좀 거칠게 비유하자면, 소림무술의 맥락을 배제하고 뗏국물을 빼 서양의 무대에 올렸던, 서커스 같던 벨기에 안무가 시디라비(Sidi Larbi)의 『Sultra』을 떠올리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착취’되는 측면이 있고, 그것은 일반적인 디렉터와 무용수 간의 불평등과는 다르다.

제롬 벨: PK 또는 아시아의 무용에 대해 압도적(dominant)인 입장을 갖거나 격하시킬 의도는 전혀 없었다. 동시대 퍼포먼스와 동등한 입장에서,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퍼포먼스의 우수꽝스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정우는 내가 동시대 퍼포먼스의 대표적인 모습인 나체를 보여주기 위해 바지 지퍼를 내리는 부분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 직전에 나는 대부분의 콘템포러리 퍼포먼스의 관객들이 클래식 댄스를 보러 갈 때와는 달리 극장 안에서 벌어질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오는 이상한 풍경을 이야기 하던중 이었다.

포도아가씨: 당신은 어느 인터뷰에서 취향의 문화적 다양성을 말하면서 ‘나라마다 성적인 취향이 다르다, 한국에선 여성의 목덜미를 보면서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 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이 자칫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제롬 벨: 틀린 말인가?

포도아가씨: 100년전 얘기다. 요즘 사람들은 그러치 않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이정우의 돌발적 반응 이후 당신의 반응이었다. 이정우가 극장을 떠나지 않으면 공연을 계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관객과의 소통이나 개입을 원했던 당신의 태도에 걸맞지 않았다.

제롬 벨: 이정우의 해프닝은 관객이 퍼포먼스에 ‘개입’된 것이 아니라 ‘평가’를 내린 것이다. 나는 나의 머릿속에서 작품이 고안되어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있길 원하는 보수적인 작가는 아니다. 이를 테면 한국의 작가 Sasa[44]가 나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한국 버전으로 바꾸어 놓는 제안을 혼쾌희 허락했다.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 Sasa[44] (사진: 김상태)

포도아가씨: Sasa[44]의 공연은 당신의 원작만큼 임팩트가 있진 않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로웠다. 당신이 수잔 링케의 작품을 가져와 공연을 리사이클링 하겠다고 한 것과도 유사하다.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제롬 벨: 1998년 『마지막 공연』(the last performance)이란 작품이었다. 95년부터 ‘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 과 ‘제롬벨’이라는 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두 작품의 테마는 분명 ‘무용’이었음에도 나는 단 한 발짝의 무용도 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무용을 좋아했고 해보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남의 작품을 ‘훔치는’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보르헤스와 헤르만 멜빌등 복제를 테마로 하는 문학작품을 찾아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파리의 현대미술 갤러리에 가게 되었다. 첫 번째 갤러리의 그럴듯한 설치작품을 보고나서 옆 갤러리로 이동했는데 똑같은 설치작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당황했고 캡션을 보고서야 그것이 동료의 작품을 카피한 마우리지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려 했던 아이디어와 유사한 그의 작품에 고무되었고, 곧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무용을 무대에 올리되 남의 것을 훔치는 것. 일반적으로 공연작품들을  3개월의 리허설을 거쳐 1년간 투어를 하고 나면 사라진다. 무용수들은 수시로 나가기도 하고 새로 투입되기도 한다. 난 이렇게 사라져가는 무용을 리사이클 하고 싶었다.

포도아가씨: 허락없이 훔쳐왔단 말인가.

제롬 벨: 물론 아니다. 피나 바우쉬 등 몇몇 안무가들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물론 나는 그들의 거부를 존중한다.  나는 모두가 거부한다면 이 작업은 만들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수잔 링케가 수락했고 나는 그녀의 안무를 카피하여 무용수들에게 나눠준 후 열심히 연습하여 공연 때 만나자고 했다.

포도아가씨: 이후에도 당신의 전략, 즉 스스로 안무하지 않고 춤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다.

제롬 벨: 겐트의 프로듀서가 내게 작품을 의뢰했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전『마지막 공연』(the last performance) 작품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없었다. 마지막 공연이란 말 그대로 나의 마지막 공연이어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남에게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다. 자비에 르로아(Xavier Le Roy)에게 이 아이디어에 대해 메일을 쓰고 보내기 버튼(send)을 누르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자비에 르로아의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자비에 르로아가 나를 대신해 작품을 만들었다.

포도아가씨: 결국 당신은 제작자로서 싸인을 해서 돈을 받고 자비에 르로아는 디렉터가 된 셈이다. 이것은 ‘누가 저자(author)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Sasa[44]의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는 당신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어떤 면에서는 온전히 다른 작품이 생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공연에서는 같은 안무가의 같은 공연조차도 매번 동일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롭다. 사실, 저자의 개념은 1995년 당신의 첫 작품『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Name Given by the Author)에서부터 이미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Name Given by the Author, 1995)


『제롬벨』(Jérôme Bel, 1995)

 

제롬 벨: 그렇다.『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은 말 그대로 작품의 ‘제목’을 말한다. 난 당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가 안무가 사라진, 심지어 무용수마저 사라진 무대에서 무엇으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결국 나와 동료 프레드릭(Frédéric Seguette)은 둘이 무대 위에서 10여개의 각종 생활 집기들을 갖고 놀며 춤없는 춤을 만들었다. 일종의 사물들의 춤이라고나 할까.

포도아가씨:『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부터 2010년 현재까지 15년간 당신의 '기대기 전략' 또는 안무하지 않은 안무의 전략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그 점에서 당신의 작가로서의 일관성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두 번째 작품 『제롬벨』(Jérôme Bel, 1995)도 매우 흥미로웠다. 끈적하고 질펀한 육체적 퍼포먼스로 보이지만, 사실 개념적으로 매우 투명한 작품이었다.[1]

제롬 벨: 『제롬벨』이란 작품은 제목 그대로 "안무가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안무가가 아무것도 안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 부친 형태의 퍼포먼스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용에서 꼭 필요한 최소 조건들만을 충족시키는 무대를 꾸몄다. 두명의 남녀 무용수의 몸, 음악, 조명 따위들이었다. (현대의 조명을 낳은) 전구의 발명가 에디슨, 그리고 나와 일해오던 조명 감독이 '봄의 제전'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두명의 무용수가 최소한의 행위를 펼치는 것이었다. 결국 두명의 무용수가 침과 오줌까지 배설함으로써 모든 것을 비우고 환원시키는 작업이다.

포도아가씨: 이 작품은 관념의 외연과 개념의 내포가 놀랍게 대비되는 것이었다. 나체의 두 육체에 대한 또는 제의적 행위에 대한 관념, 빛과 음악에 대한 추상적 관념 등 관객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완벽한 배반이었다. 한국 관객에게 '악동' 제롬벨을 알린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

제롬 벨: 역시 그 이전부터 내 작업의 기조였던 '단 한발짝의 무용도 안무하지 않았다'를 밀어부친 작업이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자신들에게 익숙한 춤과 노래를 따라 할 뿐이다.

포도아가씨: 다음 글은 한국의 한 평론가의 리뷰이다. "제롬벨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춤을 배제 한 채 대중음악의 일차적인 이미지들을 번뜩이는 착상으로 그려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롬 벨: 나는 대중음악의 이미지를 그려내려 하지 않았다. 했다면 그들이 한 것이다.

포도아가씨: 그들이란 누구인가.

제롬 벨: 글쎄, 무용수일 수도 대중음악의 작곡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포도아가씨: "이번 사기극에서도 제롬벨은 결국 ‘무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무용은 원천적으로 객관적인 표현이 불가능한 미개한 공연예술인 것처럼 망발을 하며 무용을 모욕하고 있었다" 이것도 한국 무용평론가의 리뷰에서 발췌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롬 벨: (웃음)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무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은 맞는 말 아닌가. 나는 무용적으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무용에 대해 한 것이다. 사기극? 맞다. 한국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 중 하나가 백남준의 '예술은 고등 사기다' 가 아니던가.

포도아가씨: 당신은 이런 갈등들을 즐기는가? 한국의 무용평단에서 당신을 '악동 제롬벨'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롬 벨: 동시대 예술이 논쟁적임은 피할수 없을터. 동시대 예술이란 반시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이가 이미 오십을 향해 가고 있는 마당에 악동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북유럽의 어느 페스티발에서 나의 작품을 보러온 관객이 '무용 공연에 무용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페스티발을 고소 한적도 있고, 심지어 공연 후 나에게 폭행을 시도한 관람자도 있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그들에게 최대한 나의 작업에 대해 설명해주고자 한다.

포도아가씨: 나 역시 '어른이 되며 스스로 그만 둘 행위를 하는 미숙한 행위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당신을 표현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것은 일면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한국무용계의 자기 방어적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제 2010년 페스티발 봄에서 선보인 최신작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와 『PK와 나』의 연속적 해프닝 이후 이제 한국관객은 당신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 제롬벨을 좋아하는 관객과 전문가,  그리고 매우 제롬벨을 싫어하는 관객과 전문가 층. 후자는 나이 많은 무용계 사람들이 많고 전자는 젊은 비무용계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이번 두 작품에서는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제롬 벨: 유럽과는 다르다. 유럽에선 나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그렇치 않은 관객들이 섞여 있다. 유럽에서는 공연 후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나에게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한국 무용계 전문가들이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나는 여전히 댄스 퍼포먼스를 무대 위에 올리고 있다.


『루츠 푀르스터』, 제롬 벨 (사진© Icare)

포도아가씨: 이번에 선보인 두 작품 『베로니끄 두아노』와 『루츠 푀르스터』는 동일한 주제의 다른 표현, 즉 이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거와 달리 ‘실제(real)’에 기대고 있다는 점, 다큐멘터리 감독과 같은 태도와 그것이 가져오는 감동이 있다. 무한도전 보다 1박2일이 더 인기있는 이유와 같다. ‘실제(real)’와 ‘감동’은 당신의 기존 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것이었다. 만족하는가?

제롬 벨: 1박2일은 모르겠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의 눈'은 흥미로운 표현이다. 나는 여전히 댄스 퍼포먼스를 구현하고 싶지만, 세상엔 나보다 춤을 잘 추거나 안무를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고안되어 구현되는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보다는 실재에 더 관심이 간다.

포도아가씨: 개인적으로『베로니끄 두아노』와 『루츠 푀르스터』의 엔딩에 당신이 등장해 박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스스로 등장하여 구구절절 설명하려던『PK와 나』와의 차이점이다.

제롬 벨: 그들은 스스로 투어중인 작품들이다. 내가 무대에서 박수 받을 이유가 없다.

포도아가씨: 당신은 초기 작품에서는 롤랑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으로부터의 영향을,『마지막 퍼포먼스』는 마우리조 카틀렌 같은 현대미술가로부터의 영향을 고백했다. 또한 『PK와 나』는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관계적 미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대놓고 미술의 아이디어를 빌려 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겠나?

제롬 벨: 당신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가 서양 연극을 비판하기 위해 멕시코 원시부족의 아이디어를 훔쳐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르토가 멕시코 산 속을 찾아가듯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르트, 현대 미술작품들, 니콜라 부리오와 문학 작품들은 프랑스인인 내게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더욱 신선한 공기를 찾을 권리는 내게 있고, 그것을 찾아낼 감각이 내게 있었을 뿐이다.

포도아가씨: 열받았나?

제롬 벨: 아니다.

포도아가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극장의 블랙박스가 캐모플라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극장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 나지 못해왔다. 진검승부를 꺼리는건 아닌가?

제롬 벨: 진검승부가 무슨말인가?

포도아가씨: 진짜 칼로 싸운다는 뜻이다.

제롬 벨: 아직 죽고 싶지 않다.

포도아가씨: 썰렁하다

제롬 벨: 나는 블랙박스의 해방 따위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댄스 퍼포먼스를 하고 싶은 열망,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사실 탓에 이런 저런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여 온 것 이라 할 것이다. 블랙박스 밖으로 뛰쳐 나가는 것이 블랙박스를 해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포도아가씨: 가장 최근의 작품『관람자』(Spectator)에서 당신은 오랜만에 스스로 무대 위에 섰다. 과거 당신이 관객으로서 감동을 받았던 역대의 유명 안무가들 피나 바우쉬(Pina Bausch),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얀파브르(Jan Fabre), 안나 테레사(Anne Teresa) 등 수많은 거장들을 언급하곤 그들로부터 다른 길로 들어선 자신을 고백한다. 그들을 비판하는 것인가?

제롬 벨: 마치 베로니끄 두아노나 루츠 푀르스터처럼 내 자신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베로니끄나 루츠와 달리 나는 관객으로서의 제롬벨을 보여주려 했다.

포도아가씨: 어쩌면 이 작품이 가장 정치적인, 다시 말해 관객을 해방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명이 켜진 무대에 뚜벅뚜벅 홀로 걸어나온 당신이 전형적인 ‘현대무용’과 결별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깨우쳐 가는 관객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제롬 벨: 칭찬도 할줄 아는군.


『관람자』(Spectator, 2009)

포도아가씨: 사실 최근 3개의 작품『베로니끄 두아노』와 『루츠 푀르스터』 그리고 『관람자』는 스토리 텔링과 감동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갖춘다.

제롬 벨: 또 비꼬는 건가.

포도아가씨: 당신은 여전히 댄스를 좋아하는가?

제롬 벨: 그렇다. 여전히 나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댄스 퍼포먼스를 하고싶다.

포도아가씨: 그 나이에 머리에 쓴 비니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제롬 벨: 당신 포도머리 보다 낫지 않나?

포도아가씨: 허접한 질문이지만 podo에서 인터뷰 마지막에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제롬 벨: 사기다.

포도아가씨: 이번엔 백남준을 전유하는 것인가?

제롬 벨: 나의 최근 작업이 다 그렇지 않던가. 그러나 사기꾼과 예술가의 사기는 좀 다르다.

포도아가씨: 무엇이 다른가.

제롬 벨: 사기꾼과 예술가는 자신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사기꾼과 달리 예술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사기를 친다.

포도아가씨: 인터뷰 고맙다. 사실 한국엔 당신의 팬들이 많다. 다음엔 올건가?

제롬 벨: 글쎄, 간다면 작품만 무대에 올려놓고, 난 대학로에서 비빔밥이나 먹고 놀까 싶다.

끝.

 

글: 홍성민 작가/계원디자인 예술대학 교수
*본 인터뷰는 가상 인터뷰입니다. 그러나 제롬벨 작품에 대해선 대부분 실제 동영상 인터뷰를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제롬 벨: 1964년생. 공연연출가. 프랑스 파리. 1991년 까지 Centre National de Danse Contemporaine d'Angers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고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오프닝 세레모니의 연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94년 『작가로부터 주어진 이름』을 시작으로 2009년 『관람자』(Spectator)에 이르기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유럽 현대무용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현재 가장 개념적인 연출가로서 전 세계 진보적 페스티발의 러브콜을 받는 대표적 Thinking Choreographer 로 평가 받는다. 2005년 베시어워드 퍼포먼스 상을 수상하였다.

포도아가씨: 젖과 꿀, 포도즙이 흐르는 포도밭에서 노닥이는 처녀.


 

[1] 참조 인터뷰와 공연 영상 http://www.catalogueraisonne-jeromebel.com/player.php?ep=2

 


『PK와 나』(Pichet Klunchun and Myself, 2005)


『마지막 공연』(the last performance, 1998)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 2001)


『베로니끄 두아노』(Veronique Doisneau,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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